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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 - 16개의 결정적 장면으로 읽는 500년 화학사
후지시마 아키라 외 지음, 정한뉘 옮김 / 동아엠앤비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 네 시, 실험실 불빛 아래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묻고 있었을 것이다. 왜 이 물질은 타오르고 저것은 그대로일까?" "왜 같은 온도에서 어떤 기체는 빠르게 팽창하고 어떤 기체는 느릴까?" 화학의 역사는 바로 이런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공식과 법칙이 교과서 위에 정갈하게 정리되기 전, 그 모든 것은 한 사람의 집요한 의문이었다. 화학을 배울 때 우리는 종종 결과만을 외운다. 보일의 법칙, 멘델레예프의 주기율표, 아보가드로의 수. 하지만 그 법칙들이 탄생하기까지, 그들이 마주했 던 혼돈과 좌절, 그리고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가능성의 실마리는 잘 보이지 않는다. <화학자가 들려주는 화학 이야기>는 화학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이 되었는지,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고 무엇을 놓쳤는지를 차분히 들려 준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틀렸던 이론'도 함께 다룬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플로지스톤설. 오늘날 우리는 연소가 산소와의 결합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18세기 과학자들은 물질이 탈 때 '플로지스톤'이라는 불의 원소가 방출된다고 믿었다. 캐번디시는 수소를 발견하고도 그것을 '플로지스톤 기체'라고 불렀다. 그의 관점에서는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설명이 었다. 그런데 라부아지에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그는 연소 과정을 정밀하게 측정했고, 질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했다. 플로지스톤설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속속 드러났다. 하지만 라부아지에의 이론이 즉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오랫동안 화학계는 두 설명 사이에서 갈등했고, 논쟁했고, 때로는 감정적으로 대립했다. 과학은 진공 속에서 정답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 '더 나은 설명'을 고르는 과정이었다. 이 대목에서 생각한다. 과학은 결국 인간의 언어로 쓰인 이야기라는 것을. 틀린 이론도 그 시대의 언어였고, 다음 세대는 그 언어를 수정하고 확장하며 조금씩 진실에 가까워졌다. 화학은 완벽한 사람들의 업적이 아니라, 불완전한 사람들이 끝까지 질문을 놓지 않았기에 만들어진 학문이었다.
화학이 근대 과학이 된 결정적 순간은 '측정'을 받아들인 때였다. 보일은 기체의 압력과 부피를 정밀하게 측정했다. 돌턴은 원자의 무게를 비교했다. 아보가드로는 같은 조건에서 기체의 부피가 분자 수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주장했다. 이들이 한 일은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혁명이었다. 화학을 '무엇이 어떻게 보이는가'의 세계에서 '얼마나, 어느 정도'의 세계로 옮긴 것이다. 패러데이는 전기화학을 연구하며 '전극', '이온', '산화', '환원' 같은 용어를 만들었다. 그 전까지는 이런 현상을 설명할 언어조차 없었다. 패러데이는 보이지 않는 전기를 숫자로 표현했고, 그 숫자를 통해 화학 반응을 예측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가 70세에 퇴임 강연에서 촛불 하나로 여섯 번의 강의를 했다는 일화는 상징적이다. 화학은 복잡한 장비가 아니라, 정확한 관찰과 끝까지 물어가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측정은 곧 책임이기도 했다. 라부아지에는 연소 실험에서 질량 의 변화를 0.01그램 단위까지 기록했다. 그 집요함이 플로지스톤설을 무너뜨렸다. 하버는 질소와 수소를 반응시켜 암모니아를 합성하는 과정에서 온도, 압력, 촉매의 조합을 수천 번 실험했다. 그 결과 인류는 공기에서 비료를 만들 수 있게 되 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 개발에도 관여했다. 화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났을 때,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도 함께 시작되었다.
광화학이 등장하면서 화학은 열과 압력뿐 아니라 빛도 반응의 요인으로 받아들였다. 빛이 분자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발견은 광합성 연구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인공 광합성의 가능성을 열었다. 후지시마 아키라는 산화타이타늄을 이용한 광 촉매 반응을 발견했고, 이는 오늘날 환경 기술의 기초가 되었다. 화학은 실험실을 넘어 우리가 숨 쉬는 공기, 마시는 물, 사용하는 에너지의 문제로 확장되었다. 고분자화학은 화학이 일상과 가장 가까워진 순간이다. 슈타우딩거는 분자가 반복적 으로 연결되어 거대한 사슬을 만들 수 있다는 개념을 제안했다. 캐러더스는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 나일론을 만들었다. "석탄, 공기, 물로 만들었지만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단단한 섬유." 1940년 나일론 스타킹이 발매되던 날, 사람들은 화학이 생활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체감했다. 하지만 고분자는 동시에 플라스틱 쓰레기 문제를 낳았다. 화학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의 질문도 함께 커졌다. 화학은 중립적이지 않았다. 그 것은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고, 그 선택은 다시 사회와 윤리의 문제로 이어졌다.....
책을 읽으며 깨닫는 것은, 화학이 결국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질문했던 사람, 틀렸던 사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 그들이 남긴 것은 공식이 아니라 사고의 경로였다. "왜 이럴까?"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 "혹시 다른 방법은 없을 까?" 그 질문들이 쌓여 화학이 되었다. 화학을 배운다는 것은 그 질문의 역사를 따라가는 일이다. 답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답이 필요했는지를 이해하는 것. 화학자들이 어떤 문제 앞에 섰고, 어떤 선택을 했으며, 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는 화학이 세계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방식은 여전히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500년의 화학사는 결국 사람이 세계를 이해하려 했던 방식의 기록이다. 완벽하지 않았고, 때로는 방향을 잃었고,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도 한 걸음씩 나아갔다. 그 발걸음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물질 문명을 만들었고, 동시에 우리가 마주한 환경 문제도 만들었다. 화학은 중립적인 도구가 아니었다. 그 것은 언제나 선택과 책임의 문제였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수소 기구를 바라보던 1783년 파리 시민들처럼, 우리도 여전히 화학이 만들어 낼 미래를 기대하며 살아간다. 그 미래는 누군가의 질문에서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