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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김희연 지음 / 디멘시아북스 / 2024년 3월
평점 :
읽기는 읽었는데 책에 대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계속해서 저를 짓눌렀고, 홀린 듯이 책을 읽으며 자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하면서도 페이지를 멈추지 못하고 계속해서 읽어나갔습니다. 독특한 제목 때문에 선택한 책 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는 치매를 겪은 늙은 아버지를 떠나보낸 딸이 쓴 에세이입니다.
세상 모든 질병이 다 그렇겠지만 치매는 정말이지 왜 이런 병이 있을까 이해가 되질 않는 병입니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억일까요? 성품일까요? 둘 다일까요?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모두 잃게 만드는 병이 있습니다. 기억도 잃고, 성격도 바뀐다면 그때의 나는 내가 맞을까요?
두 번째 결혼인 엄마는 진작에 아빠를 떠났고, 저자는 치매에 걸린 늙은 아빠를 감당합니다. 부모 자식의 연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늙고 아픈 부모를 보살피는 것은 어떤 정당성만으로 설명하기엔 너무도 가혹하고 무겁습니다. 나중에 백 퍼센트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오늘의 고단한 순간과 감정을 회피해버리는 자녀의 심정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책은 가족관계에 대해, 자신의 상황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내 마음에 대해 지나치리만큼 솔직하게 이야기를 펼쳐 갑니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디테일한 상황 묘사와 감정 표현으로 마치 내가 이 순간을 겪고 있는 것 같은 몰입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전 평소에 제 감정을 텍스트에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요. 그래서인지 이 책이 글로써 전달해 주는 묵직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낯설면서도 경이롭게 느껴졌습니다. 책을 읽으면 이때의 감정이 어떠했는지, 무엇이 서운했는지, 왜 짜증이 났는지를 너무도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마음 한구석이 계속해서 불안한 것은 결국 이야기의 끝이 엄청난 후회와 돌이킬 수 없는 슬픔으로 귀결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 분명 후회할 거야' 자신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우리에게 순간순간은 견디기 힘든 짐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역사책은 단 한 명 왕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서술되지만, 실제 그 시대를 이루고 있는 것은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의 삶일 것입니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분명히 그 시대를 구성하고 있는 평범한 삶이요.
치매 아버지와 나이 차이 크게 나는 딸, 이혼 같은 별거 가정, 조금은 독특한 설정의 이야기 같지만, 책을 읽으며 그저 아주 평범한 2020년대 우리네 가족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지만,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너무도 분명한 진짜 삶의 이야기입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전원일기처럼 우리 주변에 익숙하게 있는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에 허락없이 참여하고 있는 것 같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몽글몽글한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함께 있어도 고독한 사이가 있습니다. 치매 가족의 삶이 그러합니다. 그런데 꼭 치매 가족의 모습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우리 모두의 관계가 그러한 것 같습니다. 사랑을 나누지만 고독하고, 후회할 걸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 그것이 모든 가족의 모습 아닐까요.
이 책을 꼭 읽어보세요. 그저 투병기, 간병기를 담은 에세이가 아닙니다. 가족의 이야기, 내 내면의 목소리, 지독하게 평범한 우리네 이야기가 참 자세하게도 펼쳐집니다. 생각이 날 때마다 한 번씩 꺼내보게 될 것 같은 참 좋은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서른넷 딸, 여든둘 아빠와 엉망진창 이별을 시작하다 를 통해 가족과 사랑에 대한 내 안의 말 못 할 고민을 읽어내시길 바랍니다.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입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세상 모든 아들딸에게 적극 추천해 드립니다.
본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