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과 짐 에디션 D(desire) 6
앙리 피에르 로셰 지음, 장소미 옮김 / 그책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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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현실과 환상, 이성과 감성, 허가와 금기의 사이를 헤매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사랑할 수 있는 대상과 사랑해서는 안되는 대상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 할 수 있는 행동과 해서는 안되는 행동의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 왜 현실에서 우리는 그 기준에 복종하고 살고 있을까?


 우리는 문학의 주인공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동성에게 사랑을 느끼고, 여러 명의 애인을 두었지만, 그들 모두를 사랑하고, 목숨을 걸며 투쟁하는 그런 삶을. 아마 선뜻 그런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의 나의 현실과 다른 문학 속 주인공의 삶의 들여다보며 나라면 어떠했을까 상상하며 색다른 기분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현실의 나라면 전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문학에서 만나는 그들처럼 생각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삶과 이해의 지평은 조금은 넓어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줄과 짐>은 단지 그것이 문학작품 속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작가인 알리 피에르 로셰의 자전적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줄은 <분노하라>의 작가인 스테판 에셀의 아버지 프란츠 에셀이며 에셀의 어머니인 엘렌 에셀이 줄과 결혼하고도 짐과 사랑을 나누는 카트린의 실제 주인공이었다고 한다.


⁠ 1907년 파리에서 만난 독일인 줄과 프랑스인 짐은 우정인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관계를 넘나들며(내가 읽기에 이 둘 사이의 애정이 더욱 애절해 보였다) 이 둘 사이에 있는 여자들을 두고 서로 공유하듯 사랑한다. 현실의 우리들은 부끄럽고 두려워 차마 꺼내놓지 못하는 금기된 사랑의 욕망이 이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당연해 보인다. 여주인공 카트린은 오히려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 너무나 사랑하는 여인(그녀는 고대 그리스의 미소를 지닌 여자로 거칠고 도발적인 매력을 지녔다)을 잃을까 두려워 그녀와 친구의 사랑을 오히려 부추기는 줄도 친구와의 우정도 그리고 매력적인 여인과의 사랑도 모두 함께 중요한 짐도 그 둘 사이에서 묘하게 살아가는 카트린도 너무나 독특해서 책을 덮고 난 뒤에도 그들의 캐릭터가 머릿속에 남아있다.

 이들의 경계를 넘는 독특한 사랑의 방식이 스테판 에셀이라는 인류의 생각의 한계를 깨는 위대한 사상가를 낳게 했을지도 모른다.

 -책 속 밑줄긋기-

"누군가를 사랑하는 건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거야. 영향을 끼치려고 해선 안 돼.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그가 변한다면 그는 더 이상 그가 아닌 거니까. 감화 건 강요 건 사랑하는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생각은 단념하는 게 좋아."


"우리는 정말이지 순간 동안만 사랑하는 것 같아."

이 순간은 늘 다시 찾아들었다.

"사랑은 사람들이 자진해서 받아들이는 형벌이야."

줄이 말했다.


계약서도 맹세도 없이 오직 사랑에 기대어 그날그날 살아가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의혹의 바람이 불어오면 그대로 허공으로 추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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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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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자기 전에 듣는 것이 나에게는 큰 낙이다. 책에 대한 수다를 들으며 잠들 수 있는 행복한 시간 때문에 간혹 잠을 자려는 목적에서 벗어나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많지만, 덕분에 좋은 책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곳에서 지나가는 말처럼 절판되어 무척 아쉬운 책 한 권이 소개되었다. 제목부터가 귀를 사로잡았다.

<환상의 빛> , 그 책을 다시 소환해낸 이들 덕분에 좋은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들은 행복하다.

책을 읽고 난 뒤 제목인 환상의 빛처럼 잡을 수 없는 것, 알 수 없는 것을 내 손으로 잡고자 하는, 알아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그린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인공은 남편을 잃었다. 아들이 태어난 지 세 달 만에 남편은 자살을 했다. 선로를 걷다가 기차에 치여 죽는 방법을 택한 남편은 자살의 동기가 보이지 않는다. 약물도, 알코올도 하지 않고, 건강하고, 도박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여자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빚도 없고, 아무리 생각해도 죽을 만한 이유 같은 것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남게 된 부인은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는 왜 죽을 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었던 것일까? 그렇게 해서 어디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그녀는 그렇게 비그친 선로 위를 구부정한 등으로 걸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떠올리며 계속해서 마음속의 혼잣말을 한다. 남편에게 부치는 편지처럼, 아무도 모르게.

혼자 남게 된 이는 어찌 됐든 그 이유가 궁금하다. 그녀에게는 어렸을 적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어렸을 적 할머니의 실종, 할머니도 조용히 국도를 따라 사라졌다. 하지만 경찰들은 할머니를 죽이고 집에다 묻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왠지 모르지만 주인공도 집에서 할머니의 사체가 나오지 않을까 불안감에 사로잡힌다. 살아남은 자의 죄의식 같은 것일까? 새롭게 만난 남편을 혼이 빠져나가서 그렇다고 한다. 그녀는 남편의 뒷모습에 말을 거는 것으로, 위태롭게 시들어버릴 것 같은 자신을 지탱해왔는지도 모른다. 죽은 사람의 형상을 안고 사는 불행한 모습으로 자신에게 벌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경찰이 할머니의 시신을 찾는다고 방바닥을 파던 날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던 것처럼.

작가는 혼자 남은 이의 혼란스럽고 흔들리며 부유하는 마음을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했다. 아름다운 언어 속에 녹아있는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작은 위안이 느껴진다.


초록색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바다에 한 덩어리가 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부분이 있지요. 커다란 물고기 떼가 바다 밑바닥에서 솟아올라 파도 사이로 등지느러미를 드러내고 있는 것 같지만, 그건 사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작은 파도가 모인 것에 지나지 않답니다. 눈에는 비치지 않지만 때때로 저렇게 해면에서 빛이 날뛰는 때가 있는데, 잔물결의 일부분만을 일제히 비추는 거랍니다. 그래서 멀리 있는 사람을 속인다, 고 아버님이 가르쳐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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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 - 제인 구달의 꽃과 나무, 지구 식물 이야기
제인 구달 외 지음, 홍승효 외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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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인 구달의 <희망의 씨앗> 리뷰로그

2015/01/15 19:16 수정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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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씨앗
작가
제인 구달
출판
사이언스북스
발매
2014.12.01

​몇 년 전 개인적으로 무척 힘든 일이 있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고 해서 뜻대로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때 우연히 읽게 된 책이 한 권 있었다. 평소에 내가 좋아하던 분야도 아니고 관심도 없었던 종류의 책이었다. 나무 의사 우종영님이 쓰신 <나는 나무처럼 살고 싶다>는 뜻하지 않게 나를 위로해주고 보듬어주고 다시 살아보자고 다짐하게 한 책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닉네임을 '나무처럼'으로 바꾸었다.


20년을 시골에서 살았다. 그 시절이 나에게는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지겹도록 사람을 괴롭히는 파리와 모기, 아무리 둘러봐도 산밖에 보이지 않는 똑같은 풍경. 나는 얼른 도시로 나가 살게 될 날을 꿈꾸며 그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 그 뒤로도 20년이 흐른 뒤 나무와 야생화에 빠진 그때, 나는 나무 이름도 꽃 이름도 거의 모르고 있었다. 나무와 야생화에 대한 관심은 나무와 꽃에 대한 책을 사 모으고 시간이 날 때면 책을 들고 가까운 공원으로 산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이제는 주변의 나무와 꽃의 이름을 주어섬기는 데 주저함도 없고, 작년에 있었다가 사라진 나무와 꽃이 안타깝고,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나무 홀릭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제인 구달의 <희망의 씨앗>은 또 다른 재미와 흥분을 느끼게 했다.

우선 이 분의 감상적이고 감각적인 글을 비록 번역이지만 맛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이런 표현이다.

'모든 식물의 삶을 지탱하는 음식의 궁극적이며 유일한 조리법은 이산화탄소 1컵에 물 몇 수저, 햇빛 한 줄기를 섞기'

이런 표현으로 연결되는 이 책은 적지 않은 분량이지만 (저자는 많이 덜어냈다고 한다. 덜어내지 않았다면 도대체 얼마나 두꺼운 책이 되었을까?) 재미있게 읽힌다. 작가의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 글을 읽다 보면 나무에 대한 이야기인지,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지 헷갈린다. 그녀의 나무들은 이름을 갖기도 하고, 그녀 혹은 그로 지칭되기도 한다.

그린란드 툰드라에서 눈과 얼음 아래서 8개월을 견딘 뒤 생명을 피우기 시작하는 작은 식물이 실제로는 나무라는 사실에 그녀는 겸손함과 놀람을 함께 느끼기도 하며 식물들이 잎에서 공기 중으로 방출하는 화학 분자나 뿌리를 통해 서로 간에 의사소통을 하고 있음에 사람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며 오만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자만심에 경고를 보내기도 한다. 특히 인간의 탐욕 때문에 죄가 전혀 없는 식물들이 피해를 보는 일은 그녀를 분노에 차게 만든다. 중독을 일으켜 위험한 식물이 되어버린 대마, 마리화나, 양귀비, 코카나무, 담배 등은 예전에는 치유와 신성한 의식에 주요한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의 탐욕과 상업주의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녀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몬산토와 같은 대기업이 내놓는 유전자변형농산물의 위험이다. 이들 기업들은 유전자 변형 작물이 세계 농업 문제의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하지만 부작용에 대한 연구는 위협을 받고 있다. 더 나은 생활방식을 위한 기업의 탐욕 및 공공 수요가 환경의 건강 그리고 사람들의 건강과 우열을 겨룰 때, 이익을 내는 쪽이 이긴다. 하지만 탐욕만이 아니라 충격적인 무지도 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환경 파괴적인 행위의 결과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혹은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너무 잘 알고 있지만, 무력감과 절망감에 행동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제인 구달이 전달해주는 후쿠시마 원전 근처에 심어진 방사능 흡수에 도움이 되는 해바라기와 9.11테러 후 살아남은 돌배나무 '서바이버'의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음이 분명하다. 자연은 회복력이 있다. 건강한 생태계의 원동력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 자연이 가장 잘 알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처럼 올바른 사람들이 자연계와 함께 조화를 이루어 일할 때 치유 과정은 속도를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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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조선미술 순례
서경식 지음, 최재혁 옮김 / 반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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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미술관에 그림을 보러 간다. 그 그림과 그림을 보는 관객인 나와의 접점은 얼마나 될까? 거의 이해하지 못하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화가가 그림을 통해 하는 말, 혹은 하고 싶은 말을 우리는 얼마나 알아듣고 있을까? 그저 형태와 색채만 보는 것은 아닐까?


 

나는 한국의 미술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 나와는 거리가 먼 안드로메다의 일쯤으로 생각하고 살았다. 간혹 누구의 물방울 그림이 얼마네, 물방울이 몇 개인가에 따라 가격이 다르네 하면 그런가 보다 했다. 혹은 특정 대학 출신이 미술계의 권력을 쥐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고도 세상이 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다. 그렇지만 어떻게 가격이 형성된 줄도 모르면서, 그 그림이 왜 유명한지도 모르면서 비싼 그림이 좋다고 생각하며 그 그림이 말하는 의미를 알아내지 못하는 나의 무지를 부끄럽게 생각한 일에 대해서는 이제는 당당히 거부하고 싶다. 내가 이렇게 달리 생각하게 된 것은 새해가 되면서 서경식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를 읽고부터다. 이제 당당히 유명하지 않아도 내게 말을 걸어오는 내가 궁금한 그림을 봐야겠다.

서경식의 <나의 조선미술 순례>는 그동안 우리가 많이 봐왔던 미술 관련 책들과는 다르다. 시대를 죽 훑어가며 미술사조의 특징을 말하고, 그 시대에 활동했던 유명한 화가와 작품을 열거하면서 이런저런 특징을 들어 그 화가와 그림이 갖는 의의를 강조하는 그런 방식의 서술이 아니다.

우선 그의 이름 앞에는 마치 호처럼 '디아스포라'(고국을 떠난 사람들, 여기에는 다분히 고국에서 쫓겨난 이란 뜻이 강하다)가 달라붙어 있다. 1951년 일본에서 태어나 재일조선인 2세로 자란 그의 위의 두 형은 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디아스포라의 눈>, <디아스포라 기행>,<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등 소외와 인권, 그리고 변방의 인물에 주목하게 한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우리/미술은 한국 미술이라는 이름으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물론이고, 재일과 재중 동포 등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아우를 수 없어,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되묻는 말이며, '학대'를 받아 온 호칭인 '조선 미술'로 불리기를 바란다. 위에서 말한 우리와 미술 사이의 빗금도 마찬가지로 '우리'란 무엇이며 '미술'이란 무엇인가, 이 둘은 어떻게 맺어지는가를 독자 스스로 묻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이 권력이 되어서도 안되며 그이 이 처음 질문처럼 '우리'는 무엇이며 '미술'은 무엇인가를 끝없이 되묻는 질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우리에게 호출한 화가들은 달랑 그림만 가지고 오지 않는다. 그가 호출한 신경호, 정연두, 윤석남, 이쾌대, 미희, 홍성담, 송현숙은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아픔을 안고 우리에게 다가 온다. 그는 화가들이 그린 그림의 이면에 있는 화가의 삶과 고민, 사회와 민족의 이야기를 함께 불러냈다. 그가 불러 낸 화가들은 5.18 광주의 아픔, 개발독재 시절의 입양아, 파독 간호사, 일제의 침략과 남북 분단 등 역사를 짊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재미있는 것은 조선시대의 신윤복 또한 불러낸 일이다. 작가는 신윤복을 여자로 그린 '비밀의 화원'의 작가를 통해 신윤복을 탐색해본다. 우리/미술은 비싼 값의 그림에 있지 않다. 우리가 누구인가를 묻고 또 묻는 그림에 있어야 한다.

나는 이제 삶에 공감해야 그림에 공감하고, 그림에 담긴 서사를 유추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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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 - 이외수의 존버 실천법
이외수.하창수 지음 / 김영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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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3차 항암 들어갑니다. 그래서 오늘은 무조건 잘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식욕이 제로입니다. 기력도 쇠

잔해서 지척 지간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기조차 힘겹습니다. 하지만 정신만은 카랑카랑합니다. 쉬바, 어쩌

라고 불현듯 외로움이 밀려닥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절대로 주저앉지는 않겠습니다. 새해에는 오는 복이 있

으면 염치 불고하고 조금 받기도 하겠습니다. -이외수의 트위터 글-

 

오늘, 저희 집안의 큰 어르신이 생사의 고비에서 힘겹게 싸우고 계십니다. 폐암으로 투병 중이신데, 오늘 내일이 고비라고 합니다. 아침부터 기도하는 마음으로 순간순간 보내지만, 마음이 차분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행입니다. <이외수의 '존버'실천법 뚝,>을 읽을 수 있어서.

죽음을 앞에 두게 되면 세상의 모든 일이 하찮아지나 봅니다. 아니 세상의 일이 간결해 보이나 봅니다. 이외수 작가님도 위암 투병 중이시라 들었습니다. 그는 위에 적힌 글을 며칠 전 트위터에 올렸습니다. 이 글은 간절함과 불안감이 묻어나지만, 하창수 작가가 묻고 이외수 작가가 대답한 <뚝,>에서는 단호하고 간결합니다. 밑바닥까지 경험하게 되면 달관의 경지에 오르는 걸까요? 경험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경험 속에서 무엇을 고민했는지, 얻은 교훈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떻게 실천하며 살았는지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메멘토 모리, 중세인들이 외쳤던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은 죽음 자체를 기억하라는 단순한 뜻만이 아닐 것입니다. 삶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죽음의 자리를 항상 명확하게 의식하고 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재 주어진 짧은 생에서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고자 하는 그들의 몸부림이었을 것입니다. 죽음을 기억하라! 이 말은 성공만이 최상의 가치가 된 세상에서, 남을 딛고 가야만 내가 살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가치관의 혼돈을 느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절실히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이외수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고 명쾌하지만 허투루 웃어넘길 수 없나 봅니다.

새해가 되면서 많은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올해는 100권의 책을 읽겠다거나, 건강을 염려하는 분이라면 올해는 꾸준히 운동을 하겠다거나, 아니면 올해 얼마의 돈을 모으겠다거나, 혹은 더 큰 성공을 계획하기도 합니다.

하창수 작가가 묻습니다.

"작심삼일하지 않는 방법이 있을까요?"

이외수 작가가 답합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겁니다.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어길 일도 없죠."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느냐는 반문에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은 일이라는 믿음은 일종의 미신이라고 답합니다. 중요한 것은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계획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작심삼일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자충수일 수 있다는 겁니다.

새해를 맞이하여 별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은 저에게는 위로의 말로 들리기는 합니다만,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하창수 작가가 또 묻습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더러운 건 피해야 합니까?"

이외수 작가가 답합니다.

"치워야 합니다. 피하기만 하면 천지가 똥밭이 됩니다."

이외수 작가는 삶은 죽음을 통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차원으로 이동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또 묻습니다.

"이번에 위암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으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이 더해진 것이 있습니까?"

"두렵지 않습니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3차원의 것을 두고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이란?"

"차원 이동입니다."

죽음이 차원의 이동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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