문화 유전자 전쟁 - 신고전파 경제학의 창조적 파괴
칼레 라슨 & 애드버스터스 지음, 노승영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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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배운 경제학은 왜 사소한 선택만을 다루고 있을까요? 콜라 한 캔을 더 사려고 피자 몇 조가을 포기할 용의가 있는가 하는. 이런 수법은 문제의 심각성을 감추는 데 매우 효과적으로 보인다. 정작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는 '식량을 사려면 의료를 얼마나 포기해야 하는가?'하는 문제가 아닐까? 또한 경제학은 욕망이라는 개념은 다루지만 '필요'는 다루지 않는다. 백만장자가 요트를 사고 있은 욕망은 충족되지만 가난한 가족이 집을 구해야 하는 필요는 충족되지 않는다는 사실의 수업의 주제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불평등의 문제는?

 



이렇게 학교와 사회를 주무르고 있는 신고전파 경제학은 어떻게 사회의 주류가 되었는가?
1960년대 후반 국방부의 후원을 받는 두 기관인 랜드 연구소와 미국 공군이 수리경제학 연구를 지원하는 대규모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자금은 대부분 캘리포니아, 하버드, 프린스턴, 컬럼비아, 스탠퍼드, 시카고, 예일, MIT에 돌아갔다. 이 대학들은 대규모 자금 지원을 계속 받을 수 있도록 선뜻 경제학과의 학문적 방향을 선회했다. 8개 대학의 비중과 국제적 명성을 보건대, 이 대학들이 신고전파 경제학을 확고한 경제적 교리로 받아들이자 서구의 나머지 대학들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1960년대 이후로 국제통화기금과 세계은행에 고용된 1,000명 이상의 경제학자들은 절대다수가 8개 대학의 교리를 철저히 받아들였다.

이들의 언어는 점차 고집불통이 되었고 이들이 사용하는 수학은 현란하고 난해해졌다.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방법론을 나머지 사회 과학 분야에, 또한 인간 생활의 온갖 문제에 적용하기 시작하자, 강단 제국주의라는 오명도 이들의 것이 되었다.

그렇지만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겪으며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받아들였던 이론이 정말 옳은 것인지 다시 묻게 되었다. 그런 징조는 곳곳에서 나타났다. 2011년 하버드에서 맨큐의 수업을 듣던 학생들이 자기네가 배우는 경제학에 반대한다는 표시로 수업을 거부했다.

경제학을 점령하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경제학이 다루어야 할 것은 곡선이 아니라 인간이다는 마드리드의 한 대학 캠퍼스 벽에 새겨진 구호였다. 이제는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하는 금융자본주의 신고전파 경제학으로 대표되는 주류경제학이 만들어낸 문화 유전자에 저항할 수 있는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어내자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그들이 말하는 문화유전(meme)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만들어낸 신조어로, 유전전 방법이 아닌 모방을 통해서 습득되는 문화요소를 말한다.

신고전파 경제학의 정통서에 맞서는 전투는 오랫동안 격렬하게 벌어지겠지만 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이 자기네가 위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며 오히려 규제가 서툴러서, 시장에 맡겨야 할 분야에 정부가 개입해서 위기가 일어났다고 주장한다. 거꾸로 이번 위기가 신고전파 경제학의 폐기가 아니라 확산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작가들은 '새로운 과학적 진실이 승리하려면 반대파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반대파가 죽고 진실에 친숙한 새로운 세대가 성장해야 한다.'라는 말을 들어 낡은 패러다임을 몰아내는 것은 '진리'가 아니라고 말한다. 낡은 패러다임은 예측이 틀렸다고, 정책이 통하지 않는다고, 이론이 비과학적이라고 해서 폐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주류가 쿠데타를 일으켜 낡은 학파의 옹호자들을 권좌에서 몰아낸 뒤에야 낡은 패러다임은 새 패러다임으로 대체된다. 따라서 우리는 상아탑을 박차고 나와 밈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문화 유전자 전쟁을 대비해야 한다.

<문화 유전자 전쟁>은 이런 모든 경제학의 논리와 주장을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것처럼 흥미롭게 구성했다. 많은 화보와 구호로 요점을 쉽게 전달하고 있다. 우리는 이 다큐멘터리를 따라 신고전파 경제학에 반기를 들고 전쟁을 선포한 많은 이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이러한 움직임이 우리나라에는 있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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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호어스트 에버스 지음, 장혜경 옮김 / 갈매나무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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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라는 제목은 자뻑의 수준이 아주 뻑가는 사람의 잘난체가 아니다. 이 말은 작가가 젊은 시절 사귀었던 괴팍한 여인이 그에게 한 말이다. 다혈질에 변덕이 죽 끓 듯 했던 그녀는 "내가 너라면 날 사랑하겠어. 그렇지 않으면 날 오래 참지 못할 테니까."라고 말했다.

⁠작가는 시종일관 이런 식이다. 일면 쿨해보이기도 하고, 어쩌면 무심해보이기도 하다. 일상이 농담처럼 실없이 이어지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서 책을 읽고 있는 독자를 키득키득 어이없게 만들다가 어느 순간 알 수 없는 깊이의 사색으로 빠져들게 한다.

새벽 4시 20분. 느닷없이 30초 간격으로 울리는 알람 소리에 놀라 깬 작가와 같이 사는 여자 친구는 30분 동안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헤맨다. 그런데 딸이 밝혀낸 소리의 근원은 화재경보기였다. 온 집에 울려대던 소리는 각 방마다 설치한 화재경보기의 배터리가 동시에 다 닳아서였다. 여자친구와 딸은 자러 들어갔지만 작가는 화재경보기의 배터리를 다 떼어 낸 순간에 불이날 수 있다는 상상으로 심란하다. 그렇다고 배터리를 다시 끼우면 소리때문에 잠을 자지 못한다. 스스로 살아있는 화재경보기가 되기로 한다. 그러다가 예전에 존재하던 화재 감시요원을 생각한다. 밤에 화재를 감시하는 역할을 하던 화재 감시요원이 그만 깜박 잠이 드는 바람에 촛불이 넘어져서 대형화재가 발생하고 말았다. 작가의 생각은 여기에서 세계3대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 블루스','스탠다드','푸어 비치'에게로 간다. 이들은 늘 자신들은 화재나 사고등에 직접적인 영향이 없으며 그저 일종의 알람 경보기 같은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작가는 예전 화재 감시요원과 이들이 같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피로를 선사하는 것은 화재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공포와 알람 경보기의 계속되는 경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는 우리가 늙어가고 있다는 것, 내 뜻대로 상황이 혹은 사람이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것, 그래서 견딜 수 없이 힘든 삶이라는 데 좌절한다. 아주 사소하게는 짜증과 욕을 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정말 견딜 수 없을 때는 사랑만이 도움이 된다. 심지어는 암이라는 질병도, 가난이라는 상황도. 그렇게 사랑하다보면 보다 의연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다른 길이 보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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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70가지 - <씨네21> 주성철 기자의 영화감상법
주성철 지음 / 소울메이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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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불금! 우리 가족은 요즘 핫하다는 <명량>을 보러 갔다. 생전 처음으로 비트박스에 앉아서(울 아들은 레미제라블을 볼 때 경험한 바가 있다고 했다)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울림을 느끼며 오랜만에 같이 한 시간은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어졌다. 분명 같은 영화를 봤음에도 조금은 다른 느낌을 가졌고, 영화를 보고 난 후 이런저런 아쉬움과 좋았던 점을 서로 이야기했다. 우리 가족 사이에서도 작은 차이가 있었지만 온라인상에서 만나는 영화평은 나와는 달라도 참 많이 달랐다.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영화가 일상처럼 되어 버린 지금,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면 영화평론가 못지않은 영화평을 쏟아놓는다. 그 속에서 유명한 영화배우를 못 알아보거나 작품을 미처 챙겨 보지 못한 나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자리만 차지하고 앉아있기 일쑤였다. 하지만 요즘 조금씩 영화를 챙겨 보기도 하고 조금은 적극적으로 영화를 보려고 노력하다 보니 알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졌다. 그런 나의 호기심과 지적욕구를 충족시켜 줄 첫 만남의 책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알아야 할 70가지>는 적당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나름대로 영화에 대한 지식을 쌓아왔다고 자부하는 영화팬들한테는 부족(?)할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막 영화를 더 좋아해 보기로 하고 하나씩 쌓아가는 초보 영화팬인 나한테는 부족함이 없었다.
이 책을 쓴 주성철은 월간 영화지 <키노>에서부터 <필름 2.0>을 거쳐 지금은 <씨네21>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쓰기도 하고 '영화리뷰 쓰기'강좌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초보 영화광을 위한 안내서를 쓰기로 했나 보다. 영화를 막상 재미있게 봤지만 다른 이의 영화평을 보면 왜 나는 그걸 전혀 알아채지 못했는지 자괴감이 생긴다. 왜 그럴까? 그것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아는 만큼 보인다."였다. 더 나은 영화 감상을 위해 중요한 것은 '지식'과 '해석'이라고 한다. 그리고 같은 영화를 보고서도 각기 다른 생각을 하는 이유는 바로 푼크툼(puncyum)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롤랑 바르트가 말한 개념으로 사회적으로 널리 공유되는 '일반적 해석의 틀에 따라 읽어내는 의미'인 스투디움(studium)과는 달리 특정한 이미지가 나에게 쏘아져 날아오는 화살과 같은 것인 푼크툼때문에 영화는 보는 이마다 다른 평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화살을 맞는 존재로 자기만의 영화와 자기만의 배우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영화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작품에서는 쓸데없이 들어 간 장면이 단 하나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그 작품을 보는 관객은 모든 장면에 의문을 갖는 자세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읽을거리를 담고 있는 책이지만 찾아보기가 없어서 필요한 부분을 찾기가 불편한 단점이 있지만 뭐 그 정도는 풍부한 내용에 묻어가는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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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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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스웨덴의 나라에서 온 웃긴 작가가 전작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들고 또 왔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현대사 100년을 통과하는 인물을 그렸다면 이번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에서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들여다보게 할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책의 표지를 막 넘기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통계학적으로 말하자면,
1960년대 소웨토에서 태어난 까막눈이 여자가 자라나서, 어느 날 감자 트럭에서 스웨덴 국왕을 만나게 될 확률은 45,766,212,810분의 1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까막눈이 여자의 계산에 의한 것이다.

요나스 요나손의 전작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그러하듯이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를 간략하게 요약하는 일은 거의 책의 절반만큼의 종이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해본다면 남아프리카 최대 게토의 공동변소분뇨 신임 관리소장이 된 14살 놈베코는 학교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분뇨통을 나르면서 셈을 배웠고, 라디오를 통해서 어휘와 다른 세상의 존재를 배웠다. 이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계집애는 한 놈팡이로부터 글을 배우고 그의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탈출하여 도서관으로 가던 중 차에 치여 죽지 않고 살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곳에 들어가 살게 된다. 그 연구소의 소장은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 놈베코가 사실은 핵무기를 만드는 일을 뒤에서 지휘하게 된다. 그런 그녀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정치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핵무기와 함께 스웨덴으로 오게 되고 스웨덴의 국왕과 후진타오 중국 수상과 만나게 되고 무사히 핵무기를 처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잠깐 아프리카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652년 보어인(네덜란드 농부)의 이주가 늘며 원주민의 토지를 약탈하고 원주민을 노예를 만들려고 했기에 원주민과의 전쟁이 100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다 이곳에 영국이 1815년 이후 들어오게 됨에 따라 보어인은 내륙으로 이동해서 오렌지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오렌지 공화국이 있던 곳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트란스발 공화국이 있던 데에서 금이 발견됨에 따라 보어전쟁이 일어난다. 보어인이 패배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영국인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가 1948년 보어계 내각이 들어서면서 인종차별이 강화되었고 급기야 1950년 인종등록법을 제정하여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정책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후에 흑인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적조차 박탈당하게 되고 통행법까지 만들어 감시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 시기에 1960년에 태어난 놈베코를 역사의 한가운데 두고서 작가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려 배꼽 잡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는다. 특히 현재까지 자체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가 폐기한 유일한 나라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무기 폐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 멋진 놈베코와 무지막지하게 연관이 되어있다는 상상은 기발하다.

작가는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날랐던 흑인 소녀를 통해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에 똥침을 날리고 있다.

'너희들의 그 너절한 방식에 내가 비웃음을 날려주마'

풍자란 재미있는 방식으로 위장해서 중요한 것들을 얘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더 확실하고 이해하지 쉽게 전달한다. 진짜와 가짜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고 실존 인물과 존재한 적이 없는 가상의 인물이 함께 하지만 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진실을 쉽게 포착해낼 수 있다.

소설은 허구다. 거짓을 말한다. 특히 이런 유의 소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거짓을 통해서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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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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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실화이며, 동시에 우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1960년대 우리들의 포크로어(민간전승)이기도 하다.
......
우리는 말 그대로 1960년대의 아이들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평생에서 가장 상처 입기 쉽고, 가장 미숙하고, 그런 연유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1960년대란 터프하고 와일드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숙명적으로 그에 취해 버렸다.
......
시대의 회전이 뿜어내는 열기와, 거기에 내건 약속과, 어떤 종류의 무언가가 어떤 종류의 시기에 자아내는 어떤 종류의 한정된 찬란함, 그리고 망원경을 거구로 보고 있는 듯한 숙명적인 답답함, 영웅과 악한, 도취와 환멸, 순교와 전향, 총론과 각론, 침묵과 웅변,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다림, 그 밖의 등등, 등등.
......
고도 자본주의 전사(前史)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중에서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의 주인공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그와 우연찮게 이탈리아의 한마을에서 만난다. 그는 나와는 결이 다른 인간이다. 아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가 들려준 당시의 우리들의 이야기, 즉 포크로어는 다음과 같다. 올 에이 증후군에 걸려있던 그는 그와 비슷한 여자친구와 같이 공부하고 즐기는 사이였다. 둘은 정신적인 쌍둥이다. 얼굴도 잘 생기고, 성적도 좋고, 타고난 리더이기도 하고. 연인 사이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행위는 페팅에 머무른다. 그는 그런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그녀는 완강하다. '결혼할 때까지 처녀로 남고 싶어.' 그리고 그녀의 말 '나는 너랑 결혼할 수 없어. 나는 나보다 몇 살 위인 사람이랑 결혼할 거고, 너는 몇 살 아래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게 세상의 보통 흐름이라고. ' 그렇지만 '난 너랑 잘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 다음에 너랑 잘 거야.'라고 말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말로 헤어진 둘은 여자친구가 결혼하고 나서 다시 만난다. 그 둘은 잤을까?

두 사람 사이의 세상은 진폭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계속 반복되는 행위처럼 그 옛날과 비슷했다. 봉인되고 동결된 일. 이미 어느 누구도 그 봉인을 뜯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그는 몹시 텅 빈 느낌을 갖는다.

우리 시대의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인 하루키는 1960년대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그의 감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1960년대 전공투 세대인 하루키는 혁명을 외쳤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반동으로 흐르는 사회를 겪은 데서 오는 좌절감에서 세계는 나아질 것이라는 신념을 버리게 된다. 더 이상의 희망을 상실한 세대가 갖는 무기력해 보이기도 하고 세상에서 한 발쯤 떨어져 구경하는 인물인 듯도 보이는 감성을 하루키의 작품에서 많이 느낀다. 그래서 읽기는 쉽지만 맥락화하기는 힘들다. 하루키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다양한 감성들을 녹여놓았기에 현실과 감성 그 어디쯤에 독자를 헤매게 만든다.

<< TV피플>>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에서도 명확한 주제나 교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흘러왔던 시대 그 속에 던져진 개인들, 그리고 더 나아지지 않고 반복되는 일들. 우리는 시대의 공기를 마시며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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