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은 자라서 똑같이 파시스트를 낳을 거라구요...."
"우린 같은 사람이잖아. 우리는 똑같은 사람이라고."
- P39

헤인츠는 그동안의 일들을 이야기했다. 에바가 보기에 아들은 정말 끔찍하고 두려웠던 일들은 입에 담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 밤마다 그리고 한겨울 타국의 숲에서 얼마나 춥고 배고팠는지는 전혀 말하지 않았다. 이 아이는 그런 이야기들은 절대 입에 담지 않았다. 
- P45

죽은 채 누워있는 사람들 옆을 무관심하게 지나가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죽은 이들은 그냥 차갑게 식어서 고통을 모르는 물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력감, 타협, 스스로를 파괴하고 싶은 충동 그리고 본능적 의지 같은 것들만 사람들을 사로잡고, 이런 무관심과 노예들이나 보일 만한 절망감 등이 사람들을 지배하게 되리라는 것을 누군들 믿을 수 있었을까. 
- P49

무관심이 이렇게 세상을 지배하는 걸 두고볼 수만은 없다. 자기 자신이 냉담해지게 놔둘 수는 없다.
- P52

마침내 문이 열리더니 러시아 여자가 현관 계단에 모습을 드러내고 독일어로 말했다.
"우리 잘못이 아니야."
그러고는 신문에 둘둘 말린 빵 조각과 병을 건네주었다.
보아하니 보드카 병인 것 같다. 그 병에는 보드카가 아닌 우유가 들어 있다.
- P94

헬무트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 왜 울어요?"
"너희들 독일 사람이라고 어디 가서 자랑하면 안 돼. 하지만 기억하고 있어야 돼."
- P101

그렇게 소리 지르며 욕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절망에 빠진 엄마가 눈물을 보였다. 로테가 그러지 말라고 말리며 진정시키려 했지만 뭔가 보이지 않는 두려운 짐승을 내쫓기라도 하려는 듯 침대에 똬리 튼 뱀처럼 웅크려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 괴물은 며칠을 굶은 배 속에서 생기는 것인가 보다.
- P129

지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다.
헤인츠는 중얼거렸다. 불도 지폈으니 이제 세상의 모든눈이 녹아내릴 거야.
- P170

담배에 찌든 늙은이처럼 평온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꿈도 없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고, 좋은 날이 올 것이란 기대도 없다.
- P172

하느님, 저에게 벌을 내려 주세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줄도 모르고 그저 무심하게 살았으니 전 벌을 받아 마땅해요. 하루하루 제게 주어진 인생의 기쁨에 감사하지 못하고 일상의 행복을 가볍게 여겨서 죄송해요. 어떤 벌이든괜찮아요. 이 꿈에서 깨게만 해 주세요. 이 축축하고 생명 없는 겨울에서 저를 꺼내어 주세요. 제 눈을 생명수로 씻어 이전의 일상생활을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죽음의 악마들이 스쳐 간 공포가 산산이 흩어지게 해 주세요.... 주님, 전 지금 어디로 가야해요? 전 뭘 해야 하나요......
- P177

그 마음 좋은 사람들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두 사람 다 떠돌이 방랑자들을 수없이 보았다. 그런 시절이다. 러시아 아이들, 독일 아이들, 리투아니아 애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아가 마을과 도시를 떠돈다. 
- P242

전쟁은 흔히 전장에 나가서 싸운 어른들만 중심에 놓고 이야기하지만 엄연히 전쟁으로 희생당한 아이들도 있을 것이고 총을 들고 싸우지는 않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사람들도 있다. (옮긴이의 말)
- P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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