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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문장들+ - <청춘의 문장들> 10년, 그 시간을 쓰고 말하다 ㅣ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금정연 대담 / 마음산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누군가 나에게 읽어보라고 권한 책은 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그런 이유를 다소 곡해하고 강요처럼 느꼈던 젊은 시절이 있었는데, 김연수의 <청춘의 문장들+>를 읽으며 그랬던 시절의 나를 떠올렸다. 그랬던 나는 중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누군가가 권해 준 이책을 오랫동안 밀쳐두고 읽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읽었다. 아직도 내가 청춘인 줄 착각하고 사나보다. 지나고 나서야 깨닫는 어리석음을 기본으로 장착한 인간, 프로메테우스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에피메테우스가 될 수 밖에 없는 우리는 이렇게 청춘을 낭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김연수의 이 책을 읽으면서 청춘은 청춘이라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음을, 그것이 오히려 나머지 삶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는 것을 느낀다.
"꿈들! 언제나 꿈들을!"이라고, "사람들은 각자 자신에 맞는 양의 천연적 아편을 자신 속에 소유하고 있는 법. 이 끊임없이 분비되며 새로워지는 아편을"이라고 노래한 사람은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였습니다. 그 아편의 대부분은 스무 살 무렵에 만들어집니다. 더 많이 기뻐하고 더 많이 슬퍼하고 더 많이 갈망하시길. 자신의 인생에 더 많은 꿈들을 요구하시길. 이뤄지든 안 이뤄지든 더 많은 꿈들을 요구했던 그 시절의 기억이 당신들을 살아가게 만든다는 걸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 그러니 지금 스무 살 이라면, 꿈들! 언제나 꿈들을! 더 많은 꿈들을!
그런데 위에서 말한 다량의 아편을 우리의 아이들은 가지고 있을까? 꿈이 없는 아이들, 누구나 비슷한 꿈을 꾸는 아이들, 그래서 문득 걱정이 앞선다. 특히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이.
지금 당장 내게는 한 권의 책이면 충분하니까요. 제게는 미래라는 것도 그런 의미예요. 당장 바로 앞의 시간이 미래인 거죠. 지금부터 30년까지, 이런 식으로 집합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집합적인 미래를 대비하자면, 지금 내게는 어마어마한 돈이 필요해요. 그러자면 얼마나 벌어야만 하는지 계산이 안돼요. 그래서 당장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을 읽지 않고 일단 돈을 버는 거죠. 하지만 저는 그런 집합적인 미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당장 눈앞의 순간, 지금뿐이에요.
그들에게 김연수의 위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집합적인 미래를 생각하지 말자고. 지금 바로 눈앞의 이 순간에 집중하자고. 그들은 모호한 미래를 꿈꾸며 찬란한 현재를 담보로 매달려 있다. 하지만 진짜 청춘은 남는 시간 따져보지 않는, 시간이 너무나 많이 남은 그들이어야 한다. 빈둥거리며 탐색하는.
남는 시간 같은 것은 따져보지도 않는 사람들이 진짜 젊은 사람들이죠. 그래서 어떤 일에 자신의 전부를 걸 수도 있어요. 시간이 너무나 많으니까 가능한 거죠.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처럼 모든 것을 탐닉했죠. 심지어는 빈둥거림까지도 탐닉했어요. 중년이 되면 이제 그런 시간은 사라집니다.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모든 책을 읽지 않는다는 걸 의미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아요. 그래서 한 권의 책을 선택하는 일이 중요해지죠. 그러다 보면 점점 고전 쪽으로 관심이 기울게 돼 있어요. 독서를 통한 치유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이 됐어요. c.s. 루이스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정작 책을 읽으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죠. 심지어 수천 년 전의 사람과도 서로 연결되기도 하고요.
청춘이란 시간이 아주 많이 남은 상태, 그래서 뭔가에 그 시간을 쏟고 나면, 심지어는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시간만 흐른다면 저절로 끝나게 되는 상태를 뜻한다고 생각해요. 해서 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 때는 청춘을 알아볼 수가 없어요. 노랫말처럼 젊을 때는 젊음을 몰라요. 인류가 계속되는 한, 청춘의 무지는 반복될 뿐이에요. 그러니까 <청춘의 문장들>을 읽는다고 해서 젊은 독자들이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야겠다, 뭐, 그렇게 생각하기를 바란다는 건 무리겠죠.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으니까 대충 살아도 됩니다. 이것저것 다 해보기도 하고, 그냥 시간만 보내기도 하고요. 청춘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너무 잘 살아보려고 하지 마세요. 그런 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들에게나 어울리는 거잖아요. 젊었을 때는 천 년을 살 수 있는 사람처럼 살았으면 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보고 싶은 거 다 보고요. 하지만 그런 낮을 보낸 날에도 밤은 어김없이 찾아올 것이고, 그 밤에 대개 우리는 혼자겠죠. 그런 밤이며 아마 시간이 너무 버겁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예요. 맞아요. 청춘은 무거워요. 빨리 늙었으면 싶기도 하고요. 그럴 때 저는 저보다 먼저 살았던 사람들의 책을 읽었어요. 그러다가 마음이 동하면 잘 알지도 못하는 문장들에 줄을 그었죠.
젊을 때는 젊음을 모른다. 그러나 이 책이 다시 나오는 10년 뒤 그때에는 알겠지. 이 말이 얼마나 소중한 말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