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꽃체 마스터북
최현미 지음 / 시원북스 / 2026년 3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마지막으로 펜을 쥐고 무언가를 썼던 게 언제였는지, 솔직히 떠오르지 않는다. 메모도 스마트폰으로, 일지도 노트북으로, 심지어 누군가에게 건네는 작은 쪽지조차 메신저 앱으로 대신하는 생활이 어느 순간부터 당연해졌다. 손이 해야 할 일을 자판이 모두 가져가버린 것이다. 그러다 문득 다이어리 한 켠에 메모를 적으려 펜을 들었을 때, 낯선 감각에 잠시 멈췄다. 내가 쓴 글씨가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삐뚤고 힘이 없었으며, 같은 글자도 쓸 때마다 다른 모양이 나왔다. '이게 정말 내 글씨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이 감각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그동안 몰랐던 것일 테다. 그 무렵, 인쇄한 것처럼 단정한 손글씨 사진 한 장을 우연히 보게 됐다. 사람이 직접 쓴 것이라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아 한참을 들여다봤다. 알고 보니 악필이었던 한 작가가 오래 혼자 연습하며 만들어낸 글씨체라고 했다. 나는 그 이야기에서 묘한 희망 같은 것을 느꼈다.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쌓아가는 것이라면. 어쩌면 나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책이 도착했을 때 처음에는 단순한 필사 노트쯤 되겠거니 했다.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예쁜 문장 아래 줄을 그어 따라 쓰는 방식의 책. 그런데 막상 펼쳐보니 이 책은 그런 종류가 아니었다. 자세를 잡는 법부터 시작했다. 허리를 세우고, 팔꿈치를 책상에 가볍게 얹고, 펜을 너무 꽉 쥐지 말 것. 그 다음은 선 긋기. 세로 선 하나를 천천히, 숨을 살짝 참고, 힘을 빼고. 겨우 선 하나인데 손이 이상하게 긴장됐다. 나는 이게 글씨 쓰는 법이 아니라 거의 명상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때 받아쓰기를 준비하며 공책 가득 글자를 채우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는 '잘 써야 한다'는 긴장보다 '한 칸을 꽉 채운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오래 잊고 있던 그 감각이 손끝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책의 종이는 생각보다 좋았다. 펜이 사각거리며 미끄러지는 느낌, 잉크가 번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무는 감촉. 180도로 완전히 눕혀지는 제본 덕에 양쪽 손이 자유로웠다. 연습하는 환경 자체가 글씨를 쓰고 싶게 만드는 구조였다.
처음 며칠은 솔직히 잘 안 됐다. 선은 떨리고, 자음은 제자리를 잃고, 같은 글자를 열 번 써도 열 가지 모양이 나왔다. '나는 역시 안 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이 슬며시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런데 책은 그 지점에서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무작정 예쁜 글씨를 따라 쓰라고 하지 않았다. 왜 이 획이 이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자음과 모음이 어떻게 균형을 잡는지, 글자 사이 간격이 왜 중요한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나는 처음으로 글씨의 '구조'를 생각하게 됐다. 그동안 내 글씨가 흐트러졌던 이유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리를 몰랐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조금씩 달라지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로 선이 조금 더 반듯해졌고, 'ㅏ'의 가로획이 균일해졌다. 완성된 글씨라고 하기엔 한참 멀었지만, 어제의 내 글씨와 오늘의 글씨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작은 기쁨으로 남았다.
연습을 이어가며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잘 쓰려면 반드시 천천히 써야 한다는 것이다. 펜을 잡고 한 획을 그을 때, 나는 그 짧은 순간 동안 다른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답장을 해야 하는 메시지도, 내일 할 일도, 오늘 있었던 사소한 마찰도 전부 한쪽으로 밀려난다. 그저 이 선이 반듯하게 내려가는가, 적당한 힘이 담겼는가만 남는다. 그게 생각보다 고요한 시간이었다. 타이핑은 빠르다. 그래서 생각보다 앞서 손가락이 먼저 달려가는 느낌이 있다. 하지만 손글씨는 다르다. 생각의 속도에 손이 맞춰야 한다. 어떤 때는 손이 생각을 앞지르려 하지만, 그때마다 글씨가 무너진다. 결국 글씨를 쓰는 일은, 내 리듬을 찾아가는 일이기도 했다. 나는 요즘 하루에 한 페이지씩을 채운다.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하루에 잠깐, 자판을 내려놓고 펜을 드는 시간. 그 시간이 쌓이면 글씨가 달라진다고 하는데, 어쩌면 나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지 모른다.
한번은 연습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무언가를 '몸으로 안다'고 할 때, 그것은 반복이 만들어낸 결과다. 자전거를 타는 법, 수영하는 법, 악기를 연주하는 법. 이것들은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몸이 기억한다. 손글씨도 그렇다. 처음에는 눈으로 모양을 보며 따라 쓰지만, 어느 순간부터 손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한다. 글씨체를 만든 작가의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악필로 시작해서 혼자 연습을 거듭하고, 결국 자신만의 글씨를 만들어냈다는 것. 그건 그냥 예쁜 글씨를 갖게 된 이야기가 아니다. 오래 반복하고 쌓아가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그 부분이 마음에 닿았다. 지금 내 글씨는 아직 서툴다. 어떤 날은 어제보다 못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처음 펜을 잡았을 때처럼, 낯선 무언가를 다시 익히는 감각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서툰 채로 시작했고, 서툰 채로 계속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다. 자판을 두드리는 일과 펜을 쥐는 일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속도가 아니라 결이 다르다. 그 결을 다시 배우는 중이다. 천천히, 한 획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