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래 전 농협의 창구에서 한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이 직원에게 '그러니까 공인인증서를 주라니까~'라며 끝도 없이 반복되는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직원이 인터넷뱅킹을 하시면 돈이 안 들고 할 수 있고 어쩌고 하면서 안내를 하자 어르신이 그걸 하시겠다고 하셨고, 그렇게 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직원이 계속 설명을 하면 어르신은 알았다고 하시고선 마지막 말은 '그러니까 그 공인인증서라는 걸 달라고~'였다. 공인인증서는 인터넷에서 신청해서 다운로드해 쓰시는 거라고 다시 말하는 직원과 모든 말을 다 듣고서 다시 그 공인인증서를 달라고 또 반복하는 어르신 때문에 기다리는 우리들은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그들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다.

마치 그때의 그 노인처럼 오베라는 사브를 모는 59세의 남자는 컴퓨터​가게에 가서 아이패드를 휘두르며 컴퓨터냐고 묻는다. 점원은 그것이 태블릿이라고 불리는 거고 인터넷 서핑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오베는 그러니까 그냥 평범한'컴퓨터'냐고 묻는다. 직원은 그렇다면 랩톱을 쓰시라고 말하지만, 오베는 '랩톱을 원하는 게 아니라, 컴퓨터를 원하다고 말한다. 키보드도 없는 이상한 그 물건을 컴퓨터로 받아들일 수 없는 이 분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소설의 처음은 이렇게 '지금'을 이해하지 못하는 앞뒤가 꽉 막힌 오베를 만나게 해준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꼰대를. 컴퓨터와 늦잠을 자는 것 등 다른 것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 남자인 오베는 자신이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만을 이해한다. 그는 흑백으로 이루어진 남자이고 그의 부인은 온통 색깔로 이루어진 여자였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르고 사브를 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물건을 스스로 고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규칙을 지키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세상을 반듯하게 둘로 나눠 생각하는 오베는 오직 부인만을 사랑한다. 그렇지만 부인이 죽고 나서 그는 세상과 말 거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이제는 오로지 죽겠다는 목적밖에는 남아있지 않다.

그런 그에게 다가오는 이웃들, 운전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이웃​과 볼보를 BMW로 바꿔버린 이웃과 걸핏하면 거주자 지역에 차를 끌고 들어오는 흰 셔츠를 입은 자들, 오베에게 세상은 짜증스러운 곳이고 얼른 사랑스러운 부인의 곁으로 가는 것만이 유일한 소원이다. 하지만 오베가 하지 않으면 안될 일들이 자꾸 늘어난다.

독자는 오베의 입장이 아니라 이웃의 입장에서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이웃에 이런 할배가 산다면 그건 좀 힘들겠다에서 시작된 입장이 점차 '이분 은근 매력적인 분이네~'로 발전하다 오베의 죽음을 만나고서는 코끝이 찡해진다. 그건 왜일까?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지금의 시대가 잊고 있던 그 무엇을 오베라는 인물에게서 발견하게 되었고, 지금의 내가 오히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비슷한 색깔을 가진 인물이며 오히려 오베라는 인물이 독특한 색을 지닌 인물임을 발견하는 순간, 알 수 없는 감동을 그리고 후회를 느끼게 된다. 우리가 안다고 하는 것들이 아무 쓸모도 없는 것으로 밀려나 버리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야 하며 눈 감았던 일들이 사람이라면 해야 할 일이 되어버린 낯선 순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돌아보게 된다. 이제까지 내가 꼰대라고 불렀던 그들이 혹시 오베의 다른 버전은 아니었는지.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고 있어 오히려 다양한 색을 지닌 그들을 흑백의 단조로운 사람으로 평가하지는 않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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