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한시 삼백수 : 5언절구 편 우리 한시 삼백수
정민 엮음 / 김영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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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시라니~~. 요즘에는 그냥 시도 잘 읽지 않는데, 한시는 과연 눈에 들어올까? 하지만 그것은 괜한 우려였다. 일단 번역해 주신 시가 재미있고, 쉬웠다. 위트가 묻어났으며 자연경관만을 읊었다고 해도 한눈에 풍경이 그려지는 시들이 많았다. 다시 또 읽어봐도 고개를 갸우뚱해야 하는 시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 의미가 가볍지는 않았다. 그렇게 풍경처럼 그려지는 시에 담긴 인생사는 무겁고도 무거웠다. 그 숨은 행간의 의미를 정민 교수님은 자세히 알려주고 있었다.

시를 읽다 보면 읽는 이의 마음이 맑아진다. 그것은 시를 쓴 이의 마음이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짧은 시 한 수에 많은 여백은 자칫 표면적인 것에만 그칠 수 있겠다. 그 우려를 염려해서인지 정민 교수님은 그 뒤에 숨은 뜻까지 친절하게 설명한다. 현대적인 번역이라 한시가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 풍랑>

  - 최수성

푸른 강 해 저물고

찬 날씨에 물결만.

외론 배 일찍 대리

밤중엔 풍랑 많네


그냥 읽으면 밤이 되면 풍랑이 거세지니 빨리 물가로 배를 몰아가 정박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것만 읽힌다. 하지만 정민 교수님의 해석을 읽다 보면 행간이 보인다. 한시는 그냥 경치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풍경을 짐짓 불러온다는 것이다.  이 시에 얽힌 일화는 기묘사화 후에 최수성의 숙부 최세절이 승지로 있었다. 최수성은 숙부에게 이 시를 써서 멀리 떠나 있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부쳤다고 한다. 이렇게 보니 지금은 시절이 수상하니 배 몰고 풍랑 속에 뛰어들 때가 아니라 안전한 물가에 묶어둘 때라는 것, 즉 벼슬을 버리고 나오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뒤 이야기가 더욱 놀랍다. 이 시를 받은 숙부 최세절이 이 시를 임금께 고해바쳤다. 그리고 최수성은 신문을 받고 죽었다. 삼촌이 자신에게 충고를 한 조카를 고발해 죽이던 세상이었다. 이렇게 짧은 한시 한 수에는 한 세상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칭찬>

  -조식

사람들 바른 선비 아끼는 것이

범 가죽 좋아함과 비슷하구나.

살았을 젠 못 죽여 안달하더니

죽은 뒤에 비로소 칭찬을 하네


옛날이나 지금이나 바른말하는 사람을 죽일 듯이 물어뜯는 것은 똑같다. 행여 그 말 때문에 자기 밥그릇을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며 욕하다가 막상 죽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칭찬 일색이다. 죽은 뒤에 남기는 이름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마는 살아서도 그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길 빌어본다.


<짹짹>

 - 송익필


언제나 짹짹짹 우는 새

어이해 언제나 족한가?

사람들 족함을 모르니

그래서 언제나 부족타.


재미있는 시다. 짹짹 우는 참새 소리를 족족 우는 걸로 듣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오히려 족함을 모르고 부족하다 불평하는 데서 오는 것일 것이다. 그런 소리에 지쳐 문득 짹짹 우는 참새 소리가 족족으로 들리는 환청을 겪은 모양이다.


<통군정에서>

  -정철-


압록강 건너가려 하다가

송골산으로 곧장 올랐네.

화표주의 학을 이리 불러서

구름 사이로 함께 노닐리.


이 시를 읽으면서 조금은 화가 났다. 정철이라면 고등학교 시절 사미인곡, 속미인곡 등으로 유명한 글을 잘 쓰는 선비 정도로만 알고 있다가 나중에 선조 임금과 임진왜란, 그리고 당파싸움 등에 얽힌 정철의 일화를 알고 나서 글과 사람이 그렇게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글에 표현되는 자신은 권세와 욕망과는 거리가 먼 유유자적하는 선비지만 실상을 전혀 그렇지 못했으며, 이 당시 일본군에 쫓겨 압록강까지 도망갔을 처지인데 이런 시를 읊고 있었다는 것에 화가 났다. 감히 '나라가 지금 어떤 상황인데, 구름 사이로 함께 노닐 생각을 하고 있는가?'라며 꾸짖고 싶어진다. 이러니 나라가 일본의 침략에 속수무책 당할 수밖에 없었지 않았겠는가.


<생각>

    -김니-

얻은 지 오래되니 어이 잃음 없으랴

영화로움 많고 보면 필히 재앙 있으리.

고향집 울타리 밑 심은 국화꽃

주인이 돌아옴을 기다리겠지.


이렇게 자신의 몸가짐을 돌아보는 이들이 있었다. 내가 얻은 이것이 마땅히 나의 것이 아님을 알고 지금의 영화가 오래가지 않을 것을 믿기에 처신에 조심하고 삼가는 이들의 글은 읽는 독자들의 마음도 조심스럽게 한다.

마지막으로 연말에 딱 맞는 시를 하나 발견했다.


<다짐>

  -이식

작년에도 이 사람

올해도 같은 사람.

내일은 새해니

같은 사람 되지 말자.


올해를 보내며,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며 새롭게 다짐해 본다. 같은 사람 되지 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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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cchn12 2024-05-29 0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세절이 정말 조카를 무고로 죽엿습니까
 
밀물의 시간
도종환 지음, 공광규 외 엮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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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시를 읽으면서 시와 소설이 작가와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는다. 시적 화자, 혹은 소설 속 인물이 작가와 동일인물이기가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시인 혹은 소설가는 그런 인물을 그려놓는 것일 뿐, 자신을 전부 드러내어 표현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와 사람이 같은 시인이라는(이 책을 엮어 낸 시인의 후배들이 서문에 밝힌 것처럼) 느낌이 드는 시인이 있다. 도종환 시인이 그렇다.

그의 시를 읽으면 이 분이 이 일을 겪었구나, 이런 일에 마음이 아팠구나, 이런 삶을 꿈꾸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후배 시인들의 평처럼 지조가 있으나 편벽을 벗어나고, 자신의 고통과 안온에 갇히지 않으며, 성격이 원만하여 선후배들을 두루두루 잘 살펴서 신망이 높고, 한 가지에 편견이 없는 전인적 군자불기(君子不器)의 군자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시를 읽다 보면 나 자신도 조심스러워지며 주위를 살피게 된다. 나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은 없는지, 나만 생각하며 살지는 않았는지.....


이번 시선집은 도종환 시인의 갑년(甲年)과 등단 30년을 맞아, 네 사람의 후배가, 그동안 시인이 펴낸 10권의 시집에서 각각 10편 내외를 뽑아 99편으로 완성하였다고 한다. 굳이 100편을 채우지 않을 것은, 시인이 마지막 한 편을 더하여 자신의 시적 생애를 채워주실 것을 바랐기 때문이란다.

도종환 시인의 시를 읽다 보면 시인의 마음 따뜻한 사랑과 연민이 드러난다. 그 바탕에는 자신에 대한 반성이 있어 보인다. 먼저 간 아내에게 못다 한 사랑을 안타까워한다거나 교실을 바꾸기보다는 아이들을 바꾸려 했던 것에 대한 반성,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와 반성과 각오 등이 절절하다. 그의 시가 그의 삶이듯이 우리의 말도 우리의 삶이었음 좋겠다.


이 시선집에서 마음을 흔들었던 시 몇 편의 감상을 덧붙여 볼까 한다.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꽃들은 향기 하나로 먼 곳까지 사랑을 전하고

새들은 아름다운 소리 지어 하늘 건너 사랑을 알리는데

제 사랑은 줄이 끊긴 악기처럼 소리가 없었습니다

나무는 근처의 새들을 제 몸 속에 살게 하고

숲은 그 그늘에 어둠이 무서운 짐승들을 살게 하는데

제 마음은 폐가처럼 아무도 와서 살지 않았습니다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하늘 한복판으로 달아오르며 가는 태양처럼

한번 사랑하고 난 뒤

서쪽 산으로 조용히 걸아가는 노을처럼

사랑할 줄은 몰랐습니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면서 얼지 않아

골짜기의 언 것들을 녹이며 가는 물살처럼

사랑도 그렇게 작은 물소리로 쉬지 않고 흐르며 사는 일인데

제 사랑은 오랜 날 녹지 않은 채 어둔 숲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마음이 닮아 얼굴이 따라 닮는 오래 묵은 벗처럼

그렇게 살며 늙어가는 일인데

사랑도 살아가는 일인데.

얼마나 아프고 깊은 사랑을 한 뒤일까? 시인은 한 번 사랑하고 난 뒤 노을처럼 변해버린 가슴이 사랑할 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랑은 쉬지 않고 흐르는 작은 물처럼 그렇게 흐르기 마련인데도 시인의 사랑은 버려진 채 얼어있나 보다. 지나간 아픈 사랑도 슬프지만, 다시 사랑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안타까움이 더욱 가슴 아프다.


<배롱나무>



배롱나무를 알기 전까지는

많은 나무들 중에 배롱나무가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가장 뜨거울 때 가장 화사한 꽃을 피워놓고는

가녀린 자태로 소리 없이 물러서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남모르게 배롱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 뒤론 길 떠나면 어디서든 배롱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루하고 먼 길을 갈 때면 으레 거기 서 있었고

지치도록 걸어오고도 한 고개를 더 넘어야 할 때

고갯마루에 꽃그늘을 만들어놓고 기다리기도 하고


갈림길에서 길을 잘못 들어 다른 길로 접어들면

건너편에서 말없이 진분홍 꽃숭어리를 떨구며

서 있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만 하던 일을 포기하고 싶어

혼자 외딴섬을 찾아가던 날은

보아주는 이도 없는 곳에서 바닷바람 맞으며

혼자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꽃은 누구를 위해서 피우는 게 아니라고 말하듯


늘 다니던 길에 오랜 전부터 피어 있어도

보이지 않다가 늦게사 배롱나무를 알게 된 뒤부터

배롱나무에게서 다시 배웁니다.


사랑하면 보인다고

사랑하면 어디에 가 있어도

늘 거기 함게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유홍준 교수님이 말한 것처럼 사랑하면 보이게 마련이다. 이제 시인의 사랑의 대상은 길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배롱나무다. 그저 사물처럼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배롱나무가 문득 마음에 들어오고 나서 꽃그늘도 보이고, 외로운 시인의 동반자처럼 같이 하고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도 항상 우리 곁에 따라와 머물러 우리를 돌아보고 있는 지도 모르는 일이다.



<단풍 드는 날>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제 삶의 이유였던 것

제 몸의 전부였던 것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며서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방하착(放下着)

제가 키워온,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가장 황홀한 빛깔로

우리도 물이 드는 날

 

 

죽음을 앞 둔 친구를 만났을 때 삶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만났다. 그 친구로 인해 내가 숨쉬고 살아가는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깨달았다. 단풍이 들어 아름다운 나무가 그렇다.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는 순간 가장 아름답게 불타는 나무를 보면서 생의 절정이라고 말한다. 가슴이 아프지만, 아름답다. 


<연필 깎기>



 연필을 깎는다 고요 속에서 사각사각 아침시간이 깎여나간다 미미한 향나무 냄새 이 냄새로 시의 첫 줄을 쓰고자 했다 삼십 년을 연필로 시를 썼다 그러나 지나온 내 생에 향나무 냄새 나는 날 많지 않았다 아침에 한 다짐을 오후까지 지키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문을 나설 때 단정하게 가다듬은 지조의 옷도 돌아올 땐 매무새가 흐트러져 있었다


 연필을 깎는다 끝이 닳아 뭉툭해진 신념의 심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깎는다 지키지 못할 말들을 많이 했다 중언부언한 슬픔 실제보다 더 포장된 외로움 엄살이 많았다


 연필을 깎는다 정직하지 못하였다는 걸 안다 내가 내 삶을 신뢰하지 못하면서 내 마음을 믿어달라고 하였다 그래서 바람이 그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모순어법에서 벗어나지 못한 내 시각 얇게 깎여져나간 시선의 껍질들을 바라보며 연필을 깎는다


 기도가 되지 않는 날은 연필을 깎는다 가지런한 몇 개의 연필 앞에서 아주 고요해진 한 순간을 만나고자 연필 깎는 소리만이 가득 찬 공간 안에서 제 뼈를 깎는 소리와 같이 있고자

연필을 깎는 일을 기도처럼 하고 있다. ​다짐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일, 지조있게 보내지 못한 하루, 지키지 못할 말들을 내뱉었던 일, 포장된 외로움과 엄살, 이런 반성의 시간이 연필을 깎는 시간이 되고 있다. 시인의 단정한 마음이 느껴진다.


<처음 가는 길>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다만 내가 처음 가는 길일 뿐이다

누구도 앞서 가지 않은 길은 없다

오랫동안 가지 않은 길이 있을 뿐이다

두려워 마라 두려워하였지만

많은 이들이 결국 이 길을 갔다

죽음에 이르는 길조차도

자기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이 있다

순탄하기만 한 길은 길 아니다

낯설고 절박한 세계에 닿아서 길인 것이다

두려워하면서 떠나는 길, 누구나 처음 가는 그 길,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그 길, 그 길을 어떻게 걸어갈 것인가? 순탄하게 걷고 싶은 이들이 많다. 하지만 시인은 전 생애를 끌고 넘은 이들을 동경한다. 낯설고 절박한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지만 온몸으로 넘어가고 싶은 시인의 뜻이 느껴진다.

한 편의 시를 읽었다기 보다는 한 사람의 생을 읽어낸 듯 마음이 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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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 지옥의 전쟁, 그리고 반성의 기록, 개정증보판 서해문집 오래된책방 2
유성룡 지음, 김흥식 옮김 / 서해문집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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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에서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을 때 망설임 없이 말하는 인물이 있다. 세종대왕, 정조 임금, 그리고 이순신 장군. 그래서 이들에 대한 책은 되도록이면 다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래서 항상 읽어야 할 책의 목록의 맨 위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 이순신의 <난중일기>와 유성룡의 <징비록>이다.

<난중일기>가 한 개인의 기록이라면 <징비록>은 전쟁 한가운데서 책임을 느꼈던 인물의 기록이라 더욱 관심이 갔다. 이번에 서해문집에서 다시 펴낸 <징비록>은 읽지 않았더라면 후회했을 책이었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유성룡이 보았던 전쟁의 참화와 그 속에서 느낀 점과 앞으로의 계획 등이 담겨 있어 당시 조선의 관리들 중에서 그래도 나랏일을 걱정하고 그것을 부끄럽지만 기록으로 남긴 이도 있었다는 데 안도감을 느꼈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발발 당시 포화의 한가운데서 전쟁의 참화를 실제로 겪은 고위 관리였으며, 특히 전쟁 수행 책임자 가운데 최고위직에 있던 인물이다. 징비懲毖란 <<시경>> <소비>편에 나오는 문장 予基懲而毖後患(내가 징계해서 후환을 경계한다)로부터 유래한다. 즉 자신이 겪은 환란을 교훈으로 삼아 후일 닥쳐올지도 모를 우환을 경계하도록 쓴 글이다. 유성룡은 자신의 잘못부터 조정 내의 분란, 나아가 임금에 대한 백성들의 원망 등 임진왜란을 둘러싸고 발생한 일을 기록해두고 있었다.


그의 기록을 살펴보자면, '성은 작더라도 견고한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반대로 크게만 지어 놓은 것이다. 이는 당시 전쟁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나라가 품고 있던 모든 힘이 한 곳에 집중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병법의 활용, 장수 선발, 군사 훈련 방법 등 어떤 것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까닭에 전쟁이 발발하자 패하고 만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유성룡의 당시 인물들에 대한 평가 또한 눈길을 끈다. 특히 이순신과 신립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이다.


'이순신이 세운 공은 참으로 많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를 추천하지 않았다. 과거에 급제한 지 10여 년 만에 겨우 정읍 현감에 올랐을 뿐이었다. '

'성질이 사납다는 수문이 있던 신립은 사람을 해치면서까지 위엄을 보이려 했다. 그러자 수령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백성들을 동원해 길을 닦고 융숭한 대접을 베풀었는데, 어떤 대신의 행차보다도 떠들썩했다. 신립은 날쌔고 용감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과 같다."라고 했다는데,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 것이라 생각해 상세히 적어 둔다.

당시 순찰사들은 모두 문인 출신이었다. 때문에 병무에 익숙지 못해 숫자는 많았으나 명령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고 요지를 지키지도 못했으며, 훈련 또한 일관되게 이루어지지 못 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군대 다루기를 봄날 놀이하듯하니 어찌 패하지 않겠느냐?'했는데 바로 그와 같았다.'


그의 기록에는 백성들의 분노도 눈에 띈다.

"동궁 마마의 말씀만 가지고는 민심을 수습할 수 없습니다. 성상께서 친히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해서 선조가 할 수 없이 대동관문에 나아가 승지에게 평양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말을 전하게 했다. 그렇지만 임금과 신하들은 그 성마저 버리고 도망을 쳤고, 백성들은 "너희들이 평소에는 편히 앉아 국록만 축내더니 이제 와서는 나라를 망치고 백성마저 속이는구나!","성을 버리고 갈 거면 왜 우리는 성안으로 들어오게 했소? 이야말로 우리를 속여 적의 손에 넘겨주려는 속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오?"라며 울었다.


또한 임진왜란을 수습하는 여러 가지 모습들을 적고 있다.

'공책에 사람들의 이름을 적으며 "후에 이것을 토대로 여러분의 공과 죄를 매긴 다음 임금께 아뢸 것이다. 그럼 그 내용에 따라 상도 받고 벌도 받게 될 것이다. 특히 이곳에 이름이 없는 자들은 누구도 죄를 면치 못할 것이다." 이를 통해 난을 만난 백성들은 다그치기보다는 타이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서 이후로는 매를 사용하지 않았다. '


징비록이 전하는 임진왜란의 참상과 임금과 관리, 그리고 군인들의 무능함에 한심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솔직하게 참상을 알리는 글을 남기는 용기를 지닌 인물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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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여자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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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핸드백을 가지고 온 남자.

그녀와의 만남을 가진 뒤 언제나 한 시간 십오 분만 머물다 가는 남자.

그 남자가 사용한 물건(각설탕, 콘돔, 칵테일을 저었던 노란색 플라스틱 막대, 샴페인 코르크 마개, 전화 응답기 테이프, 열두 송이 마른 장미 등)을 수집하는 여자.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이상하다.

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이상하게 그(토마스 코바크)의 여자(클레르)에게 공감하게 된다.

158페이지의 짧은 분량안에서 우리는 한 여자의 사랑의 행동을 보게 된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이렇게 분량이 늘었지, 원서로는 100페이지 정도 일 것이다.

프랑스 메디치상을 받았다고 하는 작가 엠마뉘엘 베르네임은 '100페이지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녀의 다섯 작품 <잭나이프>, <커플>, <그의 여자>, <금요일 저녁>, <스탤론>이 모두 100페이지 내외의 짧고 건조한 문체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중 <그의 여자>만을 읽었지만, 이 작가가 내세우고 있는 이 독특한 주인공, 클레르는 현실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리감을 느낀다거나 생뚱맞은 느낌이 드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작가가 표현한 주인공의 섬세한 감각에 독자가 함께 호흡하면서 은연중에 '그럴 수 있겠다'하는 동의를 얻게 된 데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킬까 봐 몰래 하는 사랑, 특히 남에게 쉽게 동의 받지 못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주는 쾌락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그녀가 그 남자를 드디어 차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녀와 함께 딱 한 시간 십오 분의 시간만을 허용하던 토마스가, 그래서 유부남이라고 생각했고, 차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더욱 집착했던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클레르는 그녀가 모아 온 그의 물건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그녀는 다른 남자의 성냥갑을 서랍에 넣고 열쇠를 잠근다.

남들에게 들키기 싫은 한 여자의 야릇한 쾌락은 비밀스럽게 이어진다.

이 책을 남자들에게 읽어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그 점이 문득 궁금해졌다.

실제로 이런 성향의 여자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사랑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을 때 그의 흔적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있을 거라는 데 수긍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완전히 나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의 물건을 버리고 또 다른 남자의 물건을 갖고자 하는 데에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일반 독자와 엠마뉘엘 베르네임이 그린 주인공 클레르의 간격이 느껴지는 것이다.

제목은 그의 여자이지만 결코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수 없는 존재이다. 남자들은 그녀의 소유가 될 수 없을 때에만 그녀의 동경의 대상이 되며 그녀의 남자가 될 때 마음속에서는 버려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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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구할 것인가?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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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가 풀린 전차가 질주한다. 앞쪽 선로에는 인부 다섯 명이 있고 갈라진 선로에는 한 명이 있다. 당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다면 그대로 다섯 명을 치게 할 것인가, 방향을 틀어 한 명만 희생시킬 것인가? 이것이 그 유명한 전차 문제, 영어로 Trolly Problem이다. 이 문제를 조금 다르게 변형시킨 문제도 있다. 앞쪽 선로에 인부 다섯 명이 있고, 선로는 바꿀 수 없다. 이 다섯 명의 인부를 살리는 방법은 무거운 물체를 떨어뜨려 전차의 진행을 막는 것뿐이다. 당신이 육교 위에서 이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고 마침 앞에 엄청난 뚱보가 서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첫 번째 상황에서는 선로를 틀어 한 명의 목숨을 희생하는 대신 다섯 명을 구한다고 답한다고 한다. 하지만 두 번째 상황에서는 한 사람의 목숨을 죽여가며 다섯 명을 살리는 일은 살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인 토머스 캐스카트는 이 문제가 실제로 일어났다고 가정한다. 문제는 첫 번째 상황에서 희생당한 사람의 딸은 민사소송을 제기했고, 검사는 선로 전환기의 손잡이를 당겨 폭주 전차의 경로를 바꾼 '용감한 시민'을 기소했다. 작가는 이 문제를 둘러싼 검사 측의 증언과 변호인의 답변, 그리고 배심원단 개개인의 의견, 그 사건을 보며 각기 다른 의견을 내는 교수들, 한 심리학자의 견해, 그리고 가톨릭 주교의 의견, 뉴스 기사에 달린 네티즌의 댓글과 시청자의 의견까지 다양한 생각과 철학을 전해준다.

 

이 문제는 다섯 명의 시민을 살리기 위해 한 명의 시민을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만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공리주의적 사고방식이 만연해있는 현대사회에서 누구나 이것이 타당해 보이겠지만, 도덕적으로 좋은 의도를 가진 행위가 부산물로 나쁜 결과를 낳을 수는 있지만, 좋은 목적을 달성하려고 나쁜 수단을 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쪽도 존재한다.  칸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 인간에게 남들이 공리라는 명분으로 침해할 수 없는 보편적인 권리가 있기 때문에 다섯 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살아있는 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선택을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한다.

 

그렇다면 답은 있을까? 저자는 [평결은 다음 페이지에]라고 써놓고는 '설마 정말로 답이 쓰여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라고 말한다.

 

저자의 마지막 말을 보면 '젊은 성인 상당수가 도덕적 사안에 대해 엄밀하거나 일관성 있게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대부분은 도덕적 상대주의에 치우쳐 있다. '각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렸죠' 라고 말하며. 도덕적 일관성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고, 게다가 사려 깊지도 않은 요즘 사람들에게 '이것이 정답이니 이렇게 따라 해'라고 하는 책이 아니라 '도덕 철학이 왜 중요한가?'를 말하고자 하는 책이다.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왜 선택하게 되었는지' 논리적이고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는 머리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의견이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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