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바 1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4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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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상에 왼발부터 등장했다.

어머니의 몸 밖으로 살짝, 정말 살짝 왼발을 내밀고, 이어서 머뭇머뭇 오른발을 내밀었다고 한다.

양발을 내밀고 나서 신속하게 몸 전체를 드러내는 일은 없었다. 한동안 그 상태로 있었던 것은 틀림없이 새로운 공기와의 거리를 재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가 내 배를 꼭 붙잡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한 듯이 몸 전체를 드러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실룩실룩 몸을 떨더니 모두가 다소 걱정할 무렵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나는 울기 시작했다.

아주 나다운 등장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아주 매력적인 도입부였다. 이 도입부를 읽는 순간 이 주인공이 너무 궁금해졌다. 어떤 인물일까, 어떤 일을 겪고 어떤 반응을 보이고 그가 살아가는 삶은 어떤 형태로 채색될까 궁금해지며 내 주변에 이와 비슷한 인물이 떠올랐다.

주인공 '나'는 아쿠쓰 아유무(步)로 1977년 5월 이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일본의 석유회사에 다니고 어머니 나오코는 직감으로 사는 분으로 묘사된다.(아유무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기에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아유무의 시선으로 보이며 아유무의 해석이라고 보아야 한다.) 나는 세상을 공포로 반응한다면 세상에 빨리 나오고 싶어 했지만 갑자기 나오기 싫어서 버텼던 변덕스러운 누나인 다카코는 세상에 대한 반응이 '분노'다. 이란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라다가 이집트로 가서 살던 아유무에게 누나는 수치였고(항상 튀고 싶어 해서 스스로 마이너리티가 되고자 한다.) 엄마는 자신만을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희미한 존재다. 그나마도 어느 날 엄마와 사이가 틀어져 결국 둘은 이혼을 한다. 그럼에도 주인공 아유무는 타고난 성품과 외모로 주위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유무의 시선은 남을 향해 있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캉의 말처럼 타인을 의식해서 살기에 자신이 진정 원하는 선택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여자친구도. 그러기에 아유무는 만족할 수 없다. 결핍이 계속된다. 그러면서 '나'는 소외되고 만다. 과연 누가 '나'일까? 타인의 시선에 진짜 나처럼 보이는 '나'인지,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하는 '나'가 '나'인지... 아유무는 사유와 존재가 일치하지 않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항상 문제아였던 누나가 변화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런 누나한테는 사토라코몬사마교의 교주(?)가 있었다. 그녀의 말 "스스로 자신이 믿을 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돼."를 안고 누나는 구도의 길을 떠난다.

성찰은 다 잃었을 때 하게 되나 보다. 누나도 그리고 아유무도 가장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무언가를 찾기 위한 움직임을 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부족하다'고 굶주려 있는 것을 누나가 자신 탓으로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그래서 누나에게 '사토라코몬사마'가 필요하다고 아줌마는 생각했던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믿을 것을 찾아내지 않으면 안 돼.'  2권 p.147

아유무는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이집트 시절 만났던 친구 야곱을 생각한다. 야곱과 아유무 사이에 있었던 주문 같은 말, 사라바(안녕이라는 말)를 떠올린다. 그리고 야곱을 만나러 이집트로 향한다.

"사라바"

하쿠나마타타, 아브라카다브라처럼 '다 잘 될 거야' 하는 믿음을 심어주는 말이다. 불안에서 자신을 끌어올리는 주문, 그것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게 해준다.

마치 '안녕'이라는 의미가 아닌 말처럼 들렸다. 빛나는 가능성을 내포한 반짝이는 세 글자로 여겨졌다. '사라바'는 우리를 이어주는 마법 같은 말이었다. 1권 p.257 

사라바.  

나는 그 말을 듣고 내가 무척이나 밝고 건강하고 적의 없는 세계에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혼자가 아니라 모두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아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1권 p. 281

하지만 이 말은 내가 '나'일 때 가능한 것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나'로 돌아왔을 때 삶은 내가 생각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내가 나를 데려간 거야. 지금까지 내가 믿어온 것은 내가 있었으니까 믿었던 거야. 알겠어, 아유무? 그건 내 안에 있는 거야. '신'이라는 말은 난폭하고 맞지도 않아. 하지만 그건 내 안에 있는 거야. 내가 나인 한은." 2권 p.294 

이 책을 읽으며 공주와 왕자로 크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질문해 볼 겨를도 없이 어른들의 주입식 사고로 자라는 아이들이 점차 커가면서 갈등하고 방황하고 있다. 모두가 모범생으로 자라 일류대를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최고로 생각하는 지금의 풍토는 우리의 아이들을 아유무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게 스스로 자신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아이로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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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 - 삶의 길목에서 다시 펼쳐든 철학자들의 인생론
안광복 지음 / 어크로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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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고 있다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곧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고 생채기도 생겼다. 나는 단 한 번 뿐인 인생의 길을 이정표도 모르는 채 걸어가는 어린아이다. 나는 서툰 발걸음으로 인생의 숲을 헤쳐나가다가 그냥 그렇게 죽음에 이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인생이라고 하더라도 잘 살고 싶어 한다. 잘 살고 싶어 하는 이들이 요즘 찾는 것이 바로 철학과 인문학이다. 

인간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반드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가장 근원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꼭 필요함을 공감하기는 하지만 막상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난해한 철학 용어가 떡 하니 버티고 있어 독자의 사고를 더 이상 나아가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철학의 역사를 공부해보기도 하고, 위대한 철학자 한 명을 정해 그의 사유를 따라가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 역시 쉽지 않은 길이다. 그래서 요즘은 생활 속 고민과 문제로부터 출발하는 책들이 많이 등장했다. 현재 내 삶의 자리에서 출발하는 것은 쉽게 철학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철학자들의 지혜를 빌려 나의 생활 속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고등학교에서 철학교사로 있는 안광복 씨의 <서툰 인생을 위한 철학 수업>은 철학서 중에서 넓고 깊게가 아닌 '정찬이 아니라 길거리 음식' 처럼 '일상의 호흡'에 맞게 읽는 짧은 이야기들로 되어 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니체, 세네카, 데카르트, 한비자 등에게 삶의 의미, 나이 듦, 죽음, 사랑, 정의, 주위의 사람들, 리더십 등 삶에서 만나는 문제에 대해 답을 구한다.


외모와 성적 등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과 삶을 이야기해준다. 우리도 알고 있다시피 소크라테스는 심하게 못생겼다고 한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자기 눈이 사방을 잘 볼 수 있도록 툭 튀어나왔고, 코는 길고 똑바르지 않고 뭉툭해서 남보다 냄새를 더 잘 맡는다고 자랑할 정도로 자신의 외모를 사랑했다'라고 한다. 소크라테스가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이유는 오직 자신만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이것은 자신의 콤플렉스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는 태도에 견줄'만하며, '자신의 단점에 주목하기보다 세상에서 진정 옳고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에 더 관심이 많았다'라고 한다. 세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편견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아무런 편견이 없는 상태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문제를 보게 된다면 해결해 나가는 올바른 방향을 찾기는 더욱 쉬워질 것이다.


한가지 주제에 짧은 이야기로 답을 해놓아서인지, 왠지 서문만 읽다만 듯하다. 더 알고 싶다면 그 철학자가 쓴 책을 읽어보면 좋을 듯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읽어보면 좋을지 소개해주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게다가 전체적으로 삶의 문제를 하나로 꿰뚫어 보는 철학 사상이 엿보이지는 않았다. 각기 다른 문제에 각기 다른 철학적 처방으로 양약을 먹는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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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독서 - 심리학과 철학이 만나 삶을 바꾸는 지혜
박민근 지음 / 와이즈베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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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몇 년의 시간이 흘렀다.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 세상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답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힘들어하던 때로부터. 그 시간을 버티고 벗어나게 해 준 것이 나에게는 책이었다. 주위의 어느 누구에게도 터놓기 힘들었고, 말하기 힘든 고민을 말하지 않고 그저 책을 죽어라 읽어대며 살았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조금씩 조금씩 그 수렁에서 벗어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내가 하던 그것이 '독서치료'라는 걸 몰랐다.

독서치료(Biblio-theraphy)는 스스로 책을 읽고 책의 내용을 필사하며 다시 그 내용을 성찰하는 것으로 심리치료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음으로써 치료가 되는 이유는 책과 문학이 가진 본질적 존재성인 타자성이 인간의 고독을 경감해주는 힘을 갖는 데 있다. 책을 처방하는 일은 '아스피린 한 알 드세요'라는 말과 같다. 어떤 사람이 안고 있는 문제와 상황에 따라 'ㅇㅇㅇ 한 권 읽으세요'라는 처방을 할 수 있다. 

박민근의 <치유의 독서>라는 이 책에 독서치료를 하고 있는 저자를 찾아왔던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왕따를 겪고 있는 10대의 청소년, 인생의 목표가 없는 20대, 친한 사람으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삶의 기반을 잃은 이,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하는 사람,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 등.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저자는 그들에게 책 한 권을 건넨다. 이런 내담자들은 저자가 권해 준 책을 읽고 와서 저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조금씩 스스로 달라지는 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에게 건넨 책의 이야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이다.

이 책의 저자인 박민근 씨는 16세까지 화가의 꿈을 꾸고 있었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돈과 뒷받침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함에 좌절하고 깊은 우울상태에 빠진다. 그 시간 그가 찾았던 헌책방에서 만났던 책들은- 헤세와 헤밍웨이와 윤동주- 그에게 위안을 안겨주었다. 깊은 수렁에서 그를 건진 책들은 그가 다시 두 번째 고비를 만났을 때 또다시 그에게 구원이 되어주었다. '생존과 내일을 위한 유일한 대안은 오로지 책 읽기 뿐'이었던 그가 그 경험을 토대로 독서치료로 어려움에 빠진 이들을 돕기 시작했다. 이 책 <치유의 독서>는 그가 말하는 HOPE프로그램 중 치유(Healing)과 자성(Perception), 즉 심리상담과 철학상담을 묶은 것이다. (다음 과정인 정향(Orientation)과 공부(Education)은 <성장의 독서>라는 제목으로 곧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치유의 독서>는 50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의 삶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구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떤 틀로써 세상을 보던 것을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려는 노력을 하기 위한 조력자로 <8주 나를 비우는 시간>을, 불확실성을 못 견뎌하는 요즘 사람들에게 방황은 어쩔 수 없는 것이므로 그 방황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방황의 기술>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자기 시선이 자기 안에만 맴돌 때 세상은 아무 문제가 없다고 오인하기 쉽다.' 내 안에 맴도는 시선을 바깥으로 돌리는 일은 책이 가진 타자성으로 극복하자는 말에 깊이 공감한다. 저자가 언급한 50여 권의 책 중에서 기껏해야 내가 읽은 책은 3권에 지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몇 권의 책을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 책들로 내가 조금은 달라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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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9
알베르 카뮈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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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전락>을 어렵게 읽어냈다. 누구는 카뮈의 작품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평하고, 또 어떤 이는 가장 복잡하고, 난해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도 한다. 나는 후자의 견해와 가깝다. 그저 그 밑바닥에 흐르는 몇 가지 생각과 느낌에 공감하며 읽어냈다.


감한 문장들


우리는 어느 누구의 무죄도 단언할 수 없는 반면에 모든 사람의 유죄를 확실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모든 사람의 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죄를 만들어 내고 벌을 주고 하는데 신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면 족하고 더구나 우리 자신이 그걸 돕습니다.

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문제는 심판을 회피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심판받지 않으려고 황급히 남을 심판하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모두 예외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호소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모두 기어코 자기의 결백을 요구하려 들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 인류와 하늘이라도 고발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과부나 고아 같은 힘없는 자들을 변호하던 클라망스는 자신이 죄인이나 피고의 과오가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도 입히지 않는 정확한 범위 내에서만 그들의 편을 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위협을 받게 되면 그 자신도 판사가 되어 모든 법률을 무시하며 범죄자를 때려눕히고 무릎 꿇게 하고 싶어 하는 폭군이 됨을 고백한다. 어느 날 대서양 횡단 여행 중에 몇 년 전 투신자살했던 센 강의 여인의 부르짖음이 들리고 그 죽음을 무시했던, 눈 감았던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스스로를 고난실에 가두며 고해를 하는 판사가 되기를 자청한다.

그가 고해 판사를 자처하면서 파리를 떠나 사는 곳은 바다보다 낮은 땅 네덜란드였다. 책의 제목인 '전락'처럼 그는 잘 나가던 파리의 변호사에서 안개와 차디찬 땅과 잿물처럼 피어오르는 바다에 둘러싸인 네덜란드의 한 술집을 지키는 고해 판사로 '전락'한 이유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친절과 양보와 도움과 봉사의 미덕을 가지고 정의감과 동정심으로 존경받던 '절정'의 그 이면에 숨은 허영심과 이중성을 고백하며 인간들의 비웃음에 대해, 내면의 나를 부르는 소리에 대한 대답으로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최종 목적은 남을 심판하기 위한 것인가?


자기 자신을 심판함 없이 남을 심판하기란 불가능한 일인즉, 남을 심판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 우선 자신을 통렬히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는 고해 판사라는 희한한 일(?)을 하고 있다. 카뮈가 이 작품을 쓴 이유가 자신에 대한 변명(사르트르와의 논쟁 뒤에)인지, 아니면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통찰과 경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만난 문장들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의 초상 아니면 우리의 초상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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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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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세에 육박한다. 지금까지 평균수명은 10년마다 5년씩 증가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40~50대의 사람들이 80세가 되었을 때의 평균수명은 95~100세가 될 것이다. 이들은 55~60세 정도에 은퇴를 하고 나서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던 시간과 맞먹는 30~40년을 아무런 직업도 없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고령화사회의 문제를 우리는 '돈'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연금이 곧 고갈될 거라거나 자산운용을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에 주목한다.

하지만 김정운 교수는 "고령화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고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다"라고 말한다. 문화심리학자이며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의 소장인 그는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이라고 진단한다. 그 불안감 때문에 아내가 곰국을 끓일 때 자신을 두고 아내가 떠날까 봐 덜컥 겁이 나는 것이다.

사실 이런 현대 중년의 문제는 일부 아저씨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근로(열심히 일함)'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방향이 잘못되더라도 열심히 정력적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존경이라는 다소 이상한 쪽으로 흘러왔다.

김정운 교수의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라는 말은 실용주의, 성과주의에 떠밀려 이익만을 추구하고 살았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제 잠깐 멈추어 '무엇을 위해 달렸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김정운 교수는 이 책에서 50살에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일본으로 떠나 그림을 배우게 된 이야기와 그동안 그린 그림들과 심리학적 지식을 펼쳐놓는다. 그의 글은 재미있고 쉬웠다. 그렇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심리학 용어 중에 부화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부화의 개념은 중년의 남성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필요해 보인다.


부화(孵化) -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문제로부터 몸과 마음이 일시적으로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월러스가 내세운 개념. 해결이 안 되는 심각한 문제로부터 잠시 떠나 전혀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한 통찰이 불현듯 찾아온다.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부화의 시간처럼.  


고독이 멋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티브이의 광고에 등장하는 고독해 보이는 은발의 중년 남성들. 하지만 내면의 멋을 볼 수는 없다. 요즘 만나는 책들 중에서는 고독을 선택하는 것, 혼자 있기를 선택하는 목적이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책들도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창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고 창의적인 것은 성공의 한 요인이라고.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인간은 원래부터 고독한 존재인 것이다. 그 본질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남에게 기대지 않고 남의 힘을 빌려 살지 않고 내면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의견에 기분에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독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꾸준히 관철해낼 수 있는 의지도 필요한 일이다. 특히 남의 눈을 의식한다면 하기 힘들다. 김정운 교수의 삶은 그래서 박수 받을 만하다. 솔직한 자기고백과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그저 부럽게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힘을 준다. 혹시 내 안에 아직 남아있는 꿈이 한 조각이라도 있다면 한번 시도해보자라고. 올해는 용기를 내어보자. 이제 무엇부터 해볼까? 혼자만의 시간부터 내보기부터 해보자.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부화의 시간을 가져보자. 잠깐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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