낀 세대 리더의 반란
조미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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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속도와 다양성 측면에서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변화가 찾아온 200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세대 간의 단절을 경험한다.

그 세대를 <낀 세대 리더의 반란>을 쓴 조미진은 기성세대(베이비 붐 세대와 386세대)와 아직은 젊은 밀레니엄 세대(M 세대) 그리고 그 중간에 낀 세대인 X세대로 구분했다. 전쟁 후 간난의 혹독함을 경험했고,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경제성장을 일군 세대라는 자부심이 가득한 베이비 붐 세대는 '너희가 뭘 아라!'라는 사고방식으로 무장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더 밀어붙이고 압박을 가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기성세대다. 그들에게 교육을 받고 자란 386세대는 가장 극적인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세대로 기성세대를 향한 비판의 목소리도 크지만 '그래도 윗사람인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세대다. 리더십의 완성은 팔로어십인데 이 팔로워들 즉 M 세대는 '다 필요 없고 나 하나만!'이라는 사고방식에 젖어있다. 그렇다면 이 사이에 끼어버려 자칫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게 생긴 X세대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이들을 위해 저자는 자신이 겪은 사례와 여러 리더십에 대한 책, 혹은 권위를 가진 이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통해 이 긴 세대에게 조언을 하고 있다. 
우선 이들 사이에서 낀 세대가 가져야 할 것은 두 세대에 대한 정확한 이해다. 고맥락문화에 익숙한 기성세대와 외계인처럼 나타난 M 세대의 저맥락문화를 이해하고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해낼 수 있어야 한다. 

 고맥락문화(High context) :소통이나 상황이 어떤 특정한 맥락 속에서 인지되고 해석되는 문화적 배경을 의미한다. 특히 사람들간의 역학관계, 표정, 말하는 톤, 바깥으로 표출되는 느낌이나 태도 등을 민감하게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중요해서 말하는 사람보다 듣는 사람에게 소통의 책임이 있다.

 저맥락 문화: 구체적인 말과 표현으로 소통이 이루어진다.

 


이들은 리더십을 갖는 동시에 바로 밑의 세대들이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선 자신이 선 자리를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에 대한 철저한 인식이 새로운 리더십을 구축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신임 관리자로서 부하들의 성장에 집중해야 하며 양쪽의 서로 다른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낀 세대 리더는 위아래 세대 간의 균형감을 잃지 말아야 하며,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한가지 더 혁신 리더로서의 사명감 또한 갖춰야 한다.  자신이 보고 배운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뀐 토양에서 훌륭히 적용되고 실천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는 점을 늘 기억해야 한다.
두 세대 사이에 더 큰 도약을 꿈꾸는 '진정한 리더'가 되길 원하는 이들은 한 번쯤 고민해 봐야 할 문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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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키드 퓨처 - 당신의 모든 움직임을 예측하는 사물인터넷의 기회와 위협!
패트릭 터커 지음, 이은경 옮김 / 와이즈베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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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침에 눈을 뜨면서 제일 먼저 스마트폰을 쳐다본다. 이메일도 체크하고 페이스북에 새로 올라온 소식들도 보고 그리고 오늘의 일정도 확인한다. 일정을 보니 오늘이 내가 예뻐하는 동생의 생일이다. 생일은 동생이 나한테 알려 준 것은 아니지만 스마트폰을 쓰면서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이들의 생일이 나의 일정에 빼곡히 들어와 있다. 이것은 2014년 오늘의 일이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나의 눈을 통해, 혹은 얼굴빛과 맥박과 호흡수를 스마트폰이 체크해서 나의 주치의에게 전송을 하고 나의 식사와 생활정보를 수집해서 건강 센터로 전송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다. 더 소름 끼치는 미래의 모습은 나의 스마트폰에 저장된 정보에 근거하여 지금으로부터 1년 6개월 후 내가 어디에 있을지 정시에 한 구역 이내의 오차로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일명 '제4의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물인터넷 시대로 접어들면서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현실이 될 것이다. 사생활 정보가 모여 빅데이터가 되는 벌거벗은 미래에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에서 데이터를 창출한다는 사실과 그로 인해 우리 행위가 예측 가능해지는 상황이 지니는 긍정적인 측면은 무엇인가, 우리는 스스로에 대해 무엇을 예측할 수 있는가, 공개된 사회를 살아가는 올바른 방법은 무엇인가를 미래예측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이러한 예측시스템은 건강정보뿐만 아니라, 범죄, 기상, 결혼 중매, 교육, 그리고 예술의 분야까지 침투하지 않은 곳이 없다. 우리는 기상정보나 범죄예상 지역 등에 대한 예측정보의 수집이나 방어 시스템에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결혼에 대한 것이나 예술에 대한 것에는 우려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예술은 판단할 수 없으며 인간 영혼 내부에 있는 특별한 영역에서 비롯된다는 오래된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런 관념은 낭만시대의 유물이며 예술은 대화여서 다른 모든 생각과 감정 교환과 마찬가지로 예술의 효과도 측정할 수 있으며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영화 시나리오나 베스트셀러 도서들은 이런 예측시스템의 도움을 받으며 제작될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포인트, 감동을 받을 수 있는 장면이 적절한 순간에 꼭 들어간 작품을.

아직은 벌거벗은 미래와 달리 빅데이터의 현재는 정보 공유의 가치나 이득은 집합적으로 경험하게 되지만, 그 위험은 개인적으로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술이 발달한 덕분에 기업들은 우리가 어디에 있을지, 무엇을 살지, 무엇을 원할지 더 잘 예측하게 되었지만 소비자들 역시 더 현명하게 소비하고 때로는 심지어 더 적게 소비할 수 있게 되었다. 빅데이터 현재에는 기업이 우리에게 맞서서 우리를 속이고, 강제하고, 우리에게 부담을 지워 이득을 취할 방법을 추론하기 위해 우리 데이터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행동은 미래에도 바뀌지 않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더 잘 이해하고 적절한 도구로 실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우리도 이 싸움을 좀 더 공정하게 이끌 수 있다. 개인은 보다 더 똑똑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아플 때 그 정보를 남과 공유하지는 않지만 점차 그 수는 늘어가고 있으며, 어쩌면 본인이 어떻게 느끼는지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고귀하고 이타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날이 곧 올 수도 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염려되는 상황은 사물인터넷의 편리함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하는 일에 싫증을 느끼게 되거나, 생각지도 못한 개인 정보의 누출, 인간의 기본적인 인성이나 정마저도 상실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네이키드 퓨처의 상황이 옳은 방향인지 모르겠다. 만약 옳든지 그르든지 이런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책을 읽는 개인은 이런 점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은 앞으로 역점을 두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눈에 보일 것이다.

하지만 다음의 말은 우리를 조금은 안심하게 한다.

더 똑똑한 세계를 창조할 때 가장 흥미롭고 유망하고 유의미하며 인명을 구하기도 하는 일을 한 주체는 다국적기업도, 빅브라더도 아니라 벤처기업가, 활동가, 해커 같은 일반인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벌거벗은 미래를 향한 현재 세계의 변화를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정부 관료나 기업 임원들을 포함하여 아무도 없다.

 사물인터넷이란?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인터넷이 사람과 사람의 연결을 넘어 우리 생활 속의 사물들에 센서가 부착되고 인터넷에 연결되는 것이다. 스마트폰, 스마트워치, 웨어러블 스마트 기기에서부터 냉장고, TV 등의 가전제품, 자동차, 건물 등 모든 것이 유무선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사물 스스로 정보를 수집하고 판단하며 실천하는 것이 특징이다. 
사물인터넷은 지금 현재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실시간으로 수집하여 전송할 수 있는 컴퓨터화된 감각 정보의 총체이다. 이런 현상이 기계에서 발생할 때 빅데이터라고 하고, 인간에게 발생할 때는 감지(sensing)라고 한다.
사물인터넷은 시민들이 사전 대책을 강구하는 새로운 시대를 예고한다. 이는 화재, 홍수, 혹은 시내 전역을 강타한 재난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가장 중요한 정보 대부분이 정부가 아니라 당신을 비롯하여 갑작스레 능력을 지니게 된 우리 이웃으로부터 나오는 시대다. 사물인터넷 확산에 가장 크게 기여한 동인을 하나 꼽는다면 바로 스마트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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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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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비크, 그는 이전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은 라비크이다. 하지만 또다시 쫓겨나면 그는 다른 이름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조국 독일의 강제수용소의 기억을 안고 프랑스 파리로 몰래 들어와 사는 불법체류인이다. 그는 유사시에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서 혼자 살고 있으며, 몸이 묶여있을 만한 것은 어느 것도 가지지 않는다. 특히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절대로. 그래서 그에게 여자는 정사(情事)의 대상이고 그 이상은 없다.

그런 그에게 조앙 마두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라비크에게 그녀는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점차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다. 그러나 그와 그녀의 사랑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그들의 세계와 함께 부유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이전 시대에 붙들고 있었던 안전, 배경, 신념, 목적, 사랑은 없어지고 겨우 가지게 된 것은 약간의 절망과 약간의 용기, 주변의 낯섬 뿐이다. 거기에 날아든 사랑은 바싹 마른 짚더미에 횃불을 던지는 것과 같이 더 격렬하고, 더 소중하고, 더 파괴적이다.

이 작품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조앙 마두는 순간의 사랑에 몰두한다. 그녀는 술을 마실 때는 술이 전부요, 사랑을 할 때는 사랑이 전부요, 절망할 때는 절망이 전부다. 그리고 잊어버릴 때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라비크는 강제수용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굳어버린 얼굴, 공허로 가득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는 뛰어난 외과의사로 프랑스 의사가 못해내는 수술을 대신해주고 살아가고 있다. 그는 그가 원래 있었던 객관적이고 냉혹하고 무자비한 수술의 세계, 명석하고 정확하며 단순한 외과의사의 세계를 벗어나 불안하고 동요하는 불확실한 현실의 삶에 부유한다.

그가 유일하게 꾸는 꿈은 강제수용소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하케에 대한 복수다. 그에게 그를 죽이는 것은 단순히 악당을 하나 줄이는 것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별것 아닌 것이 아닌 전부다. 그에게 그를 죽이는 일은 전부였다. 그가 하케를 죽이고 느끼는 해방감은 자신도 생각하지 못 했던 후련함이었다. 불안전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그는 조화로운 세계로 돌아온다. 비록 그의 신분은 여전히 불안하고 잡혀갈 수 있지만.

그가 다시 찾은 이름 프레젠부르크 루트비히. 불법체류자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인물과 그의 사랑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더욱 가슴 아프게 남아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손에서 연필을 놓지 못 했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도 많았기에. 존재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사랑은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더 격렬하고 더 소중하고 그리고 더 파괴적인 사랑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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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나카무라 후미노리 지음, 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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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는 아쿠타카와 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후미노리의 <미궁>은 표면은 추리소설의 양상을 띠고 있지만 단지 장르소설만으로 머물 수 없는 심리묘사를 담고 있다.

어린 시절 내면에 R이라는 또 다른 자아를 담고 살았던 신견(新見)이 성인이 되어 겪게 되는 사건의 중심에는 중학교 시절 동창이었던 수수께끼의 여인 사나에가 있다.
사나에는 히오키 사건의 유가족이다. 히오키 사건은 미궁 사건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녀는 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다. 일가족의 죽음, 잠긴 집안에서 남편과 아내는 예리한 흉기에 의한 죽임을 당하고, 장남은 구타 당한 후 독극물 먹고 사망했으며, 현장에는 흉기도 없고, 유일한 생존자인 딸은 수면제를 먹고 잠들어 있었다.
어느 날 신견은 우연히 그녀를 만나 그녀의 집에서 잠을 자고 그녀의 사라진 남자친구의 양복을 입고 출근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뒤를 쫓는 사람이 있다. 신견은 그렇게 그녀와 히오키 사건에 끌려들어 가는데...

이 소설은 이렇게 미궁 속에 빠져버린 사건에도 눈길이 가지만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이 겪는 시대 정서로서의 불안에 더욱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일본도 우리나라처럼 압축성장기를 거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만을 추구했던 시기를 지나 거품경제가 꺼지면서 이제는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는 시기를 견디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대지진을 겪어야 했다.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은 불안과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지만 세상은 이런 개인에게 더 강한 자아를 요구하면서 모든 문제를 개인에게 귀착시키고 있다. 개인은 점점 무기력해지고 가치는 혼란스럽고 마치 커다란 싱크홀에 빠진 듯한 상태가 된다. 자신만의 통제 가능한 세계를 구축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깃 없는 분노에 포획되어 덫에 걸려 있는 느낌으로 분노를 엉뚱한 곳에 표출한다.

이 상태의 주인공들은 그렇기에 우리가 보기에 다소 병적으로 느껴지지만 이상한 것에 집착을 보인다거나 분리된 자아를 갖는다거나 하는 병리적인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신견은 이런 상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할 수 있는 인물이다. 이 책에는 그렇지만 여기에 대한 답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냥 서로 아픔을 가진 존재끼리 그저 기대고 부대낀다. 인간은 그렇게 흐름에 몸을 던지고 살아야 하나 보다.

"모두 흉내야. 주위의 흉내. 우리는, 꿈을 가져라,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서 커온 세대잖아? 뭔가가 되어라,라는 식으로. 존재의 희박함을 특별한 뭔가가 되는 것으로 해소하려고 했지."

"거품경제가 이러쿵저러쿵하면서 이 나라가 돌연 불경기에 빠진 다음부터는 안전된 생활을 목표로 달려야 한다는 말을 듣게 되었어. 사회에 여유가 없어지게 됐으니까. 그 뒤에 나오는 구호는, 당연한 귀결이지만, 일상을 사랑하라는 거야. 특별한 존재가 되지 않더라도 이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라는 거. 주위를 흉내 내면서. 어떤 이데올로기 속에든 들어가 이 세계에 존재할 자격을 갖추고 싶었던 나는 혼란에 빠지게 돼. 일상을 사랑하라고? 그건 무리지."

"하지만 결국 깨달았어. 나에게는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거. 내 안의 불안이라든가 우울을 뭔가로 메우려고 했던 것뿐이야. 변호사가 되려고 한 것도, 현실적인 노선이었고 그걸로 우쭐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난 변호사다,라는 식으로. 하지만 흥미가 없어져버렸어. 위로 치고 올라가서, 그래서 뭐가 어떻게 되지? 부자가 되는 거? 우월감? 하지만 그 우월감에서 표면적인 행복을 느낀다고 해도, 그건 말하자면, 자신의 행복에 타인의 지위를 전제로 하는 거잖아?"

"그 대지진은 나의 무력감을 다시 떠올리게 했어. 돈을 벌고 먹을 것을 사들이고 나 스스로 살아간다는 건 그저 내 착각일 뿐이고, 이 세계의 참모습은 잔혹하고 우발적이고 무관심한 것이었어. 자연이나 풍경은 결코 사랑할 것 따위가 아니고, 우리의 생명 따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쉽게 파괴해버리는 것이었어. 우리의 풍경은, 우리 마음의 준비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순간에, 언제든지 한순간에 모조리 다른 것으로 변용하는 거야. ...... 그 대지진은 내 안에 그 무렵의 무력한 나 자신이 있다는 것을 재인식시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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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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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많은 것들을 가져다준 일이었다. 우리가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서 잡으려고 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게 해주고, 우리를 그것으로 몰아가던 존재가 누구였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의 흩어진 생각들과 목소리를 각자의 내면으로 그리고 사회로 외치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열띤 가슴으로 소리치는 여덟 명의 인문학자들의 이야기는 망각 속으로 묻어버리려 했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서서히 가라앉아 버린 우리를 꾸짖는 한마디 "망각이야 말고 진짜 절망해야 할 대상이다."
절망의 순간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만'이 절망의 순간을 탈출할 수 있다고 한다. 절망의 순간, 위기의 순간,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인문학은 더욱 꽃을 피운다고 한다. 강신주는 세상과 내가 맞지 않을 때, 삐걱거릴 때 비로소 나를 세상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때 인문학은 위로가 아니라 우리를 해체해 보여주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피가 흐르는 그 서늘한 느낌이 삶을 변화시키고 온몸으로 부딪쳐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여울은 예외적 상태에서 사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데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것이었고, 거기에서 집단의 사악함과 개인의 위대함이 대비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한국적 사악함은 인명구조보다 상부의 지시나 의전이 더 중요한 체면 중심의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파국이었다. 개인의 강인함은 '악에 맞서는 악'이 아니라 '악에 맞서는 선의와 용기와 실천'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의를 실천하는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압축적 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후퇴기로 들어가면서 그러한 가치가 사라져 버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불안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불안에 대한 해법은 개인에게 돌려져 버렸다. 강한 자아를 요구하는 분위기, 쏟아지는 자기 계발서와 인문학적 자아성찰은 노명우의 말처럼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만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 자아의 사회적 성격에는 주목하지 않은 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한 자아의 힘 대신 사회과학의 힘을 빌려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상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내던져진 현실의 조건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손에 사회과학적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자아라는 추상의 세계가 아니라 '나'라는 자아가 놓인 사회적 관계망을 관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희망고문'을 강요하는 선택지들을 사회과학적 힘으로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우리의 책임은 아니다. 절망은 의지와 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치료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사회였다. 그런 사회를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분노의 인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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