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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의 철학 - 미루는 본성을 부정하지 않고 필요한 일만 룰루랄라 제때 해내기 위한 조언
카트린 파시히.사샤 로보 지음, 배명자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로미오가 독약을 마시는 일을 조금 뒤로 미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It's now and never. 지금이 아니면 절대 안 되는 일이 얼마나 될까? 돌이켜보면 그때 했어야 하는데 하는 후회가 남는 일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일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지금의 내가 큰 손해를 보았다거나 많이 달라진 위치에 서 있을 거라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아니면 안돼라는 강박에 시달린다. 자꾸 미루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성공의 가능성이 먼 사람으로 여기며 게으른 사람이라며 손가락질을 한다. 사실 그런 손가락질을 받는 것이 두려워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경우도 많다.
<무계획의 철학>의 저자인 카트린 파시히와 사샤 로보는 이런 게으름뱅이들에게 안도의 한숨을 쉬게 한다. 미루는 습관 버리기에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고 노력할 때 저자들은 게으름은 본성이며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 계획 처리에 서툰 생활방식을 가진 LOBO(Life style of Bad Organization)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버리고 최소비용으로 최대 행복을 누리는 방법을 말하고 있다.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들의 작업환경에서 온 듯하다. 광고계에 종사하는 이들에게는 데드라인을 눈앞에 두고 산다. 하지만 이 데드라인의 뒤에는 데드 데드라인이 그 뒤에는 데드 데드 데드라인이 존재한다. 데드라인이 가까워질수록 노동 의지는 높아지며 작업에 투자하는 노력은 남아있는 시간에 반비례한다. 이런 생활습관을 지닌 이들이 살아보니 대부분이 안 그런 척하고 살지만 무계획적이며 미루는 습관을 가지고 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습관, 혹은 생각에 죄의식을 갖게 된 것은 바로 츠빙글리 때문이라고 한다. 중세 후기까지 유럽 대다수의 평민들은 길어야 하루 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고 살았다. 종교개혁 이후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가 시대를 지배하면서 노동시간도 늘어나고 노동에 대한 생각도 달라졌다. 이 버거운 노동윤리를 전파한 사람은 스위스의 종교개혁가 츠빙글리다. 이 사람은 긴 시간 고되게 노동하는 것을 신에 대한 공경이라고 말했으며, 이 사상을 장 칼뱅은 더욱 정교히 다듬어 칼뱅주의를 만들었다. 이 칼뱅주의가 자본주의와 만나 지금의 노동에 대한 신성한 윤리가 되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 신성한(?) 노동윤리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자신을 닦달해가며 본성에 어긋나는 길로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책을 하거나, 스케줄을 관리하거나 더 열심히 살아보자고 다짐하는 헛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미루는 습관, 혹은 게으름에서 위대한 작품이나 생활에 유용한 물건이 탄생하기도 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미루고 미루다 결국 완성하지 못한 작품이었고 복사기는 베껴 쓰기가 싫어서 나온 놀라운 물건이다. 이 책에는 미루는 습관이 가져온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미루는 습관이 가져온 사실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들도 있다. 아웃소싱, 데드라인 만들기, 심지어 핑계와 사과하기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