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원의 그리스신화 2 - 신에 맞선 영웅들 유재원의 그리스신화 2
유재원 지음 / 북촌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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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곳에는 늘 신화가 끼어든다. 과학과 논리가 한계를 보이는 곳이 바로 신화가 시작되는 곳이다.

인간은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각하는 동물이다. 인간은 그래서 자신이 왜 이 세상에 던져졌고, 왜 살아가는지, 그리고 자신의 앞에 자신의 생각과 다르게 불행이 존재하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알 수는 없는 법. 위에 언급한 말처럼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으로 잘 설명되지 않는 곳에 신화가 끼어들었다. 그리고 인간은 과학과 문명이 발달한 지금도 여전히 신화를 읽고 이야기한다. 왜?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많은 일들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로 한데 묶여 전해지는 아니 그런 카테고리로 묶여 팔리고 있는 많은 책들과는 달리 평생을 그리스학을 연구하는 데 바친 유재원 교수가 낸 <유재원의 그리스신화>는 로마시대의 관점을 걷어내고, 중세 기독교의 오염도 제거하고 그리스 땅에 뿌려진 원형 그대로의 그리스 신화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스어, 그리스인, 그리고 그 나라 문화유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에서 나온 이 책은 나열식을 그친 그동안의 책에서 느낀 혼란을 정리해주고 있다. 우선 공간적으로 나열된 그리스 신화의 영웅들을 시간적을 다시 배열하면서 어떤 이야기가 원형에 가까운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시대를 거쳐가면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신화란 믿고 싶은 이야기다. 이 말의 바탕에는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문화와 소망이 담겨있다. 실종된 집안의 여인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고 고향을 떠났다가 끝내 찾지 못해 귀향할 수 없게 되자 머나먼 이국땅에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영웅들의 이야기에는 지금은 사라진 민족의 이동에 대한 아득한 기억이 담겨있다.

​<유재원의 그리스 신화 2- 신에 맞선 영웅들>에 등장하는 많은 영웅들은 운명에 맞서고 신에 대적한다. 페르세우스는 디오니소스와 맞서 싸웠고, 헤라클레스는 아폴론과 주먹다짐을 벌였다. 벨레로폰은 페가소스를 타고 올림포스로 가서 신들과 어울리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다가 벌을 받는다. 오이디푸스는 신들이 내린 끔찍한 운명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전쟁터에 나갔다가 젊은 나이에 장렬하게 죽는다. 신들과 운명에 과감하게 맞서다가 비극적인 상황을 맞이하는 것은 그리스 영웅들의 특징이다. 이런 영웅들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나 이들은 위대한 영웅에 의해 죽음에 이르지는 않는다. 어떤 영웅이 그보다 더 뛰어난 영웅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면 신화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그래서 영웅은 인생의 덧없음을 말해주는 우연하고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 힘없이 무너지는 것이다. 인간은 세월이 흐르고 문명을 이루어 나갈수록 신과 멀어졌다. 그리고 타락해갔다. 신의 외면을 받으며 이제는 신이 아닌 그보다 더 못한 인간의 지배를 받게 되고 그래서 불행해졌다. 이런 불행을 영웅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위로받고 싶었을까?

하지만 나는 이러한 그리스 영웅들 중에서 시시포스의 이야기에 가장 눈길이 갔다. 시시포스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저자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p.90 신의 처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신과 맞서 꾀로 승부하다가 끝내 패배하여 무서운 형벌을 받는 시시포스의 모습에서 그리스인들은 영웅의 비장한 용기를 보았다. 도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끊임없이 굴리는 것은 참으로 지겨운 형벌이다. 인간에게 가장 참을 수 없는 형벌은 성취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성취감이 없으면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존재의 의미가 없을 때 인간은 희망을 잃는다. 희망을 잃은 인간은 살아 있는 유령에 불과하다.....

실존주의 소설가 카뮈는 바위를 굴리는 시시포스의 모습에서 부조리한 인생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의 숭고한 정신을 찾아냈다. 시시포스는 절망하거나 자포자기하는 일이 없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 실패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는 용기를 잃지 않는다. 시시포스는 인생의 덧없음에도 좌절하지 않는다. 인생이란 어차피 덧없는 것이다. 그러나 인생이 덧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인간이란 한계를 알면서도 도전하는 존재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구원은 실패를 각오한 비장한 노력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그리스 신화 속 영웅들의 이야기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비장한 노력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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