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으로 1억 만들기 - 월급 모으기·관리·투자까지 한 권으로 끝내는 평생 재테크 공식
한희재(재리) 지음 / 시원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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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금융문맹"이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정작 내 통장을 들여다보면 왜 돈이 남지 않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 역시 그랬다. 매달 월급이 들어오고, 나름대로 아껴 쓴다고 생각했지만, 월말이 되면 어김없이 잔고는 바닥을 보였다. 돈을 버는 능력은 있지만, 모으고 지키고 불리는 능력은 없었던 것이다. <월급으로 1억 만들기>를 읽으며 가장 먼저 깨달은 것은, 재테크는 거창한 투자 기법이나 대단한 재능이 아니라 '올바른 금융 습관'에서 시작된 다는 점이다. 작가는 시급 5,000원에서 출발해 자산 10억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비결은 특별한 투자 수완이 아니라 꾸준한 기록과 실천이었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알기-쓰기-모으기-벌기-불리기"라는 5단계 로드맵을 제시한다. 이 단순해 보이는 구조가 사실은 가장 견고한 재테크의 기본 틀이라는 것을 책은 증명한다. 책을 읽으며, 내가 지금까지 ’알기' 단계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 돈이 어디서 새는지, 어떤 구조로 흐르는지 정확히 알지 못 한 채 막연히 저축만 하려 했던 것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실천하기로 한 것은 '자산 건강검진'이다.

책에서 제시하는 자산 건강검진은 총 7단계로 구성된다. 통장과 카드 전수 조사, 자본 정리, 부채 기록, 수입 파악, 고정지출•변동지출 점검, 연말정산 내역 확인까지.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내가 얼마나 무심하게 돈을 다뤄왔는지 뼈아프게 느껴진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통장과 카드 전수 조사'였다. 나는 쓰지도 않는 통장을 몇 개나 방치해두고 있었고, 연회비만 나가는 카드도 서너 개 있었다. 이런 작은 누수들이 모여 한 해 수십만 원을 새게 만들고 있었다. 작가는 "2개의 카드와 4개의 통장"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체크카드 1장, 신용카드 1장, 그리고 수의•고정비•생활비•비상금 통장. 이 단순한 구조만으로도 돈의 흐름이 명확해지고, 관리가 쉬워진다는 것이다. 나는 당장 오늘부터 불필요한 통장을 정리하고, 카드를 2장으로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 매달 월급이 들어오면 자동이체로 각 통장에 돈을 분배하는 시스템을 만들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월급이 '스쳐 지나가는' 구조에서 '남는' 구조로 바뀔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신용점수 관리다. 책에서는 신용점수를 "부자가 되는 첫걸음"이라고 표현한다. 대출 이자를 줄이고, 한도를 높이며, 나아가 내집 마련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나는 그동안 신용점수를 한 번도 확인해본 적이 없었다. 이제는 마이데이터 앱을 통해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체크카드 사용을 늘리며, 신용카드 사용률은 30% 이하로 유지하는 습관을 들이려 한다.

재테크라고 하면 으레 '절약'과 '인내'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작가는 돈을 쓰는 일에도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기념일 예산과 효도 예산까지 미리 세워두라고 조언한다. 이는 단순히 돈을 아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쓰면서도 후회하지 않는 구조를 만들기 위함이다. 특히 '기념일 통장'과 '효도 협의서'라는 개념이 신선했다. 가족이나 연인과 의 특별한 날을 위해 미리 예산을 정해두고, 그 안에서 의미 있게 소비하는 것. 이렇게 하면 감정적인 소비로 인한 죄책감도 줄고, 오히려 계획적인 소비가 관계까지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부모님 생신과 명절, 내 생일과 기념일을 미리 정리해두고, 각각에 얼마를 쓸지 예산을 정해두기로 했다. 그리고 그 돈은 매달 조금씩 '기념일 통장'에 모아둘 것이다. 이렇게 하면 갑작스러운 지출로 인해 저축이 무너지는 일도 없고, 소비 자체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질 것 같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금 모으기'와 '주식 모으기' 전략이다. 생일 선물로 케이크 대신 금 한 돈을, 기념일 꽃다 발 대신 ETF 한 주를 사는 것. 처음에는 작은 실천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작은 자산들이 인플레이션을 이기고 불어난다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가 매우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하다고 느꼈다. 당장 다음 달부터 가족들 생일에 금을 선물 하고, 나 자신에게도 매달 소액으로 ETF를 사 모으기로 했다. 1년, 3년, 5년이 지나면 이 작은 습관이 얼마나 큰 자산으로 자라날지 기대가 된다. 또한 ISA 계좌와 연금저축펀드 같은 절세 상품도 적극 활용하려 한다. 작가는 ISA를 3년 목돈 만들기에 딱 좋다"고 표현하며, 9.9% 분리과세 혜택까지 설명해준다. 나는 지금껏 이런 상품을 어렵게만 생각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왜 진작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작가는 "절약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부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턱대고 부업을 시작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높이는 부업을 선택하라고 조언한다. 블로그, 재능 기부, 온라인 강의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역량과 커리어까지 함께 성장하는 일 말이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블로그를 시작해 꾸준히 기록을 남기고, 언젠가는 전자책이나 강의로까지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기 용돈벌이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나를 성장시키는 '두 번째 수입 원'을 만드는 것. 이것이 진짜 부업의 의미라는 것을 배웠다. 투자 부분에서는 ETF 중심의 장기 투자 전략이 가장 와닿았 다. 작가는 개별 종목 단타가 아니라, 미국 대표 지수 ETF 몇 개로 구성하는 기본 포트폴리오를 제안한다. 월 10만~15만 원으로 시작하는 소액 투자 루틴, 이해 가능한 범위 안에서 오래 가져가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평범한 직장인이 안전하게 자산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고 나니, 1억이라는 숫자가 더 이상 막연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달 월급에서 조금씩, 구조를 바꾸고 습관을 들이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목표라는 확신이 생겼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투자 기법이 아니라, 꾸준한 기록과 실천이다. 나는 오늘부터 자산 건강검진을 시작하고, 월급 가계부를 작성하며, 작은 것부터 하나씩 바꿔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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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6-01-20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억 만들기, 내 젊은 시절의 추억이 소환되기도 합니다.
 
형태의 문화사 - 사물의 생김새로 읽는 인간과 문명 이야기
서경욱 지음 / 한길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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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나는 침대 모서리에 발을 내딛고, 문고리를 잡아 돌리고, 계단을 내려가 식탁 앞에 앉는다. 이 모든 행위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는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었다. 왜 문고리는 하필 이 크기일까. 왜 계단의 높이는 이 정도일까. 왜 나는 식탁 앞에서 자연스럽게 이 자세로 앉게 될까. <형태의 문화사>를 읽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세계에 맞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나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더 정확히 말하면, 인간이라는 종의 평균적 신체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구조 속에서 나는 조금씩, 매일,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손바닥을 펼쳐본다. 다섯 손가락이 모이는 이 작은 공간이 세상의 크기를 정했다. 야구공은 왜 지금의 크기일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다. 인간의 손이 세밀하게 조작할 수 있는 최대 크기가 바로 그 정도이기 때문이다. 문고리의 지름도, 컵의 손잡이도, 심지어 스마트폰의 가로 길이까지. 모든 것이 손의 크기라는 생물학적 한계 안에서 결정되었다. 동전이 둥근 이유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주머니 속에서 걸리지 않기 위해서다. 지폐가 네모난 이유는? 접고, 쌓고, 세기 위해서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말이 있지만, 더 정확하게는 형태가 몸을 따른다. 인간의 손과 발, 눈과 귀, 피부의 감각이 세계의 형태를 규정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거리를 걷다가 간판의 높이를 보면 인간의 평균 시선 높이가 떠오르고, 카페의 의자에 앉으면 무릎 관절의 각도가 느껴진다. 문명이란 결국 몸의 복제본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역방향의 흐름이다. 우리가 형태를 만들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형태가 우리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만 있는 현관 문화를 생각해보자. 낮게 구획된 현관 공간은 단순히 신발을 벗는 장소가 아니다. 그것은 '안'과 '밖'을 심리적으로 구분하는 경계선이며, 청결에 대한 문화적 집착을 공간화한 결과다. 현관이라는 구조가 먼저 있었고, 그 구조 속에서 우리는 깨끗함과 더러움을 구분하는 감각을 체화했다. 온돌 문화도 마찬가지다. 바닥이 뜨거워지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앉게 되었고, 앉는 생활방식은 다시 가구의 높이를, 식사 방식을, 심지어 몸의 유연성까지 바꿨다. 구조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다시 정체성을 만든다. 그렇다면 질문이 생긴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은 정말 내가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설계된 공간의 구조가 나를 이렇게 살도록 유도한 것일까.

서양의 건물에 들어가면 조명이 어둡다고 느낀 적이 있다. 그것이 단순히 미적 취향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눈동자 색깔의 차이 때문이었다. 밝은 색 눈동자를 가진 서양인들은 더 많은 빛을 흡수할 수 있어서, 낮은 조도에서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 조명 설계는 생리학적 차이를 반영한 결과였다. 쇼츠나 릴스 같은 짧은 영상이 세로 화면인 이유도 비슷하다. 양안시 영역, 즉 양쪽 눈이 동시에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영역은 가로보다 세로로 더 길다. 세로 영상은 유행이 아니라 인간의 시각 구조에 최적화된 형태였던 것이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우리가 편하다고 느끼는 것들 대부분이 사실은 우리 몸의 구조에 맞춰져 있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동시에 묻게 된다. 그렇다면 그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가. 평균 키보다 작거나 큰 사람, 다른 시각 구조를 가진 사람, 다른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은 이 세계에서 계속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가.

가장 소름 끼쳤던 부분은 개방형 사무실에 관한 대목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개방형 사무실을 민주적이고 소통이 활발한 이상적 공간으로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누구의 시선도 피할 수 없는, 완벽한 감시 구조다. 권력을 가진 사람은 전체를 조망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의 시선에 노출되어 있다. 형태는 중립적이지 않다. 형태 안에는 권력관계가 새겨져 있다. 누가 편하고 누가 불편한지, 누가 보고 누가 보이는지, 누가 중심이고 누가 주변인지. 공간의 설계는 곧 권력의 설계다. 지금 우리는 AI가 형태를 자동 생성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알고리즘은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서 '최적의' 형태를 제안한다. 하지만 그 최적이란 무엇인가. 누구의 몸을 기준으로 한 최적인가? 평균값은 효율적이다. 하지만 평균값으로 설계된 세계는 평균에서 벗어난 모든 사람을 자동으로 배제한다. 알고리즘이 학습한 데이터 속에 어떤 몸들이 포함되어 있고, 어떤 몸들이 누락되어 있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형태는 더 정교해지고 더 편리해진다. 하지만 동시에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편리함은 누구의 편리함인가. 이 형태는 누구의 몸을 상상하며 만들어졌는가.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은, 결국 자유란 구조를 의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나를 둘러싼 형태들이 나를 어떻게 길들이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첫걸음이다. 습관을 바꾸고 싶다면,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환경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 책상의 배치를, 방의 구조를, 동선을 바꿔야 한다. 변화는 결심이 아니라 형태의 변경에서 시작된다. 오늘 저녁, 집에 돌아가 문고리를 잡을 때 나는 잠시 멈춰 설 것이다. 이 손잡이의 크기가, 이 문의 높이가, 이 공간의 구조가 나를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생각하면서. 그리고 물을 것이다. 나는 정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구조가 허락한 방식으로 살고 있는가. 형태를 의심하는 것. 그것이 문명을 보는 눈이고, 나 자신을 되찾는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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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돈의 시대, 스테이블코인 - 경제 현장에서 본 달러 이후의 돈, 디지털 화폐 이야기
김신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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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돈이란 무엇인가. 이 오래된 질문 앞에서 우리는 지금 새로운 전환점에 서 있다. 금속 조각에서 종이로, 종이에서 디지털 숫자로 진화해온 화폐가 이제 블록체인 위의 코드로 다시 한번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블로체인 기술로부터 시작된 브트코인으로부터 이제는 스테이블코인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출범과 함께 대두되고 있는 또다른 형태의 암호화페인 스테이블코인에 대해 알아본다.

​흥미로운 점은 이 새로운 화폐가 가장 오래된 화폐의 원리로 회귀한다는 사실이다. 금 태환 증서가 금의 가치를 담보로 신뢰를 얻었듯이, 스테이블코인은 법정화폐를 담보로 안정성을 확보한다. 기술은 첨단을 향해 달려가지만, 신뢰의 메커니즘은 결국 '무언가 확실한 것'에 기대어야 한다는 인류의 본능을 벗어나지 못한다. 비트코인이 보여준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화폐로서의 치명적 결함이었고, 스테이블코인은 그 반성에서 탄생했다. 혁신의 이면에는 언제나 보수적 지혜가 숨어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돈이 의존하는 신뢰의 구조는 기존 화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고 국가가 보증하는 전통적 화폐 체계에서, 우리는 국가라는 거대한 제도를 믿는다. 반면 스테이블코인은 테더나 서클 같은 민간 기업의 준비금 관리 능력을 믿어야 한다. 신뢰의 대상이 국가에서 기업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권력 구조의 재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좀 더 신중하게 이 현상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경제적인 격변기를 맞고있는 세계는 자국 화폐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곳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안을 찾는다. 과거에는 실물 달러를 암시장에서 구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달러 스테이블코인을 구매한다. 24시간 작동하는 글로벌 시장, 국경 없는 거래, 중개인 없는 직접 송금. 기술이 제공하는 편의성은 실로 혁명적이다. 하지만 이 편의성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복잡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한 국가의 국민들이 자국 화폐 대신 타국 화폐에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선호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통화정책은 무력화되고, 중앙은행은 경제를 조정할 수단을 잃는다. 화폐 주권의 상실은 곧 경제 주권의 상실로 이어진다. 아르헨티나처럼 이미 화폐 가치가 붕괴한 국가에서는 오히려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건전한 통화 체계를 유지하는 국가에게는 잠재적 위협이 된다. 한국의 고민도 여기서 출발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하지 않으면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서둘러 도입하자니 새로운 리스크가 발생한다. 외환거래법으로 통제할 수 없는 디지털 공간에서 원화가 무분별하게 유통되면, 해외로 빠져나간 원화의 규모와 흐름을 파악하기 어려워진다. 통화 관리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다. 진퇴양난의 딜레마다.

암호 화폐에 대한 큰 상처로 남은 테라-루나 사태는 잊혀지지 않는 경고음이다. 알고리즘으로 가치를 안정시키겠다는 야심찬 시도는 결국 거대한 폭락으로 끝났고, 수많은 투자자들이 재산을 잃었다. 실리콘밸리은행 사태 역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의 취약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준비금을 보관한 은행이 무너지면 스테이블코인의 안정성도 함께 흔들린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런 사건들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스테이블코인은 기존 금융 시스템과 완전히 분리된 독립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시스템에 깊이 의존하는 구조라는 점이다. 법정화폐를 담보로 하고, 은행에 준비금을 맡기고, 국채나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전통 금융의 위기는 곧 스테이블코인의 위기가 된다. 더 나아가 스테이블코인 자체가 금융 위기의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뱅크런처럼 대규모 환매 요구가 발생하면 시장이 감당할 수 없는 충격파가 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술이 제공하는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가족에게 빠르고 저렴하게 송금할 수 있게 되었다. 환전 수수료와 송금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기존 금융 시스템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월가의 거대 자본이 뛰어드는 것은 단순한 투기가 아니라, 글로벌 결제 시스템의 패러다임이 실제로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다.

트럼프 행정부가 지니어스법을 제정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은 달러 패권을 디지털 시대에도 유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을 한 것이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전 세계로 확산되면, 그것은 곧 달러 영향력의 확장을 의미한다. 물리적 달러 지폐가 아니라 디지털 형태로 미국의 통화가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패권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기술 혁신이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스테이블코인은 그저 편리한 결제 수단이 아니라, 글로벌 권력 게임의 새로운 도구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에 집중하는 이유도, 유럽과 일본이 각자의 스테이블코인 정책을 모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폐는 언제나 권력이었고, 새로운 형태의 화폐는 새로운 형태의 권력을 의미한다. 한국은 이 격변의 시기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섣부른 도입도, 무작정 거부도 답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철저한 준비와 단계적 접근이다. 규제 체계를 먼저 갖추고, 리스크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고, 국제 공조를 통해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동시에 기술 혁신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연구와 실험을 병행해야 한다. 한국은행의 프로젝트 한강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 있는 시도다.

스테이블코인을 둘러싼 논쟁은 돈의 본질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돈은 국가가 발행하고 보증해야 하는가, 아니면 민간이 더 효율적으로 제공할 수 있는가. 중앙집중적 통제가 안전한가, 분산된 시스템이 더 건강한가. 편의성과 안정성 사이에서 어떤 균형을 찾아야 하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정답은 아직 없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전개되는 거대한 실험의 한가운데 서 있다. 어쩌면 미래의 화폐 시스템은 전통적 법정화폐와 스테이블코인, 중앙은행 디지털화폐가 공존하는 하이브리드 형태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완전히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수도 있다.확실한 것은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새로운 돈의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우리가 준비되었든 그렇지 않든, 변화의 물결은 계속 밀려온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를 맹목적으로 추종하거나 완강하게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사유하며 현명하게 적응하는 것이다. 혁신과 위험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기회와 위협을 동시에 인식하며,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찾아가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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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그널 코리아 2026
(사)미래학회 외 지음 / 광문각출판미디어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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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6년을 맞아서도 세계는 급변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 압박으 계속되고, 전세계에서의 전쟁과 갈등은 여전히 우리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다. 격변하는 정세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까? 우리나라를 둘러싼 여러 측면들을 분석하고 우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시그널 코리아 2026> 현재 우리를 둘러싼 변화들은 더 이상 독립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AI 기술 혁신은 산업의 효율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국방 전략을 재편하고 있다. 국방의 변화는 외교 관계를 뒤흔들고, 외교의 역학은 다시 경제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 규제는 기업의 생존 여부를 좌우하고, 세대 간 불평등은 국가 재정의 방향성을 근본부터 뒤바꾼다. 나비효과다. 나비효과가 우연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연쇄 반응이라면, 지금 우리가 마주한 것은 구조적이고 필연적인 상호침투다. 각각의 시그널은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망 속에서 서로를 강화하고, 견인하며, 때로는 충돌한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은 희토류 공급망 전쟁으로 이어지고, 그것은 다시 기술 주권 논쟁을 촉발한다. 상업 기술이 군사화되는 흐름은 민간 영역과 안보 영역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도시 인프라는 사이버 공격과 기후 위기의 교차점이 된다. 이런 복잡계 속에서 과거의 방식으로 미래를 대비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하나의 이슈를 해결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지점에서의 해법이 다른 지점에서 새로운 문제를 발생시킨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개별 이슈에 대한 대응이 아니라, 전체 시스템을 관통하는 통찰이다. 그리고 그 통찰의 출발점은 바로 시그널을 읽어내는 능력이다.


저자들이 포착한 시그널들 중 날카로운 것은 기술과 권력의 관계 변화다. 과거에 기술은 권력의 도구였다면, 이제 기술 그 자체가 권력이 되고 있다. 양자컴퓨터를 먼저 상용화하는 국가는 암호 체계의 주도권을 쥐게 되고, 인공지능의 표준을 장악하는 주체는 산업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희토류를 통제하는 자는 첨단 무기 체계의 생산 여부를 결정하고,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에 능숙한 집단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을 형성한다. 히 주목할 것은 '소버린 AI'라는 개념이다. 국가가 기술 주권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과 충돌하고 있다. 이것은 단순한 경제적 경쟁이 아니라 문명의 방향성을 둘러싼 투쟁이다.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 그것이 반영하는 가치, 그것이 내리는 판단의 기준 - 이 모든 것이 결국 누구의 세계관을 반영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기술 중립성이라는 신화는 이미 무너졌다. 기술은 그것을 설계하고 운용하는 주체의 의지를 담는다. 여기에 더해 주목해야 할 것은 '프롬프트 지배계급'의 등장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질문하는 능력은 새로운 형태의 문해력이 되고 있다. 같은 도구를 쥐고 있어도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얻게 된다. 이것은 기술 접근성의 문제를 넘어선 인지적 격차의 문제다. 알라딘의 램프가 모두에게 주어졌다 해도, 그 램프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간극은 오히려 더 벌어질 수 있다.

인공지능 시대가 던지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은 인간 지능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보고서는 세 가지 인간형을 제시한다. 외장 지능으로 신이 된 호모 데우스, 생각을 외주화한 호모 모로스, 그리고 지혜를 갖춘 호모 소포스. 이 분류는 단순한 유형론이 아니라 우리가 선택해야 할 방향에 대한 경고이자 제안이다.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확장한다는 장밋빛 전망과, 기술이 인간을 무력화시킨다는 암울한 예측 사이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떤 능력을 보존하고 발전시킬 것인가의 문제다. 인공지능이 답을 제공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더 나은 질문을 던지는 능력, 맥락을 이해하는 능력,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능력일지 모른다. 숙련 기술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디지털 혁명이 가속화될수록 역설적으로 물리적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손의 지식이 더 중요해진다. 첨단 반도체를 설계하는 능력만큼이나, 그것을 실제로 생산해낼 수 있는 제조 기술이 국가 경쟁력을 결정한다. 알고리즘은 복제될 수 있지만, 수십 년간 축적된 숙련 노동자의 암묵지는 쉽게 이전되지 않는다. 기술 패권 경쟁의 최전선은 코드가 아니라 현장에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들이 제기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화두는 세대 간 정의다. 현재 세대가 누리는 혜택의 비용을 미래 세대가 치르게 되는 구조적 불평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투표권이 없는 미래 세대를 위해 현재 세대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 이것은 단순히 환경 문제나 국가 채무의 차원을 넘어선,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다. 디지털 이민자, 디지털 네이티브, AI 네이티브로 이어지는 세대 분류는 단순한 기술 친숙도의 차이를 넘어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근본적 차이를 반영한다. 같은 사회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시간대를 경험하고 있는 세대들 사이에서, 공동의 미래를 설계한다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청년이 현재 세대인가 미래 세대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누구의 이해관계를 우선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세대 영향 평가 제도의 도입 제안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모든 정책 결정이 미래 세대에게 미칠 영향을 평가하도록 제도화한다는 것은, 시간의 정치학을 민주주의 시스템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대변할 것인가. 이것은 추상적인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구체적인 제도 설계의 문제다.


미래 전쟁의 양상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육해공 영역을 넘어 사이버, 우주, 심지어 인지 영역까지 전장이 확장되고 있다. 도시는 이 모든 영역이 교차하는 최전선이 된다. 물리적 인프라와 디지털 네트워크가 결합된 현대 도시는 과거 어느 때보다 취약하면서도 전략적으로 중요한 공간이 되었다. 희토류를 둘러싼 공급망 전쟁은 이 새로운 전장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물리적 자원을 확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가공하고 활용할 수 있는 기술력,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외교력, 대체 자원을 개발할 수 있는 연구 역량이 모두 결합되어야 한다. 전쟁은 더 이상 전장에서만 벌어지지 않는다. 연구실에서, 공장에서, 협상 테이블에서, 그리고 코드 속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 휴먼 인텔리전스의 개념도 진화하고 있다. 물리적 AI 로봇의 등장은 스파이 활동의 양상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로봇이 정보를 수집하고, 백도어가 설치된 칩들이 전 세계에 유통되는 상황에서, 무엇이 안전하고 무엇이 위험한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신뢰의 문제는 기술적 검증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이 모든 시그널이 던지는 메시지는 하나로 수렴된다. 우리는 과거의 경험과 지식만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시대에 진입했다. 변화의 속도도, 범위도, 깊이도 모두 이전과 다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변화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학의 역할은 정확한 예측이 아니라 가능성의 지도를 그리는 것이다. 어떤 미래가 올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미래들이 가능한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를 질문하는 것이다. 시그널을 읽는다는 것은 이미 결정된 운명을 확인하는 작업이 아니라, 아직 열려 있는 가능성의 공간을 탐색하는 행위다. 2026년 붉은 말의 해는 이미 시작되었다. 말발굽 소리가 우리 귀에 들리기 전에, 땅은 이미 떨리기 시작했다. 그 미세한 진동을 감지할 수 있는가,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파악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에 대비할 수 있는가.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던지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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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1땀 - 내 몸을 다시 켜는 순환 스위치
박민수 지음 / 유노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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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땀을 흘리지 않는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점심시간 식당까지의 짧은 이동에서, 저녁 퇴근 후 집까지의 거리에서. 하루 종일 움직이는 것 같은데 정작 몸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사무실, 자동문이 열리는 건물, 배달 앱으로 주문하는 식사. 편리함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몸을 사용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졌다. 문제는 이것이 '덜 움직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몸은 수백만 년의 진화 과정을 거쳐 움직임을 전제로 설계되었다. 사냥하고, 채집하고, 이동하는 과정에서 체온이 오르고 땀이 흐르며 순환이 일어나도록 만들어진 시스템이다. 그런데 현대인은 하루 평균 10시간 이상을 앉아서 보낸다. 몸은 에너지를 쓸 이유를 찾지 못하고, 땀샘은 언제 작동해야 할지 잊어버린다. 마치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기계가 녹슬듯이, 우리의 생리 시스템 또한 조용히 기능을 잃어간다. 이번에 읽은 책에서 박민수 박사가 진료실에서 반복적으로 마주했다는 질문, "검사 수치는 정상인데 왜 계속 힘들죠?"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현대 의학의 정밀한 검사로도 포착되지 않는, 그러나 분명히 느껴지는 몸의 이상. 그것은 고장이 아니라 '정지'의 상태다. 순환이 멈추고, 리듬이 깨지고, 반응성이 사라진 몸. 겉보기엔 멀쩡하지만 속에서는 서서히 꺼져가는 불씨와 같은 상태다.

우리는 땀을 너무 단순하게 이해해왔다. 더우면 나고, 운동하면 나는 것. 그저 체온 조절을 위한 부산물 정도로 여겼다. 하지만 땀은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신호 체계다.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자율신경이 각성하며, 호르몬이 분비되는 일련의 과정 끝에 비로소 피부 위로 땀방울이 맺힌다. 단 한 방울의 땀을 만들어내기 위해 온몸의 시스템이 협력한다. 건강한 땀과 그렇지 않은 땀의 차이는 명확하다. 운동 후 흐르는 투명하고 맑은 땀은 몸이 제대로 반응하고 있다는 증거다. 흘리고 난 뒤 개운함이 느껴지고, 몸이 가벼워지며, 다음 날 컨디션이 좋아진다면 그것이 바로 질 좋은 땀이다. 반면 끈적하고 냄새가 강하며, 흘리고 나서도 답답함이 남는 땀은 몸속 어딘가에 문제가 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하거나, 대사 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자율신경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다. 흥미로운 점은 땀이 나지 않는 것 역시 중요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운동을 해도 땀이 잘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땀샘의 기능 저하를 의미할 수 있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근육이 위축되듯, 땀샘 역시 오래 쉬면 기능을 잃는다. 약 200만에서 400만 개에 달하는 땀샘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체온 조절이 어려워지고, 이는 곧 자율신경 전반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땀이 멈췄다는 것은 땀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몸 전체의 순환 시스템이 위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일까. 박민수 박사가 제시하는 답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하루 한 번, 땀을 흘리는 것. 거창한 운동 계획도, 극단적인 건강법도 필요 없다. 중요한 것은 몸이 반응할 만큼의 자극을 주는 것이다. 빠르게 걷기, 계단 오르기, 가벼운 스트레칭이면 충분하다. 핵심은 '양'이 아니라 '반응'이다. 많은 사람이 땀을 많이 흘려야 효과가 있다고 믿는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달리거나, 사우나복을 입고 운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과도한 발한은 오히려 탈수와 전해질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땀의 질이다. 몸이 자연스럽게 온도를 높이고, 혈관을 열고, 순환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땀. 그것이 진짜 건강한 땀이다. 땀을 흘릴 때 우리 몸에서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혈액 순환이 활발해지면서 말초 조직까지 산소와 영양분이 전달된다. 림프의 흐름이 개선되어 노폐물 배출이 원활해진다. 피부 모공이 열리며 쌓여 있던 피지와 각질이 밖으로 밀려난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감소하면서 신경계의 균형이 회복된다. 한마디로 땀은 몸과 마음을 함께 정화하는 통로인 셈이다.

건강이란 결심이 아니라 순환이다. 아무리 좋은 영양제를 먹어도, 비싼 건강검진을 받아도, 순환이 멈춘 몸은 회복되지 않는다. 반대로 매일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여 땀을 흘리면, 그 작은 자극이 쌓여 몸 전체의 시스템을 깨운다. 이것이 '1일 1땀'의 핵심 메시지다. 현대인이 겪는 만성 피로, 낮은 체온, 수면 장애, 소화 불량 같은 증상들은 서로 무관해 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다. 세포 에너지 대사의 둔화, 자율신경계의 리듬 상실, 호르몬 조절의 미세한 어긋남.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무너질 때 몸은 지치고 차가워지며 무기력해진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시작점에 '땀의 부재'가 있다. 물론 처음부터 완벽할 필요는 없다. 어떤 날은 10분 걷기로, 어떤 날은 집 앞 계단 오르기로, 또 어떤 날은 스트레칭으로 시작해도 좋다. 중요한 것은 매일 한 번, 몸에게 "너는 살아 있어, 반응해도 돼"라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 신호가 쌓이면 몸은 조금씩 깨어난다. 땀샘이 다시 작동하고, 혈관이 유연해지며, 자율신경이 리듬을 되찾는다.

새해가 되면 많은 사람이 결심한다. 올해는 꼭 운동하겠다고, 건강해지겠다고. 하지만 대부분 몇 주를 버티지 못하고 포기한다. 왜일까. 너무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 때문이다. 갑자기 헬스장 등록하고, 극단적인 식단을 시작하고, 무리한 운동 계획을 세운다. 몸은 준비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1일 1땀'이 제안하는 것은 극단이 아니라 일상이다. 매일 조금씩, 꾸준하게,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오늘 10분 걸었다면 내일은 12분, 모레는 15분. 작은 증가가 쌓여 습관이 되고, 습관이 쌓여 체질이 된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땀이라는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피드백이다. 오늘 내가 흘린 땀이 어땠는지, 흘리고 난 후 기분이 어떤지, 다음 날 컨디션은 어떤지를 관찰하면서 내 몸과의 대화를 이어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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