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 -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
김정운 글.그림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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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2세에 육박한다. 지금까지 평균수명은 10년마다 5년씩 증가했다고 한다. 이대로라면 40~50대의 사람들이 80세가 되었을 때의 평균수명은 95~100세가 될 것이다. 이들은 55~60세 정도에 은퇴를 하고 나서 자신이 직장생활을 하던 시간과 맞먹는 30~40년을 아무런 직업도 없이 살아야 한다. 그래서 고령화사회의 문제를 우리는 '돈'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연금이 곧 고갈될 거라거나 자산운용을 어떻게 해야 한다거나 하는 문제에 주목한다.

하지만 김정운 교수는 "고령화사회의 근본 문제는 연금이 아니고 은퇴한 이들의 아이덴티티다"라고 말한다. 문화심리학자이며 여러 가지 문제 연구소의 소장인 그는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확인할 방법을 상실한 이들에게 남겨진 30여 년의 시간은 불안"이라고 진단한다. 그 불안감 때문에 아내가 곰국을 끓일 때 자신을 두고 아내가 떠날까 봐 덜컥 겁이 나는 것이다.

사실 이런 현대 중년의 문제는 일부 아저씨들의 문제만은 아니다. 지금까지 수 세기 동안 '근로(열심히 일함)'가 미덕이라는 믿음이 있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방향이 잘못되더라도 열심히 정력적으로 일하는 것에 대한 존경이라는 다소 이상한 쪽으로 흘러왔다.

김정운 교수의 '격하게 외로운 시간을 가져야 한다'라는 말은 실용주의, 성과주의에 떠밀려 이익만을 추구하고 살았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이제 잠깐 멈추어 '무엇을 위해 달렸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질문해야 한다. 

김정운 교수는 이 책에서 50살에 갑자기 사표를 던지고 일본으로 떠나 그림을 배우게 된 이야기와 그동안 그린 그림들과 심리학적 지식을 펼쳐놓는다. 그의 글은 재미있고 쉬웠다. 그렇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나는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심리학 용어 중에 부화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부화의 개념은 중년의 남성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필요해 보인다.


부화(孵化) - 창조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그 문제로부터 몸과 마음이 일시적으로 떠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월러스가 내세운 개념. 해결이 안 되는 심각한 문제로부터 잠시 떠나 전혀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을 때, 문제 해결을 위한 통찰이 불현듯 찾아온다. 마치 닭이 알을 품고 있는 부화의 시간처럼.  


고독이 멋스러워 보일 때도 있다. 티브이의 광고에 등장하는 고독해 보이는 은발의 중년 남성들. 하지만 내면의 멋을 볼 수는 없다. 요즘 만나는 책들 중에서는 고독을 선택하는 것, 혼자 있기를 선택하는 목적이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책들도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창의적인 행동을 할 수 있고 창의적인 것은 성공의 한 요인이라고.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인간은 원래부터 고독한 존재인 것이다. 그 본질을 알고 있다는 것, 그것은 남에게 기대지 않고 남의 힘을 빌려 살지 않고 내면의 힘으로 살아간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리고 다른 이들의 의견에 기분에 내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독을 선택하는 것은 사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며 꾸준히 관철해낼 수 있는 의지도 필요한 일이다. 특히 남의 눈을 의식한다면 하기 힘들다. 김정운 교수의 삶은 그래서 박수 받을 만하다. 솔직한 자기고백과 행동할 수 있는 용기가 그저 부럽게만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힘을 준다. 혹시 내 안에 아직 남아있는 꿈이 한 조각이라도 있다면 한번 시도해보자라고. 올해는 용기를 내어보자. 이제 무엇부터 해볼까? 혼자만의 시간부터 내보기부터 해보자.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을. 부화의 시간을 가져보자. 잠깐 멈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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