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포로원정대
펠리체 베누치 지음, 윤석영 옮김 / 박하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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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돌파해 나오는 유머의 힘으로 이야기하는 인간의 꿈과 자유, 영혼의 순결한 힘!'이라는 소설가 김훈 님의 찬사를 두른 <미친 포로원정대>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 공무원으로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에서 근무하던 펠리체 베누치가 연합군에게 잡혀 케냐의 제 354포로수용소에 잡혀있던 중, 가시 철조망 사이로 푸른빛 빙하를 몸에 두른 5,200미터 높이의 산을 본 순간 사랑에 빠져 수용소를 탈출하여 '케냐산'에 오를 그 '미친'행위에 대한 펠리체 베누치의 모험담을 그린 책이다. 책을 읽기 전에 이 사람이 무솔리니가 지배하던 이탈리아의 공무원이었다는 생각이 한 귀퉁이에서 내내 고개를 들었지만, 단지 포로수용소에 갇힌 한 인간으로, 시한이 정해져 있지 않은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에 반기를 든 용기를 가진 한 인간으로 만난다면 또 다른 감동으로 만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멀리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꿈의 산을 정복하고자 원정대를 조직하고 손수 장비를 만들고, 식량을 비축하고 드디어 수용소를 탈출하여 산을 오르고, 기껏해야 자신들의 나라를 상징하는 깃발을 꽂고 다시 내려와 수용소로 돌아오는 '미친'행위를 실제로 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게다가 이 모험담을 농담처럼, 진담처럼 툴툴 털어내듯 그려낸 작가의 글은 수용소의 비참함 또한 유머로 넘어갈 수 있게 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수용소를 탈출한 이들이 케냐산의 놀라운 광경을 보고 서로에게 던지는 이 말은 이들이 왜 이런 생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알게 해준다.


자연이 선사하는 경이로움에, 우리는 내내 감동하고 또 감격했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즐거움의 대가가 28일 감방 생활에 불과하다니, 믿어지지 않아!'

"나는 56일 동안이라도 기꺼이 있겠어."

"난 120일."

"최고가입니다. 낙찰!"


​이들이 이렇게 감탄했던 케냐산은 적도 아래를 지나고 있는 케냐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정상은 얼음으로 덮여 있으며, 세 개의 서로 다른 독특한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맨 위로 빙하와 만년설의 화산 봉우리 지역, 독특한 모양의 대형 장미과 식물이 서식하는 고산지역, 그리고 울창한 숲과 대나무과 식물들이 서식하는 저경사 지역이다. 일반적으로 트래킹을 즐기는 사람들도 '누구나 '미친 포로원정대'가 방문했던 Point Lenana(4,985m)까지는 별 어려움 없이 등반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이 지점에서 웃음이 터졌다. 책을 통해 보면 이들은 죽을 정도로 고생을 했고 모험을 했다. 인간의 한계를 넘은 것처럼. 하지만 누구나 트래킹으로 오를 수 있는 곳이었다니......) 그래서였을까? 책의 중간에 저자의 말이 재미있다.


이번 여행을 결산해보면 뭐가 남을까. 오로지 등산의 관점에서만 보자면 그건 실패였다. 기껏해야 '명예로운 실패'정도였다. 레나나는 '관광객들이나 다닐 만한 산'인 걸로 드러났으며 바티안은 우리 면전에서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하지만 우리가 시도한 것은 결과적으로 애국자 시늉이나 내고 마는 등산 여행이 아니었다. 철조망 바깥으로 뛰쳐나온 우리의 행위는 포로수용소의 고리타분한 삶에 대한 반항이었다. 무기력함 속에서도 의지를 드러내 보인 행동이었다.



어떤 희망도 갖기 힘들었던 수용소에서 이들은 희망을 가졌고, 그것을 실천에 옮겼다. 이들이 탈출한 삶이 지금 우리의 삶과 오버랩되면서 우리는 과연 희망을 안고 사는 것인지, 탈출을 꿈꾸고 계획하는 일은 왜 안 하는 것인지, 이들이 보여줬던 유머와 농담의 힘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지만 꿈과 열정으로 꾸며진 그런 일을 계획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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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언제나 광속 - 시 한 수, 그림 한 장
김주대 지음 / 현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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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과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그때보다 오히려 더 힘들어졌는데, 희망은 더더욱 찾기 힘든데 벌써 세월호 1주기가 되었습니다. 며칠 전 현암사에서 받은 김주대 시인의 시서화집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펼쳤습니다. 순간 어느 페이지에 잡혀 버렸습니다.

세월~~



 

 

마지막 한 사람이 살아돌아올 때까지

우리는 당신들을 기다릴 것입니다

지금 당신들이 우리들 삶의 이유입니다

추운 바다를 밟고 제발

살아서 뚜벅뚜벅 돌아오십시오

 

그렇게 우리는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작년 사월, 세월호에서 뚜벅뚜벅 살아돌아온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렇게 시인은 그 때의 우리의 아픈 가슴을 그대로 우리에게 기억시켜주고 있었습니다. 김주대 시인의 이 시집을 읽으며, 작년 사월의 아픈 기억과 지금 우리의 현실이 슬프게 다가왔습니다.


 

 

 

 

사월

그대 여기 와서

실컷 울고 갔구나

목련꽃이

다 졌다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물은 목련꽃이 다 떨어지도록 마를 줄 몰랐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할 사람들은 침묵했습니다. 지금 말과 행동이 다른 이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또 침묵하고 있습니다.

 

 

 


푸른 촛불

지난밤에는 촛불을 들고 거리고 나선 어린것들의 긴 행렬을 보았다.

요즘 가만히 있으라 해도 가만히 있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 건 다 촛불로 보인다.

나와라, 다 나와라, 나와서 엄마한테 가자. 


푸른 눈물처럼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온 아이들, 아이들, 이 아이들에게 어른인 우리는 할 말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젯밤 이 행렬에 물대포를 쏘았습니다.

 

 

 

유류품

풀린 운동화가 돌아왔다.

운동화속에는 이이의 발목이 없다

 

 


진리를 보아버린 사람은 타협을 못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우리 진리를 보기는 했을까요?
우연히 이 시집을 펼쳐든 날이 4월 16일이었습니다. 무슨 계시처럼.
그 날 전 위의 시들에 푹 잠겨 세월호와 같이 가라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틀 뒤 다시 시집을 펼쳐봅니다. 세월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와 같은 순수한 눈으로 아이들이 그린 낙서 태양아래 마치 낙서 태양의 빛을 받아 자란 것처럼 노란 민들레를 볼 수 있는 시도 가슴에 와닿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 아들에 대한 사랑, 그리고 시대에 대한 아픔과 철학 등이 녹아있는 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와 생각이 닮아있습니다. 그래서 꼭 내 마음을 그려낸 듯 낯설지 않았습니다. 내가 시인이 될 수 없다면 나와 같은 시를 읽어보는 것, 그것도 방법인 듯 합니다. 덕분에 나와 같은 시를 만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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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연애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1
김선희 외 지음 / 바이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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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곧 82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cm나 줄었고
피부도 주름투성이지만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지 쉰 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


 

 

위 글은 2007년 불치병의 아내와 동반 자살을 선택한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그는

"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 라는 그의 편지글처럼 아내와의 동반 자살로 생의 마지막을 선택했다. 그가 아내에게 쓴 편지글을 보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의 절절한 사랑뿐 아니라 철학자적 고민도 함께 엿보인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나는 '다른 곳에', 내게 낯선 곳에 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 부족함을 메워주는 타자성()의 차원으로 나를 이끌어주었습니다. 정체성이라는 것을 늘 거부하면서도 결국 내 것이 아닌 정체성들만 하나하나 덧붙이며 살아온 나를 말입니다.' 이런 편지를 받게 되는 아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해 어제 읽기를 끝낸 <철학자의 연애>는 이렇게 조금은 은밀한 철학자의 사랑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냉철한 이성으로 중무장했을 것 같은 철학자가 뜨거운 가슴과 열정이 이끄는 좌충우돌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과연 그들의 사랑은 평범한 우리들과는 다르기는 한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들의 사랑이 철학에 무언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왠지 굉장했을 것 같은 그들의 연애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경우에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만큼이나 '형이하학적(?)' 문제 또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르트르는 어느 여성에게 필이 꽂히면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야 했다. 필은 수시로 꽂혔고,

보부아르도 만만치 않았다. 생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보부아르 주위에 매혹적인 연하 남자 혹은 여자의 자취가 사라져본 적이 없다. 연인의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연인의 제자 심지어 제자의 애인도 보부아르의 상대가 되었다.

이들의 사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심지어 '그들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기나 할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혹 그저 '성도착자에 지나지 않았던 두 사람에게 세상이 놀아난 것은 아닌가. 우리의 지적 허영을 자극하는 저 실존주의라는 그럴듯한 허울에 감쪽같이 속아서 세상 모두가 통째로 둘에게 당하고 만 것은 아닌가.'라는 강한 의혹을 드러내고 만다. 이들의 사랑은 실존주의라는 철학까지 자칫 욕을 먹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저 웃음만 나온다.


게다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은 어떤가?  그들은 수업을 핑계로 서로를 탐닉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기보다는 사랑의 밀어를 더 많이 주고받았고, 가르침보다는 키스를 더 많이 주고받았으며, 아벨라르의 손은 책장보다는 엘로이즈의 굴곡진 몸에 더 자주 머물렀다고 아벨라르는 고백한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도 태어났지만 엘로이즈는 결혼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결혼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일들이 아벨라르의 학문적 성취를 방해하리라는 것이다. ' 자연이 모든 인류를 위해 창조했던 사람이 이제 한 여인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엘로이즈의 편지글은 철학자 아벨라르에게 보낸 최고의 찬사이며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다.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알쏭달쏭한 사랑, 운명애와 사랑에 빠진 니체,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랑을 나누다 나중에야 부부의 연을 맺은 밀과 해리엇. 이들의 사랑을 엿보다 독자는 왠지 철학과 사랑에 빠지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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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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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보수여당과 문재인 진보 야당 후보의 득표율 분석표를 보자. 직업별 지지율을 보거나 월 소득별 지지율을 보면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왜 가난한 이들은 보수정당에 투표를 했는가 하는 부분이다. 보수언론과 보수정당의 말에 속아서? 물론 그것도 많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거기에 대한 답을 조지 레이코프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통해서 얻을 수 있을 듯하다. 물론 이 책은 2006년도에 우리나라에 발표되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2004년도에 발행되어 많은 민주당의 정치인들이 읽었고, 2008년 민주당 후보인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미국에서 책이 발간된 후) 이 책의 개정판이 다시 나왔다. 그 이유는 현재 미국에서 세금 구제와 오바마케어를 비롯한 자유와 부의 양극화, 기업의 지배 등 최신 쟁점에서 민주당이 공화당에게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레이코프는 옆의 표에서 보여주는 가난한 이들이 보수정당에 투표하는 이유가 바로 가치와 정체성에 있다고 본다.

흔히 우리는 '진리, 혹은 진실이 우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고 믿고 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합리적인 존재이므로, 우리가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그들은 옳은 결론에 도달할 것이라고 믿고 행동한다. 이것은 서양철학의 지배적인 전통인 합리주의에 기초한 생각이다. 또한 인간은 합리적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익에 반하여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레이코프는 인지 심리적인 연구의 성과로 유권자는 합리적이라는 가정에 의문을 던진다. 그는 정치의 핵심을 '인지적 무의식'구조에서 파악한다. 즉 정체성 간의 충돌로 보고 있다.  우리의 뇌가 하는 일의 98퍼센트는 의식 수준 밑에서 이루어지며, 우리는 뇌 안의 무엇이 우리의 가장 깊은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신념을 결정하는지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의식적인 이 신념을 근거로 행동한다.  레이코프는 무엇이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행위를 결정하는지 알아내어 이를 알리고자 했다. 특히 정치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구조물은 바로 '프레임'이다.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과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우리가 행동한 결과의 좋고 나쁨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은 곧 사회 변화를 의미한다.


언어는 프레임을 활성화하가 때문에 새로운 프레임은 새로운 언어를 필요로 한다. 다르게 생각하려면 다르게 말해야 한다. 프레임은 슬로건이 아니라 생각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가 뉴스에서 매일 만나는 단어들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분명 이 단어들이 내포하고 있는 가치가 있을 것이며, 의도하는 목적이 분명해 보이기 때문이다.

 

'세금 폭탄', '민영화', '무상급식'. 왜 정치가들이 이런 단어를 입에 올리는 걸까?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를 정치가가 아닌 유권자인 우리가 읽어야 하는 이유가 이 단어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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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유럽을 걷다
손준식 지음 / 밥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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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알고 있었다. 여행이 가져다주는 삶에 대한 지혜와 통찰, 몸으로 배우는 인생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현실에 발이 꽁꽁 묶여버린 굴레가 많은 나는 쉽게 현실을 박차고 가방을 쌀 수 없었다. 특히 10여 일의 여행이 아닌 몇 달의 긴 여행은 머릿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에게는 마음껏 그런 시간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수능이 끝난 후 아르바이트를 하는 아들에게 긴 여행을 권했다. 그런 권유를 아들이 고맙게도 받아들여주어서 이제 얼마 후면 아들이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난다. 그런 아들에게 권해주고 싶어서 읽은 책이 바로 <스무살, 유럽을 걷다>였다.

<스무 살, 유럽을 걷다>는 다이어리나 블로그 일기장에 쓰여있음 직한 내용의 여행기다. 누구에게 여행지를 소개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설렘과 두려움, 지금 자신이 서 있는 삶의 위치에 대한 불안감이 그대로 묻어난다. 이 글을 쓴 손준식 군이 유럽의 어디에 서 있는가 보다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그리고 무슨 생각을 했는지가 더 눈에 들어온다. 유럽의 어디를 가면 좋을까, 어떻게 가면 좋을까 하는 의도로 이 책은 읽을 수 없다.

얼마 전 존 캐루악의 <길 위에서>를 읽었다.

우리의 찌그러진 여행가방이 다시 인도 위에 쌓였다.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문제 되지 않았다. 길은 삶이니까.

<길 위에서>에 나온 이 문장처럼 스무 살의 이 청년은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삶에 대한 고민으로 그 길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딱 스무 살 그 언저리의 아직은 어린 청년의 글이라 다듬어지지 않았고, 사색의 깊이도 아직은 깊어지지 않아 설익은 책이 되고 말았지만, 적어도 이 청년의 추억의 완결로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그가 이제 어떤 삶을 살게 될지, 그가 보게 되는 대한민국의 이 도시들은 어떨지 궁금하다.

​존 캐루악의 <길 위에서>의 주인공은 도시의 꿈틀대는 미친 꿈을 보게 되는데, 이 청년은 무엇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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