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곁에 두고 읽는 니체 ㅣ 곁에 두고 읽는 시리즈 1
사이토 다카시 지음, 이정은 옮김 / 홍익 / 201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니체에 대해 잘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책에 실망할 것이다. 이 책은 니체를 말하는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니체의 책들, 예를 들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이 사람을 보라>, <즐거운 학문> 등의 몇몇 글귀를 바탕으로 작가의 경험담을 풀어쓴 에세이다. 니체의 책을 옆에 두고 산다는 작가는 니체의 아포리즘, 혹은 시와 같은 글귀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있느니, 이 책은 사이토 다카시의 수필 혹은 생각인 것이다. 사이토 다카시는 니체의 사상을 일상 속 습관처럼 몸에 배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왜? 정신의 때를 털어내 주는 것이 니체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니체는 헤겔과 칸트와 달리(이들은 너무 거창해서-이것은 사이토 다카시의 평가다) 보통 사람의 생활에 날마다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일상생활의 행동지침으로 삼기에 니체의 사상이 딱이라는 것이다. 기독교와 불교는 다소 어려운 거대담론이며 실제 가치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 하지만 니체의 아포리즘은 핵심과 본질을 함축한 촌철살인으로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아도 그의 철학 이론을 외워두고 좌우명 삼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작가가 주장하는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타당한 내용을 니체의 철학에서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니체의 저서에 나온 말들만 있지 니체가 그 말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철학적 알갱이는 보이지 않고 니체의 말을 저자 나름대로 재해석한 내용만 눈에 띌 뿐이었다. 저자는 니체의 초인, 우버멘쉬를 가속도가 붙어 상승해나가는 사람 즉, 기업의 최고경영자나 리더, 개미와 베짱이의 개미로 보았다. <이 사람을 보라>에 나오는 글귀인 '나는 왜 이렇게 지혜로운가, 나는 왜 이렇게 똑똑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들을 쓰는가'는 자기 PR 시대와 연결해 놓았다. 향상심을 가져야 한다, 평등을 거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면서 평등은 저급한 수준의 것에 안주하려는 생각이며 느림의 여유가 좋다는 것을 부인할 생각도 없지만, 도전 분발 도발적 단어를 잊어버려 주저앉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 속에서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는 어디 갔을까? 니체는 어디에 있을까? 니체, '있는 힘껏 열렬하게 생을 살아라'라고 말했던 망치를 든 철학자는 갑자기 자기 계발서의 한 문구로 남아버렸다. 인간이 누려야 할 더 나은 세상, 그 세상을 위해서 싸워야 한다고 했던 철학자가 말이다. '존재하는 것과의 화해', '현재와의 화해'는 내세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의 의지, 니체의 표현에 따르면 운명애(amor fati)의 이상이었다. 이미 여기에 있는 것, 지금 이 순간의 현실을 사랑하자는 니체의 말을 이 책에서는 찾기 힘들었다.
니체 이후의 니체들이 있었다. 시대의 조산아였던 니체는 그의 사후 100년도 되기 전 니체에 대한 열풍이 불 것이라는 것을 짐작이나 했을까? 그리고 일본의 한 유명한 작가가 자신의 저서를 이용해 이런 말을 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니체에게 존재하는 복합적이고 모순적인 극단의 평가처럼 그의 글은 그래서 아전인수격으로 이용된다. 심지어 초인을 찬양하고 약자에 대한 연민을 경멸하는 내용에서는 파시즘의 냄새가 나기도 하며, 실제로 나치즘에 이용되기도 했다. 그래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그러나 누구를 위한 것도 아닌 책이라고 말했을까? 우리는 니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말을 듣지도 못하고 저마다 그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의 목소리만 듣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