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의 목소리는 매력적인 설득조로 바뀌어 있었다. 그는 경우에 따라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구사했다."그럴 만한 이유에서, 지금 시점에서는 이 사건의 범인, 이제부터 이 인물을 X라고 부르기로 하죠. 아무튼 범인의 정체를 당신들에게 밝힐 수가 없습니다. 공범이 있는 듯도 하고요." - P110
하지만 세부적인 면들이 모두 그래야 할 필요는 없다네. 알겠나? 분장이 아주 꼼꼼하다는 것은 모든 파도를 세세히 그려놓은바다의 풍경이나 모든 잎사귀의 윤곽을 선명하게 그려놓은 나무와도 같은 거네. 모든 파도, 모든 잎사귀, 사람 얼굴의 주름살을 모두 하나하나 꼼꼼하게 그리는 것은 자칫 그림을 엉망으로만들기 쉬운 법이라네. - P181
그들은 말했다."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나는 대답했다."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야피, 라우드 알 라야힌 Yâfii, Raoudh al rayâhîn - P7
누군가가 나를 위해 돈을 지불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나는 로자 아줌마가 그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돌봐주는 줄로만 알았고, 또 우리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밤이 새도록 울고 또 울었다. 그것은 내 생애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 P10
"할아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그렇단다."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갑자기 울음이 터져나왔다. - P13
최초로 원도는 죽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어머니를 의심했다. 죽은 아버지가 밟고 간 길. 어머니가 놓은 돌. 그것의 크기와 위치를 어머니의 의지를. - P226
살아내는 일분일초, 모든 행위와 생각이 모두 사는 이유다. 어떤 것은 이유고 어떤 것은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드문드문 살 수 없다.살고 싶었다. 삶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모른 채로도 살았고, 살아 있으므로, 사는 데까지는 살고 싶었다. - P236
그리고 지금 여기, 당신. 지금까지 원도의 기억을 쫓아온 당신도 한 번쯤은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이런 인물이라면 차라리 죽는게 낫지 않은가? - P239
나는 지금 소통의 불가능을 믿는다. 타인의 몰이해를 믿는다. 그 믿음이 나의 입구며 출구다. - P243
당신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안다는 것은 문을 여는 행위와 같다. 문을 열어야 내부가 보인다. 혹은 길이 보인다. 문조차열 수 없을 때, 잠긴 문고리만 악에 받쳐 비틀어야 할 때, 잠긴 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을 때 사람들은 문을부수거나 문을 떠난다.것이다.여기, 문 앞에 원도가 있다. - P199
어머니와 그녀의 진심 따위 중요하지 않았다. 윈도가 의심하고 장민석이 이해하는 순간 그것은 사실이 되었다. - P214
질문은 더 깊은 상처를 만든다. 하지만 묻지 않는다고 상처가 아물어 흉터가 되지는 않는다. 그대로 있다. 벌건 살을 드러낸 채 끊임없이 피를 흘리며, 굳지도 아물지도 하물며 썩지도 않고, 처음 구멍 그대로 존재한다. 그 자리에서 시간은 멈췄다. - P225
하지만 산 아버지는 옳거나 그르다는 판단을 너무 쉽게 내렸고 자신의 판단을 무서울 정도로 확신했다. 확신을 강요하고 망설임 없이 처벌했다. 길고 긴 이야기다. 평생 이어질 기억이다. 덮지 말고 끝까지 보아라. 숱한 구멍 중 가장 광활한 구멍, 당신에 대한 기억이다. 다시 순서로 돌아간다. - P175
매 순간 살면서 죽어가고 있다. 삶은 어정쩡하며 모호하다. 희뿌연 단어다. 죽음의 반대는 삶이 아닌 탄생이다. 탄생은 순간이다. 그 순간을 지나면서부터 죽음에 가까워진다. - P182
‘왜‘라는 질문을 잃어버리는 순간 아이는 어른이 된다. -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