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 - 뉴욕타임스 부음 기사에 실린 지상의 아름다운 별들에 관한 기록
유민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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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들어갈수록 죽음에 대한 이야기에 관심이 갈 수 밖에 없나보다. 전에는 남의 일 같기도 하고 멀게만 느껴졌던 기사들이 이제는 눈길을 끌고 있으니. 죽음 또한 삶의 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행장이라는 익숙치 않은 제목을 단 책을 읽었다. 행장을 지식백과에서 검색해 보았다.

  다음과 같이 나와 있었다.

"행장은 죽은 사람의 문생이나 친구, 옛날 동료, 아니면 그 아들이 죽은 사람의 세계(世系)·성명·자호·관향(貫鄕)·관작(官爵)·생졸연월·자손록 및 평생의 언행 등을 서술하여 후일 사관(史官)들이 역사를 편찬하는 사료 또는 죽은 사람의 명문(銘文)·만장·비지·전기 등을 제작하는 데에 자료로 제공하려는 것이 기본 목적이다.

행장이란 죽은 사람의 행실을 간명하게 써서 보는 이로 하여금 죽은 사람을 직접 보는 것처럼 살펴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사명이 있다. 이러한 면에서 보면 행장은 전기(傳記)보다는 잡다한 이론을 피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 하겠다."

 

 익히 들어본 바 있는 서포 김만중의  '윤씨행장'정도로 행장을 이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이 만들어진 배경에 눈길이 갔다. 죽음을 통해 현재의 나를 되돌아보자는 의미와 그냥 아무 준비없이 저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삶의 마침표와 죽음의 출발점을 기록하자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는 저자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동안 현재의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읽어가면서 행장의 주인공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지금 현재 나의 삶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행장에서 사랑을 읽으면 지금 나의 사랑과 행복은 어떤 모습이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누군가가 인류의 평화를 위해서 일했다는 글을 읽다보면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소소한 일인지 하는 생각에 빠지게 했다. 

 미국의 경우 중,고등학교 작문수업에 많이 등장하는 테마가 부음기사를 쓰는 것이라고 한다. 죽음을 입에 올리기를 꺼리고 있던 입장에서 봤을 때 조금은 무겁고 생각하기 싫은 주제일 듯 했다. 그렇지만 죽음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계기가 될 듯 하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대한 철학적인 사고를 갖게 해 줄 주제라고 생각한다. 

 

 행장을 읽고 나서 우리나라 아침신문에서 부고란을 찾아보았다. 죽은 사람의 이름과 행적보다 산사람의 직책이 길다. 심지어 사위를 잘 얻었는지 누구누구의 장인,장모라고 적혀있기도 했다. 부음의 주인공인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에게 잘 보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한 조문란은 씁쓸하기만 했다. 

 

 부활을 믿는 사람들에게 꿈을 준 시신냉동전문가인 로버트 에틴거의 이야기나 노벨상 수상자로 발표되기 3일전 세상을 떠난 안타까운 랠프 스타인먼의 이야기는 재미도 있고 다양한 삶을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라 흥미로왔다. 아우슈비츠에서 탈출한 최초의 연인이었던 예지 비엘레츠키의 기사도 또한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으로 나의 행장을 생각해 보았다. 어떤 모습으로 기록이 될까? 지금 나의 모습이라면 조금 실망스럽겠다 싶다. 딱히 기록할 것도 없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그런 일들도 없으니..... 앞으로의 삶은 조금 더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면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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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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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해전 최명희의 혼불을 읽고 한참동안을 책에서 빠져나오지 못해서 힘들었던 적이 있었다.그 세밀한 묘사에 여성적이고 감성적인 서사에 끌려서 오래도록 그 이야기속을 헤매고 있었다. 그리고 혼불문학상 수상이라는 말에 끌려 이 책을 만났다. 제목이 주는 하이틴로맨스같은 느낌의 거부감을 뒤로 하고 오로지 혼불문학상수상이라는 것에 과감한 선택이었다. 

 책을 손에 쥔 순간 이야기속으로 끌려들어가듯 읽어내려갔다. 지루하지 않고 흐르는 이야기와 개성이 강한 등장인물들의 매력에 기어이 다 읽고 나서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사람이라면 누구나 익히 들어서 알고 있을 바리데기 신화를 차용해서 만든 이야기지만 바리데기 설화와는 사뭇 다르다.

 바리데기는 일곱번째 따로 태어나 버려졌지만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생명수를 구해 온다는 설화속 인물이다. 

 이 소설속 바리는 산파의 욕심과 연탄공장 사장부인의 아들욕심에 의해 버려진 아이이다. 산파는 아들을 낳지 못해 이혼을 당한 여자로 약초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산파역을 하면서 자신이 낳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욕심을 가진다. 그러다보니 이 일곱번째 아이를 가져오기로 결심한다. 해서 "일곱째는 신탁을 받은 아이야. 엄마 숨을 거머쥐고 태어났어. 이생에 연이 없는데 엄마 욕심에 애를 끌어당긴거야."라고 하며 "신탁을 받은 아이는 위험해.엄마는 아기에게 진 빚을 호되게 갚으며 살게 될 거야. 호적에 올리지 말고 내다버려. 한 달만 끼고 있어도 집안이 기울거야. 아빠가 앓아 눕고 연탄공장이 망하거나 끝장을 보던가. 엄마가 나자빠지던가. 불쌍한 우리엄마." 이렇게 말하며 결국 아이를 데리고 멀리 인천으로 떠난다. 어쨋든 산파의 욕심과 아들을 낳지 못한 여인의 불안에 의해서 버려진 아이가 된 바리는 오로지 자신의 것으로만 데리고 있으려는 산파에 의해 출생신고도 되지 못해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사회생활에 필요한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산파의 친구 토끼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소설 속 바리는 삶에 힘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 싶을 때 죽음으로 인도해 주는 사람이다. 산파에게서 배운 약초에 대한 지식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죽음에 편하게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준다. 그녀는 산파와 청하사 할머니, 그리고 인천 집장촌 옐로하우스에서 일하는 연슬언니를 죽음으로 인도해준다. 그렇지만 거기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다가 돈을 받도 하얀 대문집 할아버지를 죽음으로 인도해주게 된다.

 

 바리가 살고 있는 곳에 사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조금씩은 빗겨나 있다. 주류도 아니고 흔히 만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이들도 아니다. 굴뚝을 청소하는 바리를 사랑하고 바리와 결혼하게 되는 청하, 어릴때 참깨자루에 넣어져 한국으로 밀항한 나나진, 옐로하우스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임신중절을 도와주는 산파할머니 등. 모두들 이런 저런 형태로 버려진 인물들이다. 이들은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끌어주기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바리가 사는 삶은 버려진 속에서도 사랑을 찾고 사랑을 일구는 삶이지만 그 사랑을 잃게 된다. 사랑하는 청하의 죽음.

 가슴아프게 읽히는 부분이다. 행복한 결말이었으면 좋겠지만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이 힘든 사람들은 더 힘들게 살아가고 희망을 빼앗기고 있다. 바리는 죽음이 얼마남지 않은 괴로워 하는 토끼할머니를 죽음으로 인도하고 청하의 아이를 데리고 다시 돌아오려고 한다.

 

 바리가 울음을 참고 다시 돌아오듯이 우리 또한 삶의 질곡을 견디고 또한 삶의 현장에 발을 딛고 서 살아가고 있다. 

 읽는 내내 가슴이 묵직해졌다가 살포시 웃었다가 했다. 혼불문학상을 받을 만한 괜찮은 작품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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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늑대 - 괴짜 철학자와 우아한 늑대의 11년 동거 일기
마크 롤랜즈 지음, 강수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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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파스칼은 말했다. 과연 나는 생각하는 갈대일까? 

요즘 우리는 생각을 멈춰버린 듯 하다. 아니 사색이란 단어를 잃어버렸다고 해야겠다. 우리는 생각하고 고민하지 않고 나 자신에게 묻는 일조차 하지 않는다. 궁금한 것은 인터넷검색만 하면 해결된다. 심지어 고민조차도. 

정보의 검색과 조작에는 능숙한 우리지만 우리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과연 얼마나 하고 살까? 

이 책의 저자는 철학교수이다. 아마도 많은 철학이론을 알고 있을 것이고 많이 생각하고 또 많은 글을 써서 생각을 다듬는 작업도 할 것이다. 그런 저자가 늑대를 키우게 된다. 이 저자가 말하듯이 이 책은 늑대와의 삶을 기록한 늑대와 함께 쓰는 자서전이다. 그러나 철학자답게 늑대로부터 실존적 인간을 만난다. 이 세계에 던져진 인간은 비용과 편익의 관점에서만 세상과 다른 관계를 보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계량화하고 계산을 한다. 늑대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코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물론 말로 할 수는 없다. 늑대와의 생활에서 철학자가 느낀 바이다.) 진정한 가치는 잴 수도 거래할 수도 없는 것이고 하늘이 두쪽나더라도 옳은 것은 해야한다. 그런 관점에서 보는 인간의 모습은 늑대로부터 배워야 하는 거다.

철학자와 늑대의 생활에서 내가 기대한 바(늑대를 통한 힐링? - 흔히 말하는 동물과의 교감이 가져다 주는 마음의 위안,위로 뭐 이런 걸 상상했었다.)와 다르게 철학자다운 많은 철학이론과 그 이론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 하고 있다.

니체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대신 통제해 줄 누군가를 빨리 찾아야 한다는 것은 엄연한 진실이다"라는 말도, 사르트르의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철학적 명제에 대한 설명또한 이야기속에서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고 있다.

 얼마전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었다. 그의 책은 사랑 (뭐 여러 인간관계중 하나의 감정이겠다)에 대한 철학적 고찰,분석을 했다. 이 책을 그 알랭 드 보통의 책과 흡사하다. 우리가 그저 스쳐지나갈 수 있는 동물과의 교감에서 철학적 고찰, 분석을 한다는 것과 그 자연스런 설명. 

단지 알랭 드 보통은 사람과의 관계속에서 철학을  끄집어 내었다면 마크 롤랜즈는 영역을 확장해 늑대에서 알게 된 것이 조금 다를 것이다.

 아마 이 책은 동물과의 교감으로도 읽을 수 있겠고, 한 인간의 자서전으로도 읽을 수 있겠지만 난 일반인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철학서라고 생각한다.철학은 설명으로 될 수 없는 깨달음이 있어야 하는 학문이라면 이러한 이야기를 통한 깨달음이 일반인에게는 더욱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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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끝날 무렵의 라 트라비아타
이부키 유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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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나이가 들어도 낭만적인 사랑을 꿈꾸나보다. 이 책의 첫페이지에 나오는 글에 뻑(?)가서 잡은 즉시 읽기 시작해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에 책을 손에 놓지 못하고 다 읽고 나서야 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여름의 기억은 몸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바람소리, 하늘의 빛깔로 눈길이 자주 갔다.

  맛이나 냄새도 즐길 줄 알게 되었고

  어느새 일상에는 윤기가 돌았다.

 

  지금도 파도소리가 들려온다.

 

주인공들의 나이는 39세,책의 뒷부분 남자주인공 테쓰지가 키미코를 껴안으려 하자 붉은 동백(생리중)이라서 안된다고 말하면서 곧 끝나려는 신호가 올거라고 여름의 끝, 그런 느낌을 느낀다는 말과 함께 나오는 글. 


 인간에게는 네 가지 계절이 있다고. 푸른 봄, 붉은 여름, 하얀 가을, 검은 겨울. 10대가 푸른 봄,즉 청춘이고, 20대부터 30대가 붉은 여름, 마흔,쉰이 하얀 가을, 마지막이 검은 겨울이죠. 마흔이 넘으면 가을이 되는 거예요. 순식간에 식어버리는 사람도 있겠지만 서서히 식어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언제까지나 지속되는 여름은 없어요. 서른아홉,그야말로 여름의 끝이죠. 


 그런 서른의 끝에 선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난다. 그렇지만 둘은 음식으로 말하자면 테쓰지는 감히 손에 넣을 수 없는 고급과일인 멜론이고, 페코짱이라 불리는 키미코는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킨코참외이다.테쓰지는 은행원이고 많이 배웠고 클래식에 대한 지식도 풍부한 사람이지만 어머니의 죽음과 아내의 외도와 일터에서의 문제로 어디에서도 설자리가 없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다. 페코짱은 아들와 남편의 죽음을 겪었지만 밝고 상냥하여 사람들이 행운의 마스코트로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배우지 못함에 위축되어 있고 아직 아들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이 테쓰지가 어머니유산을 처리하면서 마음의 병때문에 얻은 휴가기간동안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가 클래식의 선율과 바다의 노래와 음식의 향기로움처럼 펼쳐진다. 


 둘의 차이처럼 감각과 취향도 다르고 어느 것 하나 닮은 점이 없어보이지만 이들은 조금씩 가까워진다.

 음식- 인스턴트를 먹던 테쓰지는 페코짱이 해주는 음식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느끼면 마음을 열게 된다.

 마사지- 딱딱하게 굳은 등과 돌려지지 않는 목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던 테쓰지는 테코짱의 마사지로 부드러워             지고 목도 자연스럽게 움직이게 되며 편안한 잠을 이룰 수 있게 된다.

 클래식- 피아노를 치던 아들의 죽음으로 아들이 좋아하던 음악이 궁금하던 페코짱에게 클래식을 하나씩 알려주는 테쓰지.

 둘 사이에는 조금씩 비슷한 점을 공유하며 드디어 비밀나누기를 통해 더욱 가까워진다. 아들과 남편의 죽음을 알려주고, 아내의 외도와 마음의 병을 고백하면서 서로 감추고 꾸미지 않는 사랑, 있는 그대로 나를 보여줄 수 있는 담담함이 있는 사랑을 만들어 간다.

이들의 만남은 사랑과 우정의 어느 중간부분에 있는 듯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영원하고 정열적인 사랑이 있다고 믿었던 20대와는 달리 사랑의 모습은 이제는 색깔도 모양도 그때와 다르다. 무어라 딱히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머리를 끄덕이는 게 아니라 가슴이 울리는 책읽기였다. 이제 편안한 사랑도 있음을 아는 나이가 되었기에 같은 공간에 산다는 것이 나를 버리고 상처를 보듬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아는 그런 시기가 되었기에 이 책은 더욱 마음에 와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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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과 이야기 바다 문학동네 청소년 14
살만 루시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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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시'라는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 워낙 전세계적인 뉴스거리여서 들어 본 적은 있는 무지한 독자가 운 좋게 이 작품의 저자인 살만 루시디의 소설 책 한권을 만났다. 청소년소설이라 다소 유치해보이는 표지의 이 책은 어른인 나에게는 그닥 흥미롭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어린왕자>가 그렇듯이 우화가 들려주는 현실이야기는 곱씹어 생각해 볼 거리를 주었다. 우리나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동화적인 스토리로 아라비안 나이트나 피터팬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흥미를 주면서도 알게 모르게 토양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 될 듯 싶다.


 알리프바이(문자)나라에 슬픈 도시,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슬퍼서 이름도 잊어버린 이 도시에 하룬이라는 행복한 소년이 산다.하룬은 이야기꾼 라시드 카리파의 외동아들이다.라시드는 유쾌한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 뿐아니라 암소들,원숭이,앵무새들까지 구름처럼 몰려들어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날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들의 한마디에 이야기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곳에 사는 지도자의 요청으로 이야기를 하러 떠나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이 도시의 지도자 하지마안은 자신에 대한 즐거운 이야기와 칭찬하는 이야기로 표를 모아 또 다시 당선되고자 한다.


 모든 이야기의 원천인 상상력의 바다를 봉쇄하려는 독재자와 싸우는 라시드와 하룬과 수다족의 모험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정도로 속도감있게 펼쳐진다. 수다족과 싸우는 잠잠족(침묵이라는 뜻)의 대결, 수다족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유머와 진지함을 넘나드는 글은 읽는 내내 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족속들 중 최고는 잠잠족이라는 부족일 것이다. 침묵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며 심지어 입을 꿰매버리는 벌을 내리는 부족이다. 이 잠잠족은 해가 없는 어둠속에서만 제대로 살 수 있는 족속들이었다. 결국 침묵속에 서로 다른 의견들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수다족에게 멸망을 당한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전 PD수첩의 방송분이 법원에서 내려진 판결과 기자들의 해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언론사들의 파업소식, 대통령과 정부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위해 문제점이 드러난 사장을 연임시키려는 의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메이저 언론사,그리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우리 국민들.

 

루슈디가 <악마의 시>로 인해 은둔과 망명생활을 하던 시기에 아들 자파르(11세)에게 읽어줄 이야기로 지은 것이라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어서 마음이 아프지만 좋은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언론과 창작의 자유는 하룬과 라시드와 수다족이 한 것처럼 싸워서 가져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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