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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철학적인 순간 - 자전거 타기에서 첫 키스까지, 학교에서 이사까지 내 인생의 20가지 통과의례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 지음, 남경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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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 태어났고, 걸음마를 배우고 옹알이를 하다가 말이라는 걸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여기까지는 내 기억에 없다. 하지만 기억하고 있지는 못하더라도 내 인생의 중요한 시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까지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며 우리의 삶을 고찰한 한 철학자가 있다. 로버트 롤런드 스미스는 이렇게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인생의 중요한 20가지의 순간에 여러 철학자의 견해를 들어 인생의 의미를 찾는 법을 말한다.
스포츠카를 받은 즉시 열쇠를 잃어버린 것(태어남), 걸음으로 세상에 흔적을 남기고, 말로써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다(걸음마와 옹알이), 처음으로 나 자신을 타자로 느끼는 곳(학교), 아빠가 자전거를 잡은 손을 놓을 때, 의심과 믿음의 갈림길에 선다(자전거), 선생님이라는 버팀목을 치우고 혼자 만나는 최초의 심판(시험), 키스는 침묵이며, 단 두 사람만이 공유하는 비밀이다(첫 키스), 우리는 순결을 잃을 때 종의 기원으로 되돌아간다(순결의 상실), 처음 만나는 신선한 자유, 그러나 동시에 통제를 받아들이다(운전면허), 한나라가 나를 가장 진지하게 대하는 순간(첫 투표), 제대로 취직을 하면 일하는 동물에서 일하는 인간이 된다(취직), 사라질 운명을 인정하면서도 영원을 믿는 고백(사랑), 서로의 운명을 소유하기로 결정하다(결혼), 격렬한 낭만적 사랑에서 소중한 현실적 사랑으로(출산), 바로 그날까지 타인이 살던 불확실함 속으로 뛰어들다(이사), 결국 이디에도 올바른 길이 없다는 것을 깨닫다(중년의 위기), 사악해질 수조차 있는 불행한 관계를 끝내는 정직한 수단(이혼), 더 이상 젊지 않지만 아직 늙지 않은 모호한 순간(은퇴), 제3의 인생, 스스로를 신선하게 바라보다(늙어감), 우리의 사망은 다른 사람을 살게 한다(죽음), 죽음 뒤를 상상할 때 현재가 바뀐다(내세) 이렇게 20가지의 순간에 대한 감각적인 어휘의 뒤에 숨은 철학적 의미를 찾아내어 나의 삶의 의미 찾기를 도와주고 있다.
가장 재미있고 신선했던 부분은 자전거 타기였다. 어른들에게 자전거는 목적지까지 가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에게 자전거는 특정한 목적지가 없이 달리는 장난감이다. 그 자유분방한 행동에서는 중요한 철학적 문제 즉 '목적론'적 의도가 없다. 아이와 어른의 여러 가지 차이들 중 하나는 아이에게 목적론적 의도가 없는 것이다. 아이는 골을 넣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은 당면한 목표를 넘어 어디로 가거나 무엇을 성취하려 하지 않는다. 아이는 구체적인 결과에만 집중하는 데 만족한다. 그래서 자전거 타기는 단순한 유년기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의 은유가 된다. 즉 자전거 타기는 유아성의 상태를 나타낸다. 하지만 아이의 관점에서 보면 자전거 타기를 배우는 것은 오히려 반대 방향, 즉 어른이 되는 것을 지향한다. 유아성을 부각시키기보다는 정복해버린다. 자전거를 배우는 것은 획득한 영토를 완전히 정복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여기서 우리가 정복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자전거라는 기계에 대한 기술적 정복이다. 이를테면 핸들을 조작하고, 브레이크를 너무 급히 밟지 않고, 페달에 일정한 압력을 가하는 기술이다. 두 번째는 자아의 정복이다. 자전거 배우기의 특징은 처음에 자전거를 잡아주던 사람이 얼마 안 가 손을 놓는다는 점이다. 자전거 타기를 세밀하게 분석하지 않아도 그것은 순전히 의심과 믿음의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누가 잡아주던 상태에서 혼자 힘으로 자전거를 타는 상태까지 가려면, 하나에서 다른 하나로 연속적인 궤적을 그리며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아니라 두 가지 존재 질서 사이의 협곡을 뛰어넘어야 한다(즉 종속에서 독립으로, 안전에서 자기 결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전거를 탄다는 것은 혼자서 방향을 결정하고 자전거 위에서의 침묵을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 가장 와 닿았었던 주제는 '중년의 위기'였다.
저자는 중년의 위기는 그 세계를 끌어안고 그 기대와 절박함을 따져보는 시점이라고 했다. 중년의 위기가 새로운 것이 사라진 삶에 대한 반응이며, 아무 일도 없는 상황에서 단지 무슨 일이 생기게 하려는 악의 없는 시도다. 수명이 늘어나며 정의하기도 어렵고 문화적으로 정해진 형태도 없는 인생이 40퍼센트나 남게 되었다. 과학과 기술은 우리의 수명을 늘려주면서도 그 삶을 잘 이용하기 위한 수단을 제공하지 않았다. 이는 마치 정년퇴직자 주택을 건설하면서도 부수 시설인 상점이나 영화관은 짓지 않는 부동산 개발자들과 같다. 최선의 치유책은 예방이다. 예방의 핵심은 '자아'에 있다. 그동안 바깥의 사건들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면 이제는 내 안의 종이 울리면서 아직 성찰하지 않은 내부를 성찰하라고 촉구한다. 중년을 비극이 아니라 위기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아직 길을 찾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순간에 지나가버리는 의미없는 시기라도 생각했던 일들이 생각하기에 따라 얼마나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갖는 시기였는지, 그리고 그 시기를 나는 아무런 생각없이 지나쳐버렸는지 안타까웠다. 하지만 이제부터라도 내가 겪는 이 모든 시간들에서 의미를 느껴보려고 노력해보리라 다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