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홍콩배우 양조위 - 말보다 깊은 눈빛, 양조위의 삶·사랑·작품
주성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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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 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1990년대 말, 대학 시절의 어느 날 밤이었다. 친구가 권해준 비디오테이프 하나가 내 손에 쥐어졌다. 〈중경삼림〉이라는, 당시로서는 제법 낯선 제목의 영화였다. 낡은 화질 속에서 등장한 한 남자의 얼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경찰 유니폼을 입고 패스트푸드점으로 천천히 걸어오던 그 사람.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묘하게 마음이 흔들리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첫눈에 반한다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무언가 더 깊은 곳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공명 같은 것이 일어났다.

양조위. 그 이름을 알게 된 건 그날 밤이었다. 그리고 나는 곧 깨달았다. 이 배우는 말이 아니라 침묵으로 연기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의 얼굴은 크게 웃거나 소리 내어 울지 않았다. 다만 눈빛이 흔들리고,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고, 시선이 어딘가를 향해 조용히 머물렀다. 그 모든 것이 언어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그 시절, 홍콩영화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문화적 아이콘이었다. 비디오 가게 진열대는 늘 홍콩 액션 영화로 가득했고, 주윤발의 트렌치코트와 장국영의 우울한 미소는 우리의 상상 속 멋진 어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양조위는 그들과 달랐다. 그는 화려하게 등장해서 세상을 구하는 영웅이 아니었다. 오히려 늘 그 자리에 있었고, 조용히 기다렸고, 때로는 떠나지 못한 채 남겨진 사람처럼 보였다.

〈화양연화〉를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느린 화면, 반복되는 장면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침묵. 주 선생으로 나온 양조위는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 오랜 시간 머뭇거렸다. 벽 너머로 여인이 들려주는 무협소설 구절에 귀 기울이고, 좁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스쳐 지나가고, 국수를 먹으며 고독을 씹어 삼켰다. 영화는 이렇게 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는데 손 내밀 수 없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야 하는가?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나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영화관 밖으로 나왔을 때 서울의 거리는 여전히 시끄럽고 분주했지만, 내 안에서는 무언가가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절제되고 우아하게 표현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아픈 것인지를 그 영화는 보여주었다. 양조위의 얼굴에 담긴 그 모든 망설임과 그리움이, 20대 초반이었던 나에게도 이상하게 이해되었다.

〈무간도〉가 개봉했을 때, 나는 이미 사회인이 되어 있었다. 영화관에서 그의 얼굴을 다시 만났을 때, 묘한 안도감 같은 것이 밀려왔다.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홍콩영화는 많이 변했고, 그 황금기는 이미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양조위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잠입 경찰이라는 이중적 정체성 속에서 갈등하는 진영인 역할 속에서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조용한 고통을 담고 있었다. 왕가위 감독이 그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삼은 이유를 이제는 안다. 양조위라는 배우는 감독이 원하는 모든 감정을 눈빛만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크게 연기하지 않았다. 절제하고 숨기고 참아내면서, 그 모든 것을 눈과 얼굴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전달했다. 관객은 그의 표정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래서 그의 연기는 관람이 아니라 공명이었다.

세월이 흘러 〈색, 계〉가 개봉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다. 친일파 장군이라는 악역. 그것도 격정적인 정사 장면까지 포함된 파격적인 역할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나서 깨달았다. 그는 여기서도 양조위였다. 차갑고 잔혹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두려움과 외로움을 안고 사는 인간이었다. 리안 감독이 말했듯, 악역을 연기하면서도 언젠가는 마음이 바뀔 것 같은 눈빛을 가진 배우. 그것이 양조위였다. 그의 연기에는 어떤 유동성이 있다. 남성과 여성, 강함과 약함,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든다. 그래서 그는 홍콩 영화 산업이 만들어낸 전형적인 마초 남성상을 깨뜨릴 수 있었다. 관금붕 감독이 일찌감치 그 가능성을 알아본 것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 후 허우샤오시엔, 오우삼, 리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거장들이 그를 통해 자신의 예술적 비전을 실현했다.

이제 50대를 넘긴 양조위는 여전히 현역이다. 〈골드핑거〉, 〈샹치〉 같은 작품들을 통해 그는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내게 그는 여전히 〈중경삼림〉의 경찰 663이고, 〈화양연화〉의 주 선생이며, 〈해피 투게더〉의 요휘다. 그 모든 역할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은, 떠나지 못하고 남겨진 자의 슬픔이다. 장국영이 떠나는 자였다면, 양조위는 기다리는 자였다. 장국영이 유배의 정서를 담았다면, 양조위는 귀향의 갈망을 표현했다. 한 사람은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홍콩배우'라 불린다. 황금기의 홍콩영화를 기억하는 마지막 증인이자, 그 정신을 지금까지 이어오는 유일한 존재다.

지금도 가끔 그의 영화를 다시 본다. 세월이 지났지만 그 영화들은 여전히 새롭다. 아니, 어쩌면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들이 있다. 〈화양연화〉의 앙코르와트 장면에서 주 선생이 돌벽의 구멍에 비밀을 속삭이던 그 순간. 말하지 못한 감정들을 영원히 봉인하는 그 행위가, 이제는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양조위는 내게 단순한 배우 이상의 의미다. 그는 한 시대의 기억이고, 잃어버린 낭만의 상징이며, 여전히 지속되는 아름다움의 증거다. 홍콩영화의 황금기는 끝났을지 몰라도, 그가 존재하는 한 그 시절의 정신은 살아 있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했다고 한다. 힘들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숨어 살고 싶다고.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대배우가 연인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겠다고 말했던 그 사람. 그는 영화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여전히 같은 사람인 것 같다. 떠나지 못하는 사람. 기다리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

이제 나도 중년이 되었다. 청춘은 지나갔고, 그 시절의 열망과 불안은 다른 형태의 고민들로 바뀌었다. 주성철님의 책은 다시한번 나의 청춘 시절을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감동적인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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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든 스피치 마스터 : 실전편 - 상대를 압도하는 말의 메커니즘 골든 스피치 마스터
김양호.조동춘 지음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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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모두 말을 한다. 하지만 그 말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는가, 행동을 이끌어내는가, 기억에 남는가는 전혀 다른 문제다. 김양호님과 조동춘님이 함께 펴낸 <골든 스피치 마스터: 실전편>은 바로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한 책이다. 말을 내뱉는 행위가 아닌 '설계'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청중과 상황에 맞춰 정교하게 조율하는 법을 알려준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스피치를 추상적 재능이 아닌 구체적 기술로 다룬다는 점이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저자는 단호하게 선언한다. "말의 기술은 노력으로 얻지만, 말의 용기는 선택으로 완성된다."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이다. 스피치는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훈련과 준비, 그리고 무대에 서겠다는 결단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실전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이 책은 우리 삶에서 마주치는 구체적인 순간들을 다룬다. 결혼식 축사, 수상 소감, 정년 퇴임사, 위촉장 수여식, 심지어 공식 사과문까지. 각각의 상황은 서로 다른 목적과 청중, 감정의 결을 가지고 있다. 저자들은 이 다양한 맥락 속에서 어떻게 말을 구조화하고 전달해야 하는지를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행사 스피치가 더 이상 형식적 절차가 아니라는 통찰이다. 과거에는 누가 말하는지, 얼마나 짧은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말의 메시지와 진정성, 방향성이 행사 자체의 성격을 결정한다. 조직의 첫마디와 마지막 한마디가 그 조직의 철학과 문화를 드러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는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것을 넘어, 말을 통해 조직과 개인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의미한다.

책의 핵심은 연설문 작성 7단계다. 상황 분석, 청중 파악, 주제 설정, 구조 설계, 단어 선택, 표현 강화, 리허설과 퇴고. 이 과정은 마치 건축가가 설계도를 그리듯 말을 짓는 과정이다. 상황 분석에서 시작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말은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지 않는다. 맥락이 있고, 그 맥락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왜 이 말이 필요한가, 무엇을 해결하거나 전달해야 하는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청중 파악 역시 마찬가지다. 누가 듣는가에 따라 같은 메시지도 다르게 전달되어야 한다. 연령대, 관심사, 기대치를 면밀히 살펴야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닌 살아있는 대화가 된다. 주제 설정에서 강조하는 '하나의 등대' 개념도 설득력 있다. 연설문도 결국 글이고, 글에는 명확한 중심이 있어야 한다. 중언부언하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하나의 메시지를 정하고, 그것을 향해 모든 문장이 수렴하도록 만드는 것이 설계의 핵심이다. 구조 설계는 도입-본론-결론의 3단 구조를 기본으로 한다. 도입에서 흥미를 끌고, 본론에서 공감과 메시지를 전하며, 결론에서 행동을 촉구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구조 안에서 얼마나 정교하게 감정선을 조율하는가가 스피치의 성패를 가른다. 단어 선택에서는 품격이 강조된다. 같은 의미라도 어떤 단어를 쓰느냐에 따라 화자의 수준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실전편의 백미는 세계적 명연설 43인의 사례 분석이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선언, 호세 무히카의 철학, 테레사 수녀의 언어까지. 이들의 말이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의 나열이 아니라 치밀한 전략과 구조, 그리고 진정성의 결합임을 보여준다. 마틴 루터 킹이 1967년 고등학생들에게 한 연설은 특히 인상적이다. "만약 당신이 거리 청소부라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거리를 쓰십시오. 베토벤이 교향곡을 작곡하듯 거리를 쓰십시오." 이 문장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어떤 일이든 탁월함을 추구할 때 존엄이 생긴다는 메시지를 구체적 이미지로 각인시킨다. "날 수 없다면 뛰고, 뛸 수 없다면 걸으며, 걸을 수 없다면 기어서라도 가라"는 구절은 리듬감과 상승의 구조를 통해 포기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전달한다. 시위 연설 분석도 흥미롭다. 거리에서의 스피치는 무대와 완전히 다르다. 조명도, 음향도, 좌석도 없다. 바람과 소음, 경찰과 행인이 있을 뿐이다. 그 속에서 군중의 심장박동을 하나의 리듬으로 묶어내야 한다. 베이다오의 시 「대답」이 아시아와 유럽, 미국의 시위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인용되는 이유를 저자들은 압축성, 상징성, 리듬감, 초국가성으로 설명한다. 짧지만 강렬하고, 각자의 경험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함께 외치기 쉽고, 국경을 넘어 공감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책이 제시하는 연설문 작성 7단계도, 43인의 명연설 분석도 결국 하나를 향한다. 무대에 서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저자들은 "영웅은 강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을 견디기로 결심하는 순간 비로소 탄생한다"고 말한다. 말을 잘 못한다는 생각은 대부분 준비 부족에서 온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어떻게 구조화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두렵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리허설하고, 퇴고한다면 그 두려움은 줄어든다. 이 책은 그 과정을 안내하는 지도이자, 대장간이며, 훈련소다. 책은 우리 삶의 중요한 순간들을 어떻게 언어로 완성할 것인가에 대한 실용적 철학서다. 정년을 맞이하는 사람에게, 상을 받는 사람에게, 조직을 대표해 말해야 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언젠가 자신의 생각을 공적 언어로 만들어야 하는 모든 이에게 이 책은 구체적인 답을 제시한다.

말은 그 사람의 수준이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고, 어떤 구조로 생각을 펼치며, 어떤 태도로 청중을 대하는가는 단순히 스피치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됨의 표현이다. 이 책은 그 표현을 더 품격 있게, 더 진정성 있게, 더 효과적으로 만드는 법을 알려준다. "나는 말을 잘 못해"라는 생각으로 수많은 기회를 놓쳤다면, 이제 그 문장을 바꿀 때다. "나는 말을 설계할 줄 안다"로. 이 책은 그 변화를 위한 가장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안내서 역할을 할 것 같다. 말의 대장간에서 문장을 벼리고, 논리를 구축하며, 언어의 칼날에 윤기를 더하는 법을 익힐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첫 페이지를 펼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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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함이 선을 넘을 때 즉각 꺼내는 단호한 문장 63
박형석 지음 / 초록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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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떤 책은 읽는 내내 자꾸 과거의 장면들을 소환한다. 박형석님의 <무례함이 선을 넘을 때 즉각 꺼내는 단호한 문장 63>이 그랬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떠오르는 건 화려한 이론이 아니라, 내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이었다. 회의실에서, 가족 모임에서,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 나는 왜 그때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까. 왜 웃으며 넘겼을까. 그리고 왜 집에 돌아와서야 분노와 후회가 밀려왔을까. 이 책은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동시에, 더 나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문제는 내가 약해서가 아니었다. 단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침묵과 폭발 사이에서 길을 잃었을 뿐이다. 그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나를 지키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언어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 뿐이다.

무례한 말이 가장 큰 상처를 남기는 시점은 그 말을 들은 순간이 아니다. 진짜 고통은 그 이후에 온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샤워를 하는 동안, 잠들기 직전. 그 말을 되새기며 나는 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을까 자책하는 그 시간들. 상대의 말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건 결국 나 자신이었다. 저자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무례함이 상처가 되는 이유는 그 말 자체보다, 그 말을 어떻게 정리하고 소화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의 무방비 상태 때문이다. 우리는 "내가 예민한 걸까", "괜히 분위기를 망친 건 아닐까"라는 의심부터 한다. 그 순간 관계의 주도권은 이미 상대에게 넘어가 있다. 특히 그 무례함이 애정, 걱정, 조언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 있을 때 우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라는 전제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다. 이 책은 바로 그 자동적인 의심을 멈추게 한다. 무례함을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로, 패턴으로 읽게 만든다.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설명을 멈춰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우리는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이해받고 싶어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서 끊임없이 설명한다. 내 상황을, 내 입장을, 내 마음을. 하지만 그 설명이 길어질수록 나는 더 초라해지고, 상대는 더 많은 틈을 발견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문장들은 설명하지 않는다. "이 방식으로는 대화하지 않겠습니다", "내 입장은 다릅니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요?" 이 문장들은 짧고 단호하다. 감정을 폭발시키지도 않고, 상대를 공격하지도 않는다. 그저 판의 규칙을 다시 세울 뿐이다. 처음에는 너무 직설적으로 느껴졌다. 내가 과연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문장들이 직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내가 그동안 너무 돌려 말하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경계 설정이 마치 공격처럼 느껴질 만큼, 나는 무방비 상태에 길들여져 있었다.

책이 다루는 관계의 스펙트럼은 넓다. 직장 상사의 감정적인 언어, 가족의 통제를 가장한 걱정, 연인의 가스라이팅, 초면에 건네는 불편한 농담까지. 각 관계마다 무례함은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다. 특히 직장 내 관계에서 등장하는 사례들은 현실감이 높았다. "그래서 대안은?" "문제점만 찾지 말고 해결책을 제시해"라는 식의 말들. 얼핏 들으면 합리적으로 들리지만, 그 뒤에 숨은 의도는 책임 회피와 감정 전가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서 "대안을 제시하는 건 의사결정권자의 몫입니다"라고 답하라고 제안한다. 역할과 책임의 경계를 명확히 하는 것. 그것이 무례함에 대응하는 첫걸음이다. 가족 관계에서의 무례함은 더 복잡하다. "너를 위해서"라는 말 뒤에 숨은 통제, "다 컸으면서 왜 그것도 못해"라는 식의 비하. 가족이기에 더 참아야 한다는 관념이 우리를 더 무력하게 만든다. 하지만 저자는 명확히 말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무례함이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오히려 가까운 관계일수록 더 분명한 경계가 필요하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기록이다. 특히 가스라이팅이나 지속적인 무례함에 노출된 경우, 기록은 단순한 메모가 아니라 현실감을 지키는 도구가 된다. "그런 적 없어", "네가 오해한 거야"라는 말로 기억을 왜곡당할 때, 기록은 내가 미친 게 아니라는 증거가 된다. 처음에는 기록한다는 것이 과한 대응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업무에서는 늘 기록한다. 회의록을 쓰고, 메일을 남기고, 문서를 보관한다. 왜 관계에서는 기록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까. 기록은 불신의 표현이 아니라, 사실을 명확히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고민한 지점은 이것이었다. 단호하게 경계를 긋는 것과 무례하게 대하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 저자가 제시하는 문장들이 때로 날카롭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문장들은 상대를 비하하거나 공격하지 않는다. 그저 더 이상 이 방식으로는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확히 할 뿐이다. 단호함과 무례함의 차이는 의도에 있다. 무례함은 상대를 깎아내리려는 의도를 담고 있지만, 단호함은 나를 지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무례함은 상대의 존엄을 무시하지만, 단호함은 나의 존엄을 지킨다. 그 선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책에 실린 문장들을 그대로 외워서 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 문장들을 재료로 삼아 나만의 언어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 어떤 문장은 내게 너무 강하게 느껴질 수 있고, 어떤 문장은 너무 약하게 느껴질 수 있다. 관계의 맥락도, 내 성격도, 상황도 모두 다르니까.

나는 책을 읽으며 여백에 나만의 답변을 적어보았다. 같은 의미지만 조금 더 부드럽게, 혹은 조금 더 명확하게. 그 과정 자체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어떤 말에 상처받았고, 어떤 경계가 필요한지. 내가 진짜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결국 이 책이 주는 것은 완성된 대사가 아니라, 나를 지킬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침묵만이 답은 아니라는 것,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도 선을 그을 수 있다는 것. 그 작은 깨달음이 일상을 조금씩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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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과학책 (10주년 기념판) - 지구 생활자들의 엉뚱한 질문에 대한 과학적 답변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지음, 이지연.장영재 옮김, 이명현 감수 / 시공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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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리석은 질문은 없다"는 말을 믿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선생님, 만약 달이 치즈로 만들어졌다면 어떤 맛일까요?"라고 물었을 때 돌아온 것은 웃음과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공부나 해"라는 핀잔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배웠다. 어떤 질문은 해도 되지만, 어떤 질문은 하면 안 된다고. 진지한 질문과 장난스러운 질문 사이에는 선이 있고, 후자는 시간 낭비라고. 랜들 먼로의 <위험한 과학책>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그 오래된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리석은 질문은 정말로 없다. 다만 어리석은 답변이 있을 뿐이다. "사용 후 핵연료 저장 수조에서 수영하면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나는 웃음이 나왔다. 동시에 궁금했다. 정말 어떻게 될까? 이 책은 바로 그 순간, 웃음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그 지점에서 시작한다. 10주년 특별판으로 다시 태어난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질문의 힘과 과학적 사고의 즐거움을 다시 발견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호기심을 되찾았다.

핵연료 저장 수조 질문을 대하는 먼로의 태도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을 보여준다. 그는 질문을 비웃지 않는다. 오히려 극도로 진지하게 접근한다. 물의 방사선 차폐 능력, 7센티미터당 절반으로 줄어드는 방사선량, 수조 가장자리에서의 안전성. 이 모든 계산을 거쳐 도달한 결론은 놀랍다 - 수조 가장자리에서 수영하는 것은 길거리를 걷는 것보다 방사선 노출이 적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답을 읽으며 나는 무릎을 쳤다. 내가 막연히 "위험하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실은 복잡한 물리학적 계산을 필요로 하는 문제였고, 그 답은 내 직관과 달랐다. 그리고 마지막 한 문장 - "총 맞아서 죽을 거야" - 은 과학적 정확성만큼이나 현실적 판단이 중요함을 상기시킨다. 이론적으로 안전하다고 해서 실제로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 나는 이 균형감각에서 먼로의 지혜를 발견했다.

기관총 제트팩 질문은 내게 문제 해결의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다. 처음에 나는 "당연히 불가능하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먼로는 다르게 접근한다. "불가능한가?"가 아니라 "어떤 조건에서 가능한가?"를 묻는다. AK-47 한 자루로는 자체 무게에 다람쥐 하나 정도밖에 못 든다. 그렇다면? 총을 더 쓰면 된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논리는 나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많은 문제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내 능력으로는 안 돼"가 아니라 "어떤 자원을 더하면 가능할까?"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먼로가 제시한 추력중량비 개념도 인상적이었다. 새턴 5호의 이륙 시 추력중량비가 1.5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접하며, 나는 과학이 얼마나 정량적인지 다시 깨달았다. 막연한 "강하다" "약하다"가 아니라 정확한 숫자로 표현되는 세계. 그 세계에서는 불가능도 조건부 가능성으로 변한다.

요다의 출력 계산 부분을 읽을 때,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제다이 마스터의 신비로운 포스를 킬로와트로 환산한다는 발상 자체가 경이로웠다. 먼로는 영화 장면을 되돌려 보며 엑스윙의 상승 속도를 측정하고, F-22와 비교해 전투기 무게를 추정하며, 우키피디아에서 대고바 행성의 중력을 찾아낸다. 이 과정에서 나는 팬덤 문화의 깊이에 놀랐다. 정말로 스타워즈 세계의 모든 행성 중력까지 문서화되어 있다니.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먼로가 이런 디테일을 진지하게 활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는 팬들의 집착을 비웃는 대신, 그것을 과학 계산의 귀중한 자료로 삼는다. 결론(요다의 파워는 시간당 2달러, 교외 주택가 한 블록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수준)은 묘하게 실망스러우면서도 만족스러웠다. 영화 속 요다의 위엄이 깨지는 듯했지만, 동시에 현실의 물리 법칙이 얼마나 일관되게 작동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판타지도 결국 물리학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 이 깨달음이 내게는 판타지를 덜 매력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더 경이롭게 만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얻은 가장 큰 배움은 완벽한 답이 없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엑스윙의 정확한 무게를 모르면 비슷한 전투기와 비교해서 추정한다. 대고바의 중력을 공식 자료에서 찾을 수 없으면 팬 위키를 참조한다. 먼로는 항상 자신의 가정을 명확히 밝히고, "내 최선의 추측"이라고 말하며, 불확실성을 숨기지 않는다. 학교에서 나는 정확한 답을 찾도록 훈련받았다.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 맞지 않으면 틀린 답이었다.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는 완벽한 정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먼로는 불완전한 정보로도 충분히 유용한 답을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단순히 과학의 방법론이 아니라 삶의 태도이기도 하다. 완벽을 기다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 현재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낫다.

책의 많은 답변이 "인류 전멸" 혹은 "거대한 폭발"로 끝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처음에는 단순히 재미를 위한 과장인가 싶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것은 자연 법칙의 엄격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우주는 우리의 편의에 맞춰 설계되지 않았다. 극단적인 조건에서는 극단적인 결과가 나온다. 광속 야구공이나 주기율표 벽돌집 같은 시나리오의 파괴는 자연이 따르는 법칙의 위력을 보여준다. 이 재앙들이 유쾌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실제 위협이 아니라 사고 실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전하게 상상 속에서 세상을 폭파시킬 수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물리학을 배운다. 나는 이 점이 마음에 들었다. 위험하지 않게 위험한 것을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10주년 특별판에 추가된 주석들을 읽으며, 나는 시간의 흐름을 생각했다. 먼로는 10년 전 자신의 답변을 돌아보며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어떤 계산은 더 정교해지고, 어떤 가정은 수정되며, 어떤 결론은 새로운 연구로 뒷받침된다. 이것은 과학이 정체되지 않는다는 증거다. 과학은 살아 움직이며, 계속 자기 자신을 수정하고 발전시킨다. 나 자신도 10년 전과는 다른 사람이다.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을 개념들을 지금은 이해한다. 그때는 재미없다고 생각했을 질문들이 지금은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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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을 따라야 인생이 달라진다 - 열심히 살아도 공허한 사람들에게
메건 헬러러 지음, 이현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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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탠포드 졸업장과 구글 임원직. 누가 봐도 완벽한 이력서를 가진 사람이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공황발작이었다. 메건 헬러러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 많은 이들이 겪고 있는 역설을 보여준다. 모든 것을 이루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은가?

우리는 평생 하나의 공식을 믿으며 살아왔다. 열심히 공부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안정적인 직장을 얻으면 행복해질 것이라는 공식. 그러나 이 공식대로 살아온 많은 사람들이 지금 번아웃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는 충격적이다. 직장인의 30%만이 자신의 일에 몰입하고 있으며, 84%가 번아웃 증상을 경험한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목적지'에만 집착해왔다는 것이다. 승진, 연봉, 타이틀 같은 명확한 도착점을 향해 달려가면서, 정작 그 여정이 우리를 어떻게 만들고 있는지는 외면해왔다. "일단 저기만 도착하면 행복할 거야"라고 되뇌며 현재의 고통을 견뎌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우리가 마주한 것은 예상했던 충만함이 아니라 공허함이었다.

소설가 E. L. 도크토로우는 이렇게 말했다. "밤에 운전하는 것과 같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볼 수 있지만, 그렇게 전체 여행을 완주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방향을 따르는 삶의 본질이다. 대법관이 되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모든 결정을 그것에 맞추는 대신, 지금 당장 흥미로운 헌법 수업을 듣는 것. 65세에 은퇴할 회사를 20대에 정하는 대신, 지금 경험하고 싶은 직무를 선택하는 것. 데이트 상대가 '운명의 사람'인지 판단하려 애쓰는 대신, 단지 다음 만남을 원하는지만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방향적 삶이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가 바텐더였을 때, 헬러러는 그녀와 함께 일했다. 그들은 그녀가 어떤 구체적인 직책이나 역할을 가질지 예측하려 하지 않았다. 단지 공공 서비스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다음 한 걸음이 무엇인지만 찾았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플린트와 스탠딩록으로 향하는 여행을 떠났다. 명확한 커리어 계획에 들어맞지 않는 선택이었지만, 그것이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길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여행에서 돌아온 날, 의회 출마 제안 전화를 받았다.

'나의 목적을 찾아야 해'라는 강박은 현대판 목적지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벽을 뚫어져라 쳐다보거나 스프레드시트를 붙들고 앉아 '내 인생의 목적'을 찾으려 한다. 하지만 목적은 한 번 달성하면 끝나는 도착점이 아니라 계속 나아가는 방향이다. 목적을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기심을 따르는 것이다. 배고픔이 영양이 있는 곳을 알려주듯, 호기심은 충만함이 있는 곳을 알려준다. 호기심은 산만함이 아니라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신호다. 우리는 호기심을 따라 작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점차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불행을 야망 탓으로 돌린다. '내가 너무 욕심이 많은 게 문제야.' 하지만 야망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야망은 단지 세상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는 욕구일 뿐이다. 문제는 '맹목적 야망'이다. 세상이 인정해주는 것, 남들 눈에 대단해 보이는 것만 좇는 야망.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지는 묻지 않고 외부의 기준만 따르는 야망. 이것은 '나다움'을 삭제한 성공이다. 성공했다고 '보이는' 것과 성공했다고 '느끼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경험이다. '정렬된 야망'은 나의 진정한 선호, 재능, 기쁨, 호기심을 반영한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가 중요하다. 부모나 사회에게서 물려받거나 흡수한 욕망인가, 아니면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욕망인가? 헬러러에게 구글은 '성공'이었지만 그것이 자신의 성공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리 많은 승진과 보너스를 받아도 공허했다. 반면 책을 출간하고 코칭 사업을 운영하는 지금은 깊은 충만함을 느낀다. 똑같은 '성공'이지만 경험은 천지 차이다.

'따뜻해-차가워' 놀이를 기억난다. 한 명이 물건을 숨기고 다른 사람이 찾는데, 가까워지면 "따뜻해!"라고, 멀어지면 "차가워!"라고 외치는 놀이. 방향적 삶은 정확히 이것과 같다. 각 갈림길에서 "이게 더 따뜻한가, 더 차가운가?"만 묻는다. 정확한 도착지를 몰라도 괜찮다. 한 걸음씩 따뜻해지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핵심은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실험하고, 배우고, 새로운 정보를 얻어 계속 조정해나간다. 한 자리에 앉아서 정답을 맞히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재미도 없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실패하는 유일한 방법은 반복과 조정을 거부하는 것이다.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일단 행동하라. 어떤 행동이든. 더욱이 현실 세계에서는 숨겨진 물건이 계속 움직인다. 25세의 나에게 따뜻했던 것이 35세, 45세에는 차가울 수 있다. 세상도 나도 고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내면과 외부 세상의 변화에 반응하며 진화해야 한다.

방향적 삶의 핵심 역설은 이것이다. 결과에 덜 집중할수록 과정과 결과가 더 충만해진다. 정확히 어디로 가는지 예측하려는 노력을 멈출 때 새로운 기회들이 나타난다. 세상이 어떨 거라고 기대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와 상호작용할 때,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선택지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우리는 완벽한 10개년 계획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배워왔다. 하지만 실제로 필요한 것은 단지 방향이다.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만큼만 보면서도 전체 여행을 완주할 수 있다. 목적지가 아무리 움직여도 상관없다. 방향에만 집중하면 되니까. 결국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남의 기준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를 멈추라. 대신 지금 이 순간 나를 따뜻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으라. 그것이 진정으로 내 것인 삶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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