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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책을 다 읽고 나면 표지로 다시 돌아와 그림을 유심히 보게 된다.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맞닿아 보이는 길을 따라 떠나는 여인의 뒷모습이 아련하다. <속죄>의 이언 매큐언의 <체실 비치에서>는 이제 막 결혼한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불과 몇 시간 동안 벌어진 일 때문에 어긋나 버린 사랑의 이야기다. 1960년대 영국의 잘 배운 두 남녀가 사랑에 빠졌고, 그들은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며 신혼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서로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이 있다.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에 대한 뜨거운 육체적 욕망을 느끼지만, 연애의 긴 과정 동안 플로렌스가 고귀한 모습을 보이며 신체적인 접촉에 대해 거부 의사를 보임으로써 자신 또한 순결을 유지하고 있다가 결혼 첫날밤 의식을 치르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자신도 처음 겪어야 하는 일이라 두려움을 갖고 있다. 반면 플로렌스는 에드워드의 접근이 두렵고 심지어 구역질이 나기까지 한다. 하지만 막상 에드워드의 손길은 더 많은 것을 갈구하게 한다. 그러나 그런 표현을 할 수 없었다. 작가는 이들의 문제가 비단 개인의 의식의 문제만은 아님을 말하고 있다.
피로연은 성대했고 시간도 어지간히 연장되었던 터라 그들은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러니 음식을 포기하고 와인을 병째 든 채 해변으로 뛰어내려가 신발을 벗어던지며 해방의 기쁨을 만끽할 수도 있었다. 이론적으론 그랬다. 호텔에서 그런 그들을 막을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제 성인이고 신혼여행 중이니까 뭘 하든 자유였다. 하지만 지금은 시대가 그들을 붙들었다. 에드워드와 플로렌스가 단둘이 있을 때조차도 여전히 수천 가지의 비공식적인 관습들이 적용되고 있었다. 그들은 성인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힘들게 준비한 식사를 먹지도 않고 가버리는 철딱서니 없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저녁식사 시간이었고, 철이 없으면 존경받지 못하며, 그런 사람이 드물기도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시대의 굴레를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시대가 원하는 도덕을 가지려고 하며 그것을 실천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다. 그런 주인공들에게 자신의 욕망을 억압하는 일, 그리고 자신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일은 너무도 힘든 일일 것이다. 그렇게 어긋난 그들의 인연을 에드워드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돌아본다. 그때 그녀를 잡았더라면, 그녀를 소리쳐 불렀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물론 이제 그는 그녀의 자기희생적인 제안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녀에게 필요했던 건 그의 확실한 사랑과,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으니 서두를 필요가 전혀 없다는 그의 다독거림뿐이었다. 사랑과 인내가, 그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기만 했어도, 두 사람 모두를 마지막까지 도왔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의 아이들이 태어나서 삶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고, 머리띠를 한 어린 소녀가 그의 사랑스러운 친구가 되었을까. 한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말이다. 체실 비치에서 그는 큰 소리로 플로렌스를 부를 수도 있었고, 그녀의 뒤를 따라갈 수도 있었다. 그는 몰랐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이제 그를 잃을 거라는 확신에 고통스러워하면서 그에게서 도망쳤을 때, 그때보다 더 그를 사랑한 적도, 아니 더 절망적으로 사랑한 적도 결코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그녀에게는 구원의 음성이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을 거라는 사실을. 대신, 그는 냉정하고 고결한 침묵으로 일관하며 여름의 어스름 속에 선 채, 그녀가 허둥지둥 해변을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힘겹게 자갈밭을 헤쳐나가는 그녀의 발걸음 소리가 작은 파도들이 부서지는 소리에 묻히고, 그녀의 모습이 창백한 여명 속에서 빛나는 쭉 뻗은 광활한 자갈밭 길의 흐릿한 한 점으로 사라져갈 때까지.
나중에야 이해가 되는 말과 행동과 상황들. 우리가 그런 이해를 그때 할 수는 없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달라져버린 삶. 그렇다면 무언가를 했더라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에드워드가 체실 비치에서 플로렌스를 큰 소리로 불러 그녀를 붙잡았더라면 그들은 오해를 풀고 사랑과 이해의 삶을 살 수 있었을까? 그의 목소리가 구원의 목소리가 될 수 있었을까? 아니 어쩌면 더 깊은 오해의 늪으로 빠져버려 혐오의 감정이 더 생겨버렸다면 어땠을까? 에드워드와 플로렌스의 사랑이 어긋나버린 것, 나중에 그 사랑이 문득 아름답게 느껴진 것은 어쩌면 그 뒤에 만난 사랑이 그들의 사랑을 뛰어넘지 못할 그저 그런 만남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름답게 끝났을지도 모르는 사랑은 아쉽게도 더 안타까운 후회를 남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