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을 읽고 온 딸 질문에 엄마가 타임머신을 타고 있었다.
_엄마는 24년 전에 뭘 하시고 계셨나요?
_교양으로 불문학 공부를 하고 있었어. 프랑스 시인 폴 베를렌(Paul Verlaine)의 시구 “네 젊음을 갖고 뭘 했니?”(Dis, qu'as-tu fait, toi que voilà,/De ta jeunesse?)를 생각나게 하네. 이 시구가 들어가는 시에 프랑스 작곡가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가 곡을 붙여 작품번호(op.) 83-1, ‘감옥’(prison)이란 이름으로 내놓았어.
_가브리엘 포레 작품번호를 기억하시다니.  아서 힐러(Arthur Hiller) 감독 영화 '러브 스토리'(Love Story)에서 앨리 맥그로(Ali MacGraw)가 이탈리아 이민 가정의 가난한 딸 제니(Jenny) 역 여주인공을 맡아 음악도로 나와 백혈병  병상에서 모차르트(Mozart) 쾨헬(Köchel) 번호 작품목록을 다 외운 적도 있었고 모차르트 A장조  피아노 협주곡이 몇 번이지 묻는 장면이 생각나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제23번 A장조  KV 488은 인기 연주곡이라서 몇 번인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 애틋했어요.

_영화 '러브 스토리' 처음에 라이언 오닐(Ryan O'Neal)이 주인공 올리버(Oliver)로 나와 하는 독백이 애달펐어.  

스물다섯 살에 죽은 한 여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What can you say about a 25-year-old girl who died?) 

아름답고 총명했으며 

(That she was beautiful and brilliant?) 

모차르트와 바흐를 사랑했고 

(That she loved Mozart and Bach?) 

비틀즈를 사랑했고  

(The Beatles?) 

저를 사랑했습니다. 

(And me?)  

_가브리엘 포레 작품번호 83-1은 뭐가 특별한가 봐요? 

_감옥이란 말에 83-1에서 아라비아 숫자의 8이 수갑 모양을 연상시켰어.
_3은 수갑을 푼 것이고요?   
_그때 기숙사 이웃들에게 식사 후 차를 한잔 하면서 그 이야기를 내놓아 디저트 한번 괜찮다는 평을 들었어. 칭찬까지 들으니 기억이 더 잘되었어. 그 뒤에도 분위기를 봐서 종종 써먹었어.
_엄마 이야깃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이군요.

남편이 공원에서 디카에 새를 생생하게 담아갖고 들어왔다. 참새만하고 까만 넥타이를 맨 듯한 박새 한 쌍을 보여주었다. 암수가 넥타이의 짙은 정도가 차이가 났다. 뚜렷한 쪽이 수컷이라고 했다. 한국, 일본, 중국에 사는 박새는 배, 즉 넥타이 맨 셔츠가 흰 색이고 유럽에 사는 박새는 노란색 셔츠라고 덧붙였다. 셔츠 빛깔만 다를 뿐이고 같은 종이라서 종 이름까지도 파루스 마요르(Parus major)로 같다고 했다.     

_박새 암컷은 흰 블라우스, 노란 블라우스가 더 어울리겠네요.  
_치마나 스커트는 빼고 상체로 따져서 셔츠 차림이라는 비유야. 

모녀 얼굴이 환한 것을 궁금해 하여 오간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들려주었다.
24년이란 숫자에 남편이 원고 교정 본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_알고 지낸 지 24년이 되었다고 한 것을 사반세기 가까이 되었다는 표현으로 바꿔놓았어. 어느 동호회 회장이 회지 머리말에서 창립한 지 24년 되었다고 말한 것도 사반세기 가까이 되었다고 윤문했어.

이야기 키워드로 사반세기가 떴다. 딸이 영어 연설문을 꺼냈다.
_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 연설에서 1세기의 1/4(a quarter of a century, 사반세기)이란 말을 썼다는 거 생각나시죠?
_명연설의 하나로 손꼽혀서 즐겨 외우는 사람들도 있어. 미국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존경해서 더 빛나고 수도 워싱턴(Washington)으로 대통령 취임하러 가기에 앞서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Illinois) 주 스프링필드(Springfield)를 떠나는 고별사였지. 
링컨 연설이 으레 그렇듯 길이가 짧고 감동적이어서 딸이 링컨의 고별 연설을 음미하듯 읊었다. 남편이 해설을 맡는 형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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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작가의 일일연재를 옮겨 적으며 실실 웃고 있었다. 작가가 독자의 어깨를 짓누르고 가슴을 옥죄는 죽음을 다루다가 종종 긴장을 풀어주는 유머 담긴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_'축 처진 네 어깨를 보니 내 가슴이 아프다.' 할 것을요.
_'축 처진 네 가슴을 보니 내 어깨가 아프다.' 했단 말이지.
_작중인물의 유머가 작가님의 유머 감각을 전해줘요. 
실없는 농담으로 노닥노닥하다가 실속 있는 진담으로 진행되었다.

_결혼식장에 갔을 때였어.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들이 낮은 말소리로 신랑과 신부 사이에 오가는 눈빛을 보고는 딸 낳겠다고 예측을 해. 십중팔구 맞아떨어져. 사랑에 취하면 딸을 낳기가 쉽다는 것이지.
_나뭇꾼과 선녀 사이에 아기가 둘 태어났어요. 남자아기 하나, 여자아기 하나, 반반이었을까요?
_나뭇꾼이 밤늦게 들어오거나 멀리 나무하러 가서 며칠씩 걸리면 아들만 둘 두었을 거야.
_딸만 둘일 때는요?
-늘 일찍 집에 돌아오는 나무꾼이 선녀와 사랑에 취한 경우이겠지.
_딸만 셋인 집은 그 엄마가 사랑에 고주망태가 되었겠네요?
_사랑은 고차원이고 술은 저차원이지.
_나는 딸이니까 엄마와 아빠가 사랑에 취해서 날 낳았겠네요?
_아빠가 일찍 집에 들어오던 시절이었어. 만날 유머를 한 가지 내놓았어. 유머가 특히 재밌는 날은 흰 봉투를 같이 내놓는 때였어.
_부자의 농담은 항상 우습다는 말이 있어요.  
   
_네가 좋아하는 에밀리 브론테(Emily Brontë)가 쓴 소설, 흔히들 <폭풍의 언덕>이라고 하는 <워더링 하이츠(Wuthering heights)>에서는 자녀 낳기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자.
_먼저, 여주인공 캐시(Cathy)는 히스클리프(Heathcliff) 대신 지주이며 치안판사인 린턴(Linton)과 사랑에 취하네요. 딸 캐서린(Catherine)을 낳죠. 캐시는 린턴과 사는 집을 부서진 감옥이라고 했어요. 출구가 저 세상으로 통했어요. 캐시가 린턴보다 먼저 무덤을 써요.
_히스클리프는 린턴의 여동생 이사벨라(Isabella)와 야반도주를 하여 정략결혼을 하는데 아들을 낳네. 이들 사이에는 파국이 따르지. 히스클리프가 이사벨라를 결코 좋아해서 결혼한 것이 아니니 어쩌면 예정된 수순인지도 몰라. 이사벨라가 히스클리프보다 앞서 세상을 떠나.
_워더링 하이츠 원 주인인 언쇼(Earnshaw) 네의 아들 힌들리(Hindley)가 외지에 공부하러 나갔다가 언쇼 씨 장례일에 돌아오는데 아가씨 프랜시스(Francis)를 데리고 들어오죠. 미천한 집안에 좀 모자란데다가 몸도 허약한 것으로 보고 있네요. 고향에 돌아온 힌들리도 몸이 여위고 얼굴빛도 안 좋다고 표현해놓았어요. 프랜시스는 늘 앉아 있을 곳에 왔다갔다할 공간이 있는 거실을 쓰겠다는군요. 이리하여 별실을 꾸미려는 계획은 포기되지요. 사랑에 취할 여건이 안 갖춰지는 셈이네요. 프랜시스는 아들 헤어턴(Hareton)을 낳아요. 사반세기 가까운 세월이 지나서 헤어턴과 캐서린이 결혼을 올리는 이야기가 나오죠. 

모녀가 목욕탕에 간 날이었다. 여자들이 목욕탕에 몰려들 왔었다. 목욕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탕의 인구밀도가 높았다. 이웃에 할머니가 앉았다.
_딸이유?
_맞아요.
_양파를 양쪽에 올려놓은 것두 똑같네유.
물려준 유전자로 엄마의 몸매가 딸에서도 되살아났다. 얼굴만 아니라 양파 가슴까지도 닮았다. 

남편이 TV 여행 전문 채널에서 러시아 모스크바(Moskva, Moscow) 크레믈린(kremlin) 궁전을 멀리서 가까이서 잡은 장면을 보다가 둥근 지붕인 돔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_모두 양파들을 올려놓았어.
_똑같네.
_맞아요.
모녀가 맞장구를 치면서 웃었다. 남편이 말한 크레믈린 궁전의 양파 모양 돔 이야기에 목욕탕에서 만난 할머니의 양파 가슴 표현이 생각났던 것이다.  모녀 속도 모르는 남편이 덩달아 웃으면서 자기가 빌려온 양파의 비유가 반응이 좋은 것으로 알고 앙코르처럼 반복해 모녀가 박수를 치고 남편의 손뼉에 이날 천장에는 천둥이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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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딸은 엄마의 주니어  


엄마가 딸의 팬이 되어서 딸을 바라보고 있었다. 딸이 엄마의 주니어이고, 엄마가 딸의 시니어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 딸이 태어날 때부터 듣고 학교에서 익히고 소설에서 배운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리면서 이야기의 힘이 좋아 좋아하는 작가가 날마다 올리는 일일 연재소설을 대사 읊조리듯 읽기와 일기 쓰듯 옮겨 적기를 하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작가가 누구니 하는 물음에 전에는 통성명하듯 성과 이름을 알려 주었고 요새는 그냥 작가님이란 말로 통했다.
 
새벽잠이 없는 할머니처럼 닭이 아침해보다 앞서서 기지개를 길게 켜듯 홰를 치는 때, 딸이 첫새벽에 깨어나 글쓰기 일을 한다는 작가가 새벽녘에 단 댓글을 읽고 나서 이른 아침의 식탁에서 스무고개를 넘어보자고 했다. 동네 뒷산에 살거나 앞내에 놀러오는 새들과 인사를 트고 지내는 듯한 남편도 흥미를 보이며 첫 발을 장진하고 과감히 발사했다.


_광물성?
_아뇨.

대답과 동시에 다음 고개를 넘었다.
_동물성?
_아뇨, 두 고개요.

식물성으로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할 문제이겠다.
_풀?
_아뇨, 세 고개요.

나무라고 봐도 나무랄 데가 없겠고 바로 나뭇잎을 밝혀 보았다.
_바늘잎이니?
_아뇨, 네 고개요.

활엽수라는 것을 겨우 알아냈다.
_겨울이 있는 지방에서도 자라니?
_아뇨, 다섯 고개요.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나무이겠고 우람할지도 모른다.
_우러러볼 정도로 자라니?
_아뇨.

힌트가 될 느낌이 꼬리를 흔들며 돌아다닌다.
_꽃이 예쁘니?
_네.

관상 가치가 있는 나무다.
-가로수로 심기도 하니?

_네. 
방향이 제대로 잡혀간다.
_제주도에도 있니?
_네.

비엔나(Vienna) 왈츠라도 틀어 듣는 기분이다. 청렴한 지도자 호지명(호치민, Hochiminh)의 힘이 끈질겼던 나라로 날아갔다.  
_베트남(Vietnam)에도 있니?
_네. 

 

유럽으로 슬그머니 지리를 짚었다.
_스페인(Spain)에도 있니?
_네.

남편이 스페인에서 찍어온 풍물 사진을 가족이 둘러앉아 본 생각이 났다.
_아빠가 사진 찍은 적 있니?
_네.

남편이 스페인 여행 중 수도 마드리드(Madrid)로 가는 길에 고도 코르도바(Cordoba) 부근 주유소에서 일행이 탄 대형버스가 값싼 햇살 아래 비싼 기름을 꾸역꾸역 먹는 동안에 종탑을 왼쪽으로 몰고 비둘기 날아가는 것을 화면 1/3 위치에 잡은 담은 사진에서 아래쪽에는 예쁜 꽃을 피우고 크지 않은 가로수가 있었다. 남편이 벌써 감을 잡고 고개를 빠르게 넘어갔다.
_버들잎처럼 잎이 생겼니?
_네.

목표물이 보란 듯이 나타났다.
_복숭아꽃처럼 꽃이 피니?
_네.  

목표물로 꽂히는 유도미사일이 따로 없었다. 
_유도화,

꽝?
_쾅! 

맞췄다.
 

버들잎이 나고 복숭아꽃이 피는 나무 이름은 유도화였고 협죽도라는 이름도 있었다. 18세기에 린네가 네리움 올레안데르(Nerium oleander)라는 학명을 붙여주었다. 캠핑장에서 학생들이 가지를 꺾어서 살코기를 꿰어 구워서 양파를 곁들여 먹기까지는 괜찮았고 고기에 배어든 유도화 가지에서 나온 유독물질에 탈이 나 구급차를 타고 갔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보기만 하고 만지지는 말 것에는 유도화가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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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알라딘연재소설님의 "[신경숙 소설] 어디선가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제98회"

평온했던 거리에 느닷없이 폭풍이 일고 소란스럽게 툭탁거리며 우박이 내리쳤다. 사람들은 황급히 외투나 서류가방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전염병을 만난 듯 사방의 문과 상점 차양 밑으로 사라졌다. 놀랍게도 인도가 순식간에 텅 비었다. 나는 방금 신호가 바뀐 건널목을 혼자 건넜다. 우박이 아스팔트와 달리는 차체 위로 튀며 유리잔 깨지는 소리를 냈다. 길을 건너자 우박을 피할 수 있는 버스정류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 퍼져 있던 무표정이 일시에 사라지고 없었다. 꼼짝없이 발이 묶여 긴장한 표정으로 차양 밑으로 피한 사람들을 비웃듯 우박은 또 순식간에 기세를 낮추더니 완전히 멈췄다. 작가님 글에서. 우박이 정지한 아스팔트에, 달리는 차체 위로는 유리잔 깨지는 소리를 내며 튀었네요. 우박 쏟아지는 순간의 버스 정류장 풍경이 영화 화면을 보는 것 같네요. 우박이 떨어지는 장면을 묘사하는 글을 찾아보고 대조해보고 싶을 정도로 박진감에 가슴이 벅찬 묘사에 즐겁습니다. 우박과 버스정류장 테크닉으로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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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쇼 하이쿠 130. 귀하게 여기는(도-토가루)
바쇼 씀, ojozzz 옮김.

의역
귀하게 여기는
눈물이여 붉혀서
떨어지는 단풍잎

음역
도-토가루
나미다야소메테
지루모미지

직역
귀하게 여기는
눈물이여 붉혀서
떨어지는 단풍잎

1691년 가을, 바쇼(1644년생) 마흔여덟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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