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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메르스로 시끌벅적한 날,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읽었다. 이 소설이 작년, 2014년 4월 세월호 사건이 벌어진 뒤에 쓰였고, 그 사건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이 작품은 또 말을 걸고 있었다. <계속해보겠습니다>의 세 주인공 소라와 나나와 나기는 모두 상실의 아픔을 지닌 존재들이다.
소라와 나나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아버지만 잃은 데 그치지 않고 이들은 아버지를 너무 사랑해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자신의 삶마저도 내팽개쳐버린 어머니의 보호도 받지 못 했다. 이들은 부모 모두로부터 버림받은 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이들이 그래도 가족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새로 이사 간 집(도저히 우리는 상상하기 힘든 구조의,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그려보기 힘든)에 같이 세 들어 사는 나기의 어머니로부터다. 이들의 도시락을 싸주고, 같이 김치를 담고 여름이면 묵은 김치로 만두를 빚어 같이 나눠주던 나기의 어머니. 그녀 또한 부모로부터 친척으로부터 버림받은 존재였다. 그리고 나기, 나기 또한 아버지를 사고로 잃고 어머니와 단둘이 산다. 그리고 그는 같은 반 남자애를 욕망하는 남자다. 한쪽 다리가 부러진 책상과 의자처럼 보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나나의 임신과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엇갈아 배치하며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 했던 것들을 돌아보라고, 우리가 하찮다고 무시했던 바로 그것이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나나는 아이의 아빠인 모세의 집에 초대받아 간다. 거기에서 화장실에 놓은 요강을 본다. 그 요강은 모세의 아버지가 쓴다고 하는데 씻는 일은 모세의 어머니 몫이다. 자신이 쓴 요강을 다른 사람, 아내가 씻는 문제에 대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와 아들을 보면서 나나는 모세와 결혼을 하지 않기로 한다. 요강. 그것은 그의 가족들에게는 잘 모르겠다는 점. 불가사의한 구멍, 미스터리 홀이다. 애초에 생기기를 모르게 되어 있도록 생겼는지도 모르는. 작가는 나나의 입을 통해 그저 스쳐 지나가도 될 문제를 곰곰이 생각해 볼 문제로 다가오게 한다.
도저히 모르겠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게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 아무도 제대로 생각해주지 않으니까 그런 게 거기 있는 거고,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는 거잖아. 그게 뭔지는 몰라도 그게 뭔지, 제대로 생각해야지, 제대로.
사랑하는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은 백모의 통곡을 보고,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는 나나는 생각한다. 자식을 잃은 사람. 그 압도적인 고통이 나나에게는 없습니다. 나나는 자신의 고통에 관해서만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저기 분명한 고통에 관한 것은 생각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거야말로 나나가 가장 혐오하는 애자와 가장 가까운 마음이라는 것을. 그 옛날 나기 오라버니가 나나의 뺨을 때려 가르쳐 준 것을 완전하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남의 고통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는 괴물이 되는 거야. 잊지 마.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 제대로 연결해서 생각해야 해. 그런데 이렇게 연결하는 것은 의외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일은 아닌지도 몰라. 오히려 그런 것쯤 없는 셈으로 여기며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지도 몰라. 그러니까 기억해두지 않으면 안 돼. 안 그러면 잊어먹게 되는 거야.
이야기는 죽으려 했던 그리고 자신의 아이들을 버리고 자신이 사랑하던 남편의 곁으로만 가려고 했던 그렇지만 지금은 요양소에서 종이로 꽃을 접고 있는 소라와 나나의 어머니 애자씨의 말과 나나의 생각으로 끝납니다.
아무래도 좋은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거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
한편 생각합니다.
무의미하다는 것은 나쁜 걸까.
소라와 나나와 나기 오라버니와 순자 아주머니와 아기와 애자까지 모두, 세계의 입장에서는 무의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에 가까울 정도로 덧없는 존재들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소중하지 않은 걸까, 생각해보면 도무지 그렇지는 않은 것입니다.
......
계속해보겠습니다.
계속해보겠습니다. 이 말은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밀어올리는 형벌을 묵묵히 하고 있는 시지포스의 말처럼 들린다. 우리의 삶은 덧없고 하찮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무의미하니 그만두어버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소중하지 않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살아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