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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류시화 지음 / 열림원 / 2015년 9월
평점 :
류시화 님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의 개정판이 나왔다.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는 너무 좋아서 다시 한 번 빌려 읽은 적이 있다.
이렇게 개정판이 다시 나오고 서평단이 돼서 내 손에 책이 들어오니 행복이
차오른다.
오늘 개정판을 내면서 류시화 님이 쓰신 서문을 읽다가
얼마 전 정혜윤 작가가 쓴 여행에세이 <스페인 야간 비행>에서 본 비슷한 문장이
떠올랐다.
'내 눈만으로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감히 생각할 수 없어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싶었던' 정혜윤 작가처럼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새로운 삶에 대한, 세계에 대한 시각을 갖는 것. 그것이 나한테는 여러 작가의 책을 읽는
것이다. 류시화 님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도 나한테는 다른 이의 시각으로 보는 여행이 된다.
"유일하게 진정한 여행, 젊음의 유일한 원천, 그것은 새로운 세상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 다른 100인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이다.
그들 각자가 보고, 그들 각자가 지닌 100개의 세계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말이다.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하나 보다.
다른 이의 말에 귀 기울이기. 온몸의 감각기관의 세포를 활짝 열어 새로운 세상에 귀 기울이기. 이것이 바로 여행이다.
여행- 그 단어만으로도 우리는 지금의 나, 지금의 현실과 멀어진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쫓기고 사람에 치이고 내맘대로 되는 일은 하나도 없을 때 여행이라는 단어는 나를 가볍게 해주는 내 어깨를 들썩이게 해주는 단어다. 많이 알려진
나라가 아니라 낯설고 다른 나라의 이름을 들으면 더욱 그렇다.
인도 여행기지만 제목은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이다. 책을 읽고 난 뒤 어딘가로 떠난 것이 아니라
내 맘속으로 다시 돌아온 느낌이 든다. 결국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맘속 여행'을 했다.
여행은 꼭 무엇을 보기 위해 떠나는 게 아니니까. 우리가 낯선 세계로 떠남을 동경하는 것은 외부에
있는 어떤 것이 아닌, 바로 자신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함일 테니까
류시화 님의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은 인도에서 만난 이들을 통해 얻은 작지만 큰
깨달음을 전해준다. 거친 환경 속에서 사는 이들. 수천년을 이어온 힌두교의 교리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전하는 '한 한마디의 말'이 어떻게
마음에 와서 박히는지, 그것이 세상을 보는 나의 눈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작가의 글을 따라 독자인 나도 변해간다.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그대 자신임을 잊지 말게.
그대만이 그대를 구속할 수도 있고 또 그대만이 그대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
모든 인간은 보이지 않는 밧줄로 스스로를 묶고 있지.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유를 찾는 거야.
그대를 구속하고 있는 것은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바로 그대 자신이야.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달려있다고 한다. 그 마음을 구속하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라고. 이
'나'가 문제다. 이 나는 좋은 일만 생겼으면 좋겠고, 나쁜 일들이 나만 피해 갔으면 좋겠다. 심지어 나와 별개로 존재하는 다른 이도 내
마음대로 움직여주길 바란다. 난 모든 것이 내 마음에 달려있다를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다.
세상이 내 맘대로 진행되기를 원하는 것은 자만심이다. 그리스의 노예였고, 철학자였던 에픽테투스는 그런 나에게 필요한 말을
던져놓았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일이 되어 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 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다.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자만심에 차 신이 없이도 자신이 잘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 지금 우리에게 '나는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닙니다. 난 다만 신의 존재를 믿기에 성실하게 살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신은 나의 목표가 아니라 나의
기준입니다.'라고 말하는 인도인들은 우리가 잊고 사는 것,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모두 신에 기대어
살고 있지는 않다. 그들은 명상과 기도를 통해 신의 대리인처럼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누가 너에게 도움을 청하러 오거든 신이 도와줄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마치 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네가 나서서 도우라.' 류시화 님이 만난 인도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감정에 흔들림 없이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어 보인다.
여행자는 자신의 문에 이르기 위해 모든 낯선 문을 두드려야 하고, 마지막 가장 깊은 성소에 다다르기
위해 온갖 바깥 세계를 방황해야 합니다. 눈을 감고 '여기 당신이 계십니다.'하고 말하기까지 내 눈은 멀고도 광막하게 헤매었습니다.
타고르의 시처럼 우리는 자신의 문에 이르기 위해 이렇게 모든 낯선 문을 두드리고 있나 보다. 그
두드림이 계속되기를. 그리고 그 방황을 기꺼이 받아들이기를 이 책을 덮으며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