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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룬과 이야기 바다 ㅣ 문학동네 청소년 14
살만 루시디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악마의 시'라는 작품을 읽은 적은 없지만 워낙 전세계적인 뉴스거리여서 들어 본 적은 있는 무지한 독자가 운 좋게 이 작품의 저자인 살만 루시디의 소설 책 한권을 만났다. 청소년소설이라 다소 유치해보이는 표지의 이 책은 어른인 나에게는 그닥 흥미롭지 않을거라고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어린왕자>가 그렇듯이 우화가 들려주는 현실이야기는 곱씹어 생각해 볼 거리를 주었다. 우리나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동화적인 스토리로 아라비안 나이트나 피터팬 혹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흥미를 주면서도 알게 모르게 토양이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품이 될 듯 싶다.
알리프바이(문자)나라에 슬픈 도시,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슬퍼서 이름도 잊어버린 이 도시에 하룬이라는 행복한 소년이 산다.하룬은 이야기꾼 라시드 카리파의 외동아들이다.라시드는 유쾌한 이야기를 하고 사람들 뿐아니라 암소들,원숭이,앵무새들까지 구름처럼 몰려들어 들을 정도였다. 그러나 어느날 어머니가 집을 나가고 아들의 한마디에 이야기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아버지와 아들은 다른 곳에 사는 지도자의 요청으로 이야기를 하러 떠나면서 모험이 시작된다. 이 도시의 지도자 하지마안은 자신에 대한 즐거운 이야기와 칭찬하는 이야기로 표를 모아 또 다시 당선되고자 한다.
모든 이야기의 원천인 상상력의 바다를 봉쇄하려는 독재자와 싸우는 라시드와 하룬과 수다족의 모험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정도로 속도감있게 펼쳐진다. 수다족과 싸우는 잠잠족(침묵이라는 뜻)의 대결, 수다족의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름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 유머와 진지함을 넘나드는 글은 읽는 내내 피식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이 책에 나오는 여러족속들 중 최고는 잠잠족이라는 부족일 것이다. 침묵을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고 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하며 심지어 입을 꿰매버리는 벌을 내리는 부족이다. 이 잠잠족은 해가 없는 어둠속에서만 제대로 살 수 있는 족속들이었다. 결국 침묵속에 서로 다른 의견들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수다족에게 멸망을 당한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나라의 언론과 표현의 자유라는 문제가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얼마전 PD수첩의 방송분이 법원에서 내려진 판결과 기자들의 해고,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언론사들의 파업소식, 대통령과 정부의 입맛에 맞는 방송을 위해 문제점이 드러난 사장을 연임시키려는 의도, 자신들이 원하는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 메이저 언론사,그리고 침묵을 강요당하는 우리 국민들.
루슈디가 <악마의 시>로 인해 은둔과 망명생활을 하던 시기에 아들 자파르(11세)에게 읽어줄 이야기로 지은 것이라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읽어낼 수 있어서 마음이 아프지만 좋은 책을 만났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했다.
언론과 창작의 자유는 하룬과 라시드와 수다족이 한 것처럼 싸워서 가져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