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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라스뮈스 - 광기에 맞선 인문주의자
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종인 옮김 / 연암서가 / 2013년 8월
평점 :
내가 책을 선택할 때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 선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오로지 저자때문에 읽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번의 경우는 오로지 저자인 요한 하위징아때문에 읽게 된 경우다.
<중세의 가을><호모 루덴스>로 만난 하위징아는 이해하기 힘든 면도 많았지만 곳곳에서 발견되는 놀라운 문장과 재미에 몰라도 읽게 되는 매력적인 글을 쓰는 작가였다.
그런 이유로 그다지 큰 관심이 없었던 단지 고등학교 때 <우신예찬>을 썼던 에라스뮈스라는 단 한줄로만 알고 있는 <에라스뮈스>를 읽게 되었다.
그래서 에라스뮈스에 대한 어떤 정보도 편견도 없이 읽게 되었던 이 책은 종교와 사상에 대한 많은 서술을 만나게 되었지만 그 내용을 다 이해하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저 하위징아는 이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보았다.
하위징아도 책의 마지막에 말했듯이 그의 저작 상당수가 이제 읽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는 위대한 학자지만 실패로 끝난 것처럼 보인다.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화석이 되어버린 인물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 책에서 만난 에라스뮈스는 너무 허약하여 시대를 감당할 수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그렇지만 그는 비록 라틴어라는 수단을 통해서였지만 쉬운 글쓰기방식을 도입하여 각종 모국어의 스타일에 영향을 주고 근대정신의 선구자가 되어,루소,헤르더,페스탈로찌에게 영향을 주었다.
에라스뮈스의 사상은 동시대인들의 가슴에서 커다란 반향을 이끌어냈고, 또 문명의 진보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를 역사상의 영웅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 처럼 보인다. 그가 더 높은 정신적 고지에 오를 수도 있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그의 성품이 그의 사상을 뒷받침해 주지 못한 탓이 아닐까?하고 하위징아는 말한다.
에라스뮈스는 자신을 가리켜 아주 단순명료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의 성품은 복잡다단한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순수한 사람이었다.와인의 순도를 속이는 술장수나 음식에 다른 것을 섞는 식료품상을 누구보다도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답답한 공기와 냄새나는 물건을 병적일 정도로 싫어했다.특히 고물상과 생선가게를 싫어했다고 한다.
감기에 약하고 신장결석에 괴로워 했던, 추위,바람,안개를 잘 견디지 못하고 중키에 아담한 몸집에 흰 얼굴,금발 푸른 눈,가는 목소리를 가진 그를 상상해 보는 것은 하위징아의 재미있는 표현덕분에 머리속에 잘 그려진다.
스스로 소심하다고 말하는 그는 오히려 그것을 하나의 미덕으로 바꾸어 자랑하기까지 한다. 자기애가 그 정반대인 겸손함과 아슬아슬하게 공존하는 모순을 가진 에라스뮈스를 하위징아는 잘 표현해 내고 있었다.
하위징아의 <에라스뮈스>는 일방적으로 칭송하는 성인전유의 전기가 아니며,에라스뮈스의 여러가지 결점과 부족한 점에 대해 엄정한 비판을 가하며 입체적인 초상화를 제시한다.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우신예찬>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흥미있는 부분이었다.
토머스 모어와 대화를 하면서 나누게 될 즐거운 농담을 기대하면서 에라스뮈스의 마음속에서는 상쾌한 유머와 현명한 아이러니가 가득 찬 책,모리아이 엔코미움,즉 <우신예찬>이 구상되었다. 모리아이 엔코미움은 어리석음의 예찬이라는 라틴어이다. 그러나 주격인 모리아를 모어라고 버면 토머스 모어의 예찬이라는 뜻도 된다.
이 세상은 어디에서나 어리석음이 저질러지는 무대라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인생과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필수적인 요소이다. 총명한 정신에 유머가 깃듦으로써 아주 심오한 정신이 광채를 발할 수 있었다. 우신예찬을 통해 에라스뮈스는 오로지 그 자신만이 이 세상에 줄 수 있는 것을 주었다.
하위징아의 눈에는 에라스뮈스는 그렇게 완벽한 이론가는 아니었나 보다. 그의 생각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중세 신학과 철학에는 분명 그가 지적한 대로 머리카락의 두께를 재려는 사소함이 있었지만 동시에 그 미묘한 차이와 구분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에라스뮈스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다. 그가 고상한 분노와 세련된 조롱으로 교회의 관습과 의례를 공격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런 자신이 완벽하게 이해하지도 못하는 스콜라 신학에 대하여 오만한 냉소주의로 비난한 것은 잘 납득하기가 어렵다. 그 성직자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찔러대는 조롱은 근거없는 조롱인 것이다." 였다.
또한 에라스뮈스의 주저하고 도망가는 태도를 숨김없이 알려주고 있다. 한편으로는 루터를 부인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루터를 승인하면서도 주저하는 태도를 보인 에라스뮈스를 그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그것은 그의 인품의 비극적 결함,그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를 거부하거나 아니면 내리지 못하는 그런 성격때문이다.
에라스뮈스가 직접 한 말인 "모든 사람이 순교를 감당할 정도로 강닌한 것은 아닙니다.대혼란이 벌어진다면 내가 성 베드로의 사례를 따르지 않을가 두렵습니다."라는 말처럼 그는 노년기에 보수 반동의 길로 들어선다.
다소 어렵지만(배경지식이 없어서) 그럼에도 그 부분에 매달려 읽지 않는다면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