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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짧고, 나는 가볍게 살기로 했다 - 차가운 접시 하나로 하루를 식히는 여름 에세이
조이연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 역시 매년 여름이 되면 같은 자리에서 같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는 것이다. 냉장고 문 앞에서, 소파에 앉은 채로, 휴대폰 화면을 켰다 끄기를 반복하며. 더위 때문이라고 말하기엔 마음이 지쳐 있는 순간들이 유독 여름에 자주 찾아온다는 것을, 나는 오래도록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여름을 늘 '견디는 계절'로만 여겨왔다. 땀이 나고, 몸이 무겁고, 밤에는 잠을 설치는 계절. 그래서 더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그저 버텨냈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버티고 있던 것은 더위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여름이라는 계절 속에서 나는 평소보다 더 많은 것을 참고, 더 많은 말을 삼키고, 더 많은 순간에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다.
작년 여름 어느 저녁이 떠오른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가방을 내려놓지도 않은 채 한참을 현관에 서 있었다. 딱히 힘든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지하철의 열기, 사무실의 냉방과 바깥 공기의 온도 차, 점심시간의 소음 같은 것들이 조금씩 쌓여 있었을 뿐이다. 그날 나는 저녁을 차리지 못했다. 냉장고 문을 열어놓고 한참을 서 있다가, 결국 오이 하나를 씻어 썰어 먹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때는 그것이 부끄러운 하루라고 생각했다.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한, 게으른 저녁이라고. 하지만 책이 말해주듯, 그것은 게으름이 아니라 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최소한의 돌봄이었을지도 모른다. 근사한 저녁을 차릴 힘이 없다고 해서 나를 굶긴 것은 아니었다. 가장 만만한 것 하나를 꺼내어 나를 먹였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우리는 종종 저녁을 잘 차려야만, 하루를 완벽하게 마무리해야만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떤 날의 저녁은 잘 차리는 일이 아니라 무너지지 않게 붙잡는 일에 더 가깝다는 문장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인상 깊었던 부분은 '대답도 천천히'라는 대목이었다. 나는 평소 답장이 느린 사람을 은근히 못마땅하게 여기곤 했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도 여름이면 별일 아닌 메시지 하나에 며칠씩 답을 미루곤 했다. 상대가 나쁜 의도로 연락한 것도 아닌데, 그 평범한 안부 인사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저녁들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를 탓했다. 왜 이렇게 예민해졌을까, 왜 이런 사소한 일에도 지치는 걸까 하고. 그러나 이제는 안다. 그것은 내 마음이 나빠진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너무 오래 뜨거운 곳에 놓여 있었던 결과였다는 것을. 마음에도 온도가 있고, 그 온도가 너무 높아지면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 말들도 날카롭게 느껴진다는 것을 이제는 이해한다.
여름은 나에게 '얼마나 잘 해내는가'보다 '내가 얼마나 데워져 있는가'를 먼저 살피라고 가르쳐준 계절이다. 지금까지 나는 계절과 상관없이 늘 같은 속도로, 같은 기준으로 나를 몰아붙였다. 쉬는 날에도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저녁에는 손해 본 기분마저 들었다. 그러나 여름날의 무기력함은 게으름의 증거가 아니라, 내 안에 쌓인 열기를 알아차리라는 신호였을 것이다. 몸이 먼저 멈추고 싶다고 말할 때, 그 말을 무시하지 않고 들어주는 일. 그것이 이 계절을 건너는 방법이라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올해 여름에는 조금 다르게 지내보려 한다. 답장이 늦어지는 나를 다그치지 않고, 저녁을 대충 차린 날에도 나를 한심하게 여기지 않기로 한다. 대신 찬물 한 잔을 천천히 마시고, 냉장고에서 가장 만만한 것 하나를 꺼내 접시에 담아본다. 토마토를 반으로 자르고, 다시 반으로 자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엉켜 있던 생각들이 조금씩 간격을 찾는 것을 느껴본다. 완벽하게 회복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무사히 하루를 넘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나에게 자주 말해주려 한다. 더위보다 먼저 지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오래 그늘 없이 서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는 나에게도 그늘을 허락해줄 시간이라는 것을, 조용히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