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내가 떠나보낸 것도 아닌데, 내가 떠나온 것도 아닌데,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김광석은 <서른 즈음에>에서 이렇게 사랑을 떠나보내며 나직이 속삭였다. 마치 김광석처럼 조용히 속삭이듯 삶을 들려주는 작품을 만났다. 알랭 레몽이라는 작가의 작품인데, 이 작가보다는 번역가인 김화영 님의 소개 글에 더욱 마음이 끌려 읽게 된 책이다.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산 책인데,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다 읽어버리고 그만 수십 년 동안 참았던 울음을 퍽. 하고 터뜨릴 뻔했다는.
이 책을 읽었던 시간은 지난 시절의 기억들을 떠오르게 하는 추억여행이었다. 저자의 기억은 10명의 형제가 북적북적 살던 집에 대한 추억부터 시작한다. 말이 없던 아버지, 그리고 열심히 살림을 하시던 어머니 그리고 둘 사이의 냉냉함, 하나씩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가 휴일이나 방학이면 돌아오는 형제들, 그리고 그런 형제들처럼 떠나게 되는 저자. 그 떠남 속에는 제대로 대화조차 나누어보지 못한 아버지의 죽음과 아버지의 죽음 이후로 집안을 책임졌던 어머니의 죽음, 정신병을 앓다가 자살한 누이도 있다. 저자처럼 나도 대가족 속에 살았다. 저자는 10명의 형제 중에 8번째였다고 한다. 나는 다섯 명의 형제 중의 첫째였다. 그리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부모님과 함께 좁은 집에서 많은 친척들의 방문을 받으며 살았다. 대가족의 일원, 좁은 방에서 같이 지내던 시간, 경제적인 곤란, 그럼에도 꿋꿋이 버티던 부모님 그리고 그들의 자존심처럼 보이던 물건들. 저자의 이야기는 나의 과거와 맞닿아있는 부분이 많았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 책을 썼고' '산 사람들 그리고 죽은 사람들(아버지, 어머니, 누이) 그들 모두와 평화롭게 지내고 싶던 저자의 욕망을 그래서 더욱 이해한다. 지금도 여전히 품고 있는 미움들, 원망들이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 전쟁을 끝내기 위해서 나도 작가처럼 글을 써야 할까 보다. <하루하루가 작별의 나날>뒤에 이어지는 <한 젊은이가 지나갔다>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을 것처럼 보인다. 고모에게서 받은 아버지의 편지 100여 통을 보면. 하지만 이 이야기는 저자가 수도사의 길을 걷다가 사회주의자로 그리고 밥 딜런에 대한 책을 쓰는 것으로 이어지며 자신이 걸어온 삶을 보여준다. 이것은 살아생전 서로 대화가 없었던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하는 아들의 이야기로 들리기도 하고, 또 누군가의 아버지인 내가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픈 기억을 소환해내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옛날 아프고 힘들었던 기억조차도 아름답고 소중하게 여겨지게 하는 시간의 마법을 부린 그런 시간이었다. 그건 어쩌면 지금의 아픔과 슬픔도 세월이 흐르면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될 거라는 선한 믿음을 갖게 하는 시간이 될 것 같다. 또는 영화 <어바웃 타임>처럼 인생은 모두가 함께 하는 여행이며 매일매일 사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선을 다해 이 멋진 여행을 만끽하는 것이다는 메시지를 얻을 수도 있다. 순간순간을 마지막처럼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어야 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독자마다 저마다 다른 목소리를 듣겠지만.
나도 이 작가와 같이 지난 나의 삶을 돌아보며 '관조'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때는 오랫동안 여행을 하면서, 되도록이면 기차 안에서 글을 쓰고 싶다. 책의 표지에 있는 사진처럼. 이렇게 지나온 삶을 다시 돌아보는 것은 자신의 삶을 두 번 사는 것과 같지 않을까?
그리고 떠오르는 단상 하나. 좀 더 나이 들어 읽어보면 또 어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