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농의 샘 1 펭귄클래식 143
마르셀 파뇰 지음, 조은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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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라르 드 빠르듀가 연기한 장이 나오는 프랑스 영화 <마농의 샘>을 봤던 게 언제였는지 구체적으로 연도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제라드 드 빠르듀의 모습과 아름다운 배경은 어렴풋이 흔적처럼 남아있다. 그 당시 보았던 프랑스 영화 몇 편의 화면과 느낌은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 뒤로 다시 챙겨서 볼 기회는 없었기에 펭귄클래식코리아에서 <마농의 샘>이 나왔다는 소식은 옛날을 불러오는 기분 좋은 소리였다. 작은 두 권의 책은 추억과 함께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맛을 느끼게 해주었다. 요즈음의 소설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설의 구성을 벗어나 있어야 읽을만하다고 평가되기도 한다. 등장인물들 또한 전형적인 인물에서 벗어나기도 하고, 서사의 방법 또한 간혹 난해해서 억지로 공부하며 읽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마르셀 파뇰의 <마농의 샘>은 우리가 일찍이 알고 있었던 바로 그 '소설적' 기법으로 쓰였다.

이 소설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시골 청년 위골랭은 카네이션 재배로 큰돈을 벌기 위해 삼촌 파페에게 의논한다. 카네이션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양의 물이 필요하고, 다행히 이웃 노인의 농가에는 샘이 있었다. 삼촌 파페와 위골랭은 이웃 노인을 설득해서 그 땅을 차지하고자 하지만 실패하고 만다. 노인은 죽고 농가는 노인의 누이의 아들인 꼽추 장에게 상속된다. 곱추 장은 아내와 딸 마농을 데리고 평생을 살 목적으로 농가로 이주해 들어온다. 위골랭과 파페는 샘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샘을 아예 막아버린다. 마농의 가족은 물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지만, 마을 사람들은 입을 닫아걸었고, 위골랭과 파페는 착한 이웃 행세만 한다. 장은 우물을 파다가 사고로 목숨을 잃고 샘이 있는 땅은 위골랭과 파페의 손에 들어간다. 위골랭은 이 땅에 카네이션을 재배해서 많은 돈을 벌게 된다. 시간이 흘러 마농은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게 되고 마농에게 위골랭은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마농은 우연히 샘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되고 또 우연히 샘의 원천을 발견하고 그것을 막아 마을 전체의 샘이 다 말라버리게 만든다. 그로 인해 위골랭과 파페의 죄가 드러나며 위골랭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파페는 옛 친구로부터 장이 그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듣게 된다. 파페는 마농에게 유서와 자신의 전 재산을 남기고 죽는다.

인간의 욕심이 가져온 비극과 파멸 그리고 착한 인물이 희생의 제물이 되었지만, 결국에는 모든 것이 잘 해결되는 권선징악의 결말까지 뻔한 스토리지만 그래서 편하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 유의 소설은 인물들이 삶을 고민하고 방황하다가 도덕적으로 성장해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지는 않다. 인물들은 처음부터 욕심이 많다거나, 다른 인물과 다르게 선하고 반듯하다거나, 시류에 흔들리며 살고 있다. 그들의 본성을 거스르지 않고 사건이 일어나면 예측 가능한 범위에서 행동하다가 우연과 과거의 어느 시점의 무지로 인해 벌어졌던 일에 대해 문득 알게 됨으로써 사건은 해결이 되고 갈등은 전부 해소된다. 오랫동안 우리가 이런 소설을 읽어왔고, 또 배워왔기에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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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로 가는 길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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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그의 에세이에서 나무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라고 충고했다. 목적만을 바라보고 달려가는 우리들에게 그의 글은 마음속에 견고하게 쌓아놓은 딱딱한 욕심을 와르를 무너뜨리는 망치가 된다.

우리가 서글퍼져 삶을 더는 견디기 어려워질 때, 나무는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만히 있어라! 조용히 해라! 나를 바라보라! 삶은 쉬운 것이 아니다. 삶은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들은 모두 유치하다. 신이 네 안에서 말씀하도록 가만히 두어라. 그리고 너는 침묵하라.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네가 가는 길이 너를 어머니로부터, 고향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딛는 걸음마다, 매일매일 너는 어머니에게로 새롭게 이끌려간다. 고향이란 여기 혹은 저기에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고향은 너의 내면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에도 없다.

얼마 전 헤세의 <크눌프>를 읽으면서 헤세가 그린 작품 속 크눌프가 너무도 부러웠다. 정여울이 바라본 헤세처럼 크눌프는 자유롭게 살아가는 영혼이었다. 우리가 꿈만 꾸는. 헤세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여행을 하고, 책을 읽었다. 그에게는 그가 써낸 책 속의 인물들이 살아있었다. 그래서 그는, 헤세는 그 자체로 독자에게 영감을 전해주는 듯하다. 마치 한 편의 멋진 소설처럼.

 

 

정여울 작가는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마다 손에 헤세의 책들이 쥐어져 있었다고 한다. 입시 지옥에서, 책을 쓰다가, 세월의 흐름 앞에서, 곳곳에서 헤세를 만난 정여울 작가의 안내로 떠나는 헤세와의 만남은 헤세와 정여울이라는 두 작가를 부럽게 만들었다. 나의 젊은 시절에 왜 나는 헤세로부터 도망쳤던가? 헤세의 작품을 암기해두어야 할 교과서 속 고전, 시험문제로 만나서였을까? 그렇지만 늦게라도 헤세를 만나게 돼서 다행이다 싶다.

 

 

 

정여울 작가는 헤세의 글과 헤세의 고향 독일의 칼프와 마지막 안식처인 스위스의 몬타뇰라의 그림 같은 풍경을 먼저 배치하면서 독자의 영혼을 먼저 울린다. 이런 감성으로 만나는 구스타프 융의 심리학적 시선으로 만나는 헤세의 <데미안>과 <싯다르타>는 내가 읽었던 헤세의 작품을 다시 펼쳐보게 만들었다.

 

헤르만 헤세로 가는 길은 칼 구스타프 융에게로 가는 길과 지긋이 포개진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로 가는 길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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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그림자놀이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박소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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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나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을 연상시키는 박소연의 <꽃 그림자 놀이>라는 책 뒤표지의 설명이 꼭 맞아떨어지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앞의 두 책에 비해 박소연의 책은 훨씬 쉽게 이해되고, 빨리 읽히는 재미가 있는 것은 확실했다.

<꽃 그림자 놀이>는 마치 두 가지 비슷한 선율이 서로 얽혀 흐르는 것처럼 권력의 암투 속에서 숨어사는 인물과 독이 된다는 소설을 몰래 숨어서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이야기가 조각보처럼 짜여 있다. 소설의 시작은 아내와 사별하고 동상에 걸린 듯 세상을 향한 감각을 잃은 조인서가 친구 최린을 만나는 데서 시작한다. 이들은 조정에서는 금지하지만 몰래 읽는 소설을 주제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조인서는 소설은 보잘 것 없고 하찮은 문장이라고 말하지만 최린은 소설을 쓰고 싶어 한다. 조인서는 최린의 집을 찾던 중 발견한 한겨울에 매화꽃이 핀 폐가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의 진위를 밝히고자 그 폐가에 들어가 살기로 한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생계를 이어가려 했지만, 귀신이 나온다는 폐가로 오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면서 그는 소설을 써서 팔거나 중국 소설을 번역하며 살아가게 된다. 소설이 금지된 사회에서 소설은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또 소설과는 다른 줄기의 이야기로 권력에서 내쳐진 사람의 삶은 금지된 소설처럼 몰래 이어져야 하는지를 그려내고 있다.

각 장의 서두에 적힌 소설에 대한 당시 지식인들의 말은 소설을 향한 서로 반대의 시선을 보여준다. 특히 당시 임금이었던 정조의 소설에 대한 독설과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말은 부자지간임에도 큰 시각차를 보여준다. 소설을 좋아하고 후대에까지 남기고자 했던 사도세자에 반해 정조는 "소설을 보면 나는, 춥지도 않은데 몸이 떨린다"고 했단다. 정조는 소설을 애호했던 아버지와 반대로 소설에 대한 억압 정책을 폈다.

소설은 마음의 병을 고쳐주고 외로움을 없애주고 웃음을 주고, 교훈을 주고, 심지어는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 사도세자

소설은 독이다. 소설은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이단에 불과하다. 들뜨고 음탕한 말만 가득하고, 이치에 어긋나는 데다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다. 음란하고 야비한 음악이나, 남의 비위를 잘 맞추는 간사한 사람과도 같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생각하면 춥지도 않은데 몸이 떨린다. - 정조 


나는 소설을 한 번도 펴본 일이 없다. 내간에 소장했던 잡서도 이미 모두 없앴다. 그러니 내 고심이 어떤지 알 수 있을 것이다. - 정조​

 

소설은 현실은 아니다. 소설 속 말처럼 일종의 그림자놀이에 가깝다. 소설의 문체를 나방의 눈썹이니, 달팽이의 뿔이니 하면서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어버리지만, 나방의 더듬이는 섬세한 촉각으로 세상을 더듬고 빗자루 빗살처럼 인생의 바닥을 쓰는 것이 소설이다. 인간은 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왜 그토록 이야기에 빠져들까? "뿅 가기 때문이란다. " 픽션은 코카인과 같은 마약이다. 실상 이야기는 지루하고 가혹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마약에 불과하다." <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쓴 조너선 갓셜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또 그는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은 자신의 이상적 공화국에서 시인과 이야기꾼을 쫓아냈다. 그들의 가장 큰 죄목은 부도덕한 행위를 퍼뜨린다는 것이었다. 플라톤 이래 수많은 사람들은 픽션이 도덕성을 좀먹는다며 발작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플라톤은 틀렸다. 호들갑 떠는 후손들도 다 틀렸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도 지금도 역시 소설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견해를 내세운다. 글 속에 자신의 삶을 담으려는 사람들과 글은 고상한 내용만 글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그리고 여전히 고상한 글을 주장하는 이들이 권력의 핵심에 있다. 소설이 죽었다고 한다. 누가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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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민화 안티 스트레스 컬러링북
고영리 지음, 허이삭 그림 / 꿈꾸는별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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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컬러링북이 인기가 많다. 얼핏 눈으로만 훑어보아도 종류가 셀 수 없을 정도다. 왜 이렇게 많을까 생각해보기도 전에 너무 많이 퍼져버렸다. 처음에는 아이들, 특히 소녀들이나 관심을 갖겠다 싶었는데, 어른들이 색연필을 들고 색칠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나만의 민화>를 칠하면서 조금 알게 된 듯하다. 일단 잡념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색칠을 하다가 나중에는 선 안으로 칠하는데 열중하다 그러다 보니 무념무상 색만 칠하고 있게 된다. 그래서 힐링, 혹은 안티 스트레스의 방법으로 컬러링이 유행하고 있나 보다.

이번에 내가 고른 컬러링 책은 <나만의 민화>다. 동양화를 그려보고 싶은 생각이 조금 있었기에 선뜻 색이라도 칠해보자는 의도가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민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정통 회화랑 비교했을 때는 격이 좀 떨어져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정통 회화를 모방했지만, 주로 무명 화가나 떠돌이 화가들을 통해 발전했고, 서민들의 일상생활양식과 관습에 바탕을 두었기에 덜 세련되고 익살스럽고 소박하다. 하지만 구성은 좀 더 대담하고 파격적이며 색채는 오히려 강렬하다. 민화는 주고 벽사 즉, 잡귀, 잡신을 물리쳐주는 의미가 있으며 장수를 기원하기도 한다. 민화의 이런 의미를 알고 그려본다면 더욱 재미있을 것 같아, 내가 그리고자 하는 민화 속 소재들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갈대와 기러기를 그린 그림을 노안도라고 하는데 갈대 로, 기러기 안은 늙을 로와 편안할 안과 음이 같아서 노후의 편안한 삶을 의미한다고 한다. 맨드라미와 닭은 벼슬, 관직, 출세, 명성을 의미하고, 연꽃은 과거 급제와 자손번창, 풍요, 군자, 화목, 사랑을 의미한다. 패랭이꽃은 수복과 장수를 나비는 행운을, 모란은 미인, 부귀영화, 부부화합을 원앙과 물고기쌍은 부부금슬과 부부 해로를, 잉어는 입신양명과 자손 번성을 말한다.

 

색칠도 칠할수록 나아진다. 처음에는 색 선택도 배합도 맘에 들지 않았는데, 조금씩 맘에 들어가고 있었다. 색을 칠하면서 어릴 적 이야기도 생각나고, 마음이 고요해졌다. 단, 오래 칠하면 손목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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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글쓰기 - 공지영, 정유정, 정이현 외 11명 대표작가 창작코멘터리
이명랑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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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내가 좋아하는 소설을 잘 읽고 싶은 욕심은 있다. 그래서 독서모임도 하고, 다른 이의 서평도 열심히 들여다본다. 그러다 보니 더 알게 되면 좋은 지점이 생겼다. 어떻게 쓰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작가들은 이야기를 어떻게 만들어 낼까? 그 지점을 알아보니 내가 읽는 소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작가는 어떤 인물에 자신의 생각을 투영시켰는지, 또는 불필요해 보이는 인물이나 에피소드는 없는지를 보게 된다.

이명랑이라는 작가가 쓴 <작가의 글쓰기>는 그런 점에서 소설을 좋아하는, 소설을 잘 읽고 싶은 독자에게도 충분히 좋은 책이 될 수 있다. 물론 소설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저자는 우리가 흔히 소설 구성의 3요소 인물, 사건, 그리고 배경 중 특히 공간에 대해서 11명의 소설가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소설을 읽다 보면 특히 공간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어 보인다. 내가 읽은 책의 경우 정유정 작가의 <28>이 특히 그랬는데, 작가의 인터뷰를 보니 역시 정유정 작가는 그 공간이 머릿속에 완전히 장악될 때까지 지도를 그리고 또 그렸다고 한다. '인수공통전염병이 가축이 아닌 개와 사람에게서 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는 작가의 질문에 제일 적합한 도시를 수도 없이 다시 그려 완벽하게 머릿속에 집어넣고 시작하는 정유정 작가의 글쓰기는 설계도를 미리 짜놓고 시작하는 경우다. 작가는 자기가 만든 세계 안에서는 제비 한 마리도 자기 맘대로 날아다녀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생존을 향한 갈망과 뜨거운 구원을 이야기 한 <28>의 주제는 작가의 치밀한 구상 속에서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이명랑 작가가 언급한 공간이 작품 속에서 분명한 목적을 위해 작용할 때, 다시 말해 작품의 주제의식과 동기를 공간에서 찾을 수 있을 때, 공간은 단순히 사건의 배경에 머물지 않고 작품의 의미를 결정짓는 모티프의 성격을 갖게 된다는 말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경우였다.

정유정 작가처럼 철저한 조사와 설계도를 가지고 글을 쓰는 작가도 있지만 <교군의 맛>을 쓴 명지현 작가처럼 자료조사를 하지 않고, 그냥 자신이 알고 있는 것으로 글을 쓰는 작가도 있다. 명지현 작가는 나의 것이어야 하는 것이 문학이 된다고 한다.

<작가의 글쓰기>는 소설을 쓰는 사람에게는 좋을 글을 쓰는 법이 되겠지만, 읽는 독자에게는 좋은 소설을 골라내는 방법을 알려준다. 비문을 쓴 소설, 보여 주지 않고 설명하려고 드는 소설은 이제 더 이상 좋은 소설이 아니다. 작가가 자꾸 개입하려는 소설 또한 요즘의 소설은 아니다. 작가들이 좋은 문장을 쓰려면 좋은 문장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김현의 말은 독자에게는 좋은 문장을 많이 읽어야 좋은 소설을 골라 읽을 수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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