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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 곧 비즈니스다 - 성공을 창조하는 공간의 비밀
이현주(줄리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모두 특별한 공간을 기억한다. 누군가에게는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들렀던 작은 서점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에게는 처음 취업 면접을 보러 갔던 회사 로비일 수도 있다. 그 공간들은 단순히 물리적 장소로만 남지 않는다. 그곳의 빛, 냄새, 소리, 질감이 하나로 엮여 우리 안에 하나의 '감정 덩어리'로 각인된다. 이현주님은 자신의 디자인 여정이 한 레스토랑에서의 추억으로부터 출발했다고 고백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조명이 만들어낸 은은한 빛, 흑백 사진들이 속삭이는 이야기, 벨벳 의자의 부드러운 촉감. 그 모든 것이 모여 하나의 경험을 구성했고, 그 경험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던지는 첫 번째 화두다. 왜 어떤 공간은 지나가고, 어떤 공간은 남는가? 사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공간을 스쳐 지나간다. 출근길 카페, 점심을 먹는 식당, 회의를 하는 사무실, 저녁에 들르는 편의점. 하지만 대부분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그저 기능적으로 이용하고 떠날 뿐이다. 그런데 가끔, 정말 가끔, 우리는 어떤 공간 앞에서 멈춰 서게 된다. "여기, 뭔가 다르네." 그 순간 우리가 감지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그 공간이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이고, 우리 감정과 맞닿는 '접점'이다.
책을 관통하는 핵심 명제는 디자인은 장식이 아니라 전략이다. 아름다움은 부수적 결과일 뿐, 진짜 목적은 비즈니스 성과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 관점은 공간 디자인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는다. 전통적으로 우리는 디자인을 '마지막 단계'로 여겨왔다. 사업 계획을 세우고, 예산을 짜고, 인력을 배치한 다음, 남은 예산으로 '좀 예쁘게 꾸며보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제시하는 세계관은 정반대다. 공간은 브랜드 전략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공간이야말로 고객이 브랜드를 '체험'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이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어떤 브랜드에 대해 갖는 인상은 대부분 공간 경험에서 나온다. 애플 스토어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미니멀한 세련됨, 스타벅스의 따뜻한 조명과 원두 향기가 만들어내는 안락함, 명품 매장의 넓은 여백과 정숙함이 전하는 럭셔리함. 이것들은 모두 치밀하게 설계된 전략의 결과다. 그리고 그 전략은 매출로, 고객 충성도로, 브랜드 가치로 직결된다. 작가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작업 경험을 통해 이를 반복적으로 확인했다고 말한다. 잘 디자인된 공간은 고객의 체류 시간을 늘린다. 체류 시간이 늘면 구매 확률이 올라간다. 동시에 그 공간에서의 긍정적 경험은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쌓고, 재방문을 유도한다. 이것이 바로 '공간이 만드는 선순환'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무엇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가? 저자는 색채, 조명, 그림자, 텍스처, 재질, 투명함, 구조, 동선, 스케일, 형태, 디테일, 향과 소리, 자연 요소, 인터랙션, 메시지, 시간, 기억이라는 17가지 요소를 하나씩 해부한다. 이 중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요소들'의 위력이었다. 우리는 시각적 요소에만 집중하기 쉽지만, 실제로 공간의 감정을 결정하는 것은 오히려 후각과 청각일 때가 많다. 빵집에 들어섰을 때 코끝을 스치는 갓 구운 빵 냄새, 호텔 로비에 은은하게 퍼지는 클래식 음악, 카페에서 들리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쉭쉭거리는 소리. 이런 것들이 우리의 무의식을 자극하고, 그 공간에 대한 전체적인 인상을 만든다. 또한 동선의 설계도 놀라울 만큼 전략적이다. 이케아가 왜 미로 같은 동선을 만드는지, 백화점이 왜 에스컬레이터를 특정 위치에 배치하는지, 애플 스토어가 왜 제품을 만질 수 있게 테이블 위에 펼쳐놓는지. 이 모든 것이 고객의 움직임을 유도하고, 체험을 극대화하며, 궁극적으로 구매를 이끌어내기 위한 설계다. 스케일과 비율의 조정도 흥미롭다. 높은 천장은 웅장함과 자유로움을 주지만, 지나치게 높으면 위압감을 줄 수 있다. 좁은 통로는 긴장감을 만들지만, 그 끝에 넓은 공간이 나타나면 극적인 해방감을 선사한다. 명품 매장이 넓은 여백을 두는 이유는 제품에 '호흡 공간'을 주어 그 가치를 더 고귀하게 보이도록 만들기 위함이다.
저자는 브랜드 DNA를 공간으로 구현하는 7단계 전략을 제시한다. 색채와 조명으로 분위기를 형성하고, 텍스처와 재질로 감촉을 전달하며, 동선으로 상호작용을 설계하고, 형태와 구조로 세계관을 만들고, 스케일로 존재감을 극대화하며, 향과 소리로 기억을 각인시키고, 시간적 요소로 경험을 지속시킨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와 공간이 전하는 메시지가 일치해야 한다. 만약 친환경을 강조하는 브랜드가 플라스틱과 형광등으로 가득한 공간을 만든다면? 그 순간 고객은 혼란을 느끼고 신뢰는 무너진다. 반대로 모든 요소가 하나의 이야기로 수렴한다면, 고객은 그 브랜드의 진정성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특히 "브랜드 경험을 설계하는 디자이너는 결국 고객의 기억을 디자인하는 사람"이라는 문장이 강하게 다가왔다. 우리가 어떤 브랜드를 기억하는 이유는 그 브랜드의 제품이 좋아서만은 아니다. 그 브랜드와 함께한 '경험'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험의 핵심에는 언제나 공간이 있다.
책을 덮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출근길 카페에 들어서는 순간 천장의 조명 각도가 보이고, 백화장에서 에스컬레이터의 위치가 전략적으로 느껴지며, 회사 회의실의 테이블 배치가 새롭게 해석된다.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 누군가의 치밀한 설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공간은 더 이상 디자이너만의 영역이 아니다.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 사업을 기획하는 사람, 팀을 이끄는 사람 모두가 공간을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공간이야말로 우리의 메시지를 가장 강력하게 전달하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우리집, 우리가 자주 가는 동네, 우리가 만드는 모든 환경이 결국 우리 자신과 타인에게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그 메시지가 무엇인지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설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더 나은 경험을, 더 깊은 관계를, 만들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