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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ㅣ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12월 마지막 날, 올해의 마지막 날, 얼마 전 읽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결심했다. 사실은 지난해 겨울에 읽었던 책이며, 얼마 전 다시 읽은 책이다. 수많은 문장에 끌려 책에 밑줄을 긋고 노트에 옮겨 적어놓았다. 그럼에도 리뷰는 쉽게 써지지 않았다. 리뷰를 쓰려고 보면 한순간 생각들이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쓸 말이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 책은 자아에 대한 탐구, 인간 존재에 대한 사색을 던져 준 책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12월 추운 겨울 찬비가 내리는 날 문득 이곳을 떠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고 싶어지게 만든 책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쓰고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영화와 책을 같이 봤다. 나한테는 둘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갈의 한 여인을 만나 그녀가 남겨 놓은 붉은 코트와 책을 들고 자신이 수십 년 몸담고 있던 학교를 떠나고 책의 저자의 삶을 쫓다가 나중에는 로맨스가 스며든다. 그러나 책은 화자인 그레고리우스의 삶과 그레고리우스가 파헤치는 포르투갈의 의사 프라두의 삶이 서로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야기이며 수많은 철학적 사색과 받아적고 싶은 멋진 문장들로 짜여 있다. 그 둘은 시대를 다르게 태어난 쌍둥이 같은 존재로 보인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에게 느끼는 동질감은 스스로를 향한 엄격함과 언어에 대한 깊은 탐구다.
학교에서 문두스, 파피루스로 수십 년을 불렸던 학자인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 여인의 낯선 포르투갈어를 듣고 갑자기 학생들을 가르치다 리스본으로 떠나는 기차를 탄다. 그는 자기 인생을 마지막 관점에 서서 생각하게 됐고, 느림과 무거움에서, 천천히 만들어진 자화상에서의 해방을 느낀다.
빛바랜 포르투갈 귀족의 사진이 실린 책은 마치 그에게 쓴 것처럼 느껴진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이름 없는 포르투갈 여자,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 초보자를 위한 어학 교재...... 이런 것들 때문에 한겨울에 리스본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바로 내가.
그레고리우스는 교장에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있는 문장이 들어 간 한장의 편지를 남긴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동안의 삶을 박차고 떠난 그레고리우스가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가 여행을 하면서 읽었다고 하는 프라두의 책의 글과 그레고리우스의 사색이 만나며 만들어내는 글들은 작가가 철학자임을 깨닫게 해준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그러나 다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는? 이 여행이 언젠가 끝이 나기는 할까?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그중에서 이번에 책을 읽을 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네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기억해. 어쩌면 내일일지도 몰라."라는 문장이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의 경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는 말에 난 무엇을 할까 깊은 생각에 잠겼다. 책 속의 몇 문장을 살펴보면 나중에도 언젠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고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등이다.
이 겨울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티켓을 끊을 수는 없지만,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한 여행 티켓은 끊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