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붕의 글로벌 AI 트렌드 - 지금 모든 자본은 AI를 향하고 있다
최재붕 지음 / 쌤앤파커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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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 시점 가장 핫한 주제인 AI... 이 AI의 글로벌 트렌드를 알아 볼 수 있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30년 전 인터넷 혁명을 복도했던 세대에게 지금의 AI 열풍은 데자뷔처럼 다가온다. 하지만 그 본질은 완전히 다르다. 인터넷이 정보의 민주화를 가져왔다면, AI는 권력의 재구조화를 초래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시가총액 세계 1위에 오르고, 젠슨 황과 이재용, 정의선이 한자리에 모이는 8300조 규모의 회동이 이루어지는 현상은 기술 투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이는 새로운 문명의 지배권을 둘러싼 자본과 권력의 전쟁터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모든 산업혁명은 자본의 집중을 동반했다. 증기기관이 그랬고, 전기가 그랬으며, 인터넷이 그랬다. 그러나 AI 혁명은 이전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과거의 기술들이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확장했다면, AI는 인간의 지적 영역을 대체하거나 증폭시킨다. 생산성의 문제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본질과 사 회 구조 전체를 뒤흔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벌어지는 '압축 경영'의 현상은 이러한 변화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과거 10명이 해내던 업무를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한 명의 중견 전문가가 해내는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고용 구조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대량 채용 후 대량 해고라는 빅테크의 무자비한 인력 재편은 AI가 가져온 효율성의 이면이다. 지식노동자라는 안전지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AI 인재 시장의 폭발적 성장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수백억 원이던 계약금이 이제는 조 단위로 치솟고 있다. 이는 AI 핵심 인재가 곧 국 가와 기업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인식의 확산을 반영한다. 젊은 천재 엔지니어들이 자신의 철학과 비전을 지키며 글로벌 기업과 대등하게 협상하는 시대, 여성 엔지니어들이 AI 혁명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시대가 열렸다. 이는 능력주의의 승리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극소수의 슈퍼스타와 대다수의 평범한 노동자 사이의 격차가 극대화되는 양극화의 서막이기도 하다.


AI 시대의 지정학은 냉전 시대의 핵무기 경쟁과 닮아있다. 미국과 중국은 AI 패권을 둘러싸고 전방위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오픈AI, 구글, 메타로 대표되는 미국의 압도적 우위는 명확하다. 그러나 하드웨어, 특히 피지컬 Al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은 위협적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가사노동을 학습하는 동안,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제조 현장에서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급속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를 AI와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연간 수만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 계획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미국이 제조업을 포기한 사이, 중국은 제조업과 A를 결합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과거 IT 시대에 소프트웨어만 중시하다가 하드웨어 경쟁력을 잃었던 일본과 독일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애매하면서도 기회가 있다. AI 기술 수준 세계 6위라는 순위는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상위권 국가들과의 격차는 자본과 인프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2024년까지 한국이 확보한 GPU가 겨우 4천 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자부심과는 달리, AI 연산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6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강점 덕분이다. 첫째, 반도체 제조 능력, TSMC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삼성의 존재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둘째, 제조업 인프라, 자동차, 전자, 조선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축적된 노하우는 피지컬 AI 시대에 빛을 발할 수 있다. 셋째, 인재 양성 시스템.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꾸준히 배출되는 우수한 엔지니어들은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이다. 하지만 이러 한 강점들이 자동으로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 시장을 선도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챗GPT의 오픈A조차 위기설에 직면한 것처럼, AI 시대의 승자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혁신으로 결정된다. 한국이 3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 기업의 과감한 투자, 연구 인프라의 확충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A 시대의 또 다른 특징은 산업 경계의 소멸이다. 과거에는 패션, 게임, 교육, 금융, 헬스케어가 각각 분리된 영역이었다면, 이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하나로 융합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메타 인더스트리의 본질이다. BTS 팬덤이10년 넘게 지속되는 이유는 음악이 좋아서만이 아니다. 팬들은 음악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나아가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주체가 된다. 이러한 팬덤 경제는 과거 특정 국가나 언어권에 국한되었지만, 지금은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네트워크로 진화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한국이 기획과 연출을, 미국이 자본 을, 일본이 제작을 담당하는 이 프로젝트는 더 이상 '어느 나라 작품'이라고 규정하기 어렵다. 이것이 과연 한국의 작품인가 라는 질문은 본질적으로 틀렸다. 메타 인더스트리 시대에는 국적보다 경험과 관계, 그리고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AI는 이러한 메타 인더스트리를 가속화한다. 과거 10억 원이 들던 창업 비용을 AI를 활용하면 1억 원으로 줄일 수 있다. 복잡한 전문 도구 없이도 누구나 고품질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창작의 민주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LMM(대규모 멀티 모달 모델)의 등장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창작과 편집까지 가능하게 만들었다. 나노 바나나와 같은 사례는 AI가 창작의 파트너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토인비의 문명론은 AI 시대에도 유효하다. 문명은 탄생, 성장, 쇠퇴, 해체의 순환을 거치며, 그 전환점은 외부의 도전에 대한 대응 능력에 달려 있다. 과거 디지털 전환에 실패했던 독일과 일본은 AI라는 새로운 도전에도 뒤처지고 있다. 반면 미국과 중국은 혁신과 투자로 응전하며 새로운 문명의 리더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은 어느 쪽에 속할 것인가? 한국의 AI 전략은 기술 개발에만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인재 양성, 조직 구조의 혁신, 정부와 기업의 협력, 그리고 무엇보다 AI 주권의 확보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AI 주권이란 외부에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인 AI 모델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K-컬처는 한국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다. 방탄소년단부터 블랙핑크,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한국 콘텐츠는 글로벌 팬덤을 형성하며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해왔다. 이 팬덤 경제를 AI와 결합한다면 어떻게 될까? 팬들의 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고, AI를 활용해 창작 과정을 혁신하며,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유통한 다면, K-컬처는 문화 상품을 넘어 산업 생태계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빅테크의 독점과 인프라 종속이라는 냉혹한 현실이 존재한다.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가 클라우드 인프라를 장악하고, 엔비디아가 GPU 시장을 지배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명확하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선진국 대열에서 영원히 밀려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 30분, 혹은 1시간씩이라도AI를 공부하는 습관은 개인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 3년, 5년, 10년 후 우리의 삶에 중요한 전환점을 만들 것이다. 실력주의 시대의 도래는 AI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더 이상 학벌이나 인맥이 아니라, Al 를 얼마나 능숙하게 활용하는가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이는 기회이자 위기다. AI 시대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니라 현재다. 우 리는 추격자가 아니라 선도자가 될 기회를 가졌다. 하지만 그 기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과감한 투자, 유연한 조직 문화, 정책적 지원, 그리고 무엇보다 개인의 끊임없는 학습과 적응이 필요하다. AI는 기술이 아니라 권력이며, 그 권력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다음 세대의 문명이 결정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내리는 선택이 한국의 미래를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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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을 끌어안고 나아가기 - 살아갈 날들을 위한 회복의 심리학
김현경 지음 / 유노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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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지우려 애쓴다. 냉장고에 붙은 얼룩, 옷에 묻은 커피 자국, 그리고 마음속 불안까지. 하지만 물리적인 얼룩과 달리, 불안은 지우려 할수록 더 진하게 번진다. 마치 잉크가 물에 퍼지듯, 불안을 밀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불안을 증폭시킨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 제로'의 삶을 이상향으로 여긴다. SNS에는 완벽한 일상들이 넘쳐 나고, 자기계발서는 불안을 극복한 성공 스토리를 쏟아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끼는 자신을 결핍된 존재로, 치유가 필요한 환자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정작 불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불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불안을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전장에 갇혀버린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회피하고, 억압하고, 부정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소진된다. 마치 모래밭에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불안과의 싸움은 우리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밀어 넣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수용전념치료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불안을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불안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심리적 유연성을 기르는 과정이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수용전념치료가 말하는 치유의 본질이다.


우리의 마음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생산해낸다.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할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생각은 팝콘처럼 머릿속에서 터져 나온다. 한 알이 터지면 연쇄적으로 또 다른 알들이 터진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팝콘 냄새에 휩싸여,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는 실수를 범한다. "나는 우울하다"와 "나는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 고 있구나"는 전혀 다른 문장이다. 전자는 우울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상태이고, 후자는 우울이라는 생각을 관찰하는 상태다. 이 미묘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거리는 엄청나다. 생각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이 곧 진실이 아님을 인지한다는 의미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매우 설득력 있고 그럴듯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실인 것은 아니다. 마음은 생존을 위해 진화해왔고, 그래서 위험을 탐지하고 문제를 예측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결점을 찾아내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리는 것은 마음의 정상적인 기능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이러한 경고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실제 생명의 위협이 아닌 상황에서도 마음은 마치 사자를 만난 것처럼 반응한다. 상사의 메시지, 시험 성적, 타인의 평가 앞에서 우리의 뇌는 생존 모드로 전환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탈융합'이다. 생각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는 연습. "또 시작이군" 하고 미소 지으며 지나가는 훈련. 불안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과 씨름하는 대신, "아, 지금 내 마음이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라고 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심리적 유연성의 시작이다. 버스 비유는 이를 잘 설명해준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이라는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그런데 때때로 불안, 분노, 수치심 같은 진상 승객들이 버스에 올라탄다. 이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운전자인 당신에게 이래저래라 지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진상 승객들을 버스에서 쫓아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수용전념치료는 다른 접근을 제안한다. 그들이 버스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운전대는 절대 놓지 말라는 것. 진상 승객이 떠들어도, 당신이 정한 방향으로 버스를 몰고 가는 것. 그것이 바 로 불안과 함께 나아가는 방법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를 끊임없이 평가한다. 학점, 연봉, 직급, 외모, SNS 좋아요 숫자. 우리는 이러한 지표들을 통해 자신의 가 치를 측정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부족함을 느낀다. 성취하지 못하면 의미 없는 존재가 된 것 같고,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면 삶이 낭비되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하는 것(doing)'으로만 자신을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수용전념치료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이루었나?"가 아니라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이것은 성취가 아닌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춘 물음이다. 어떤 태도로 하루를 살아갈 것인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선택할 것인지, 지금 이 순간 어떤 사람으로 존재할 것인지. 이러한 질문들은 외부의 평가나 결과와 무관하게,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가치는 목표와 다르다. 목표는 도달점이 있지만, 가치는 방향성이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가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실천되는 것이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순간, 피곤해도 동화책을 읽어주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이 가치의 실현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암 선고를 받은 저자가 무엇을 하려고 마음먹지 마세요. 그저 기도하세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무너진 삶 위에서 다시 일어서는 방법은 더 강하게 버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짐 자체를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실존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 나의 혼 란과 고요함, 이름 붙일 수 없는 순간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 자체로서의 나. 어떤 역할이나 성취로 규정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존재. 우리는 종종 이 본질을 잊어버리고 겉옷만 바라본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을 벗어던졌을 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찾아온다.


삶은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부서지면서도 계속 걸어갈 용기가 있는지 묻는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상처받고, 때로는 무너진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증거다.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후에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기록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독자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는 대신, 그것을 글로 적어내며 마주한 것. 일기를 통해 현재의 나를 알아가고, 플래너를 통해 목표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 이것이 바로 불안과 함께 나아가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불안과 친구가 되는 연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순간들도 있다. 불안이 다시 찾아올 때, 우리는 좌절하고 자책한다.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불안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물러간다. 중요한 것은 그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고, 발을 딛고 서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관찰하는 것, 생각에 휘둘리는 대신 거리를 두는 것, 완벽을 추구하는 대신 과정을 존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조금씩 자유롭게 만든다. 불안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 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안에게 운전대를 넘기지 않을 수 있다. 불안이 뒷좌석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가 정한 방향으로 버스를 몰고 갈 수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모든 감정은 우리 안에 존재할 권리가 있다. 불안이도, 슬픔이도, 기쁨이도 모두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귀 기울이되 지배당하지 않는 것, 함께 걷되 끌려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심리적 유연성이고, 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고, 더 나다워지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지나가며,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불완전하지만 아름답게, 부서지지만 용감하게.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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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지지만 않아도 오래 살 수 있다 - 도쿄도 건강장수의료센터 김헌경 박사가 알려주는 건강자립의 비밀
김헌경 지음 / 비타북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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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부모님 세대를 보며 자주 생각한다. 언제부터 그분들의 걸음이 저렇게 조심스러워졌을까. 마루턱을 넘을 때도, 계단을 오를 때도, 심지어 평지를 걸을 때도 발을 살금살금 디디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편이 무거워진다. 젊은 시절 그토록 씩씩하고 활동적이셨던 분들이 이제는 '넘어질까 봐'라는 두려움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신다. 그리고 실제로 주변에서 낙상 사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것이 삶 전체의 궤도를 바꾸는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김헌경 박사는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흔히 나이 들면 당연히 몸이 약해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노화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노쇠는 예방 가능한 질병이라고.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다. 우리는 무기력하게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대비하고 준비함으로써 전혀 다른 노년을 맞이할 수도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낙상이 가져오는 연쇄 반응에 대한 설명이다. 한 번의 넘어짐이 골절로 이어지고, 골절은 장기간의 침상 생활을 강요하며, 그 과정에서 근육은 더욱 빠르게 소실되고, 결국 자립적인 삶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악순환. 이것은 통계나 연구 결과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목격하는 현실이다. 한 번의 사고가 독립적이고 활기찬 노년을 의존적이고 제한된 삶으로 바꿔버리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된다.

'근육 연금'이라는 표현은 참으로 절묘하다. 우리는 노후를 대비해 금융자산을 모으고, 연금을 준비하고, 부동산을 마련한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자산, 즉 우리 몸의 기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일에는 소홀하다.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어도 스스로 걷지 못하고, 화장실을 혼자 갈 수 없고, 식사를 스스로 할 수 없다면 그것이 과연 행복한 노년일까? 저자가 제시하는 데이터들은 충격적이다. 하체 근력이 떨어지면 뇌 기능도 함께 감소한다는 연구, 앉았다 일어서는 동작의 수행 능력 이 수명을 예측하는 지표가 된다는 사실, 근육량 감소가 단백질 흡수 효율까지 떨어뜨려 영양 불균형을 초래한다는 점. 이 모든 것이 근육이 힘을 쓰는 기관이 아니라, 우리 몸 전체 시스템의 핵심 기둥임을 보여준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근육과 인지 기능의 상관관계다. 걷기, 균형 잡기, 자세 유지 등의 신체 활동은 뇌를 자극하고 활성화하는 중요한 과정이다. 규칙적인 하체 운동이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이제 더 이상 놀랍지 않다. 근육을 움직이는 것은 곧 뇌를 움직이는 것이고, 신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은 곧 정신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이 근육 연금을 준비해야 할까? 저자는 명확하게 답한다. 지금 당장이라고. 40대부터 근육량은 해마다 감소하기 시작하고, 50대 이후에는 그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60대, 70대가 되어서야 운동을 시작하면 이미 많은 것을 잃은 후다. 중년 부터 꾸준히 근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노후 준비인 셈이다.

건강서적들이 범하는 가장 큰 오류는 이론적 설명에만 치중하거나, 반대로 너무 전문적이고 어려운 운동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천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헬스장에 가지 않아도, 특별한 장비가 없어도, 심지어 운동 경험이 전혀 없어도 따라할 수 있는 방법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GOG080 운동법, 인터벌 걷기, 좌식근육 강화 운동 등 각각의 운동은 복잡하지 않다. 오히려 너무 단순해서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의심이 들 정도다. 하지만 바로 그 단순함이 이 운동법의 핵심이다. 복잡하고 어려운 운동은 아무리 좋아도 지속하기 어렵다. 반면 간단하고 쉬운 동작을 매일 반복하면 그것이 습관이 되고, 습관은 결국 우리 몸을 변화시킨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근력을 측정하고 점검할 수 있는 방법들이다. 종아리 둘레를 재보는 것만으로도 근감소증 위험을 가늠할 수 있고, 의자에서 일어서는 속도와 횟수로 하체 근력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자가 진단법은 병원에 가지 않아도, 전문가를 만나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상태를 점검하고 관리할 수 있게 해준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운동만이 아니라 식습관, 수면, 생활 패턴까지 종합적으로 다룬다는 점이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해도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면 근육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충분한 휴식 없이 과도하게 운동하면 오히려 몸을 상하게 한다. 이 책은 근력 강화를 하나의 고립된 활동이 아니라, 전체적인 생활 방식의 변화로 접근한다. 그래서 더욱 설득력 있고, 실제로 삶에 적용 가능하다.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은 어떤 노년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위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거창한 계획이나 완벽한 실천이 아니어도 좋다. 오늘 10분이라도 스쿼트를 해보고, 계단을 한 층이라도 더 걸어 올라가고, 저녁 식사에 단백질 반찬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모여 '근육 연금'이 되고, 그것이 결국 나를 지켜주는 가장 확실한 자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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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모든 글을 기억한다 - 계속 쓰는 사람 정지우의 연결과 확장
정지우 지음 / 해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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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사람들의 세계‘는 한 사람의 진심에서 시작되어 점점 확장되고 있다. 수억 광년씩 떨어진 밤하늘의 별들이 이어져 별자리를 만들듯, 밤을 건너 만난 사람들이 만들어낸 시간이 하나의 별자리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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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모든 글을 기억한다 - 계속 쓰는 사람 정지우의 연결과 확장
정지우 지음 / 해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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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 이런 모임이 또 있을까. 정지우 작가는 매년 연말이면 '글쓰기 A/S 모임'을 연다고 한다. 글쓰기 모임을 마친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는지 묻고, 쓰고 싶은 마음을 북돋아주며, 글쓰기에 관한 고민을 들어준다. 제품도 아닌 사람의 글쓰기에 A/S를 제공한다니, 이보다 더 진심 어린 태도가 있을까? 대부분의 모임은 끝나면 자연스럽게 흩어진다.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작가는 10년 동안 글쓰기 모임을 이끌어오면서, 모임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방법을 찾아냈다.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공저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다시 만나 서로의 근황을 나눈다.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가장 깊은 내면을 꺼내 보인 사람들 사이의 특별한 유대다. 한 사람의 우울했던 순간, 기뻤던 순간, 아팠던 순간이 농축된 글을 함께 읽은 사이는 결코 가벼운 관계일 수 없다. 특히 글쓰기를 통해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서른이나 마흔에 작가가 된 이들에게 글쓰기는 삶을 기록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만드는 도구였을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사람들은 자주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내면의 상처, 남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고민, 숨겨두었던 아픔들을 꺼내놓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지우 작가는 글쓰기란 바로 그런 과정이라고 말한다.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이야기가 사실은 해도 되는, 아니 반드시 해야 하는 이야기였음을 깨닫는 여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함부로 던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치유하면서 동시에 위로하는 방식으로 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글쓰기의 핵심이다. 나의 상처를 드러내되, 그것이 폭력이 되지 않고 공감의 다리가 되도록 만드는 것. 내 안의 어둠을 마주하되, 그 안에서 빛을 찾아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는 것이다. 글쓰기 모임에서 사람들은 많이 운다고 한다. 그리고 밤을 지새운다. 누군가는 더 나은 삶을 살게 되었다며, 죽기 전에 이 모임을 떠올릴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글쓰기의 힘이다. 자신의 가장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언어로 형상화하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과정에서 사람은 변화한다.

글쓰기의 원칙은 맥락, 대조, 정확한 솔직함이다. 첫째, 맥락을 쓰라는 것이다. 돌담에 핀 꽃이 아름답다는 문장은 누구나 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꽃이 그날 나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내 삶의 어떤 순간과 연결되는지를 밝히는 것이다. 서산 앞바다의 저녁노을을 보며 누군가는 첫사랑을, 누군가는 이별을, 또 다른 이는 죽음을 떠올린다.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각자의 맥락 속에서 전혀 다른 의미가 만들어진다. 김훈 작가의 소설 첫 문장처럼 주어와 동사만으로 객관적 사실을 전달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대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과 감정을 담아내는 것이 진정한 내 글이 된다. 올라갈 때는 보이지 않던 꽃이 내려올 때 보이는 것처럼, 같은 길을 걷더라도 그때의 나의 상태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그 차이를 포착하고 기록하는 것이 맥락을 쓰는 일이다.

둘째, 대조를 활용하라는 것이다. 좋은 글은 무언가와 싸운다. 정확히 말하면,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글은 반드시 대립하는 다른 메시지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무엇인지 쓴다는 것은, 사랑이 아닌 것과의 경계를 명확히 한다는 뜻이다. 자기만의 행복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세상의 통념과 다른 나만의 기준을 세운다는 의미다. 데이터는 그 자체로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데이터를 비교하면 정보가 되고, 정보를 분석하고 깊이 사유하면 지식이 된다. 토마 피케티가 300년의 빅데이터를 분석하면서도 발자크와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인용한 것처럼, 진정한 통찰은 비교와 대조, 그리고 인문적 사유에서 나온다.

셋째, 정확하게 솔직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에는 자신의 허물까지 드러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말해야 치료의 방법이 생기듯, 글쓰기에서도 정직함이 치유의 시작점이 된다. 정지우 작가가 이끄는 모임의 참여자들은 자신의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기 시작하면서 얼굴이 밝아진다고 한다.

현대 사회는 팽창하는 우주처럼 사람들이 점점 멀어지는 곳이다. 개개인은 고립되어 있고, 인간과 인간이 진정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낄 기회는 점점 줄어든다. SNS로 연결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자의 섬에서 혼자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글쓰기에는 신비로운 힘이 있다. 내 안의 가장 깊은 곳에 닿을 때, 그 글은 우리의 가장 깊은 곳에도 닿는다. 고립된 수험 생활을 하던 시절 정지우 작가가 쓴 글이 오히려 가장 많은 사람에게 다가갔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자신이 세상과 유리된 먼 섬에 있다고 느끼던 그 순간에 쓴 글이, 비슷한 고립감을 느끼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내 안의 우물을 깊이 파 내려가다 보면, 거기에는 타인과 이어지는 지하수가 있다. 내가 가장 나다울 때, 가장 솔직할 때, 가장 깊이 들어갈 때, 역설적으로 가장 보편적인 것과 만난다. 이것이 글쓰기의 신비다. 언어에는 소통의 꿈이 있고, 그 꿈은 글쓰기를 통해 실현된다. 글쓰기는 무한한 홀로 있음이면서 동시에 무한한 이어짐이다.


정지우 작가는 작가들의 연대에 대해 느슨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너무 큰 기대나 욕심을 부리지 않고, 자유롭게 와해되거나 팽팽해지며 하나의 유기체처럼 흘러가도록 둔다. 생명이 다하면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듯, 이 연대가 사라지는 날이 와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하지만 이 연대가 존재하는 한, 자신이 먼저 이 끈을 놓지는 않겠다고 말한다. 이 태도가 아름답다.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책임감을 갖는 것. 영원을 약속하지 않으면서도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한 것. 글을 쓰고자 했던 사람들이 실제로 글을 쓰고, 자기를 표현하며, 글로써 세상과 소통하고, 삶에서 글쓰기의 자리를 만들어가도록 돕는 일. 그를 통해 사람들이 깊이 연결되고, 누군가의 삶을 펼치는 데 서로 도움이 되는 일. 이것이 넷플릭스의 재미있는 드라마보다도 더 즐겁다고 말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진정한 보람이 무엇인지 배운다. 10년간 글쓰기 모임을 이끌어오며 수많은 사람을 만난 정지우 작가. 그중 여럿이 데뷔해서 동료 작가가 되었고, 다른 모임원들도 각자의 모임을 만들어 교류하고 있다. 이 '쓰는 사람들의 세계'는 한 사람의 진심에서 시작되어 점점 확장되고 있다. 수억 광년씩 떨어진 밤하늘의 별들이 이어져 별자리를 만들듯, 밤을 건너 만난 사람들이 만들어낸 시간이 하나의 별자리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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