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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인문학 -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박다솜 옮김 / 시드페이퍼 / 2015년 2월
평점 :
품절
'본다'라는 뜻을 지닌 관觀이라는 한자는 부엉이 환雚자와 볼 견見자로 이루어져 있다. 커다란 두 눈이 특징적인 올빼미나 부엉이류의 새 혹은 그러한 눈을 가진 새는 뛰어난 평형감각으로 어두운 밤에도 나무 사이를 다니며 먹잇감을 잡는다. 그래서 관觀이라는 한자에는 '양쪽을 대비해서 균형감각을 가지고 본다.'라는 뜻이 들어있다. 관찰이라고 한다면 자신의 견해나 목적이 배제된 채 있는 그대로 보고 받아들임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매일 남편과 같은 길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 길에 무엇이 있는지 묻곤 하는데 서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다르다. 나는 너무나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가게를 남편은 그런 가게가 어디 있느냐고 따지기까지 한다. 물론 똑같이 남편이 본 것을 나는 전혀 본 기억이 없기도 하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내가 이미 볼 거라고 예상했던 대상들만 보았던 것이다. 한 가지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 밖의 다른 것을 무시하고 있다. 알렉산드라 호로비츠의 <관찰의 인문학>은 우리가 무시하고 지나갔던 것들에 주목한다. 저자는 자신과는 다른 시선과 생각을 가진 서로 다른 직업과 전문분야를 가진 이들과 산책을 하면서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어지기도 하고 지겨웠던 것들이 이야기를 담고 신선하게 다가오는 경험을 한다.
물론 이 책에 등장하는 각 인물들은 모두 '직업적 왜곡'이라는 특정한 편향성이 존재한다. 바로 모든 상황을 자신의 직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려는 경향인데 그렇게 서로 다른 전문가들에게 배우는 관찰은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을 가르쳐준다.
아들과의 산책은 걷기가 때로는 걷지 않는 것임을, 산책은 버려진 물건, 잊힌 물건을 발견하는 고고학임을 느끼게 해준다. 지질학자와 함께 하는 산책에서 저자는 소위 인공물이라는 것도 자연적으로 발생한 재료들을 해체하고 조합해 사람의 목적에 맞게 다시 만들어낸 것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사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이 지질학이다.
타이포 그라퍼와 함께 한 산책에서는 글자들이 펼치는 향연을 보게 된다. 곤충박사와 함께 하는 산책은 생각지도 못한 벌레들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얻게 된다. 사실 즐거움은 발견하는 행위 자체에 있다. 곤충을 자세히 관찰한다는 것은 탄생에서 폭력적인 살해, 죽음으로 이어지는 순환 주기의 비디오를 빨리 감기로 보는 것과 같다. 이것을 관찰하려면 한 곳에 오래 서 있어야 한다. 한 곳에 더 오래 서 있을수록 더 많은 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무엇을 보게 될지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대로 인해 시야는 어느 정도 제한된다. 어떤 의미에서 기대는 집중의 잃어버린 사촌과 같다. 둘 다 '외부 세계'에 대해 처리해야 하는 분량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집중과 기대는 우리가 코앞에 두고도 무언가를 놓치게 만드는 주범이기도 하다. 이를 부주의 맹시현상이라고 한다. 우리는 도시에서 동물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동물을 보지 못한다. 저자는 야생동물 전문가와의 산책에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쥐와 새를 만난다.
마치 여행을 떠나 낯선 장소에 있을 때 온몸의 감각기관이 활짝 열리는 것처럼 우리가 매일 걷는 길을 낯선 장소처럼 바라보고, 여행자처럼 걷는다면 조금은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