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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택할 수 있는 품격 있는 태도에 관하여
김종원 지음 / 오아시스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 다섯 시,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빛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한다. 언제부터 나는 '나 '로 살기를 그만두었을까. 언제부터 남들의 시선이 내 존재의 척도가 되었을까. 창밖에서는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았지만, 저 멀리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온다. 그들은 누가 먼저 노래하는지, 누가 더 아름답게 우는지 경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새벽 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이할 뿐이다. 책을 읽으며 나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하나의 진실과 마주했다. 품격이란 완벽함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는 것. 그것은 넘어지지 않는 힘이 아니라,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서는 용기이며, 상처받았음에도 다시 믿어보려는 선함이고,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지금부터"라고 속삭이는 희망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어떤 감옥에 갇혀 산다. 그 감옥의 이름은 '비교'다. SNS를 열면 모두가 행복해 보이고,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누군가는 멋진 여행지에서, 누군가는 승진 소식과 함께, 또 누군가는 완벽한 가족사진과 함께 미소 짓고 있다. 그 순간 나는 작아진다. 내가 걸어온 길이 초라해 보이고, 내가 이룬 것들이 보잘것없어 보인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완성된 10장을 보며 방금 시작한 나의 1장을 비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의 화려한 무대 뒤에는 보이지 않 는 수많은 리허설이 있었을 것이고, 그 미소 뒤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눈물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어느 가을날 저녁, 나는 동네 공원을 산책하다가 크고 작은 나무들을 보았다. 키 큰 느티나무 옆에 작은 단풍나무가 서 있었다. 단풍나무는 느티나무만큼 크지 않았지만, 그 작은 가지 위에서 붉게 물든 잎사귀들이 석양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무는 서로를 비교하지 않는다는 것을. 각자의 계절에, 각자의 속도로, 각자의 아름다움을 피워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다. 아픔을 삼키고, 분노를 숨기고, 슬픔을 감추는 것이 어른스러운 태도라고 믿었다. 하지만 표현하지 않은 감정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내면 깊숙한 곳에 쌓여 독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늦게 알게 된다. 몇 년 전, 나는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관계가 깨진 적이 있다. 상처받았지만 괜찮은 척했고, 화가 났지만 웃으며 넘어갔고, 서운했지만 이해하는 척했다. 그렇게 쌓인 것들이 어느 순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폭발했고, 그 파편은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상처를 남겼다. 만약 그때 조금 더 솔직했다면,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나는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 어"라고 말했다면, 관계는 끊어지지 않고 더 깊어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말한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자신의 감정을 돌아보라고. 사색하며 감정의 이름을 글로 써보라고. 나는 그날 이후로 작은 노트를 하나 샀다.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 내가 느낀 감정들을 한두 줄이라도 적어본다. " 오늘 나는 불안했다. 프레젠테이션이 잘될지 걱정되어서." " 오늘 나는 기뻤다.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받아서." 이렇게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정리된다. 모호 했던 기분이 선명해지고, 흐릿했던 하루가 윤곽을 갖춘다.
비트겐슈타인은 "내 언어의 세계가 내 세계의 한계다"라고 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으로만 느껴졌다. 하지만 살아가며 점점 그 의미를 체감하게 된다. 내가 사용하는 언어가 내 생각을 만들고, 내 생각이 내 행동을 만들고, 내 행동이 결국 내 인생을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과 " 나는 오늘 조금씩 달라질 수 있어 " 라는 말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전자는 문을 닫지만, 후자는 창을 연다. " 왜 나만 이래? " 라는 원망과 "이 경험이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 라는 질문 사이에도 우주만큼의 거리가 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언어로 그것을 담 아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나는 요즘 의식적으로 내 언어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힘들다" 대신 "도전적이다"라고 말하고, "실패했다" 대신 "배웠다"라고 표현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억지스러웠다. 하지만 놀랍게도 말이 바뀌니 마음도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같은 일을 겪어도 조금 더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되고, 조금 더 여유 있게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혼자 있는 것을 두려워한다. 침묵이 불편해서 계속 음악을 틀고, 생각이 무서워서 계속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고요 속에서 일어난다. 타인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상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순간에, 우리는 비 로소 우리 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저자는 고독을 내면의 도서관이 조용히 열리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얼마나 아름 다운 비유인가. 우리 안에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가득하다. 미뤄두었던 후회, 아직 쓰지 못한 가능성, 남들이 아닌 내가 정말 원하는 삶의 방향들. 그것들은 혼자만의 시간 속에서만 펼쳐질 수 있다. 최근 나는 한 달에 한 번,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기로 했다. 휴대폰을 꺼두고, 약속도 잡지 않고, 그저 나와 함께 있는 시간. 처음에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 스러웠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그 시간이 주는 평온함을 느끼게 되었다. 카페에 앉아 아무 목적 없이 창밖을 바라 보거나, 공원을 천천히 걸으며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그냥 가만히 있는 것.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조금씩 나 자신과 친해지고 있다.
책을 덮으며 나는 다짐한다. 더 이상 남들의 속도에 나를 맞추지 않겠다고. 더 이상 비교의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겠다고. 대신 매일 조금씩,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품격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가겠다고 다짐해 본다. 품격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일어나 오늘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선택하고, 어떤 말을 할 것인지 선택하고, 어떤 태도로 세상을 대할 것인지 선택하는 것.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결국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