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여자 엠마뉘엘 베르네임 소설
엠마뉘엘 베르네임 지음, 이원희 옮김 / 작가정신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잃어버린 핸드백을 가지고 온 남자.

그녀와의 만남을 가진 뒤 언제나 한 시간 십오 분만 머물다 가는 남자.

그 남자가 사용한 물건(각설탕, 콘돔, 칵테일을 저었던 노란색 플라스틱 막대, 샴페인 코르크 마개, 전화 응답기 테이프, 열두 송이 마른 장미 등)을 수집하는 여자.

이렇게 적어두고 보니 이상하다.

하지만 읽는 동안에는 이상하게 그(토마스 코바크)의 여자(클레르)에게 공감하게 된다.

158페이지의 짧은 분량안에서 우리는 한 여자의 사랑의 행동을 보게 된다. 우리말로 번역해서 이렇게 분량이 늘었지, 원서로는 100페이지 정도 일 것이다.

프랑스 메디치상을 받았다고 하는 작가 엠마뉘엘 베르네임은 '100페이지의 미학'을 보여주는 작가이다. 그녀의 다섯 작품 <잭나이프>, <커플>, <그의 여자>, <금요일 저녁>, <스탤론>이 모두 100페이지 내외의 짧고 건조한 문체의 독특한 작품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작품 중 <그의 여자>만을 읽었지만, 이 작가가 내세우고 있는 이 독특한 주인공, 클레르는 현실에서 만나기는 어려운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리감을 느낀다거나 생뚱맞은 느낌이 드는 캐릭터는 아니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작가가 표현한 주인공의 섬세한 감각에 독자가 함께 호흡하면서 은연중에 '그럴 수 있겠다'하는 동의를 얻게 된 데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킬까 봐 몰래 하는 사랑, 특히 남에게 쉽게 동의 받지 못하는 물건에 대한 집착이 주는 쾌락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그녀가 그 남자를 드디어 차지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녀와 함께 딱 한 시간 십오 분의 시간만을 허용하던 토마스가, 그래서 유부남이라고 생각했고, 차지할 수 없다는 이유로 더욱 집착했던 그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클레르는 그녀가 모아 온 그의 물건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린다.

그리고 마지막 반전. 그녀는 다른 남자의 성냥갑을 서랍에 넣고 열쇠를 잠근다.

남들에게 들키기 싫은 한 여자의 야릇한 쾌락은 비밀스럽게 이어진다.

이 책을 남자들에게 읽어보라고 한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그 점이 문득 궁금해졌다.

실제로 이런 성향의 여자를 만나는 일은 쉽지 않지만, 사랑을 완전히 소유할 수 없을 때 그의 흔적이라도 갖고 싶은 욕망이 있을 거라는 데 수긍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완전히 나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의 물건을 버리고 또 다른 남자의 물건을 갖고자 하는 데에는 쉽게 공감하기 어려웠다. 거기에 일반 독자와 엠마뉘엘 베르네임이 그린 주인공 클레르의 간격이 느껴지는 것이다.

제목은 그의 여자이지만 결코 그녀는 그의 여자가 될 수 없는 존재이다. 남자들은 그녀의 소유가 될 수 없을 때에만 그녀의 동경의 대상이 되며 그녀의 남자가 될 때 마음속에서는 버려질 수 있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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