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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미궁>은 표면은 추리소설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단지 장르소설만으로 머물 수 없는 심리묘사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내면에 R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담고 살았던 신견(新見)이 성인이 되어 겪게 되는 사건의 중심에는 중학교 시절 동창이었던 수수께끼의 여인 사나에가 있다.
사나에는 히오키 사건의 유가족이다. 히오키 사건은 미궁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녀는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다. 일가족의 죽음, 잠긴 집안에서 남편과 아내는 예리한 흉기에 의한 죽임을 당하고, 장남은 구타 당한 후 독극물 먹고 사망했으며, 현장에는 흉기도 없고, 유일한 생존자인 딸은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신견은 우연히 그녀를 만나 그녀의 집에서 잠을 자고 그녀의 사라진 남자친구의 양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쫓는 사람이 있다. 신견은 그렇게 그녀와 히오키 사건에 끌려들어 가는데...
이 소설은 이렇게 미궁 속에 빠져버린 사건에도 눈길이 가지만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이 겪는 시대 정서로서의 불안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압축성장기를 거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추구했던 시기를 지나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이제는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시기를 견디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대지진을 겪어야 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세상은 이런 개인에게 더 강한 자아를 요구하면서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귀착시키고 있다. 개인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가치는 혼란스럽고 마치 커다란 싱크홀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 자신만의 통제 가능한 세계를 구축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깃 없는 분노에 포획되어 덫에 걸려 있는 느낌으로 분노를 엉뚱한 곳에 표출한다.
이 상태의 주인공들은 그렇기에 우리가 보기에 다소 병적으로 느껴지지만 이상한 것에 집착을 보인다거나 분리된 자아를 갖는다거나 하는 병리적인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견은 이런 상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책에는 그렇지만 여기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냥 서로 아픔을 가진 존재끼리 그저 기대고 부대낀다. 인간은 그렇게 흐름에 몸을 던지고 살아야 하나 보다.
"모두 흉내야. 주위의 흉내. 우리는, 꿈을 가져라,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서 커온 세대잖아? 뭔가가 되어라,라는 식으로. 존재의 희박함을 특별한 뭔가가 되는 것으로 해소하려고 했지."
"거품경제가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이 나라가 돌연 불경기에 빠진 다음부터는 안전된 생활을 목표로 달려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어. 사회에 여유가 없어지게 됐으니까. 그 뒤에 나오는 구호는, 당연한 귀결이지만, 일상을 사랑하라는 거야.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더라도 이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라는 거. 주위를 흉내 내면서. 어떤 이데올로기 속에든 들어가 이 세계에 존재할 자격을 갖추고 싶었던 나는 혼란에 빠지게 돼. 일상을 사랑하라고? 그건 무리지."
"하지만 결국 깨달았어.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거. 내 안의 불안이라든가 우울을 뭔가로 메우려고 했던 것뿐이야. 변호사가 되려고 한 것도, 현실적인 노선이었고 그걸로 우쭐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난 변호사다,라는 식으로. 하지만 흥미가 없어져버렸어. 위로 치고 올라가서,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지? 부자가 되는 거? 우월감? 하지만 그 우월감에서 표면적인 행복을 느낀다고 해도, 그건 말하자면, 자신의 행복에 타인의 지위를 전제로 하는 거잖아?"
"그 대지진은 나의 무력감을 다시 떠올리게 했어. 돈을 벌고 먹을 것을 사들이고 나 스스로 살아간다는 건 그저 내 착각일 뿐이고, 이 세계의 참모습은 잔혹하고 우발적이고 무관심한 것이었어. 자연이나 풍경은 결코 사랑할 것 따위가 아니고, 우리의 생명 따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쉽게 파괴해버리는 것이었어. 우리의 풍경은, 우리 마음의 준비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순간에, 언제든지 한순간에 모조리 다른 것으로 변용하는 거야. ...... 그 대지진은 내 안에 그 무렵의 무력한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재인식시켰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