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슬픈 노래가 좋다. 그 슬픔을 싣고 흘러가는 멜로디의 기쁨이 좋다. 나는 즐거운 노래가 좋다. 그 즐거움을 따라가며 웃는 슬픔의 조용한 미소가 좋다.
- P236

누군가 세상을 떠나면 흔히 그 사람이
‘하늘나라로 갔다‘고 말한다. 이 말은 얼마나 숭고하고 성스러운가. 하늘로 가는 건 승천이다. 승천은 성자만이 한다. 우리는 마지막에 모두 성자가 되는 걸까.
- P250

지금 여기가 아닌 것은 힘이 없다. 지금과 그때 사이에는 무한한 지금들이 있다. 그것들이 무엇을 가져오고 만들지 지금은 모른다.
- P252

걱정하지 마, 라고 주영이 말한다.
그래 걱정하지 않을게, 라고 대답한다.
걱정하지 않으면 무엇이 대신 남을까,
명랑성.
- P258

함께 슬퍼한다는 것, 그것은 반드시 함께 메마르는 것만은 아니다. 그건 그 슬픔의 크기만큼이나 풍성하게 열매를 맺는 일이기도 하다. 오얏나무의 풍성한 열매는 왕상을 가엾이 여기는 오얏나무의 슬픔이었다.
왕상은 그걸 알았고 오얏나무를 사랑했고 그래서 오얏나무를 껴안고 목 놓아 울었던 것이다.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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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걸어가야 절이 나오나요?"
라고 물으면 촌부는 이렇게 대답한다.
"이자뿌리고 그냥 가소. 그라면 나오니께......"
- P182

소멸은 안타깝지만 덧없음이 없으면 저 빛나는 생의 찬란함 또한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러니 물속의 물고기야 울지말자. 그래도 울고 싶으면 도래하는 생의 찬란함을 환대하는 기쁨으로 울자꾸나.
- P203

응어리는 이미 둔 바둑판처럼 남겨두기로 하죠.
- P212

천상병은 노래한다. 세상은 아름답다고,
인생은 깊다고, 살아서 좋은 일도 있었고 나쁜 일도 있었다고, 그러니 바람아 씽씽 불라고......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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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만 온전히 나에게 주어진 시간- 이 사이의 시간들은 내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는 일 없이 또한 존재할 것이다. 끝없이 도래하고 머물고 지나가고 또 다가올 것이다. 이것이 생의 진실이고 아름다움이다.
- P139

가을 하늘이 왜 그렇게 맑고 깊고 텅 비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봐,나는 텅 비어 있어. 아무것도 가로막는 것이 없어. 사방이열려 있어. 모든 곳이 길들이야. 그러니 날아올라. 날개 아래 가득한 바람을 타고......
- P152

그의 몸은 나날이 망가졌지만 정신은 나날이 빛났다, 라는 식의 역설은 옳지 않다. 몸을 지키는 일이 정신을 지키는 일이고 정신을 지키는 일이 몸을 지키는 일이다.
- P160

이 기록들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통과한다. 그 경계 위에서 나는 매일 매 순간 심각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댄스의 스텝을 밟고 있다.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줄타기.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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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해 시장에 못 간 지가 벌써 한달이었고, 말썽을 부리는 나 때문에 걱정할 게 없었다면 정말 사는 의미가 없을 거라고 말했다.
- P147

나는 가끔씩 길거리에 주저앉아 녹음실에서처럼 세상을 뒤로 더 뒤로 거꾸로 돌렸다. 사람들이 문밖으로 나오면 다시 그들을 들어가게 했고, 보도 위에 앉아서 차와 사람들을 멀리 뒤로 돌려보내며 아무도 내게 다가오지 못하게했다. 내 기분이 정말 더러웠으니까.
- P159

샤르메트 씨가 기차며, 역, 그리고 출발시간 따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래도 들어줄 만했다. 마치 그는 아직도 시간에 맞춰 기차를 타고 환승역에서 갈아탈 수 있기를 바라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탄 기차가 이미 종착역에 다다라서 이제 내릴 일만 남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P168

그는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무언가를 생각해내려고 무진 애를 쓰는 듯했다. 그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양탄자를 팔러 다니던 생활을 그만둔 뒤로는 매일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다보니 백지 위에 백지만 쌓아온 셈이어서 별다른 기억이있을 리 없었다. 
- P175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 P178

그러나 바로 그때 초인종이 울렸고, 내가 아직은 여기에 설명할 수 없는 저 민족적 대재난이 벌어졌다. 그 일로 나는 단번에 몇 살이나 더 나이를 먹게 되어 다른 문제와는 별개로 무척이나 기뻤다.
- P207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사람들은 말없이 하나둘 줄을 지어 밖으로 나갔다. 어떤말도 할 수 없는 순간이 있는 법이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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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아침 산책.
한 철을 살면서도 풀들은 이토록 성실하고 완벽하게 삶을 산다. - P81

환자의 주체성은 패러독스의 논리를 필요로 한다. 생의 근원적 덧없음과 생의 절대적 존재성, 그 사이에서 환자의 주체성은 새로운 삶의 영토를 연다.
- P83

사랑한다는 것이다. 생 안에는 모든 것들이 충만하다. 눈물도 가득하고 사랑도 가득하다. 왜 생 안에 가득한 축복과 자유들을 다 쓰지 못했던가.
- P85

잘 헤어지고 잘 떠나보내는 일이 중요하다. 미워하지는 않지만 함께 살 수는 없는 것이 있다. 그것들과의 불가능한 사랑이 필요하다. - P90

아침 산책. 또 꽃들을 둘여다본다. 꽃들이 시들 때를 근심한다면 이토록 철없이 만개할 수 있을까. - P97

지금 살아 있다는 것 – 그걸 자주 잊어버린다. - P103

선택은 쉽지 않고 불확실하지만 분명한 것이 있다. 그건 어느 쪽이든 나의 삶은 온전히 나에게 맡겨졌다는 것. 이제 나는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는 단독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 P109

문득 차라투스트라의 한 문장: "인간은 가을의 무화과다. 인간은 무르익어 죽는다. 온세상이 가을이고 하늘은 맑으며 오후의 시간이다." 무르익은 것은 소멸하고 소멸하는 것은 모두가 무르익었다. 니체는 그 순간을 ‘조용한 시간‘이라고 불렀다. 조용한 시간-그건 또한 거대한 고독의 순간이다. 사람은 이 난숙한 무화과의 순간에 도착하기 위해서 평생을 사는가.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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