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바로대출 책으로 선정된 책. 기획자, 심사위원, 수상자(?) 모두 나 1인이지만 이 작업은 상당히 작품성, 흥미, 나에게 낯섦(요게 중요) 세가지를 고려해 심사숙고 하여 진행된다. 제목과 책 소개에서 엄청나게 무거운 느낌이었지만 리투아니아 작가의 문학을 읽어본 적이 없고 2차 세계대전에 대해서는 어렸을때 시험을 보기위해 갖게 된 얕은 상식정도라 이 책을 고르게 되었다. 아... 동프로이센의 전쟁 후 아이들의 삶이라니. 책을 완독하고 나니, 나는 역시나 아는 게 없었다.

🫂 책소개를 보고나서도 배경지식이 없어 동프로이센과 리투아니아 역사를 미리 검색해보았다. 동프로이센이 독일이라는 정도만 아는데, 이 땅이 사연이 많다는 걸 책을 읽으며 찾으면서 체감했다. 동프로이센은 독일에게 맹지 같아 영토가 이어져 있지 않은데, 2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로 재편입되지 않고 폴란드, 리투아니아, 러시아령으로 이렇게 저렇게 나뉘게 되었다. 정작 독일이 아닌, 한 때는 러시아, 이 후 독일, 다시 러시아의 지배를 받은 리투아니아 출신 작가가 이 소설을 쓴 건 의외이면서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 책을 읽으며 전쟁의 원인은 누구에게 있는 것인가, 어떻게 책임져야하는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쉽지 않다. 다만 2차 대전의 원인이 독일에 있다고 해서, 독일 국민들, 특히 독일 아이들의 생명과 삶이 파괴되어도 된다는 당위성은 없다는 건 분명하다. 반대로 소설에서 특정국들이 가해자처럼 여겨지는(?) 것 또한 경계하고자 애쓰며 어렵게 읽어나갔다. 그러나 또 다른 면에서는, 워낙 우리나라 역사도 한 많은 역사와 회한, 슬픔이 뒤범벅 되었기에 소설의 아픔이 아주 낯설진 않았다. 쉬웠다고 말하기엔 그렇지만 우리나라 독자들은 인물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공감이 잘 갈듯.

🫂 책을 읽으며 전쟁도 전쟁이지만, 전쟁이후의 반전의식이나 인권에 대해서도 반성적 사고를 해야겠다 싶었다. 전쟁만 끝나면 모두가 끝나는 게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전쟁을 하는 나라, 내전 중인 나라가 있다. 난 러시아 우크라이나가 이리 오랫동안 이 상황일 줄 예상치 못했다. 그리고 몇 년전까지 콩고 등 아프리카의 내전이 현재진행형인지도 몰랐다. 관심이 없었으니. 아이들의 엄마인 에바는 무관심이 이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걸 두고볼 수만은 없다하고, 자기 자신이 냉담해지게 놔둘 수는 없다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사실 우리는 내 주위에 일어나는 사소한 것에도 무관심하고 냉담하지 않은가. 우리 아니고 내가 그렇다. 내가.

🫂 에바와 어린 남매는 어디로 이주했을까. 실제 역사는 800만명이 강제 이주하다가 많이도 아작났다고... 헤인츠와 알베르토는 어떻게 되었을까. 레나테는 리투아니아에서 어떻게든 살게 되었을까. 삶은 조건없는 호의도, 상상 못 할 악의도 모두 많다. 저 시대에도. 저런 세상에서도 아이들이 목숨을 부지한 건 조건없는 호의가 독일에도, 리투아니아에도 러시아에서도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뿔뿔히 흩어진 가족. 이들은 계속 호의를 만났을까. 역사의 다수 사례를 알고 있기에 씁쓸한, 그러나 반성하게 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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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보기엔 별거 아니겠지만
내겐 그랬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어서도 말입니다.
엘리너 파전
- P5

많이변한 걸까. 요즘 나는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할머니가 되고 말았다는 이야기를 이해할 것 같다.
- P7

처음 보는 사람의 눈길에서 사심 없이 우호적인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왠지 그 다정한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 P9

그래요, 당신이 갖고 있어요. 당신 소쿠리에만 소복이 내려 담기던 함박눈. 다른 사람한테 나눠주지 말고 혼자서 다 가지는 하얀 눈 소쿠리. 예뻤겠지만 막상 내가 건네받아도 어떻게 간직해야 할지 알 수 없었을 테니까.
- P24

아니, 수안뿐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얻는 행복의 평균이 있다면 나도 그 정도이길 바랐다. 혼자서 더 행복한 건 어쩐지 불안하고, 남의 행복에서 덜어온 듯해 편치않을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세상의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의 양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고 느꼈던 날들이 있었다. 누구 하나가 많이 행복하면 다른 하나가 그만큼 불행할지도 모른다고. 타인의 행복이 커진다고 해서 내 행복이 줄어들진 않는다는 진실을 깨닫기까지는 세월이 많이 걸렸다.
- P51

그리고 수안이의 아편은, 그 아이는 그게 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두려웠습니다. 언제까지나 변함없이 함께할 수 있을지, 내가 무엇을 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가 올것 같았습니다. 그때가 되면 수안이는 나를 놓지 않아도 내가 그아이를 놓을 것 같았습니다. 
- 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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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은 자라서 똑같이 파시스트를 낳을 거라구요...."
"우린 같은 사람이잖아.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 P39

헤인츠는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에바가 보기에 아들은 정말 끔찍하고 두려웠던 일들은 입에 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 밤마다 그리고 한겨울 타국의 숲에서 얼마나 춥고 배고팠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그런 이야기들은 절대 입에 담지 않았다. 
- P45

죽은 채 누워있는 사람들 옆을 무관심하게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죽은 이들은 그냥 차갑게 식어서 고통을 모르는 물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력감, 타협,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 그리고 본능적 의지 같은 것들만 사람들을 사로잡고, 이런 무관심과 노예들이나 보일 만한 절망감 등이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을 누군들 믿을 수 있었을까. 
- P49

무관심이 이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걸 두고볼 수만은 없다. 자기 자신이 냉담해지게 놔둘 수는 없다.
- P52

마침내 문이 열리더니 러시아 여자가 현관 계단에 모습을 드러내고 독일어로 말했다.
"우리 잘못이 아니야."
그러고는 신문에 둘둘 말린 빵 조각과 병을 건네주었다.
보아하니 보드카 병인 것 같다. 그 병에는 보드카가 아닌 우유가 들어 있다.
- P94

헬무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 왜 울어요?"
"너희들 독일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자랑하면 안 돼. 하지만 기억하고 있어야 돼."
- P101

그렇게 소리 지르며 욕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엄마가 눈물을 보였다. 로테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며 진정시키려 했지만 뭔가 보이지 않는 두려운 짐승을 내쫓기라도 하려는 듯 침대에 똬리 튼 뱀처럼 웅크려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 괴물은 며칠을 굶은 배 속에서 생기는 것인가 보다.
- P129

지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다.
헤인츠는 중얼거렸다. 불도 지폈으니 이제 세상의 모든눈이 녹아내릴 거야.
- P170

담배에 찌든 늙은이처럼 평온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꿈도 없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좋은 날이 올 것이란 기대도 없다.
- P172

하느님, 저에게 벌을 내려 주세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무심하게 살았으니 전 벌을 받아 마땅해요. 하루하루 제게 주어진 인생의 기쁨에 감사하지 못하고 일상의 행복을 가볍게 여겨서 죄송해요. 어떤 벌이든괜찮아요. 이 꿈에서 깨게만 해 주세요. 이 축축하고 생명 없는 겨울에서 저를 꺼내어 주세요. 제 눈을 생명수로 씻어 이전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죽음의 악마들이 스쳐 간 공포가 산산이 흩어지게 해 주세요.... 주님, 전 지금 어디로 가야해요? 전 뭘 해야 하나요......
- P177

그 마음 좋은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떠돌이 방랑자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런 시절이다. 러시아 아이들, 독일 아이들, 리투아니아 애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아가 마을과 도시를 떠돈다. 
- P242

전쟁은 흔히 전장에 나가서 싸운 어른들만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지만 엄연히 전쟁으로 희생당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총을 들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사람들도 있다. (옮긴이의 말)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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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전체적으로 너무 무겁지도 않지만, 가볍지도 않았다. 작가인 에릭와이너는 저 멀리 있던 철학자들을 내 옆에 친구로,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끌고왔다. 그들의 철학을 깊이 알고 싶게 만들었다. 부제인 ‘철학이 우리 인생에 스며드는 순간‘이란 표현이 꽤나 적절하다. 기차를 타고 특별한 여행지에서 문득 얻은 그런 깨달음 이랄까.

🛤 작가인 에릭와이너가 따뜻하고 상당히 유머러스한 사람이라 느껴졌다. 작가의 시선으로 보고 생각하니, 더 여기서 만나는 철학자들이 가깝게도 느껴졌다. 새삼 왜 이 책이 마음에 들었을까란 이유를, 간디편을 읽으며 생각해 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여행과 철학이 같이 있어서였다라는 걸 문득 알게 되었다.

🛤 소크라테스 편은 유쾌했다.

헨리 소로의 월든을 읽은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나온 표현대로, 나는 다소 헨리 소로가 미니멀리즘이나 자연주의가 조금은 쪼잔하고 비겁하게 느끼기도 했었다. 그런데 나만의 월든이라니. 이런 생각은 못했었다.

쇼펜하우어는 참 우울하고 신경질적인데, 좀 더 알고 싶어졌다.

에피쿠로스는.. 이 책을 읽은 시점은 작년에 에피쿠로스 책을 읽기 전이었다. 절제를 하고, 넘치는 게 아닌 내게 필요한만큼의 충분한 정도의 행복이라니. 뭔가 내가 원하는 그 철학이었다!

시몬 베유는... 시몬 베유는 가장 마음이 간다. 진정한 관심은 배려이고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한없이 해맑은 사람도 좋지만, 상처가 있고 다른 상처받은 자를 볼 수 있는 자에게 마음이 간다. 나도 상처받은 너그러운 도시에 가보싶다

간디에 대해서는 비폭력이란 것과 엇갈리는 평가들이 있다는 정도의 막연함이 내가 알던 전부였다. 이기고 지고의 결과가 아닌 어떻게의 문제는, 요즘 현대에서는 더 순진한 얘기 일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이 방법을 지향해 보고 싶다.

🛤 ​마지막 부분이 노인이나 적어도 애늙은이? 같은 느낌의 스토아 학파에, 나이듦의 철학, 죽음의 철학이라니. 이 책의 순서가 잘 되어있단 생각이 든다. 최근 몇 년 나이듦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할 일이 많아졌다. 철학에서 이런 부분이 있다니. 좀 더 알고싶다. 그리고 그 대단해보이는 철학자들도 같은 고민을 했다니, 많이도 위로가 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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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월 희망도서 대출을 신청하려 던 중 신간중에서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어쩐지 내 냥냥 키워드인 연민과 연대를 느낄 수 있을 듯한 제목 이었고, 유명한 주디스 버틀러 교수가 저자였다(책을 읽어본 적은 없지만. 포스트 모더니즘 이런 거 모름). 그래서 신청하고 받고 읽었는데... 어렵다. 많이 어렵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기억나는 걸 남기기 위해 완독하자마자 이렇게 기록을 남기고 있다는🥲

🫂 책은 미국과 프랑스의 두 정치철학 교수의 2018년과 2022년 대담을 엮은 내용이다. 버틀러는 개인들의 주관적 견해의 공통분모에서 살 만한 삶과 아닌 삶을 구분하고, 보름스 교수는 죽음과 대비한 객관적 조건을 통해 구분한다. 두 교수의 대담은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국 인간의 상호의존성이 필요하고 (그나마?) 민주주의로 가능하다는 결론으로 합치한다. 마침 작년 12월 미쳤던 그 날 오후, 주디스 버틀러는 경희대에서 민주주의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었다고...참 기가막힌 타이밍. 그리고 12/7 한겨레와 한국민주주의를 위협한 건 윤대통령 자신이라는 인터뷰를 한다.

🫂 살 만하지 않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일까, 생존 이상일까? 당연히(?) 두 번의 대담 모두 생존 이상이라고 진행된다. 이 책은 끊임없이 두 교수가 서로에게 묻고, (그리고 내 생각엔) 독자에게 묻는다. 단순히 생존을 넘는 사항이라면, 무엇이 필요한 거냐고.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분명하게 나눌 수 있냐고. 그래 사람이 떡으로만 살 수 없겠지. 나도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해보았다. 요즘 나의 관심사와도 겹치는 거라. 완전히 다른 얘기지만 나는 삶은 의미가 없어 보여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특별하다는 생각을 요 근래 몇 년째 하고 있다.

🫂 나중에 두 교수님들이 큰 방향은 합치가 되나...대담에서 나온 의견의 차이때마다, 보름스 교수 의견에 조금 더 마음이 갔다. 내 마음이 더 가고 말고가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그냥 주디스 버틀러 교수는 좀 무섭다🥲 보름스는 이번에 처음 들었다. 그런데 뭐든 명확하게 경계를 지을 수 있을까? 책 읽는 내내 끄덕거렸음에도 보름스 교수의 살만하다vs그렇지않다를 나누는 객관적 요인은 그냥 심적으로 아닌 듯 하다. 무지개를 정확하게 빨주노초파남보로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물론 이 대담에서 나의 허접함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 최근 읽은 소설, 에세이에서 말하는 걸 여기서도 보았다. 물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위해 고른 책이긴 하지만. 두 분의 대담에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발견했다. 작년 가을 읽었던 인문학서 <전염의 시대를 생각한다>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지금 사회구조는 서로에게 의존하는 공통의 것이 많다. 결국 다른 이들의 삶이 살 만해야 내 삶도 그렇다. 좀 더 감성적이고 동양적으로 말한다면, 그래서 연민은 단지 연민이 아니고 연대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이건 내가 작가 소개나 프로그램 소개 시 늘상 하는 멘트. 연대가 너무 과한 느낌이면 이 책에 나온대로 ‘돌봄‘정도로 하자. 어려우니 여기서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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