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할 권리 - 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정여울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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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공부할 권리>-책으로부터 삶까지

2016.04.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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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위 있는 삶을 위한 인문학 선언

요즘 나의 삶은 사색과는 거리가 멀다. 그저 생활 속에 허덕이고 있다. 일어나고 씻고 출근하고 일하고 먹고, 기승전 생활이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책 속에 푹 빠져서 그 감동에 젖어보기가 잘 되지 않는다.
정여울 작가의 <공부할 권리>를 일찍이 받아두고도 이제야 읽었다. 잊었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반가웠다. 익숙한 목소리, 편한 이야기, 그리고 숨어있던 내 감각을 깨우는 문장들.
책 몇 권을 싸 들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이 일상을 벗어나서.
하지만 정여울 작가의 글을 읽다 보니 내가 발 디디고 사는 이곳에,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해답을 찾고 사색을 하고 변화해야 한다. 책이라는 멋진 친구의 손을 잡고. 그리고 책을 통해 만난 고목 같은 스승들의 도움을 받아 절망과 질곡의 문턱을 넘어야 한다.

작가가 만난 스승들-융, 손택, 그리고 책들

작가가 꼽는 첫 번째 스승은 바로 카를 구스타프 융이다. <무엇이 개인을 이렇게 만드는가>에서 융은 현대 문명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로 '악으로부터의 도피'를 꼽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최근 막 닥뜨린 세월호, 위안부 등의 문제가 떠올랐다. 우리는 이제 그만 듣고 싶다며 '피로감' 운운했다. 그 '피로감' 운운하는 언론의 소리에 움츠러들기도 했다. 우리는 순간의 고통을 망각하며 악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피한 것이다. 작가는 더 이상 악으로부터 도망칠 것이 아니라 악의 뿌리를 탐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엄청나게 소란스럽지만 어쩔 수 없이 무기력한 익명의 대중성 뒤로 숨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싸워야 할 악의 뿌리를 향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전력투구할 때 구원은 시작될 수 있습니다.

작가가 꼽는 또 한 명은 멘토는 수전 손택이다. 손택은 아무리 험악한 상황에서도 지금과 다른 세상을 꿈꿀 수 있는 자유를, 정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를 통해 '우선 나 자신이 되는 법'을 가르쳐 준 따스한 멘토라고 한다. 작가는 소설가 손택보다 사라예보 내전 당시 죽음의 공포에 맞서며 겁에 질린 사라예보 사람들에게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던 연극 연출가 손택을 정말 좋아한다.

이방인, 뫼르소에 대한 이해, 인간에 대한 이해

작가는 <이방인>을 여러 번 읽었지만, 왜 그가 살인을 저질렀는지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왜 죽였을까?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고민했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에 대한 나의 오만한 태도라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분석하고 해부하고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인간의, 인간을 향한 폭력이 아닐까요.


뫼르소가 사람을 죽이는 대목이 바로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받아들이는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앞으로의 삶을 생각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살지 알 수는 없지만, 항상 젊은 마음을 갖고 살고 싶다. 작가는 젊게 사는 비결을 '삶에 대한 배움의 의지'라고 말한다. 이 배움은 꼭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나는 모든 것에 있다. 오늘 내가 만나는 키 작은 꼬마나 아침에 보았던 이름 모를 들꽃에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편견 없이 보았다면.

100세쯤 된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더 이상 궁금한 건 없어지지 않을까? 나의 무의식 속에 있는 이런 편견이 옳지 않다는 것을 어르신들은 기쁘게 깨우쳐 주십니다. 우리가 죽는 날까지 삶에 대한 배움의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젊음의 비결임을. 배움이 꼭 책 속에 있지만은 않지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모든 사건, 타인, 사물, 공간들이 우리에게 스승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책 없는 세상은 곧 낯선 사람의 운명을 내 삶 속으로 초대할 기회를 영원히 잃어버리는 세상이 아닐까요. 독서는 단지 지식을 흡수하는 두뇌 운동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몸의 실천이고, 새로운 인연의 네트워크를 창조하는 사람의 실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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