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을 끌어안고 나아가기 - 살아갈 날들을 위한 회복의 심리학
김현경 지음 / 유노북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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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많은 것들을 지우려 애쓴다. 냉장고에 붙은 얼룩, 옷에 묻은 커피 자국, 그리고 마음속 불안까지. 하지만 물리적인 얼룩과 달리, 불안은 지우려 할수록 더 진하게 번진다. 마치 잉크가 물에 퍼지듯, 불안을 밀어내려는 시도 자체가 불안을 증폭시킨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불안 제로'의 삶을 이상향으로 여긴다. SNS에는 완벽한 일상들이 넘쳐 나고, 자기계발서는 불안을 극복한 성공 스토리를 쏟아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불안을 느끼는 자신을 결핍된 존재로, 치유가 필요한 환자로 여기게 된다. 하지만 정작 불안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미래에 대한 걱정,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예감.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문제는 불안 그 자체가 아니라, 불안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불안을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선포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전장에 갇혀버린다. 불안을 없애기 위해 회피하고, 억압하고, 부정하는 과정에서 더 많은 에너지가 소진된다. 마치 모래밭에서 발버둥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것처럼, 불안과의 싸움은 우리를 더 깊은 불안 속으로 밀어 넣는다. 저자가 제시하는 수용전념치료는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불안을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수용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체념이나 포기가 아니라, 오히려 불안이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함으로써, 그것에 휘둘리지 않는 심리적 유연성을 기르는 과정이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자신이 진정으로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수용전념치료가 말하는 치유의 본질이다.


우리의 마음은 쉴 새 없이 무언가를 생산해낸다. '나는 왜 이렇게 무능할까, '저 사람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선택이 잘못된 건 아닐까. 생각은 팝콘처럼 머릿속에서 터져 나온다. 한 알이 터지면 연쇄적으로 또 다른 알들이 터진다. 그리고 우리는 종종 그 팝콘 냄새에 휩싸여, 생각과 나를 동일시하는 실수를 범한다. "나는 우울하다"와 "나는 우울하다는 생각을 하 고 있구나"는 전혀 다른 문장이다. 전자는 우울이 나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상태이고, 후자는 우울이라는 생각을 관찰하는 상태다. 이 미묘한 차이가 만들어내는 심리적 거리는 엄청나다. 생각을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이 곧 진실이 아님을 인지한다는 의미다. 마음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은 매우 설득력 있고 그럴듯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사실인 것은 아니다. 마음은 생존을 위해 진화해왔고, 그래서 위험을 탐지하고 문제를 예측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결점을 찾아내고,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고, 끊임없이 경고음을 울리는 것은 마음의 정상적인 기능이다. 문제는 현대 사회에서 마음의 이러한 경고 시스템이 과도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실제 생명의 위협이 아닌 상황에서도 마음은 마치 사자를 만난 것처럼 반응한다. 상사의 메시지, 시험 성적, 타인의 평가 앞에서 우리의 뇌는 생존 모드로 전환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이 바로 '탈융합'이다. 생각과 나 사이에 거리를 두는 연습. "또 시작이군" 하고 미소 지으며 지나가는 훈련. 불안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과 씨름하는 대신, "아, 지금 내 마음이 불안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네"라고 인식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심리적 유연성의 시작이다. 버스 비유는 이를 잘 설명해준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이라는 버스를 운전하고 있다. 그런데 때때로 불안, 분노, 수치심 같은 진상 승객들이 버스에 올라탄다. 이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운전자인 당신에게 이래저래라 지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진상 승객들을 버스에서 쫓아내려고 애쓴다. 하지만 수용전념치료는 다른 접근을 제안한다. 그들이 버스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되, 운전대는 절대 놓지 말라는 것. 진상 승객이 떠들어도, 당신이 정한 방향으로 버스를 몰고 가는 것. 그것이 바 로 불안과 함께 나아가는 방법이다.


현대 사회는 우리를 끊임없이 평가한다. 학점, 연봉, 직급, 외모, SNS 좋아요 숫자. 우리는 이러한 지표들을 통해 자신의 가 치를 측정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부족함을 느낀다. 성취하지 못하면 의미 없는 존재가 된 것 같고, 무언가를 이루지 못하면 삶이 낭비되는 것 같다. 이렇게 우리는 '하는 것(doing)'으로만 자신을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수용전념치료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당신은 무엇을 이루었나?"가 아니라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가?". 이것은 성취가 아닌 존재 자체에 초점을 맞춘 물음이다. 어떤 태도로 하루를 살아갈 것인지, 어떤 가치를 중심에 두고 선택할 것인지, 지금 이 순간 어떤 사람으로 존재할 것인지. 이러한 질문들은 외부의 평가나 결과와 무관하게, 오롯이 나 자신에게 집중하게 만든다. 가치는 목표와 다르다. 목표는 도달점이 있지만, 가치는 방향성이다. "좋은 부모가 되겠다"는 가치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실천되는 것이다. 아이와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순간, 피곤해도 동화책을 읽어주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이 가치의 실현이다. 결과가 아닌 과정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암 선고를 받은 저자가 무엇을 하려고 마음먹지 마세요. 그저 기도하세요.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것은 포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과정이었다. 무너진 삶 위에서 다시 일어서는 방법은 더 강하게 버티는 것이 아니라, 무너짐 자체를 수용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실존은 바로 이런 것이다.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 나의 혼 란과 고요함, 이름 붙일 수 없는 순간들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그 자체로서의 나. 어떤 역할이나 성취로 규정되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존재. 우리는 종종 이 본질을 잊어버리고 겉옷만 바라본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모든 것을 벗어던졌을 때,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 상태에서도 나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찾아온다.


삶은 완벽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부서지면서도 계속 걸어갈 용기가 있는지 묻는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하고, 상처받고, 때로는 무너진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증거다. 중요한 것은 무너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후에도 다시 일어서는 것이다. 기록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독자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는 대신, 그것을 글로 적어내며 마주한 것. 일기를 통해 현재의 나를 알아가고, 플래너를 통해 목표가 아닌 과정에 집중하는 법을 배운 것. 이것이 바로 불안과 함께 나아가는 구체적인 실천이다. 불안과 친구가 되는 연습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때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은 순간들도 있다. 불안이 다시 찾아올 때, 우리는 좌절하고 자책한다. '나는 왜 아직도 이 모양일까.' 하지만 이것 역시 하나의 생각일 뿐이다. 불안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물러간다. 중요한 것은 그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고, 발을 딛고 서 있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대신 관찰하는 것, 생각에 휘둘리는 대신 거리를 두는 것, 완벽을 추구하는 대신 과정을 존중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조금씩 자유롭게 만든다. 불안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 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불안에게 운전대를 넘기지 않을 수 있다. 불안이 뒷좌석에서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가 정한 방향으로 버스를 몰고 갈 수 있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모든 감정은 우리 안에 존재할 권리가 있다. 불안이도, 슬픔이도, 기쁨이도 모두 필요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한다. 귀 기울이되 지배당하지 않는 것, 함께 걷되 끌려가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심리적 유연성이고, 성숙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방법이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불안을 없애려 하지 말고, 불안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라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지고, 더 나다워지고, 더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지나가며,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불완전하지만 아름답게, 부서지지만 용감하게. 그것이 바로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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