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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얼굴로 돌아보라 - 인문학자 8인의 절망을 이기는 인문학 명강의
강신주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세월호 참사.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많은 것들을 가져다준 일이었다. 우리가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서 잡으려고 했던 것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보게 해주고, 우리를 그것으로 몰아가던 존재가 누구였는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가 어떤 곳인지, 그리고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의 흩어진 생각들과 목소리를 각자의 내면으로 그리고 사회로 외치라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열띤 가슴으로 소리치는 여덟 명의 인문학자들의 이야기는 망각 속으로 묻어버리려 했던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분노의 목소리를 높이다가 서서히 가라앉아 버린 우리를 꾸짖는 한마디 "망각이야 말고 진짜 절망해야 할 대상이다."
절망의 순간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만'이 절망의 순간을 탈출할 수 있다고 한다. 절망의 순간, 위기의 순간, 전쟁터의 한복판에서 인문학은 더욱 꽃을 피운다고 한다. 강신주는 세상과 내가 맞지 않을 때, 삐걱거릴 때 비로소 나를 세상을 돌아보게 되는데 그때 인문학은 위로가 아니라 우리를 해체해 보여주는 힘을 가진다고 한다. 피가 흐르는 그 서늘한 느낌이 삶을 변화시키고 온몸으로 부딪쳐야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여울은 예외적 상태에서 사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데 세월호 참사가 바로 그것이었고, 거기에서 집단의 사악함과 개인의 위대함이 대비되었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는 전 세계에서 유래를 보기 힘든 한국적 사악함은 인명구조보다 상부의 지시나 의전이 더 중요한 체면 중심의 조직문화가 만들어낸 파국이었다. 개인의 강인함은 '악에 맞서는 악'이 아니라 '악에 맞서는 선의와 용기와 실천'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의를 실천하는 용기를 가져야만 한다.
압축적 성장기를 거치면서 우리는 미래는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시대정신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제 후퇴기로 들어가면서 그러한 가치가 사라져 버렸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은 불안하고 절망한다. 하지만 불안에 대한 해법은 개인에게 돌려져 버렸다. 강한 자아를 요구하는 분위기, 쏟아지는 자기 계발서와 인문학적 자아성찰은 노명우의 말처럼 사회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만드는 경향을 보인다. 그 자아의 사회적 성격에는 주목하지 않은 채.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강한 자아의 힘 대신 사회과학의 힘을 빌려보라고 충고한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가상의 조건이 아니라 자신이 내던져진 현실의 조건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 손에 사회과학적 칼을 들고 있는 사람은 자아라는 추상의 세계가 아니라 '나'라는 자아가 놓인 사회적 관계망을 관찰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희망고문'을 강요하는 선택지들을 사회과학적 힘으로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현실은 절망적이지만 우리의 책임은 아니다. 절망은 의지와 적응의 문제가 아니다. 치료 대상은 우리가 아니라 사회였다. 그런 사회를 바꾸는 것, 그것이 바로 '분노의 인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