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들이 이기는가 - 성공하는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클로테르 라파이유.안드레스 로머 지음, 이경희 옮김 / 와이즈베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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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국가와 실패하는 국가의 차이는?

<왜 그들이 이기는가>의 부제는 성공하는 문화의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그렇다면 성공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책에서 성공은 '상향 이동을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p.195  이 책의 저자들은 모든 사람들이 상향 이동을 할 기회를 갖기를 원한다고 전제한다. 이 책은 우선 이러한 전제에 동의할 때에 재미있게 술술 읽힐 것이다. 만약 이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면 상당히 불편하고 불쾌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은 인간의 본성을 이기적으로 본다. 그 근거로 생물학적 연구를 든다.

어떤 국가는 상향이동을 하고, 또 다른 국가는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답은 바로 문화다. 어떤 문화가 그렇다는 걸까? 인간의 생물학적 특성에 따라 생존에 더 적합한 문화가 바로 답이다. 이것이 문화의 진화다. 성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어떤 생물학적 특성을 말하는 걸까? 그것은 '파충류 뇌'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욕구가 국가의 번영에 영향을 미치는데,  저자들이 '진지하고 솔직하게 ' 말한다면 '파충류 뇌가 늘 승리하'며, '국가의 문화와 제도가 생물학적 특성과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대혼란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화여야 하는가? 이들이 연구를 통해 밝힌 바에 따르면 모든 문화에서 문화적 집단 무의식 이면에 존재하는 파충류 뇌의 욕구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문화가 성, 생존, 안전, 성공을 다루는 방식이 상향 이동성의 가능성을 미리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누구나 동등한 권한과 동등한 성장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신념, 교육이 인간의 근본적인 권리라는 신념, 섹스가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라는 신념, 창의성을 고취하는 행위를 장려하는 신념이 있는 문화는 이동성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여러 나라의 예를 들어 그 이동성 문제를 설명한다. 저자들이 주로 성공의 예로 드는 나라는 미국과 싱가포르, 중국이며 실패의 예로 드는 나라는 프랑스다.

파충류 뇌의 욕구를 강력하게 억압하는 일본 문화에서는 폭력성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프랑스는 더욱 비관주의적인 문화다. 프랑스인들은 늘 사고하고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을 비평하지만 그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는다. 심지어 그들의 교육제도는 나폴레옹에 의해 만들어졌고, 이후 눈에 띌 만한 변화가 없었다. 행동 지향적인 미국과 대조적으로 프랑스는 실용적인 것을 저속하게 여긴다. 그러나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은 상향 이동의 핵심이다.

일본인과 프랑스인이 본다면 무척 기분 나쁠 것이다. 하나의 기준 혹은 가치일 뿐이지 않을까? 일본인과 프랑스인으로서는 동의하기 힘든 해석일 수 있다.


기업의 세금을 낮추면 혁신과 독창성과 창의력이 발전하는 문화가 양성된다. p.224
이건 또 무슨 의미일까? 바로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이 주장하는 논리다.
중국은 처참한 문화대혁명 이후 기업가 정신을 장려했다. 그 결과 불평등은 늘었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포함한 중국 사람들은 살기가 더 좋아졌다. p.205
이 말도 역시 그렇다. 분배보다는 성장에 초점을 둔 이론이다.

저자들은 인류의 가장 큰 실수는 우리의 상향 이동을 가능하게 하는 동기가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본다. 두려움, 성적 매력, 지위에 대한 관심, 감상의 욕구, 위험의 쾌락, 성공의 욕구, 놀라움의 쾌락, 소속감, 질투, 권세욕, 자유에 대한 애착, 사랑, 행복 등의 감정을 인식했다면 인류의 역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정말 그럴까? 고민해 볼 문제다. 나는 이 저자들의 의견에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인간이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라는 데는 어느정도 동의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인간은 공감능력을 가진 '이타적' 존재라는 것도 믿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간이 이기적이며 그렇게 사는 것이 인간답다고 그런 사회를 만드는 문화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과학은 새로운 이론에 무너질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를 최대한 활용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상향이동하는 나라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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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2 -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인 이야기, 전2권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7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성규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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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사르의 생애를 써나기 위해서는 한가지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내가 이들의 생애를 살펴보는 동안, 두 영웅이 이룩해놓은 업적과 세상 구석구석까지 뻗어 있는 그들의 발자취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자세하게 기록하려 하기보다는, 차라리 가장 기념할 만한 부분들만을 정리하는 태도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그의 공적에 대해 자세히 적지 않고 몇 가지를 빠뜨린 점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허물로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초상화를 그리듯

플루타르코스는 이렇게 영웅전, 아니 비교 열전을 쓰면서 영웅들의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그리는 정성을 보인다. 영웅들이 전쟁터에서 벌이는 싸움의 현장은 마치 옆에서 본 것처럼,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자세하게 그리고 있다. 칼날이 스치는 것, 피가 튀는 것, 말발굽 소리, 환호성 소리 그리고 영웅의 얼굴이 스치는 미소까지 놓치지 않는다. 그는 이 책에서 말했던 것처럼 위대한 업적이나 전쟁보다 오히려 우연한 사건, 사소한 말 한마디, 농담이 영웅의 성격과 성향을 잘 드러내 준다고 믿는다. 그래서 그는 초상화를 그리듯 사람 마음의 움직임을 드러낼 수 있는 행동을 자세히 다루었다.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영웅들-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서로 다른 두 영웅을 비교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이런 비교에서 벗어난 영웅들의 전기도 들어있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상>에는 테미스토클레스, 카밀루스, 피로스, 카이우스 마리우스가 있었고,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하>에는 알렉산드로스, 카이사르 , 포키온과 소카토가 있다. 왜 이들은 비교 열전이라는 책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따로 독립된 장으로 되어 있을까? 다른 영웅들은 잘 모르겠지만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는 감히 비교할만한 영웅을 찾기 어려워서이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해서 플루타르코스의 날카로운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알렉산드로스의 전기에서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편지 대화를 볼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셨고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았지만, 그분으로부터는 보람 있게 사는 방법을 배웠기에 친아버지와 같이 존경한다고 했던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에게 가르쳐 준 심오한 이치들을 책으로 펴냈다는 소식을 듣고 나무라는 편지를 썼다.

선생님께서 친히 구전으로 가르치셔야 할 이론들을 책으로 발표한 것은 잘못하신 일인 것 같습니다. 우리가 가르침을 받은 지식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다 공개해 버린다면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그들을 능가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다른 사람들보다 권력이나 영토로서가 아니라 지식으로서 뛰어나기를 원하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로스의 욕심이 잔뜩 드러나는 편지다. 이런 편지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답이 더욱 걸작이다.

그 지식들은 사실 발표되었다고 말할 수 없소. 왜냐하면 형이상학에 대한 이 책은 내게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읽어 보아도 그 뜻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오.


영토와 권력 이외에도 지식에 대한 욕심이 많았던 알렉산드로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향갑판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잠자리에 들 때에도 언제나 칼과 함께 베개 밑에 두었다고 한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하>에서도 역시 내가 알고 있던 위대한 인물 키케로는 잘 모르던 인물 데모스테네스에게 한 방 먹는다.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에는 꾸밈말이나 우스갯소리가 전혀 없고, 주제에 대해서만 집중되어 있는 무서울 정도의 진지함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피테아스가 비웃은 것과 같은 등잔 냄새가 아니라 그의 깊은 생각과 빈틈없는 기질에서 풍겨 나오는 그의 향기였다.
반면에 키케로의 연설은 농담이 너무 심해서, 자신의 품위까지 깎아내리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그는 법정에서 아주 심각한 문제를 변론할 때도 우스갯소리를 곧잘 했으며, 변론을 부탁한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체면이 깎여도 신경 쓰지 않았다.

플루타르코스는 키케로에 대해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너무 지나치게 많이 하는 겸손하지 못한 사람으로 평한다. 단지 박수를 받고자 하는 욕심이 지나친 것은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라고 하며 위대한 키케로에게 심하게 펀치를 날린다.

난세에는 영웅전을 읽어야

요즘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정치와 경제 부분이 더욱 그렇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을 읽으며 지금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정치인, 경제인들을 떠올려 보았다. 어떤 사람이 영웅전에 나온 인물들의 십분의 일이라도 비슷하게 할 수 있을까? 이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유리하게 읽을까 걱정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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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5-03 2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대한 전기 가운데 나무처럼 님께서 인용해 주신 `편지 내용`을 (천병희 번역,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통해) 인상깊게 읽었더랬습니다. 더군다나 그가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호메로스의 두 서사시뿐 아니라 그리스 비극작품과 희극작품까지 `본국에서 전쟁터까지` 가져오도록 해서 탐독하는 모습도 감동적이었구요. 왜 숱한 사람들이 그토록 알렉산드로스를 칭송하는지를 비로소 자세히 알 수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비교 열전` 형식의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자세히 알고 보니 그 구성이 꽤나 복잡하더군요. `필사본`에 따라 전기에 포함되는 인물도 서로 다르고 구성도 서로 다르기까지 하더군요. 현재 많은 인쇄 출판 편집본들이 따르고 있는 방식에 의하면, `비교 열전`에 담긴 영웅들의 숫자는 정확히 50명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좀 더 자세히 알고 보면 23쌍에 대해서는 인물들을 서로 비교하는 `비교열전`이고, 그 가운데서도 특히 네 쌍에 대해서는 `짝`만 지어져 있고, `비교하는 내용` 자체가 없더군요. 그러니까 예를 들어 알렉산드로스와 카이사르는 서로 `짝`을 이루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두 사람을 비교하는 내용`은 정작 따로 없는 경우인 셈이지요.

필사본에 따른 자세한 차이점들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은 내용을 알고 보면, 정작 일반 독자들은 너무나 복잡해서 자세히 알 필요가 없을 정도인데, 그 가운데 그나마 기본적으로 알아둘 만한 대목 `두 가지`정도만 참고 삼아 여기에 `인용 형식`으로 덧붙여볼까 싶습니다.

* * *

플루타르코스의 시대에 가장 가까운 자료를 보자면 람프리아스의 목록을 들 수 있는데, 그것은 위에서 소개한 것과 순서와 목록에서 차이를 보여준다. 인물들이 모두 50명인 것은 같지만, 이들이 모두 25쌍으로 묶여 있다는 점은 다르다. 그리고 위의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두 인물인 에파미논다스와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가 람프리아스의 목록에는 포함되어 있는 반면에, 갈바와 오토가 목록에서 빠진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 *

23쌍 가운데 19번에는 두 명이 아니라 네 명의 인물(아기스, 클레메네스 / 티베리우스 그라쿠스, 가이우스 그라쿠스)이 들어 있고, 23∼26번까지는 짝을 이루지 않고 한 사람씩이므로 모두 50명이 된다. 짝을 이루는 23쌍 가운데 네 쌍(테미스토클레스-카밀루스, 퓌로-가이우스 마리우스, 알렉산드로스-율리우스 카이사르, 포키온- 小 카토)을 제외하고 나머지 인물들에 대해서는 두 인물을 비교하는 내용이 끝에 간략하게 덧붙어 있다.

- 플루타르코스,『두 정치연설가의 생애』, <작품 해제> 중에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1 -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 50인 이야기, 전2권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6
플루타르코스 지음, 이성규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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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책이 많지 않았던 시골에서 자란 탓에 어른이 되고서야 성장기에 읽어야 한다는, 혹은 다들 읽었다는 책을 볼 수 있었다. 그것도 아직 다 읽어보지 못한 책들이 더 많다. 그러다 보니 고전, 유명한 책에 대한 이상한 관심과 집착이 있다. 더구나 여자라서 그런지(?) 영웅들의 이야기는 더욱 멀리 느껴졌다.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은 들어만 보았지 책표지조차 본 기억도 없다. 한동안은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책이겠거니 했다가 이제야 조금은 틀을 깨고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책에 대한 편견이 좋은 책에 대한 접근을 심하게 방해하고 말았다.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책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자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원제가 '비교 열전'임을 알게 되었다. 로마의 영웅 한 명과 그리스 혹은 스파르타의 영웅 한 명을 비교 평가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 예를 들면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상권에서 아테네의 정치가이며 그리스의 일곱 현인 중 한 사람인 솔론과 로마의 정치가인 포플리콜라를 비교한 부분은 이런 식이다.
 
솔론과 포플리콜라의 관계는 매우 독특하다. 그것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본보기로 모방했다는 것이다. (중략) 만약 솔론이 가장 현명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포플리콜라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겠다. 솔론이 가장 위대하고 완전한 행복으로 원했던 것을 포플리콜라는 성취해냈으며 자신이 죽은 뒤까지 그것을 지켰기 때문이다. (중략) 솔론의 정치는 사실 초기가 더 화려했었다. 그는 어느 누구의 흉내도 내지 않고 누구의 도움도 얻지 않은 채 완전히 혼자의 힘으로 독창적이고 중요한 여러 가지 제도를 만들었다. 그에 비하면 포플리콜라는 만년의 생활이 더 행복했었다. 솔론은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공화제가 허물어지는 것을 죽기 전에 지켜보아야 했지만, 포플리콜라가 만든 제도들은 그가 죽은 뒤에까지 계속 남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이 책은 솔론의 전기를 다루고 그 뒤에 포플리콜라의 전기를 다룬 뒤에 두 사람을 비교하는 장을 따로 두어 비슷하지만 다른 두 사람을 서로 비교하고 있다. 솔론과 포플리콜라의 비교 부분을 읽다 보면 우리에게 너무 유명한 솔론보다 낯설기 그지없는 포플리콜라가 더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전집 상> 권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은 카이우스 마리우스 편이었다.
그의 이야기는 <로마인 이야기>와 <로마의 일인자>를 통해서 많이 익숙해져 있었기에 플루타르코스는 어떻게 평하고 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하지만, 다른 책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마리우스를 보고 있었다. 민중의 대변자로 다가왔던 마리우스를 플루타르코스는 민중들의 눈치를 살피며 인기를 얻고자 하는 인물로 그렸다. 귀족 중의 귀족인 메텔루스라는 인물은 현명하고 신중하다고 평하며 '정의로움이 무엇인지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누구나 메텔루스를 걱정'했다고 말하며 마리우스는 귀족들의 미움을 받았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혈통이 좋은 귀족 출신의 영웅에 대한 평은 좋지만, 그렇지 못한 인물에 대한 평을 상대적으로 박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이렇게 평했을까? 그 이유로 플루타르코스라는 인물이 그리스의 보이오티아의 카이로네아에서 태어났고 이 지역을 대표하는 명문가의 자제로 매우 부유하게 자랐으며 대 로마제정시대에서 가장 훌륭하고 행복한 시기가 시작되는 때에 살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을 해보게 된다. 이 책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을 원래의 모습 그대로 만날 수 있다. 수많은 좋은 글귀들은 인용된 문장에서 보는 것보다 원전이 왜 힘을 갖는지 알 수 있는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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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6-05-03 2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을 완독할 마음으로 책을 고르고 있는데, `현대지성`에서 나온 이 책은 여태 구경조차 해보지 못했네요. 요며칠 사이에 동네서점과 사무실 근처에 있는 서점을 찾아가 봤더니 최근에 개정판으로 나온 세 권짜리 동서문화사판 『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만 있더라구요. 그 책엔 아쉽게도 `주석`이 전혀 없었지만 (제가 다른 책을 통해 이미 읽었던) 몇몇 인물들에 대한 전기 부분을 살펴보니 번역 상태가 별로 흠잡을 데는 없어보이더군요. 그래서 저는 동서문화사판으로 구매할까 마음먹고 있답니다.

그리고, 플루타르코스가 `출신 가문`에 대해 유별난 태도를 취하는 건 그의 다른 저작에서도 발견한 적이 있었습니다. 재미 삼아 그 부분을 인용해 보고 싶네요.

* * *

우선,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관한 얘기로 말문을 여는 게 좋을 듯한데, 나는 훌륭한 자손을 둘 부모가 되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창녀나 첩과 같은 여인들과 함부로 동거하는 일을 삼가라고 권하고 싶네. 왜냐하면 아버지 쪽이든 어머니 쪽이든 태생이 좋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의 천한 출신에 대해 지울 수 없는 수치감을 지니기 때문이지. 뿐만 아니라 이는 일생 그들을 따라다니면서 그것을 이용하길 원하는 자에게 곧바로 비난과 모욕의 화젯거리를 제공해 주네.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는 지혜롭게도 이렇게 읊고 있네.

가문의 주춧돌이 잘못 놓이면,
후손은 꼭 불행해지는 법.

반면에, 아주 보물처럼 여겨지는 것이 고귀한 태생인데, 이러한 사람은 자기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어, 후손을 적자(嫡子)로 낳기 원하는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지. 사물의 속성상, 혈통이 근본적으로 천하거나 가문을 위장하는 사람들은 늘 의기소침(意氣銷沈)한 상태에 있게 되는데, 비극 시인 에우리피데스는 이를 매우 적절히 선언하고 있다네.

남자란 비록 대담할지라도
어머니나 조상의 불명예를 알게 될 때는
언제나 노예처럼 되는 법.

훌륭한 양친을 가진 아이들은 물론 그 때문에 기쁨과 긍지로 가득 차 있네. 아무튼 사람들은, 테미스토클레스의 아들인 클레오판토스가 종종 많은 사람에게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항시 아테나이 사람들이 동의해 주었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의 어머니 역시 원했고,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테미스토클레스 역시 원했고, 테미스토클레스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모든 아테나이 사람들이 원했기 때문이라고 선언했다고 말한다네.

(중략)

우리 조상이 간과하지 않은 한 가지에 대해 말해 주겠네. 무엇인가 하면, 자손을 위해 부인에게 다가가는 남편은 술을 전혀 마시지 않거나 아주 조금 마셨을 때에만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왜냐하면 아버지가 취중에 어쩌다가 낳게 된 아이들은 술을 좋아하기 십상이고 과음을 하기 때문이라네. 그러므로 디오게네스는 감정적이면서 정신 나간 한 젊은이를 보고,

젊은이! 자네를 가질 때 자네 아버지는 분명 술에 취해 있었을 것이네.

라고 말했지.


-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 <자유인의 자식은 어떻게 교육해야 하는가> 중에서
 
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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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공부할 권리>-책으로부터 삶까지

2016.04.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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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요즘 나의 삶은 사색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생활 속에 허덕이고 있다. 일어나고 씻고 출근하고 일하고 먹고, 기승전 생활이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책 속에 푹 빠져서 그 감동에 젖어보기가 잘 되지 않는다.
정여울 작가의 <공부할 권리>를 일찍이 받아두고도 이제야 읽었다. 잊었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익숙한 목소리, 편한 이야기, 그리고 숨어있던 내 감각을 깨우는 문장들.
책 몇 권을 싸 들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이 일상을 벗어나서.
하지만 정여울 작가의 글을 읽다 보니 내가 발 디디고 사는 이곳에,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고 사색을 하고 변화해야 한다. 책이라는 멋진 친구의 손을 잡고. 그리고 책을 통해 만난 고목 같은 스승들의 도움을 받아 절망과 질곡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작가가 만난 스승들-융, 손택, 그리고 책들

작가가 꼽는 첫 번째 스승은 바로 카를 구스타프 융이다.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에서 융은 현대 문명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로 '악으로부터의 도피'를 꼽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최근 막 닥뜨린 세월호, 위안부 등의 문제가 떠올랐다. 우리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며 '피로감' 운운했다. 그 '피로감' 운운하는 언론의 소리에 움츠러들기도 했다. 우리는 순간의 고통을 망각하며 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피한 것이다. 작가는 더 이상 악으로부터 도망칠 것이 아니라 악의 뿌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엄청나게 소란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한 익명의 대중성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싸워야 할 악의 뿌리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전력투구할 때 구원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작가가 꼽는 또 한 명은 멘토는 수전 손택이다. 손택은 아무리 험악한 상황에서도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통해 '우선 나 자신이 되는 법'을 가르쳐 준 따스한 멘토라고 한다. 작가는 소설가 손택보다 사라예보 내전 당시 죽음의 공포에 맞서며 겁에 질린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던 연극 연출가 손택을 정말 좋아한다.

이방인, 뫼르소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작가는 <이방인>을 여러 번 읽었지만, 왜 그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왜 죽였을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나의 오만한 태도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부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인간의, 인간을 향한 폭력이 아닐까요.


뫼르소가 사람을 죽이는 대목이 바로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알 수는 없지만, 항상 젊은 마음을 갖고 살고 싶다. 작가는 젊게 사는 비결을 '삶에 대한 배움의 의지'라고 말한다. 이 배움은 꼭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에 있다. 오늘 내가 만나는 키 작은 꼬마나 아침에 보았던 이름 모를 들꽃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편견 없이 보았다면.

100세쯤 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더 이상 궁금한 건 없어지지 않을까? 나의 무의식 속에 있는 이런 편견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어르신들은 기쁘게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삶에 대한 배움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젊음의 비결임을. 배움이 꼭 책 속에 있지만은 않지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모든 사건, 타인, 사물, 공간들이 우리에게 스승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책 없는 세상은 곧 낯선 사람의 운명을 내 삶 속으로 초대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세상이 아닐까요. 독서는 단지 지식을 흡수하는 두뇌 운동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몸의 실천이고, 새로운 인연의 네트워크를 창조하는 사람의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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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역사를 배운다. 그것도 먼 옛날 인류가 시작되던 때부터. 하지만, 그 이야기는 그저 몇 단어로 남는다. 오스트랄로 피테쿠스-호모에렉투스-네안데르탈인(호모사피엔스)-크로마뇽인(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현생 인류의 시작, 이렇게. 그 단어를 들으면서 이들의 삶을 상상해본 적이 있기는 했을까?
갑자기 떠오르는 영화가 한 편 있다. <불을 찾아서> .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싸움을 다룬 영화였는데, 알 수 없는 소리(음성이라고 하기 힘든)와 몸짓으로 소통하던 원시인류의 생활을 그린 영화였다.
그 뒤로 오랫동안 나는 인류의 시초에 대해 고민해 본 적도 상상의 나래를 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나이에 그런 인류의 시작에 있었던 십 대 소녀를 그린 작가가 있다. 진 M 아우얼. 작가는 나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놀라운 상상력으로 눈에 보이듯이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의 생활을 그렸다.
작가는 전통에 얽매여 사는 네안데르탈인의 씨족과 지진으로 가족을 잃은 크로마뇽인의 어린 소녀를 만나게 한다. 이 어린 소녀가 만난 동굴곰족은 아주 완고한 전통을 따르는 집단이다.

이들 씨족은 변하지 않는 전통에 따라 살았다. 태어나면서부터 부름을 받고 정령의 세계로 돌아갈 때까지 삶의 모든 면면들이 과거의 전통에 얽매여 있었다.
그러나 배울 여지도, 성장할 가능성도 없는 종족은 본질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도태되는 게 당연하다. 그들은 이미 다른 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는 지점을 지나쳐버렸다. 또 다른 발전의 가능성은 더 새로운 존재, 자연의 또 다른 실험을 위해 남겨졌다.
더 새롭고, 더 젊은 종족, 생명력이 넘치고 더 역동적인 인간이었다. 두뇌에 기억으로 새겨져있는, 완고한 전통의 지매를 받지도 않았다. 아이의 두뇌는 다른 경로를 따랐다. 높게 튀어나온 이마에 위치한 전두엽 덕분에 미래를 상상할 수 있는 아이는 다른 관점에서 사물을 이해했다. 에일라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자신의 의지에 따라 새로운 형태로 빚어 씨족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생각들로 변화시켰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에일라의 종족이 멸망해가는 옛 인류를 대체할 운명이었다.

동굴곰족의 치료사 이자가 발견한 낯선 여자 아이, 에일라는 다른 종족의 아이였다. 이 두 씨족의 차이를 작가는 아주 흥미롭게 그렸다. 특히 재미있는 부분은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에일라는 동굴곰족과는 달리 쭉 뻗은 다리와 돌을 멀리, 그리고 정확히 던질 수 있는 팔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수영을 좋아하고 잘 하는 능력을 타고났다. 에일라가 동굴곰족에게 가져온 활력과 또 긴장감은 무척 재미있다. 남자들을 신처럼 떠받들고 살고 있는 동굴곰족에게 남자보다 뛰어난 능력이 주머니 속 송곳처럼 삐죽이 드러나버리는 에일라는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다음 족장이 되어야 하는 브라우드에게는. 하지만 타고난 영리함으로 에일라는 극복해 나간다. 이야기가 흘러갈수록 에일라는 성장하게 되는데 사냥을 하는 아이인 에일라는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무기를 사용하는 여자에게 이 동굴곰족은 죽음이라는 벌을 내리기 때문이다. 에일라의 사냥 이야기로 끝나는 1권에 이어질 이야기가 무척 궁금하다.

프랑스의 한 동굴에서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의 유골과 이를 토대로 추정한 모습.


▲네안데르탈인(왼쪽)과 크로마뇽인(오른쪽). 오랜 기간 인류는 보다 야만적인 네안데르탈인이 우리의 직계 조상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크로마뇽인이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으리라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 결과는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 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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