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야간열차 (윈터 리미티드 에디션) 세계문학의 천재들 1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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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마지막 날, 올해의 마지막 날, 얼마 전 읽은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한 리뷰를 쓰려고 결심했다. 사실은 지난해 겨울에 읽었던 책이며, 얼마 전 다시 읽은 책이다. 수많은 문장에 끌려 책에 밑줄을 긋고 노트에 옮겨 적어놓았다. 그럼에도 리뷰는 쉽게 써지지 않았다. 리뷰를 쓰려고 보면 한순간 생각들이 날아가 버리기도 하고, 쓸 말이 너무 많아져서 오히려 당황스럽기도 했다. 이 책은 자아에 대한 탐구, 인간 존재에 대한 사색을 던져 준 책이다. 그렇지만 사실은 12월 추운 겨울 찬비가 내리는 날 문득 이곳을 떠나기 위해 기차에 몸을 싣고 싶어지게 만든 책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쓰고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영화로도 유명하다. 영화와 책을 같이 봤다. 나한테는 둘이 조금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영화는 그레고리우스가 포르투갈의 한 여인을 만나 그녀가 남겨 놓은 붉은 코트와 책을 들고 자신이 수십 년 몸담고 있던 학교를 떠나고 책의 저자의 삶을 쫓다가 나중에는 로맨스가 스며든다. 그러나 책은 화자인 그레고리우스의 삶과 그레고리우스가 파헤치는 포르투갈의 의사 프라두의 삶이 서로 교차되며 진행되는 이야기이며 수많은 철학적 사색과 받아적고 싶은 멋진 문장들로 짜여 있다. 그 둘은 시대를 다르게 태어난 쌍둥이 같은 존재로 보인다. 그레고리우스가 프라두에게 느끼는 동질감은 스스로를 향한 엄격함과 언어에 대한 깊은 탐구다.

학교에서 문두스, 파피루스로 수십 년을 불렸던 학자인 그레고리우스는 포르투갈 여인의 낯선 포르투갈어를 듣고 갑자기 학생들을 가르치다 리스본으로 떠나는 기차를 탄다. 그는 자기 인생을 마지막 관점에 서서 생각하게 됐고, 느림과 무거움에서, 천천히 만들어진 자화상에서의 해방을 느낀다.  


빛바랜 포르투갈 귀족의 사진이 실린 책은 마치 그에게 쓴 것처럼 느껴진다. 감정이 오락가락하는 이름 없는 포르투갈 여자,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생각, 초보자를 위한 어학 교재...... 이런 것들 때문에 한겨울에 리스본으로 도망치는 사람은 없다. 아니 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바로 내가. 

그레고리우스는 교장에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있는 문장이 들어 간 한장의 편지를 남긴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수십 년 동안의 삶을 박차고 떠난 그레고리우스가 마냥 부럽기만 했다. 그가 여행을 하면서 읽었다고 하는 프라두의 책의 글과 그레고리우스의 사색이 만나며 만들어내는 글들은 작가가 철학자임을 깨닫게 해준다.

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러나 다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는? 이 여행이 언젠가 끝이 나기는 할까? 영혼은 사실이 있는 장소인가, 아니면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우리 이야기의 거짓 그림자에 불과한가?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그중에서 이번에 책을 읽을 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은 "네가 언젠가 죽으리라는 걸 기억해. 어쩌면 내일일지도 몰라."라는 문장이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 죽음의 경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라고 하는 말에 난 무엇을 할까 깊은 생각에 잠겼다. 책 속의 몇 문장을 살펴보면 나중에도 언젠가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는 잘못을 고치기, 오래 꿈꾸어오던 여행하기, 이런 언어들을 배우고, 저런 책들을 읽기. 좋아하지 않던 직업을 그만두고, 싫어하던 환경을 떠나기,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는 일들을 하기 등이다.

이 겨울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티켓을 끊을 수는 없지만, 더 진실해지고 자기 자신에게 가까워지기 위한 여행 티켓은 끊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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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메이 페일
매튜 퀵 지음, 박산호 옮김 / 박하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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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제목인 러브 메이 페일은 작가 매튜 퀵이 정신적 지주로 생각한다는 커트 보네거트의 <제일 버드>의 첫 문장에서 따 온 것이라고 한다. '사랑은 실패할지도 몰라, 하지만 인간의 예의는 승리할 거야.'라는 말이다. 마치 킹스맨의 대사처럼 들리는 이 문장이 이 소설의 전부를 말해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첫 문장인 사랑은 실패할지도 몰라는 이 소설의 시작을 말해주고 있다.

한 여자의 사랑이 박살 나고 있다. 포샤 케인,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보는 앞에서 10대처럼 보이는 여성과 침대에서 뒹굴고 있다. 그녀는 그를 쏴버릴 총을 들고 옷장 속에 숨어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엄마를 임신시켜 놓고 모른 척하고 달아나버린 강간범에 지나지 않았고,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그녀의 친구는 임신하니까 또껴버린 남자친구를 '정액기증자'라고 생각해버린다. 이제 그녀도 그런 형편없는 남편을 걷어차고 호더(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강박장애를 앓는)인 엄마 곁으로 가려고 한다.

그런 그녀의 학창시절의 꿈은 소설을 쓰는 작가였다. 호더인 엄마와 사는 그녀가 그런 꿈을 갖게 되는 데는 네이트 버논이라는 교사가 있었다. 그는 마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등장하는 키팅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모험을 권하고 꿈을 심어 준 사람이다. 포샤 케인이 지상에 있는 단 한 사람의 착한 사람이라고 믿는 네이트 버논은 그러나 한 학생에게 맞고 지금은 알베르 카뮈(한쪽 다리를 다친 애꾸는 개)에 의지해 살며 카뮈처럼 죽기만을 바라는 외부와 단절된 삶을 사는 폐인에 불과하다. 

포샤 케인은 남편에게서 벗어나 엄마에게 가는 비행기 안에서 매브 스미스 수녀를 만난다. 처음 만난 수녀에게 술에 잔뜩 취한 그녀는 무슨 말을 털어놓았을까? 그리고 그녀가 엄마에게 돌아간 뒤 만난 친구의 오빠 척 베이스는 그녀의 삶에 어떤 존재가 되었을까? 다른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폐인이 되어버린 네이트 버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이 시작하기 전 책에는 포샤 케인이 그녀가 존경했던 선생님이 네이트 버논에게 받았던 공식 인류 회원증이 보인다.

'이 회원증을 받은 사람은 인생의 추함과 아름다움, 인생의 크나큰 기복인 고뇌와 환희,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일을 경험할 자격이 생긴다. 또한 이 회원증은 미래를 향해 꿈꾸고 노력하면, 네가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될 것을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이 될 권리를 보장한다. 그러니 대담한 꿈을 품고, 열심히 노력하는 과정을 즐기며, 기억해라. 뭐가 되건 네가 선택한 대로 된다는걸.'

그런 믿음을 가졌던 적이 있었다. 노력하고 꿈꾸면 다 될 것 같은. 그러나 어느 순간 우리의 현실은 꿈과는 멀어져버렸고, 죽도록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람은 '이게 아닌가 봐'가 되어버린다. 왜 그런 믿음이 무너져버렸을까? 이 책에서는 꿈을 포기했던 순간순간들이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세상이 그녀가 소설을 쓸 수 있다는 믿음을 무너뜨렸는지 말했다.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났을까? 과거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꿈을 포기했던 바로 그 순간을 정확하게 짚어낼 수는 없어. 이건 마치 누군가가 우리 부엌에서 소금을 한 줌씩 훔쳐 가는 것과 같아. 몇 달은 눈치도 못 채다가, 어느 날 소금이 줄어든 걸 봤을 때도 여전히 소금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어느 순간 앗, 소금이 바닥난 거야. "

"아무 일도 안 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 우리는 지금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도 그저 묵묵히 버티고 있다. 그러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수밖에.

이 책의 제사는 "우리는 가면을 쓴 존재니 그 가면이 벗겨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라는 커트 보네거트가 쓴 문장이 있다. 우리가 쓰고자 하는 가면이 우리의 꿈이라면 우리가 꿈꾸는 삶이라면 그 꿈이 사라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은 나와 함께 내 옆에 같이 있을 사람들까지도 구원하게 됨을 기억해두자.


<font face="돋움"></font>

그녀가 원하는 건 사람에 대한 믿음, 모든 사람 속에 선한 마음이 있다는 믿음이다.

Love may fail. but  courtesy will prevail.  커트 보네거트 <제일 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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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알랭 레몽 지음, 김화영 옮김 / 비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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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에서 이렇게 사랑을 떠나보내며 나직이 속삭였다. 마치 김광석처럼 조용히 속삭이듯 삶을 들려주는 작품을 만났다. 알랭 레몽이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이 작가보다는 번역가인 김화영 님의 소개 글에 더욱 마음이 끌려 읽게 된 책이다.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산 책인데,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다 읽어버리고 그만 수십 년 동안 참았던 울음을 퍽. 하고 터뜨릴 뻔했다는.
 

이 책을 읽었던 시간은 지난 시절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여행이었다. 저자의 기억은 10명의 형제가 북적북적 살던 집에 대한 추억부터 시작한다. 말이 없던 아버지, 그리고 열심히 살림을 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둘 사이의 냉냉함, 하나씩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가 휴일이나 방학이면 돌아오는 형제들, 그리고 그런 형제들처럼 떠나게 되는 저자. 그 떠남 속에는 제대로 대화조차 나누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집안을 책임졌던 어머니의 죽음, 정신병을 앓다가 자살한 누이도 있다. 저자처럼 나도 대가족 속에 살았다. 저자는 10명의 형제 중에 8번째였다고 한다. 나는 다섯 명의 형제 중의 첫째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좁은 집에서 많은 친척들의 방문을 받으며 살았다. 대가족의 일원, 좁은 방에서 같이 지내던 시간, 경제적인 곤란, 그럼에도 꿋꿋이 버티던 부모님 그리고 그들의 자존심처럼 보이던 물건들. 저자의 이야기는 나의 과거와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았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 책을 썼고'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아버지, 어머니, 누이)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던 저자의 욕망을 그래서 더욱 이해한다. 지금도 여전히 품고 있는 미움들, 원망들이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나도 작가처럼 글을 써야 할까 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뒤에 이어지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처럼 보인다. 고모에게서 받은 아버지의 편지 100여 통을 보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저자가 수도사의 길을 걷다가 사회주의자로 그리고 밥 딜런에 대한 책을 쓰는 것으로 이어지며 자신이 걸어온 삶을 보여준다. 이것은 살아생전 서로 대화가 없었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하는 아들의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아버지인 내가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픈 기억을 소환해내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옛날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조차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겨지게 하는 시간의 마법을 부린 그런 시간이었다. 그건 어쩌면 지금의 아픔과 슬픔도 세월이 흐르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는 선한 믿음을 갖게 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또는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며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도 있다. 순간순간을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어야 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독자마다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듣겠지만.


나도 이 작가와 같이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며 '관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는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되도록이면 기차 안에서 글을 쓰고 싶다. 책의 표지에 있는 사진처럼. 이렇게 지나온 삶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두 번 사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리고 떠오르는 단상 하나. 좀 더 나이 들어 읽어보면 또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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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스맨의 재즈 밀리언셀러 클럽 144
레이 셀레스틴 지음, 김은정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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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이 아니야. 뜨거운 지옥불에서 온 귀신이자 악마지.' 내가 말한 시간에 집에서 재즈 밴드가 한창 연주 중이면 그 집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사할 거야.'

영원히 풀 수 없을 것만 같은 미제 살인사건이 존재한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연쇄살인사건이 바로 1928년 5월부터 1919년 10월 사이에 있었던 뉴올리언스 연쇄살인사건이다. 도끼로 6명의 사람을 죽인 이 살인마는 신문에 살인을 예고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레이 셀레스틴은 바로 이 사건을 그 당시의 뉴올리언스로 독자들을 데려간 듯 치밀하게 <액스맨의 재즈>에서 그려냈다. 58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의 책이지만, 도끼 살인마에 겁먹듯이 두께에 겁먹을 필요는 없었다. 도끼 살인마가 경고한 살인의 그 밤에 뉴올리언스의 사람들이 재즈에 몰입하여 밤을 지새웠던 것처럼 책에 푹 빠져 밤을 지새우게 될 테니까.

이 책의 배경이 되는 뉴올리언스는 재즈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지금도 매년 4월 마지막 주에서 5월 첫째 주의 2주 동안 뉴올리언스 헤리티지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1866년 투표 논쟁에 관한 흑백 간의 폭동이 벌어지고 50명의 흑인이 사망한 뒤 인종차별이 더욱 심해진 지역이다. 책에서도 보이지만 북으로는 크리올(프랑스계 백인과 미국 흑인 사이의 혼혈)이 남으로는 아일랜드인이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흑인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리틀이탈리아에는 이탈리아인이 살았다. 나머지 소수민족들이 체스판의 졸처럼 여기저기 흩어져 살았고 중앙의 상업지구인 스토리빌 프렌치쿼터에서만 한데 섞였다.


도끼 살인마는 의심으로 가득한 도시에 불신을 더해 갔다. 분리가 의심을 불러일으켰고 의심은 분리를 더 부추겼다. 이젠 도끼 살인마가 이 모든 상황에 불을 붙인 격이 됐고 이렇게 갇힌 사람들이 서로 갈등을 빚고 부딪쳤다. 게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돌아온 군인들까지. 이 소설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세 명의 주요 인물들은 부인이 흑인이며 그 사이에 아이가 둘이 있지만 하녀라고 속이며 살고 있는 형사 마이클 탤벗과 크리올인 아이다 데이비스와 재즈 연주가인 루이스(루이 암스트롱의 예전 이름) 그리고 이탈리아계인 루카다. 이들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도끼 살인마를 쫓고 있다. 이들이 생각하는 도끼 살인마는 조금씩 다르다. 각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퍼즐을 맞추다 보면 다다르는 곳은 '두려움'이다. 서로 다름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있기에 우리는 명확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도끼 살인마는 불가사의한 존재이지 않나. 설명할 수 없이 텅 비어 버린 존재지. 하지만 사람들은 텅 비어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래서 비어 있는 걸 볼 때면 언제나 그걸 채우기 시작하지. 우리 마음 한구석에 있는, 우리가 두려워하는 어두운 것들로 말이야. 보데씨 부부를 죽였던 그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 자신들이 무서워하던 것으로 마음을 채웠어. 주술로 말이야. 도끼 살인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 이탈리아인들은 도끼 살인마를 두고 흑인이라고 생각해. 경찰은 흑수단이라고 생각하지. 흑인들은 아마도 도끼 살인마가 강대하고 사악한 백인이라고 생각할 것 같네. 사람들은 하나같이 같은 것을 보고 있지만 아무것도 안 보고 있는 것 같이 모두 자기만의 방식으로 달리 보고 있다네. 어떤 두려움이 그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윙윙대느냐에 따라 다른 거야. 자신들이 이미 실제라고 마음먹은 것, 자신들이 가진 두려움이 만들어 낸 환상을 찾은 것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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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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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품이어서 문학, 즉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고 나니 왜 문학이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목소리 소설, 이 낯선 단어로 이 작품을 대변하기가 쉽지는 않다. 물론 이 책은 약 500여 명의 목소리가 들려주는 전쟁의 이야기를 담았다. 하지만 만약 이런 형식이 아니라 작가가 개입해 이야기를 재구성해 낸 작품이었다면 과연 우리가 이 이야기에 그렇게 빠져들었을까? 작가는 이름 없는 전쟁의 목격자나 참전자의 이야기를 통해 살아나는 역사가 알고 싶었고, 그 역사를 문학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말 줄임표가 있다. 마침표를 찍을 수 없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런 면에서 완성된 문학작품으로는 보기 힘들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그 말 줄임표에 울컥하고 그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진다. 어떤 형식으로든. 그럼으로 해서 이 작품의 완성은 독자의 몫으로 전해진다.

작가는 이 책의 서문 격인 사람이 전쟁보다 귀하다(일기장에서)에서 "그들의 울음과 비명을 극화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의 울음과 비명이 아닌, 극화 자체가 더 중요해질 테니까. 삶 대신 문학이 그 자리를 차지해버릴 테니까." 라고 말했다. 작가의 의도는 정확히 통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전쟁이 가져온 삶과 인생에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다시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의 저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도 그렇고 꾸역 꾸역 눈물을 삼키며 읽어내던 독자도 그렇고 "1941년 소녀들, 그녀들은 왜 전쟁에 참여했을까?"라는 질문을 한다.

"역사는 앞으로도 수백 년은 더 '그건 대체 무엇이었을까?'라며 고민하겠지. 대체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어디에서 왔을까? 상상을 한 번 해봐. 임신한 여자가 지뢰를 안고 가는 장면을...... 체르노바는 당연히 아이를 기다렸지..... 삶을 사랑했고 또 살고 싶어 했지. 당연히 두려워도 했지.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 길을 갔어..... 스탈린을 위해서가 아니라 바로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그녀는 무릎을 꿇어가며 살아야 하는 삶은 거부했어. 적에게 굴종하는 삶 따위는...... 어쩌면 우린 눈이 멀었던 건지도 몰라. 그리고 그때 우리가 많은 것을 놓치고 보지 못했다는 사실도 부인하지 않겠어. 하지만 우리는 눈이 멀었으면서도 동시에 순수했어. 우리는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당신은 그걸 꼭 알아야 해......"  -베라 세르게예브나 로마놉스카야, 빨치산 간호병


전쟁터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아. 우리가? 우리는 그랬어. '아, 끝까지 살아남기만 한다면..... 전쟁이 끝나면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해할까! 아,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이 펼쳐질까! 이처럼 처절한 고통을 이겨냈으니 이제 사람들도 서로 가엾게 여기겠지. 서로 사랑할 거야. 달라질 거야.'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니까. 철석같이 믿었지.

조국이 가르쳐 준대로 조국의 부름에 달려간 그녀들은 지도자들이 심어 준 사상의 순수함을 믿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행복,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행복, 바로 그걸 믿었다. 그녀들은 꿈꾸는 자들, 이상주의자들이었다. 하지만 눈먼 자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전쟁의 승리를, 살아서 돌아갈 것을 믿었다. 하지만, 그녀들은 돌아와서도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전쟁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시댁에 갔을 때 시댁 식구들의 거부를 봐야 했고, 전쟁터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을 했지만, 1년 뒤 남편은 새로 만난 여자한테서는 향수 냄새가 나지만 당신한테서는 군화와 발싸개 냄새가 난다는 말을 하고 떠난다. 지금도 전쟁영화가 색색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그들은 여전히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고 있다.

​그들이 아픈 기억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 일을 떠올리는 건 끔찍하지만, 그 일을 기억하지 않는 게 더 끔찍하거든'이라고 말한 한 참전자의 이야기처럼 기억되지 않았을 때 더 끔찍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에 대한 책이 많지만, 이토록 처절하게 비인간적인 상황을 그대로 전해주는 책은 없었다. 전쟁 속 죽음 앞에 '장렬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그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것은 전쟁을 미화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책을 덮으며 한 참전자의 이야기가 가슴에 남는다.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수많은 참전자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같이 울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를 꼭 기억할 것이다.


우리 이야기는 꼭 안 써도 돼. 우리를 잊어버리지만 마. 당신과 내가 이렇게 서로 이야기를 나눴잖아. 같이 울었고. 그러니까 헤어질 때 뒤돌아서 우리를 봐줘. 우리들 집도. 낯선 사람처럼 한 번만 돌아보지 말고 두 번은 돌아봐 줘. 내 사람처럼. 다른 건 더 필요 없어. 뒤돌아봐주기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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