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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하퍼 리 지음, 김욱동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6월
평점 :
언젠가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적이 있다.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았지만, 흑인을 미국 사회에서 받아들이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고통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남았던 것과 그런데 왜 제목이 하필이면 '앵무새 죽이기'일까 하는 의문이었다. 얼마 전 열린책들에서 다시 번역해서
나온 <앵무새 죽이기>는 그런 나의 불완전한 기억과 의문을 푸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우선 바지를 입은 한 소녀가 손에 꽃 한
송이를 들고 달빛을 받으며 나무 위에
앉은 새를 바라보는 느낌 있는
그림의 표지는 책의 내용을 잘 말해주고 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주인공이
스카웃은 9살 말괄량이 소녀로 부인을 잃고 혼자 사는 아버지 애티커스 핀치라는 변호사의 딸이다. 이 소녀의 눈에 비치는 마을과 학교 그리고
어른들은 1930년대 미국 남부의 보통 백인들의 생활 그대로다. 물론 9살의 소녀지만 혼자 글자를 깨칠 정도로 영리하며 생각은 보통 어른들의
수준을 뛰어넘는다. 이 마을에서 한 흑인이 백인 여자를 겁탈하려다 잡혀서 재판을 받게 되는 일이 발생한다. 이 흑인의 변호사로 스카웃의 아버지가
선임되며 벌어지는 마을 사람들 간의 갈등, 그 갈등의 여파로 겪게 되는 스카웃과 오빠의 학교생활 그리고 은둔자처럼 살고 있는 마을 주민
이야기는 생기 있는 아이의 목소리로 전달된다. 스카웃이 겪는 혼란과 호기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문장에 여전히 이 책이 인기 있는 책으로 자리하고
있는 분명한 이유를 느낄 수 있다.
이 이야기가 아홉 살 아이의
눈을 통해 그려지는 이유는 책에서도 언급된다. 아이들의 눈은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거울이 된다.
p.372 너희들은 어리고,
어린이들은 그걸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p.393 나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그렇게 했어. 전에도 그랬고, 오늘 밤도 그랬고, 앞으로도 또다시 그럴 거야. 그럴 때면 오직 애들만이 눈물을 흘리는 것 같구나.
한 사회를 구성하는 또 다른
존재인 흑인에 대한 백인들의 생각은 죄가 없는 앵무새를 죽이는 행위에 비유되며 이런 생각을 바꾸는 일이 결코 쉽지 않지만, 그렇지만 용기를 내어
꼭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 책은 말하고 있다.
p.444 톰의 죽음을
사냥꾼이나 아이들이 노래 부르는 새를 무분별하게 죽이는 행위에 빗대셨고요.
p.148 내가 너희들에게 내
말을 들으라고 두 번 다시 말할 수 없기 때문이야. 스카웃, 단순히 변호사라는 직업의 성격으로 보면 모든 변호사는 말이다, 적어도 평생에 한
번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사건을 맡기 마련이란다. 내겐 지금 이 사건이 바로 그래. 이 문제에 관해 어쩌면 학교에서 기분 나쁜 말을 듣게
될지도 몰라. 하지만 나를 위해 한 가지만 약속해주렴. 고개를 높이 들고 주먹을 내려놓는 거다. 누가 뭐래도 화내지 않도록 해라. 어디 한번
머리로써 싸우도록 해봐....... 배우기 쉽지는 않겠지만 그건 좋은 일이란다.
p.213 손에 총을 쥐고 있는
사람이 용기 있다는 생각 말고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말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패배한 것을 깨닫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시작하고, 그것이 무엇이든
끝까지 해내는 것이 바로 용기 있는 모습이란다.
p.376 배심원 여러분, 제가
죄라고 말하는 것은, 그녀의 행동에 동기를 부여해 준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아무런 범죄도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사회의 엄격한 규범을 깨뜨렸을 뿐입니다. 그 규범은 너무 엄격하여 누구든지 그것을 깨뜨리면 우리와 함께 살기에 부적합한 인물로
추방당합니다. 그녀는ㄴ 무서운 가난과 무지의 희생자이지만 저는 그녀를 동정할 수가 없습니다. 그녀는 백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았지만, 자신이 깨뜨리려고 한 규범보다 욕망이 더 강했던 나머지 규범을 깨뜨리고 만 겁니다.
p.399 애티커스 핀치는 이길
수 없어. 그럴 수 없을 거야, 하지만 그는 그런 사건에서 배심원들을 그렇게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지역에서 유일한 변호사야.
그러면서 나는 또 이렇게 혼자서 생각했지. 우리는 지금 한 걸음을 내딛고 있는 거야. 아기 걸음마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진일보임에는 틀림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