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요나스 요나손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가 돌아왔다. 스웨덴의 나라에서 온 웃긴 작가가 전작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보다 더 재미있는 책을 들고 또 왔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현대사 100년을 통과하는 인물을 그렸다면 이번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에서는 아프리카의 역사를 들여다보게 할 매력적인 여주인공을 우리 앞에 보여준다.

책의 표지를 막 넘기면 다음과 같은 문장이 우리를 맞이한다.

통계학적으로 말하자면,
1960년대 소웨토에서 태어난 까막눈이 여자가 자라나서, 어느 날 감자 트럭에서 스웨덴 국왕을 만나게 될 확률은 45,766,212,810분의 1이다. 이는 위에서 말한 까막눈이 여자의 계산에 의한 것이다.

요나스 요나손의 전작인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이 그러하듯이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를 간략하게 요약하는 일은 거의 책의 절반만큼의 종이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해본다면 남아프리카 최대 게토의 공동변소분뇨 신임 관리소장이 된 14살 놈베코는 학교에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지만 분뇨통을 나르면서 셈을 배웠고, 라디오를 통해서 어휘와 다른 세상의 존재를 배웠다. 이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계집애는 한 놈팡이로부터 글을 배우고 그의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탈출하여 도서관으로 가던 중 차에 치여 죽지 않고 살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비밀리에 핵무기를 만들고 있는 곳에 들어가 살게 된다. 그 연구소의 소장은 능력이 없는 인간이라 놈베코가 사실은 핵무기를 만드는 일을 뒤에서 지휘하게 된다. 그런 그녀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정치 상황에 따라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핵무기와 함께 스웨덴으로 오게 되고 스웨덴의 국왕과 후진타오 중국 수상과 만나게 되고 무사히 핵무기를 처리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잠깐 아프리카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은 1652년 보어인(네덜란드 농부)의 이주가 늘며 원주민의 토지를 약탈하고 원주민을 노예를 만들려고 했기에 원주민과의 전쟁이 100년 동안 계속됐다. 그러다 이곳에 영국이 1815년 이후 들어오게 됨에 따라 보어인은 내륙으로 이동해서 오렌지자유국과 트란스발 공화국을 세우게 된다. 오렌지 공화국이 있던 곳에서 다이아몬드가 발견되고 트란스발 공화국이 있던 데에서 금이 발견됨에 따라 보어전쟁이 일어난다. 보어인이 패배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영국인의 지배에 놓이게 된다. 그러다가 1948년 보어계 내각이 들어서면서 인종차별이 강화되었고 급기야 1950년 인종등록법을 제정하여 '아파르트헤이트' 인종차별정책의 기초를 마련한다. 이후에 흑인들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국적조차 박탈당하게 되고 통행법까지 만들어 감시당하는 처지에 놓인다.

이 시기에 1960년에 태어난 놈베코를 역사의 한가운데 두고서 작가는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려 배꼽 잡는 이야기를 만들어 놓는다. 특히 현재까지 자체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성공했다가 폐기한 유일한 나라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핵무기 폐기에 대한 이야기가 이 멋진 놈베코와 무지막지하게 연관이 되어있다는 상상은 기발하다.

작가는 다섯 살 때부터 분뇨통을 날랐던 흑인 소녀를 통해 아프리카와 유럽의 역사에 똥침을 날리고 있다.

'너희들의 그 너절한 방식에 내가 비웃음을 날려주마'

풍자란 재미있는 방식으로 위장해서 중요한 것들을 얘기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더 확실하고 이해하지 쉽게 전달한다. 진짜와 가짜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고 실존 인물과 존재한 적이 없는 가상의 인물이 함께 하지만 독자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를 관통하는 진실을 쉽게 포착해낼 수 있다.

소설은 허구다. 거짓을 말한다. 특히 이런 유의 소설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거짓을 통해서 세상에 관한 진실을 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