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19
알베르 카뮈 지음, 이휘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알베르 카뮈의 <전락>을 어렵게 읽어냈다. 누구는 카뮈의 작품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평하고, 또 어떤 이는 가장 복잡하고, 난해하며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도 한다. 나는 후자의 견해와 가깝다. 그저 그 밑바닥에 흐르는 몇 가지 생각과 느낌에 공감하며 읽어냈다.


감한 문장들


우리는 어느 누구의 무죄도 단언할 수 없는 반면에 모든 사람의 유죄를 확실히 단언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모든 사람의 죄를 증언하고 있습니다. 죄를 만들어 내고 벌을 주고 하는데 신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면 족하고 더구나 우리 자신이 그걸 돕습니다.

벌을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문제는 심판을 회피하는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심판받지 않으려고 황급히 남을 심판하는 겁니다.

우리는 누구나 모두 예외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를 호소하고자 합니다. 누구나 모두 기어코 자기의 결백을 요구하려 들고, 그러기 위해서는 전 인류와 하늘이라도 고발하기를 서슴지 않습니다. 

과부나 고아 같은 힘없는 자들을 변호하던 클라망스는 자신이 죄인이나 피고의 과오가 자신에게 아무런 손해도 입히지 않는 정확한 범위 내에서만 그들의 편을 들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이 위협을 받게 되면 그 자신도 판사가 되어 모든 법률을 무시하며 범죄자를 때려눕히고 무릎 꿇게 하고 싶어 하는 폭군이 됨을 고백한다. 어느 날 대서양 횡단 여행 중에 몇 년 전 투신자살했던 센 강의 여인의 부르짖음이 들리고 그 죽음을 무시했던, 눈 감았던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스스로를 고난실에 가두며 고해를 하는 판사가 되기를 자청한다.

그가 고해 판사를 자처하면서 파리를 떠나 사는 곳은 바다보다 낮은 땅 네덜란드였다. 책의 제목인 '전락'처럼 그는 잘 나가던 파리의 변호사에서 안개와 차디찬 땅과 잿물처럼 피어오르는 바다에 둘러싸인 네덜란드의 한 술집을 지키는 고해 판사로 '전락'한 이유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친절과 양보와 도움과 봉사의 미덕을 가지고 정의감과 동정심으로 존경받던 '절정'의 그 이면에 숨은 허영심과 이중성을 고백하며 인간들의 비웃음에 대해, 내면의 나를 부르는 소리에 대한 대답으로 스스로 고난의 길을 택했음을 고백한다. 하지만 그의 최종 목적은 남을 심판하기 위한 것인가?


자기 자신을 심판함 없이 남을 심판하기란 불가능한 일인즉, 남을 심판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 우선 자신을 통렬히 비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공 장 바티스트 클라망스는 고해 판사라는 희한한 일(?)을 하고 있다. 카뮈가 이 작품을 쓴 이유가 자신에 대한 변명(사르트르와의 논쟁 뒤에)인지, 아니면 인간의 이중성에 대한 통찰과 경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 만난 문장들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나의 초상 아니면 우리의 초상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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