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하는 악마
테오 R.파익 지음, 박미화 옮김 / 수북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성균관 대학교에서 참 괜찮은 책을 출판하고 있구나.
  책을 좋아하는 나지만,
  인문 사회 교양서는 질색을 한다. 
  그 중에서 특히 번역서!
  (우리나라 사람이 쓴 책은 곧잘 읽는 편이다)


  그런 책들은 읽어도 읽어도 읽히질 않는 경우가 많다.
  글씨를 읽긴 읽으나 뜻이 한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우리나라 말로 적혀 있지만 외국어보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그 어려운 책들을
  막상 원서로 읽어보면 모르는 단어도 많은데 오히려 이해가 더 잘 되어서 황당할 때가 많다.


  번역이란 건 잘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은데,
  이 책은 번역이 참 잘 되었다.
  군데 군데 오타가 있는 불성실함은 좀 맘에 안 들지만 (예를 들어 ’마냥’ 사냥이라든지;)
  읽으면 읽힌다.
  

  이상한 외국식 문투의 우리말이 아니라
  읽으면 읽히고 바로바로 이해되는 우리말이었다.

  
  그래서 이 책에 애정이 왕창왕창 가는구나.




  역자만 대단한게 아니라, 저자도 대단하다.
  독일의 정신과 의사선생님이 쓴 책인데,
  ’악’에 대한 근거를 심리학, 정신의학 뿐 아니라 종교와 역사에서도 찾아내었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정도의 ’악’이
  대체 왜 생겨났을지,
  인간은 왜 악행을 저지르는지에 대해 여러 관점으로 의문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불합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악행, 특히 대량 살상이
  비단 옛날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두려워졌다.
  마녀사냥, 독재자의 대량 살상(홀로코스트 외), 살인범 등을 예로 들고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사람을 죽인 전례가 왜 이리 많은지.


  내가 알고 있던 것 보다 훨씬 많은 사건이 있었고, 훨씬 많은 사람이 죽었다.
  문제는, 여기에 적힌 것은 일부일 뿐이란 것이다.
  
  저자가 서양사람이라 서양인의 세계에서 본 대량살상을 주로 서술했지만
  난 저자가 적지 않은 수 많은 죽음들이 계속 떠올랐다.


  과거 진시황의 순장, (한반도에 있던 원시국가에도 순장풍습이 있었다 했지)
  서양에 잘 알려지지 않은 우리 민족의 일제침탈 시기,
  독재정권시기에 말도 못하고 죽어간 우리의 민주투사들.


  홀로코스트도, 모택동도, 일제침탈도 
  다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의 일이라 까마득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그 일이 일어난 연도들을 숫자로 마주하니
  그리 옛날일도 아니었다.

  19C, 20C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찍소리 못하고 당하고 말았다.
  
  특히나
  내가 태어난 80년대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일들은 얼마나 끔찍한가.
  현대사회의 일이건만, 말도 못하고 당한 사람이 얼마나 많았지.
  테오 R. 파익이 예로 든 ’악’의 증거들 만큼이나 무서운 일이었다.


  지금도 세계 어느 곳에서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벌어질 것이다.
  나도 그런 일을 겪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정신병이라고 하긴 애매한,
  집단적 광기, 종교적 맹신, 독재자에의 순응을 피하기 위해서
  저자는 "이러한 물결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곧은 성품과 자의식이 강한 일부 사람들 뿐이다."(121쪽)라고 했는데

  나도 정신차리고 세상 살아야겠다.
  중심을 잃지 않아야겠다.



  저자는 ’악’이란 것이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신병적 증상의 일부인지 물음을 던졌는데

  나는 정신 이상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밝은 세상, 좋은 세상, 성선설을 괜히 믿어보고 싶잖아.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싶잖아.


  종교 재판관, 고문관, 독재자, 살인범 모두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긴 한 것 같다.
  다른 사람에 비해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었다고 서술한 부분도 있었으나
  강박증, 과대망상증, 혹은 억압되어 뒤틀린 성의 관념을 지녔기에 
  ’악’이 생겨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옳고 그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인데
  그 시기엔 말도 안 되게 나쁜 것들이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마녀 사냥에, 독재에
  제대로 저항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워서 숨을 죽였거나,
  또는 비판정신 없이 휩쓸려 버렸을 것이다. 
  앞서 말한 ’곧은 성품과 자의식이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은 어렵기에 
  대부분은 휩쓸렸으리라.


  아주 잠깐
  악행들이 묵인되거나 정당한 것으로 생각되었겠지만
  한 발 떨어져서, 시간이 지나서 보면 옳지 않은 일이었단걸 쉽사리 알 수 있다.

  
  그렇지만 선/악의 구분은 정말 애매하다.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테러는 잘못된 믿음으로 일어난 일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이슬람교를 믿지 않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 성스럽다는 믿음이
  얼마나 뒤틀린 생각인지, 
  많은 토론 없이도 합의가 가능할 듯하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해방기구의 테러는 과연 잘못된 것일까?
  쫓겨난게 억울해 땅을 되찾으려는 것이 
  그렇게 나쁜일일까.
  

  물론 테러활동으로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피해를 입히는 방법이 문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렇게치면 일제 강점기에
  도시락폭탄으로, 일본 총사령관의 암살로 한반도를 되찾고자 한
  우리의 의사와 열사들은
  또 누군가의 눈으로는 ’잘못된 믿음으로 악을 행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생각할 거리,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 영화, 드라마가
  좋은 책(영화,드라마)라고 하던데

  이 책은 생각할 거리를 잔뜩 던져준다.

  오래간만에 많은 생각을 했다.
   
  몇 년 지나서 또 읽고, 몇 번 읽고
  이 리뷰 다시보면서 다시 생각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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