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지 않을 용기 -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연습
천하이센 지음, 박영란 옮김 / 더페이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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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꿈을 가져라", "목표를 향해 달려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하지만 정작 그 꿈이 누구의 것인지 묻는 사람은 드물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들이 박수 쳐줄 만한 것을 원하는 건지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영화 <소울>의 주인공 조는 평생 재즈 피아니스트의 꿈을 좇았다. 그에게 중학교 음악 교사로서의 일상은 무의미했고, 가족이나 다른 관계는 부차적이었다. 오직 무대 위에 서는 그 순간만이 진짜 인생의 시작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리던 기회 를 잡은 바로 그날, 그는 맨홀에 빠져 죽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 직전까지 그는 "이제야 진짜 삶이 시작된다"고 믿었다. 그의 인생에서 지금까지의 모든 시간은 준비 과정일 뿐이었고, 진짜 삶은 항상 미래 어딘가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꿈의 잔인함이다.

꿈은 우리에게 방향을 주지만, 동시에 현재를 무가치하게 만들기도 한다. 우리는 "꿈을 이루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생각하며 지금의 불행을 참아낸다. 승진하면, 결혼하면, 집을 사면, 아이가 대학에 가면... 끝없이 행복을 유예한다. 하지만 경마장의 말처럼 눈가리개를 쓴 채 앞만 보고 달리다 보면, 길가에 핀 꽃도, 옆에서 함께 뛰는 사람도, 지금 이 순간의 햇살도 보지 못한다. 영화 속 이발사는 어린 시절 수의사를 꿈꿨지만 경제적 이유로 이발사가 됐다. 누군가 그를 동정하려 하자 그는 말한다. "난 지금도 좋아요." 그는 자신의 기술에 자부심을 느끼고, 손님들과의 대화를 즐기며, 매일 누군가를 더 나 은 모습으로 만들어주는 일에서 의미를 찾았다. 거창한 꿈은 없었지만, 그의 삶은 충만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떠오른다. 꿈을 이루지 못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실패한 인생을 산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곳에서 의미를 발견했을 뿐이다. 일상의 작은 성취, 관계 속의 따뜻함, 기술의 숙련됨,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순간. 이런 것들이 삶을 지탱하는 진짜 기둥이다. 꿈은 필요하다. 하지만 꿈이 삶보다 커져서는 안된다. 꿈을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풍요롭 게 만들기 위한 도구로 꿈을 활용해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와 웃고, 음악을 듣고, 바람을 느끼는 이 순간들이 모여 삶이 된다. 꿈은 그 삶을 조금 더 선명하게 만드는 향신료 같은 것이다.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변화를 요구한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라", 성장하라", "발전하라". 변화하지 않는 사람은 뒤처지는 사람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질문은 "무엇을 변화시킬 것인가"보다 "무엇을 변화시키지 않을 것인가"일지 모른다. 변화에는 세 단계가 있다고 한다. 끝, 중립지대, 새로운 시작. 대부분의 사람들은 '끝'을 제대로 경험하지 않고 바로 '새로운 시작'으로 뛰어들려 한다. 하지만 끝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진짜 시작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사직서를 낸 다음 날부터 바로 새로운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그 전에 필요한 것은 애도의 시간이다. 그 직장에서 보낸 시간, 형성했던 관계, 익숙했던 루틴, 그 모든 것과 작별하는 시간. 이 과정 없이는 새로운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때로는 변화하지 않을 용기도 필요하다. 모두가 이직을 꿈꿀 때 같은 자리를 지키는 것, 유행을 좇지 않고 자신의 속도로 가는 것, 남들이 뭐라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 이것도 용기다. 중요한 것은 변화의 유무가 아니라, 그 선택이 진정으로 내 것인가 하는 점이다. 남들이 기대 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때문도 아니라, 정말로 내가 원해서 선택한 것인가.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를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다.

책에서 저자는 많은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조언을 해준다. 결국 저자의 이야기들은 하나로 수렴한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꿈을 이루지 못해도, 부모와 완벽한 관계가 아니어도, 계속 변화하지 못해도, 우리는 충분하다. 행복은 어딘가 먼 곳에 있지 않다. 꿈을 이룬 후에 시작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느끼고, 생각하고, 관계 맺는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 성장이 자기 부정에서 출발해서는 안된다. "지금의 나는 부족 해. 더 나아져야 해"가 아니라, "지금의 나도 괜찮아. 그리고 더 나아질 수도 있어"여야 한다.

한 어머니가 떠나는 아들에게 했던 말을 기억해 본다. "네가 떠나면 외롭겠지만, 내 외로움을 네가 떠나지 못할 이유로 삼지 않겠다." 이것을 나 자신에게도 적용할 수 있다. " 나는 완벽하지 않아. 하지만 내 불완전함을 내가 행복하지 못할 이유로 삼지 않겠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두 가지 용기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꿀 용기,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꾸 지 않을 용기. 그 둘을 구분하는 지혜.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 존재하는 나 자신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자비다.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동시에, 내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이 두 진실은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를 완성한다. 지금을 받아들일 때 진짜 변화가 시작되고,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을 때 지금을 온전히 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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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괴테의 문장들 - 200년이 지나도 심장을 뛰게 하는
민유하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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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 가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그 말은 200년을 건너와, 지금 이 순간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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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괴테의 문장들 - 200년이 지나도 심장을 뛰게 하는
민유하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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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난여름, 나는 번아웃에 가까운 상태였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할 일 목록을 펼쳤고, 그것을 하나씩 지우는 것으로 하루를 채웠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빠르게 성과를 내고, 빠르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많은 것을 해 냈는데, 막상 한 해를 돌아보면 남는 게 없었다.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처럼, 속도는 빨랐지만 깊이는 없었다. 괴테는 그런 나에게 별을 보라고 말한다. 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 처음엔 모순처럼 느껴졌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껏 했던 건 '서두름'이 아니라 '허둥댐'이었다. 진짜 속도가 아니라, 불안이 만든 조급함이었다. 별은 밤하늘에서 추월 경쟁을 하지 않는다. 옆의 별을 의식하지도, 뒤처질까 봐 전력질 주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궤도를 따라 천천히, 그러나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돈다. 괴테가 83년 동안 방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은 천재성이 아니라 바로 이 '별의 리듬'이었을 것이다. 급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후로 일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꿨다. 하루에 열 가지를 해치우려 하기보다, 세 가지를 제대로 하기로 했다. 마감에 쫓겨 급하게 끝내기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손을 대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피로감이 줄었다. 오히려 집중력은 높아졌다. 무엇보다, 일이 '쌓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반복이 단단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 이것은 속도에 관한 문장이 아니다. 태도에 관한 문장이다. 불안에 떠밀 려 달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중심을 지키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괴가 말한 '별처럼 사는 법'이다. 이렇듯 괴테의 문장들을 나에게 많은 의미를 선사한다.

대학원 시절, 나는 논문을 읽고 또 읽었다. 이론서를 밑줄 치고, 강의를 듣고, 노트를 정리했다. " 충분히 알게 되면, 그때 시작해야지 "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충분히라는 기준은 계속 뒤로 밀려났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 알아야 할 것도 많아 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나도록 나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괴테의 문장이 내 머리를 때린 건 그때였다. " 아는 것만으로 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 나는 지식을 쌓는 일에 중독되어 있었다. 마치 지식을 모으는 것 자체가 성취인 것처 럼 착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적용되지 않은 지식은 그저 뇌 속에 쌓인 먼지일 뿐이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이 읽히지 않으면 인테리어에 불과하였다. 괴테의 문장은 200년 전에 쓰였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유튜브로 강의를 듣고, 인스타그램에서 자기계발 문구를 저장하고, 책을 사 모은다. 하지만 정작 '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힘이 생길 거라 믿지만, 역설적으로 아는 게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커진다. "이 정도로 충분할까?", "실패하면 어떡하지?" 괴테가 나이키보다 200년 앞서 외쳤던 것은 결국 이것이다. "Just Do lt." 그냥 하라. 완벽하게 알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조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라. 첫 문장이 형편없어도 괜찮다. 첫 시도가 실패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나는 결국 불완전한 상태로 첫 글을 썼다. 부끄러웠지만 발표했다. 피드백은 따가웠지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실행하지 않으면 피드백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실패는 행동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완벽주의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괴테의 목소리가 들린다. "적용하라. 실행하라." 그 목소리는 나를 책상에서 일으켜 세우고, 생각의 미로에서 꺼내 어, 현실의 땅으로 데려온다. 변화는 머리가 아니라 손에서 시작된다.

괴테는 200년 전 사람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SNS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문장들은 지금 이 순간 나의 고민을 정확히 꿰뚫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괴테의 말은 책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재상으로서 행정을 책임졌고, 과학자로서 자연 을 탐구했으며, 예술가로서 색채를 연구했고, 연인으로서 사랑을 했으며, 인간으로서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그의 문장은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얻은 삶의 육성 '이다. 그래서 200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말이 너무 많다. 명언은 넘쳐나고, 조언은 쏟아진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가볍다. 경험 없이 포장된 말, 삶 없이 가공된 문장들. 그런 말 들은 순간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 반면 괴테의 문장은 무겁다. 무게가 있다. 그 무게는 83년의 삶이 만든 밀도다. 그는 쉽게 말하지 않았다. 빠르게 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깊이, 오래 살았다. 그리고 그 과 정에서 얻은 통찰을 문장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문장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초역, 괴테의 문장들>은 그 무게를 지금의 언어로 번역해낸 책이다. 독일어 원문을 함께 실어, 괴테의 호흡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했다는 점도 좋다. 외국어를 몰라도, 그 문장의 리듬과 에너지는 전해진다. 그리고 Editor's Note는 괴테의 문장을 박제된 명언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살아있는 조언으로 만든다.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았다. 그릴 필요도 없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그리고 그날 마주친 한 문장이, 내 어깨를 불잡았 다. "너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 내가 찾던 답이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

"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 가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그 말은 200년을 건너와, 지금 이 순간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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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별에서 시작되었다 - 천문학자가 바라본 우주와 인류의 발자취
조앤 베이커 지음, 고유경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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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운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처럼 눈물샘이 자극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가가 뜨거워지는 그런 종류의 울음이다. 설명하기 어렵다.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닌, 어쩌면 둘 다인 감정이다. 이번에 조앤 베이커의 Starwatchers를 읽으며 느낀 그 감정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도시에서 보는 밤하늘은 빈약하다. 몇 개 안 되는 별, 희뿌연 달, 가끔 지나가는 비행기.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 별빛이 수십 년, 수백 년을 여행해 내 망막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다. 저 별은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고, 폭발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핵융합을 지속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과거의 빛을 받아볼 뿐이다. 우주는 우리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작은 존재인지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작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내 고민이 작고, 내 실패가 작고, 내 존재가 작다는 것, 이것이 어째서 위안이 될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우주의 크기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도 못할 것이다. 우리 뇌는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사바나에서 사냥하고, 열매를 채집하고, 부족 사회를 유지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수십 미터 안의 거리, 수십 명의 관계, 수십 년의 시간, 이것이 우리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스케일이다. 그런데 우주는 이 모든 것을 조롱한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 4.2광년. 빛의 속도로 4년이 넘게 걸린다는 말이다.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돌 수 있다. 그 빛이 4년을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 숫자로는 이해할 수 있다. 계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느낄 수 는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젤란 은하, 하늘에서 흐릿한 구름처럼 보이는 그것이 각각 수십억 개의 태양을 품은 은하 라는 사실. 우리 은하만 해도 약 2천억 개의 별이 있는데,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약 2조 개의 은하가 있다. 2조 곱하기 2천 억. 이 숫자는 더 이상 숫자가 아니다. 그냥 '매우 많다'는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그리고 시간.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 인류 문명은 기껏해야 1만 년. 현생 인류는 30만 년. 인간 개인의 수명은 평균 80년.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압축하면, 인 류 문명은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0초쯤에 시작된다. 나의 삶은? 1초도 안 된다. 깜박임보다 짧다. 이런 비교를 할 때 마다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한 평온함을 느낀다.

과학이 밝혀낸 가장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빅뱅 직후의 물리 상수들이 조금만 달랐어도 원자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 같은 복잡 한 생명체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지구의 위치도 절묘하다. 태양으로부터 조금만 가까웠어도 금성처럼 지옥이 되었 을 것이고, 조금만 멀었어도 화성처럼 얼어붙었을 것이다. 달의 존재가 지구의 자전축을 안정시키고, 목성이 소행성들을 끌어당겨 지구를 보호하고, 오존층이 자외선을 차단하고 수백, 수천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나의 존재. 부모님이 만나지 않았다면, 그날 그 순간에 그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지 않았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부모도, 증조 부모도, 수백 세대에 걸친 조상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없었을 것이다. 확률로 따지면 나의 존재는 사실상 0에 가깝다. 그런데 나는 여기 있다. 숨 쉬고, 생각하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경외감을 느낀다. 이 우주에 존재할 수 있어 믿을 수 없이 행운이다.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을 관측했지만 방문하지 못했다. 허블은 은하들의 후퇴를 발견했지만 그 은하에 가보지 못했다.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을 보며 감동했지만 그가 꿈꾼 성간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실패한 걸까? 아니다. 그들은 인류의 시야를 넓혔다. 우리가 우주 속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를 알게 해주었다. 나는 화성에 발을 닫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큐리오시티 로버가 보내온 사진을 볼 수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초기 우주를 볼 수 있다. 중력파 검출기가 두 블랙홀의 충돌을 기록한 데이터를 볼 수 있다. 나는 직접 탐험하지 못하지만, 인류가 집단적으로 탐험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밤하늘을 올려 다볼 수 있다. 도시의 빈약한 별빛이라도, 희뿌연 달이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들을 보며 나는 기억한다. 저기 저 점 하나하나가 태양 같은 별이고, 그 주위를 행성들이 돌고 있을 수 있으며, 어쩌면 그 행성 중 하나에서 다른 존재가 우리를 향해 올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책은 나의 오래된 열정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나에게 우주는 끊임없이 상기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일상에 파묻혀 살다 보면 잊는다. 내 문제가 우주 전체인 것처럼, 내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 내가 중요한 것처럼. 그럴 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기억한다. 나는 작고, 짧고, 우주적으로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그것이 괜찮다. 아니, 그것이 아름답다. 저자가 일식을 보며 느낀 차분함과 안정감" 나도 안다. 우주의 시선을 받는다는 느낌. 물론 우주는 의식이 없고 우리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 속에 존재한다는 것, 별먼지로 만들어진 우리가 별을 올려다본다는 것, 우주가 우주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 이 순환적 아름다움. 우주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만큼은, 가끔은 물리적 책을 권하고 싶다. 밤하늘 아래서, 손에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 것. 아날로그적 행위로 우주라는 가장 압도적인 주제를 대하는 것. 그 아이러니가 어쩐지 적절하게 느껴진다. 우주는 여전히 거기 있다.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그것만으로도 기적이고,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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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까 - 커리어 피보팅을 위한 성공 마인드셋
이연승(스텔라) 지음 / 북스고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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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새벽 3시, 겨우 잠든 아이 옆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묻는다. "이대로 괜찮은 걸까?" 이 질문은삶의 방향성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박물관 유물처럼 사라진 이 시대에, 우리의 불안은 개인의 나약함이 아 닌 시대적 증상이다. 휴직 중인 한 워킹맘은 명함 속 자신의 이름을 바라보며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다. 과장이라는 직함, 몇 년간 쌓아온 전문성, 그리고 육아로 인한 현장 감각의 상실 사이에서 그녀는 흔들린다. 이것은 비단 그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30대 직장인의 70% 이상이 커리어 전환을 고민한다는 통계는, 우리 모두가 같은 갈림길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 불안을 어떻게 다루느냐다. 많은 이들이 불안을 억누르거나 충동적인 결정으로 회피하려 한다. 하지만 불안은 신호등과 같다. 빨간불이 켜졌다고 눈을 감고 달릴 수는 없다. 멈춰 서서, 지금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확인할 시간이 필 요하다.

전통적인 커리어 관점은 직선적이다. 한 분야에서 시작해 꾸준히 상승하는 사다리형 성장을 이상적으로 본다. 그러나 현실의 커리어는 더 이상 사다리가 아니라 정글짐에 가깝다. 옆으로, 대각선으로, 때로는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는 입체적 움직임이 필요하다. 저자의 여정을 보면 이것이 명확해진다. 창업자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다시 컨설턴트로, 마케팅 임원을 거쳐 CEO까지. 표면적으로는 일관성 없어 보이는 이 경력들이 실은 하나의 서사를 이룬다. 그녀는 각 단계에서 얻은 ' 핵심 근육 '을 다음 단계의 발판으로 삼았다. 창업에서 배운 사업 감각, 브랜딩에서 익힌 시장 통찰, 컨설팅에서 연마한 분석력이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독특한 경쟁력을 형성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개념이 '피보팅(pivoting)'이다.


스타트업 용어로 시작된 이 말은 사업 방향을 전환하되 핵심 자산은 유지하는 전략을 뜻한다. 커리어 피보팅도 마찬가지다. 완전히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경험을 새로운 맥락에서 재조합하는 것이다. 육아 휴직도 이런 관점에 서 보면 단절이 아니다. 멀티태스킹 능력, 위기 관리 역량, 제한된 자원의 효율적 배분 능력은 어떤 MBA 프로그램보다 실전적이다. 밤샘 프레젠테이션 준비와 밤샘 육아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둘 다 극한의 인내심과 문제 해결 능력을 요구 한다. 관점을 바꾸면 공백이 자산으로 전환된다. 커리어 피보팅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외부 조건이 아니라 내적 역량이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호기심, 모방력, 상향심, 호환력, 주인의식, 추진력이라는 여섯 가지 핵심 역량이다. 호기심은 흥미를 넘어선 적극적 탐구 욕구다. 새로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을 때 필요한 것은 전문 지식이 아니라 배우려는 자세다. AI가 급부상하는 시대에 40대 관리자가 프롬프트 엔 지니어링을 배우기 시작한 것, 20년 경력의 회계사가 데이터 분석 툴을 독학하는 것은 모두 호기심에서 시작된다. 이 호기심이 지속될 때, 나이는 장벽이 아닌 경험의 깊이가 된다. 모방력은 빠르게 학습하는 기술이다. 많은 이들이 독창성을 강조하지만, 실은 훌륭한 모방이 창조의 전단계다. 업계 선배의 업무 방식을 관찰하고, 성공 사례를 분석하며, 효과적인 패턴을 내 맥락에 맞게 적용하는 능력. 이것이 신입과 전문가를 가르는 결정적 차이다. 상향심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는 마 음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상향심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어야 한다. 남의 SNS 피드를 보며 조급해하는 것은 상향심이 아니라 열등감이다. 진정한 상향심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내가 무엇을 더 배울 수 있을까?"를 묻는 자세에서 나온다. 호환력은 융합적 사고를 뜻한다. 마케팅 경험이 있는 개발자, 디자 인 감각을 가진 기획자, 재무 지식이 있는 영업자. 이런 복합 역량의 소유자들이 조직에서 주목받는 이유는 그들이 부서 간 장벽을 넘나들며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T자형 인재라는 말도 결국 깊이와 폭의 조화를 강조한다. 주인의식은 단순 히 열심히 일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속한 조직과 업무를 '우리 것'으로 여기고, 주어진 일 이상을 생각하는 태도다. 흥미롭 게도 주인의식은 승진이나 보상으로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일에서 주도권을 가질 때 자라난다. 회의록 정리 같은 소 소한 업무도 "이것을 더 효율적으로 할 방법은 없을까?"를 고민하는 순간, 그것은 내 것이 된다. 추진력은 계획을 실행으 로 옮기는 힘이다. 많은 이들이 피보팅을 꿈꾸지만 실행하지 못하는 이유는 완벽한 준비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준 비가 100% 완료되는 순간은 오지 않는다. 70% 정도의 확신이 서면 일단 시작하는 용기, 그것이 추진력이다.


커리어 전환의 첫 단계는 화려한 이력서 작성이 아니라 철저한 자기 점검이다. 지금의 일이 힘든 이유를 구체적으로 나열 해보라. " 그냥 힘들다“,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는 막연한 불만이 아니라, 업무의 어떤 요소가, 조직 문화의 어떤 부분이, 성장 경로의 어떤 측면이 불편한지 세분화해야 한다. 한 가지 유용한 방법은 이원 테이블을 만드는 것이다. 왼쪽에 는 "계속할 수 있는 이유", 오른쪽에는 "계속하기 어려운 이유"를 적는다. 그리고 각 항목에 1부터 10까지 가중치를 부여한다. 이 과정에서 감정은 잠시 옆에 두어야 한다.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감정을 구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또한 자신의 커리어 패턴을 찾아야 한다. 지난 5년, 10년을 돌아보며 내가 어떤 순간에 가장 몰입했는지, 어떤 성과에 자부심을 느꼈 는지 분석해본다. 패턴이 보이기 시작한다. 어떤 이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어떤 이는 시스템을 개선할 때, 또 어떤 이는 사람을 가르칠 때 에너지를 얻는다. 이 패턴이 '핵심 근육'이다.

피보팅에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모든 불만이 즉시 이직으로 연결될 필요는 없다. 때로는 지금 자리에서 배울 것을 다 배우는 것이 먼저다. 업계에서는 흔히 "3년 법칙"을 말한다. 한 직무를 제대로 이해하고 성과를 내려면 최소 3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3년이 무조건적인 기준은 아니다. 성장 곡선이 정체되었다는 신호를 읽어야 한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흥 미롭지 않고, 월요일 아침이 점점 무겁게 느껴지며, 5년 후 내 모습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변화를 고려할 시점이다. 반대로 업무가 힘들더라도 배우는 것이 많고, 다음 단계가 명확히 보인다면 조금 더 버티는 것이 현명하다. 환경 설정도 중요하다. 피보팅은 진공 상태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주변 사람들의 지지, 경제적 안정성, 시장 상황 등이 모두 영향을 미친다. 특 히 재정적 쿠션은 결정적이다. 최소 6개월에서 1년치 생활비를 확보한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과 당장 다음 달 월세가 걱정인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게임이다. 멘탈 관리도 빼놓을 수 없다. 전환기에는 불안, 자기 의심, 후회가 물밀 듯 밀려온다. 이때 필요한 것은 작은 성취의 축적이다. 거창한 목표보다는 "이번 주에 관련 도서 한 권 읽기", "업계 종사자 와 커피챗 한 번 하기 같은 실행 가능한 단계를 설정하라. 각각의 작은 성취가 확신을 쌓아간다.


많은 이들이 AI를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으로 본다. 하지만 피보팅 관점에서 AI는 오히려 강력한 도구다. AI는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하지만, 창의적 기획, 복잡한 의사결정, 감정적 교류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중요한 것은 AI를 ‘대체자'가 아니라 '증폭기'로 활용하는 것이다. 마케터는 ChatGPT로 초안을 빠르게 작성하고 전략 수립에 시간을 더 쓸 수 있다. 디자이너는 Midjourney로 컨셉을 시각화하고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을 강화할 수 있다. 개발자는 GitHub Copilot으로 코딩 속도를 높이고 아키텍처 설계에 집중할 수 있다. AI 시대의 피보팅은 기술적 전환이 아니라 가치의 재정의다. "내가 하는 일 중 AI가 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그 영역에 집중해야 한다. 데이터는 AI에게 맡기고, 데이터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인간이 하는 것. 이것이 새로운 분업의 형태다.


"지금의 일을 계속해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은 사실 잘못된 질문일 수 있다. 진짜 질문은 "지금의 나는 괜찮은가?"이기 때 문이다. 일은 우리 정체성의 일부지만 전부는 아니다. 일이 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일을 선택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복직을 앞둔 한 워킹맘이 명함을 꺼내 보며 느낀 것은 불안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명함들은 각각의 시기에 그녀가 누구였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어떻게 성장했는지를 증명한다. 인턴에서 과장까지, 각 단계는 다음 단계의 발판이었다. 휴직 기간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경력의 단절이 아니라 다음 챕터를 위한 준비 시간이다. 우리는 더 이상 한 가지 정체성으로 평생을 살 수 없는 시대에 있다. 그것은 불안의 원천이지만 동시에 자유의 기회다.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방향을 바꿔도 괜찮으며,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수 있다. 커리어 피보팅은 화려한 성공 스토리가 아니다. 그것은 불완전하고 흔들리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다. 새벽 3시의 불안을 안고도 다음 날 아침 출근하 는 것,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라인 강의를 듣는 것, 실패를 두려워하면서도 이력서를 보내는 것. 이 모든 작은 선택 들이 모여 피보팅을 완성한다. 그러니 지금의 일을 계속해도 괜찮은지 묻기 전에, 먼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고자 한다. “나는 지금 배우고 있는가? " , " 나는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는가?", " 1년 전의 나보다 나아졌는가? " 이 질문들 에 대한 답이 예라면, 나는 이미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설령 아니오라 해도 괜찮다. 그 깨달음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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