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음 따라 걷는 거야
박동기 지음 / 작가와비평 / 2025년 1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나중에'라는 말에 익숙해졌을까. 언제가 될지 모를 미래를 위해 현재를 유예하고, 완벽한 조건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건강이 허락할 때, 돈이 충분히 모일 때, 시간적 여유가 생길 때. 그렇게 조건을 나열하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후회만 쌓여간다. 한 여행자의 기록을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진정한 황금기는 외부의 인정을 받을 때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저 없이 실행에 옮길 때 찾아온다는 것을. 퇴임 후 세계 곳곳을 걸으며 자연과 마주한 그의 발걸음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알프스의 준봉에서부터 히말라야의 고원까지, 중앙아시아의 드넓은 평원을 가로지르며 그가 얻은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다. 살아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전율, 스스로를 한계 너머로 밀어붙이는 도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내면의 자유였다. 여행은 때로 우리에게 불편함을 요구한다. 익숙한 일상을 벗어나 낯선 환경에 몸을 맡기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며, 체력의 한계를 시험받는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의 진짜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화면으로 보는 풍경과,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직접 올라선 산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결코 같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나이에 따른 역할과 행동방식을 암묵적으로 규정한다. 은퇴 후에는 손주를 돌보거나 여유롭게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적절하다'고 여겨진다. 해외 원정 트레킹을 떠난다고 하면 주변에서는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낸다. 몸이 감당할 수 있겠느냐, 위험하지 않겠느냐, 굳이 그런 고생을 해야 하느냐고. 하지만 진정한 노년은 숫자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를 멈추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고, 자신을 제한하는 틀 속에 스스로를 가둘 때 비로소 늙음이 시작된다. 반대로 끊임없이 움직이고 배우며 새로운 경험을 추구하는 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해발 사천 미터가 넘는 고지대를 걸으며 고소증과 싸우고, 험준한 암벽 사이를 통과하며, 낯선 문화권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과정. 이 모든 것이 쉽지 않은 도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얻는 성취감과 자기 확신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 된다. 누군가를 위한,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취가 아닌, 순전히 자신을 위한 도전이기에 더욱 값지다. 체력적 한계에 대한 걱정도 이해한다. 하지만 체력은 키우는 것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준비를 갖춘 사람은 없다. 작은 산책부터 시작해 점차 거리를 늘려가고, 가까운 산을 오르며 호흡을 다스리는 법을 익히고, 조금씩 고도를 높여가며 몸을 적응시킨다. 중요한 것은 시작하는 용기와 꾸준히 이어가는 의지다.
도시에서의 삶은 인공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에어컨이 온도를 조절하고, 조명이 밤을 밝히며, 포장된 도로가 우리의 발걸음을 안내한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계획된 환경 속에서 우리는 자연의 리듬을 잊고 살아간다. 하지만 산길을 걷다 보면 자연은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친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예상보다 가파른 오르막에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생각보다 긴 거리에 다리가 후들거린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상황들이 연속되고, 우리는 그저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법을 배운다. 자연은 우리에게 놀라운 보상을 준다. 땀을 흘리며 오른 산정상에서 마주하는 일출의 장엄함, 구름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는 설산의 위용, 고산 호수가 반사하는 에메랄드빛 물빛. 이런 순간들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는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동시에 이 광대한 우주의 일부로서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한다. 자연 속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운동이나 관광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감각을 되찾는 과정이다. 발바닥으로 느끼는 흙의 감촉, 피부에 와닿는 바람의 온도, 코끝에 스치는 나무와 풀의 향기, 귀에 들리는 새소리와 계곡물 소리. 오감이 깨어나고 존재 자체가 선명해지는 경험. 이것이 바로 트레킹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많은 사람이 '언젠가'를 말한다. 은퇴하면, 아이들이 다 크면, 여유가 생기면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지만 완벽한 타이밍은 오지 않는다. 항상 무언가가 부족하고, 항상 어떤 이유로 미룰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미루던 것들은 영원히 실현되지 못한 채 후회로 남는다. 중요한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히말라야를 꿈꾼다면 먼저 근처 산을 올라보라. 장기 여행을 꿈꾼다면 주말 여행부터 시작하라. 큰 배낭을 메고 떠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가벼운 당일치기 산책으로 시작하라. 첫걸음을 떼는 것, 그것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돈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다시 생각해보라. 여행은 반드시 럭셔리할 필요가 없다. 소박한 산장에서의 하룻밤, 현지 시장에서 사 먹는 간단한 식사, 대중교통을 이용한 이동. 이런 것들이 때로는 고급 호텔보다 더 진정성 있는 경험을 선사한다. 중요한 것은 돈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어떤 마음가짐으로 여행하느냐다.
여행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최고의 장비를 갖추고, 최적의 시기를 기다리는 것도 좋지만, 그것들이 없다고 해서 떠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마음이 가는 곳이 있다면, 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경험하고 싶은 무언가가 있다면, 그저 출발하면 된다. 길은 걸으며 만들어진다. 모든 답을 알고 떠나는 여행은 없다. 예상치 못한 상황들, 계획에 없던 만남들, 생각지도 못한 감동들. 이런 것들이 모여 우리만의 독특한 여행이 된다. 완벽하게 준비된 여행보다 불완전하지만 진심 어린 여행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다. 책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과 직접 그곳에 서서 느끼는 것은 천지 차이다.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는 공기의 맛, 영상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공간의 스케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의 감동. 이런 것들은 오직 직접 가야만 알 수 있다. 마음따라 걷는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