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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글쓰기 - 치유하는 자기 이야기 쓰기
이남희 지음 / 연암서가 / 2013년 7월
평점 :
[서평] 「나를 만나는 글쓰기」단언컨대 글쓰기는 가장 쉬운 힐링 방법입니다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쓸 때의 설레임을 기억하시는지. 생일 축하라던지, 수줍은 고백, 안부 인사 등의 내용. 주로 편지글 형식이 되겠지만, 꼭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라는 목적이 분명한 글은 진심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런 글은 분명 상대방에게 닿아 마음이라던지 어쩌면 영혼 같은 것을 끌어내어 영적인 만남으로 소통을 나눌 수 있다. 그 글 속에 담긴 것은 바로 솔직한 자신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방법으로, 각자 자신만의 방법이 있다. 예를 들면 같이 담배를 피운다던지, 술을 마신다던지, 취미를 공유한다던지 하는 방법이다. 나도 나만의 방법이 있는데 그건 바로 그 사람이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다. 문예창작과를 나온 덕에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을 기회가 많았는데, 선배든 후배든 동기든 누구나 할 것 없이, 소설, 시, 비평문이든 형식을 가리지 않고 그 사람의 특색이 아주 짙게 뭍어나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여태껏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있다. 바로 내가 쓴 글을 통해 내가 내 자신을 만나는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알아보는 용도로, 또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표현하는 용도로만 생각했었다. 나는 과연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내가 모르는 아픔이 내 안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진 않은지.
「나를 만나는 글쓰기」는 힐링을 절실히 요구하는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나를 더 자세히 알고 치유할 수 있을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여행을 떠난다거나, 멘토를 만난다거나, 요리, 운동, 영화 감상, 수다 떨기 같은 번거롭지 않은 방법으로, 혼자서 언제든지 할 수 있는 힐링을 말이다. 어쩌면 글쓰기가 위에 나열한 힐링보다 더 부담스러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내가 글쓰기를 잘 할 수 있을까? 글쓰기란 과연 꼭 필요한 것인가? 라는 물음으로.
빅터 프랭클은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 수용소에 갇혔다가 살아남은 심리학자이다.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강제노동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갔지만 그 가운데서도 자기가 살아야 할 의미를 가진 사람들은 끝까지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쟁이 끝난 뒤 프랭클은 삶의 의미 찾기를 핵심으로 한 심리요법 '로고테라피'를 만들었다. 프랭클은 "의미라는 것은 찾지 못했을 때 인간이 무너져 버리는 무엇"이라고 정의했다.
P. 27
책을 읽어본 사람으로서 내린 해답으로는 글쓰기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과거 반세기 전만을 비교하더라도 훨씬 물질적으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신적으로 더욱 피폐함을 느끼는 이유는 바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했을 때 겪는 고통이 생각보다 크기 때문이 아닐까. 주로 '삶의 의미'는 '일과 사랑'이라는 두 영역에서 어느 정도 안정된 위치에 이르는 중년 무렵에 찾아온다고 한다. 그때 필요한 지금까지의 나는 어땠나,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알아보는 데 글쓰기란 가장 편리하고 적합한 방법이다.
비록 당신이 아직 중년의 나이에 이르지 못했을지라도 삶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면 충분히 해볼만한 방법이 아닌가?
자, 그 다음 걱정 거리. 나는 자기 소개서나 보고서 외의 글은 전혀 써보질 않았어요, 라는 사람들도 걱정말고 책을 펼치길 바란다. 펜에 손조차 대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여러가지 흥미로운 주제를 제시하거나 묘사문을 연습하는 형태로 쉽게 따라올 수 있도록 가이드 라인이 제시되어 있다.
'내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나를 소개하는 글 쓰기', '최근 내 마음을 뒤흔든 사건', '공연히 싫은 동성 친구 묘사하기' 등을 부담없이 써내려가면 된다. 맞춤법이나 문법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 어차피 나만 볼 글인데 무슨 상관이랴?
이렇게 탄생한 글들은 마치 다큐멘터리 속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어린 아이들이 그린 그림을 통해 심리 분석을 하는 것처럼, 나를 만나는 입구로 활용된다. '내 주변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의 눈으로 나를 소개하는 글 쓰기' 는 외면적인 나를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진심을 알아낼 수 있고, '공연히 싫은 동성 친구 묘사하기'는 내가 스트레스 받고 있는 일들과 무의식에 숨어 있는 욕구를 발견할 수 있다고 한다.
마치 배설물을 배출하듯 내 안에 있는 글들을 토해내고 나면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던 인물처럼 한바탕 속이 후련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내면의 심연을 표출하는 행동. 번거로운 활동이나 다른 사람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는 글쓰기는, 단언컨대 가장 쉬운 힐링 방법이다.
글쓰기로 자기 해방을 말하는 김영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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