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도의 불행 속에 내던져진 사람에게 무언가를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고 그 불행의 깊이를 탐색하는 과정도 탐탁지 않았다. 
- P14

민영의 말에 수긍하면서도 승준은 지유가 성장해가는 동안 겪게 될 상처와 결핍의 시간들이 훨씬 더 신경 쓰였고, 그 상처와 결핍앞에서 자신이 무력한 아버지가 될까봐 무섭기도 했다. 
- P16

그녀가 어디에서 무얼 하며 사는지도 모른 채 지나온 칠 년의 세월이 곧 무심함의 환산치였다는 걸 천천히 곱씹으며...
- P47

무엇보다 언제라도 치명적으로 다치거나 죽을 수 있다는 원초적인 공포를 이겨내려 애썼던 그 모든 지난 시간들이 결국 타인의 고통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 있다는 허무를 알게 해준 피사체가 그녀에게는 살마였던 셈이다. 
- P56

닮지 않아야, 그러니까 피사체와의 거리가 유지되어야 거리낌없이 촬영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 거리는 결국 냉정함의 거리라고 여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그런 생각은 셔터를 누른 이후 피사체가 살아갈 실제 삶에는 무심했다는 자각,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사진을 위해 한사람의 고통을 이용해온 건지도 모른다는 자각으로 이어졌다.
- P60

나는 그에게 살마의 엄마 역할은 사양한다고, 남들보다 이르게 엄마의 부재를 겪은 사람들끼리는 끈끈하게 결속할 때가 있다고 웃으며 대답했을 뿐, 더이상의 말은 덧붙이지 않았어. 내가 살마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제대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으니까.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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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 가지는 누가 꽂아 둔 게 아니라 심거나 씨를 뿌려서 얻은 거야. 그러니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해.
자신의 제도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의미 있는 것인지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고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민족, 그런 민족만이 미래를 가질 수 있고, 그런 민족만이 역사적이라는 말을 들을수 있어.
- P30

이러한 기쁨은 너무나 작아서 모래 속에 섞인 금처럼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나쁠 때면 그녀는 오직 슬픔만을, 오직 모래만을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기쁨만을, 황금만을 보는 즐거운 순간도 있었다.
요즘 그녀는 시골의 적막함 속에서 이런 기쁨을 점점 더 자주 자각하게 되었다. 
- P59

 "사람들은 당신을 볼 필요가 있어요. 당신을 보면, 여기 행복이나 불행을 느낄 수는 있어도 따분해하지 않는 여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죠. 가르쳐 줘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 P139

자신을 둘러싼 온갖 복잡한 상황을 지극히 사소한 점까지 상세하게 아는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그런 복잡한 상황과 그것을 이해하는 데 따르는 어려움을 그 자신에게만 우연히 일어난 특수한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그에 못지않은 나름의 복잡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한다. 브론스키도 그런 것 같았다. 
- P144

그러나 그의 시선에는 굳은 결의가 보이지 않았다. 순간 그녀는 그가 이미 예전부터 이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나는 그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하든지 그의 생각을 전부 털어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안나는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 배반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것은 그녀가 기대하던 게 아니었다.
- P172

지금 두 사람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니콜라이의 병. 그리고 가까이 다가온 그의 죽음. 이 생각이 다른 생각들을 압도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빼앗은 그 생각을 말하지 않는 한, 무슨 말을 하든 그들의 말은 다 거짓이었다. 
- P239

하지만 여전히 오랫동안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문제가 어느 정도 풀리나 싶더니, 해결할 수없는 새로운 문제, 곧 죽음이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다.
- P242

죽음이 오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삶을 살아가야 했다. 그에게는 어둠이 모든 것을 뒤덮은 것 같았다. 하지만 바로 이러한 어둠 때문에,
그는 자신의 일이 이 어둠 속에서 그를 이끌어 줄 유일한 끈이라고 느끼며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붙잡고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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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강기슭을 보면 언제나 수수께끼가 떠올라. 알겠니?
풀이 물에게 말해. 우리는 흔들릴 거야, 흔들릴 거야."
"난 그런 수수께끼 몰라." 레빈은 우울하게 대답했다.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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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믿지 않을 거야." 그가 동생에게 말했다. "이런 소(小)러시아적인 게으름이 내게 얼마나 큰 즐거움을 주는지 말이다.
머릿속이 아무 생각 없이 텅 비어 있어서 공이라도 굴릴 수 있을 것 같다니까."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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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직은 이야기가 끝난 것이 아니다. 마지막 순간이 아직 남아 있고, 그 순간은 블루가 방을 나서기 전에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세상 돌아가는 방식이다. 한순간도 더하거나 덜하지 않은 것이. 블루가 의자에서 일어나 모자를 쓰고 방 밖으로 걸어 나와야 이야기도 끝날 것이다.
- P299

삶은 우리가 손쓸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되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 삶은 우리가 죽으면 같이 죽고, 죽음은 우리에게 매일같이 일어나는 그런 일이다.
- P303

그의 삶은우리가 서로 다른 길을 간 순간에 멈춰 있었고 이제 그는 내쪽에서 본다면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속해 있었다. 말하자면 그는 내가 마음속에 넣어 가지고 다니는 유령, 선사 시대의 단편, 더 이상 현실로 존재하지 않는 물건인 셈이었다. 
- P305

팬쇼를 생각할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았다는 말은 그녀가 자기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한 말이었는데, 다음에 그녀는 계속해서 그것은 사정이 어찌 되었건 간에 팬쇼가 미웠다는, 설령 그것이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가 자기를 버린 것에 화가 났다는 뜻이었을 거라고 덧붙였다. 내게는 그 말이 너무도 솔직하게 느껴졌다. 그때까지 나는 자기의 감정을 그처럼 숨김없이, 통상적인 예의를 싹 무시해 버리고 말하는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 P309

그는 아주 일찍부터 자아를 형성했고, 우리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쯤에는 이미 명확하기 그지없는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우리들 대부분이 형체도 갖추지 못한 채 한순간 한순간 무턱대고 허둥대며 끊임없는 소란에 휩쓸렸던 반면, 팬쇼는 분명히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 말은 그가 빨리 성장했다는뜻이 아니라 그는 결코 자기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인 적이 없었다-어른이 되기 전에 이미 자기 자신이 되었다는 뜻-이다. 
- P328

누가 뭐래도 삶이란 우발적인 사실들의 총계,
즉 우연한 마주침이나 요행, 또는 목적이 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아무것도 드러나지 않는 무작위적인 사건들의 연대기에 지나지 않는 거니까.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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