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TV 피플 ㅣ 북스토리 재팬 클래식 플러스 1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스토리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것은 실화이며, 동시에 우화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한, 1960년대 우리들의 포크로어(민간전승)이기도 하다.
......
우리는 말 그대로 1960년대의 아이들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한평생에서 가장 상처 입기 쉽고, 가장 미숙하고, 그런 연유로 가장 중요한 시기에, 1960년대란 터프하고 와일드한 공기를 듬뿍 마시며,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숙명적으로 그에 취해 버렸다.
......
시대의 회전이 뿜어내는 열기와, 거기에 내건 약속과, 어떤 종류의 무언가가 어떤 종류의 시기에 자아내는 어떤 종류의 한정된 찬란함, 그리고 망원경을 거구로 보고 있는 듯한 숙명적인 답답함, 영웅과 악한, 도취와 환멸, 순교와 전향, 총론과 각론, 침묵과 웅변, 그리고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다림, 그 밖의 등등, 등등.
......
고도 자본주의 전사(前史)
---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중에서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의 주인공 나는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그와 우연찮게 이탈리아의 한마을에서 만난다. 그는 나와는 결이 다른 인간이다. 아니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부류의 인간이다. 그가 들려준 당시의 우리들의 이야기, 즉 포크로어는 다음과 같다. 올 에이 증후군에 걸려있던 그는 그와 비슷한 여자친구와 같이 공부하고 즐기는 사이였다. 둘은 정신적인 쌍둥이다. 얼굴도 잘 생기고, 성적도 좋고, 타고난 리더이기도 하고. 연인 사이이기는 하지만 사랑의 행위는 페팅에 머무른다. 그는 그런 관계에 만족하지 못하고 무언가 결여되어 있다고 느끼지만 그녀는 완강하다. '결혼할 때까지 처녀로 남고 싶어.' 그리고 그녀의 말 '나는 너랑 결혼할 수 없어. 나는 나보다 몇 살 위인 사람이랑 결혼할 거고, 너는 몇 살 아래인 사람이랑 결혼하는 거야. 그게 세상의 보통 흐름이라고. ' 그렇지만 '난 너랑 잘 거야. 하지만 지금은 안 돼. 내가 누군가와 결혼한 다음에 너랑 잘 거야.'라고 말한다. 이 이해할 수 없는 애매한 말로 헤어진 둘은 여자친구가 결혼하고 나서 다시 만난다. 그 둘은 잤을까?
두 사람 사이의 세상은 진폭을 조금씩 잃어가면서 계속 반복되는 행위처럼 그 옛날과 비슷했다. 봉인되고 동결된 일. 이미 어느 누구도 그 봉인을 뜯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고, 그는 몹시 텅 빈 느낌을 갖는다.
우리 시대의 가장 인기 있는 작가인 하루키는 1960년대를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그의 감성을 이해하기 힘들다. 1960년대 전공투 세대인 하루키는 혁명을 외쳤지만 실패로 돌아가고 오히려 반동으로 흐르는 사회를 겪은 데서 오는 좌절감에서 세계는 나아질 것이라는 신념을 버리게 된다. 더 이상의 희망을 상실한 세대가 갖는 무기력해 보이기도 하고 세상에서 한 발쯤 떨어져 구경하는 인물인 듯도 보이는 감성을 하루키의 작품에서 많이 느낀다. 그래서 읽기는 쉽지만 맥락화하기는 힘들다. 하루키는 문장과 문장 사이에 다양한 감성들을 녹여놓았기에 현실과 감성 그 어디쯤에 독자를 헤매게 만든다.
<< TV피플>>에서 가장 좋았던 단편 <우리들 시대의 포크로어>에서도 명확한 주제나 교훈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게 흘러왔던 시대 그 속에 던져진 개인들, 그리고 더 나아지지 않고 반복되는 일들. 우리는 시대의 공기를 마시며 시대의 흐름에 흔들리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