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연애 세상을 바꾼 그들의 사랑 1
김선희 외 지음 / 바이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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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곧 82살이 됩니다
키는 예전보다 6cm나 줄었고
피부도 주름투성이지만
당신은 여전히 탐스럽고
우아하고, 아름답습니다
함께 살아온지 쉰 여덟 해가 되었지만
그 어느때보다 더 당신을 사랑합니다 "


 

 

위 글은 2007년 불치병의 아내와 동반 자살을 선택한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아내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그는

" 당신을 화장하는 곳에 나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의 재가 든 납골함을 받아들지 않을 겁니다 " 라는 그의 편지글처럼 아내와의 동반 자살로 생의 마지막을 선택했다. 그가 아내에게 쓴 편지글을 보면 아내를 사랑하는 남편으로서의 절절한 사랑뿐 아니라 철학자적 고민도 함께 엿보인다. '당신과 함께 있으면 나는 '다른 곳에', 내게 낯선 곳에 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 부족함을 메워주는 타자성()의 차원으로 나를 이끌어주었습니다. 정체성이라는 것을 늘 거부하면서도 결국 내 것이 아닌 정체성들만 하나하나 덧붙이며 살아온 나를 말입니다.' 이런 편지를 받게 되는 아내는 과연 어떤 사람이었을까?


얼마 전부터 읽기 시작해 어제 읽기를 끝낸 <철학자의 연애>는 이렇게 조금은 은밀한 철학자의 사랑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었다. 냉철한 이성으로 중무장했을 것 같은 철학자가 뜨거운 가슴과 열정이 이끄는 좌충우돌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과연 그들의 사랑은 평범한 우리들과는 다르기는 한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그들의 사랑이 철학에 무언가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왠지 굉장했을 것 같은 그들의 연애는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경우에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만큼이나 '형이하학적(?)' 문제 또한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르트르는 어느 여성에게 필이 꽂히면 어떤 식으로든 결판을 내야 했다. 필은 수시로 꽂혔고,

보부아르도 만만치 않았다. 생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보부아르 주위에 매혹적인 연하 남자 혹은 여자의 자취가 사라져본 적이 없다. 연인의 친구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연인의 제자 심지어 제자의 애인도 보부아르의 상대가 되었다.

이들의 사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심지어 '그들의 사랑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기나 할까'라는 의문을 품는다. 혹 그저 '성도착자에 지나지 않았던 두 사람에게 세상이 놀아난 것은 아닌가. 우리의 지적 허영을 자극하는 저 실존주의라는 그럴듯한 허울에 감쪽같이 속아서 세상 모두가 통째로 둘에게 당하고 만 것은 아닌가.'라는 강한 의혹을 드러내고 만다. 이들의 사랑은 실존주의라는 철학까지 자칫 욕을 먹이게 되는 것은 아닌지, 그저 웃음만 나온다.


게다가 아벨라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은 어떤가?  그들은 수업을 핑계로 서로를 탐닉하는데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기보다는 사랑의 밀어를 더 많이 주고받았고, 가르침보다는 키스를 더 많이 주고받았으며, 아벨라르의 손은 책장보다는 엘로이즈의 굴곡진 몸에 더 자주 머물렀다고 아벨라르는 고백한다. 이들 사이에는 아들도 태어났지만 엘로이즈는 결혼을 반대했다. 그 이유는 결혼으로 인해 발생하는 많은 일들이 아벨라르의 학문적 성취를 방해하리라는 것이다. ' 자연이 모든 인류를 위해 창조했던 사람이 이제 한 여인의 소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엘로이즈의 편지글은 철학자 아벨라르에게 보낸 최고의 찬사이며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다.


하이데거와 아렌트의 알쏭달쏭한 사랑, 운명애와 사랑에 빠진 니체, 플라토닉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랑을 나누다 나중에야 부부의 연을 맺은 밀과 해리엇. 이들의 사랑을 엿보다 독자는 왠지 철학과 사랑에 빠지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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