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선문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6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라비크, 그는 이전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 지금은 라비크이다. 하지만 또다시 쫓겨나면 그는 다른 이름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는 조국 독일의 강제수용소의 기억을 안고 프랑스 파리로 몰래 들어와 사는 불법체류인이다. 그는 유사시에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다. 그래서 혼자 살고 있으며, 몸이 묶여있을 만한 것은 어느 것도 가지지 않는다. 특히 마음을 뒤흔드는 것은 절대로. 그래서 그에게 여자는 정사(情事)의 대상이고 그 이상은 없다.

그런 그에게 조앙 마두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라비크에게 그녀는 사랑할 수 없는 대상이지만 점차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한다. 그러나 그와 그녀의 사랑은 불안하고 불확실한 그들의 세계와 함께 부유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이전 시대에 붙들고 있었던 안전, 배경, 신념, 목적, 사랑은 없어지고 겨우 가지게 된 것은 약간의 절망과 약간의 용기, 주변의 낯섬 뿐이다. 거기에 날아든 사랑은 바싹 마른 짚더미에 횃불을 던지는 것과 같이 더 격렬하고, 더 소중하고, 더 파괴적이다.

이 작품의 사랑스러운 주인공 조앙 마두는 순간의 사랑에 몰두한다. 그녀는 술을 마실 때는 술이 전부요, 사랑을 할 때는 사랑이 전부요, 절망할 때는 절망이 전부다. 그리고 잊어버릴 때는 완전히 잊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라비크는 강제수용소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굳어버린 얼굴, 공허로 가득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는 뛰어난 외과의사로 프랑스 의사가 못해내는 수술을 대신해주고 살아가고 있다. 그는 그가 원래 있었던 객관적이고 냉혹하고 무자비한 수술의 세계, 명석하고 정확하며 단순한 외과의사의 세계를 벗어나 불안하고 동요하는 불확실한 현실의 삶에 부유한다.

그가 유일하게 꾸는 꿈은 강제수용소에서 자신을 고문했던 하케에 대한 복수다. 그에게 그를 죽이는 것은 단순히 악당을 하나 줄이는 것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별것 아닌 것이 아닌 전부다. 그에게 그를 죽이는 일은 전부였다. 그가 하케를 죽이고 느끼는 해방감은 자신도 생각하지 못 했던 후련함이었다. 불안전하고 불확실한 세계에서 그는 조화로운 세계로 돌아온다. 비록 그의 신분은 여전히 불안하고 잡혀갈 수 있지만.

그가 다시 찾은 이름 프레젠부르크 루트비히. 불법체류자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인물과 그의 사랑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문장들로 더욱 가슴 아프게 남아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손에서 연필을 놓지 못 했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이 너무도 많았기에. 존재의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사랑은 슬프고도 아름다웠다. 어쩌면 그래서 더욱 아름다웠는지도 모른다. 더 격렬하고 더 소중하고 그리고 더 파괴적인 사랑이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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