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으로 끝내는 경제뉴스 해석 사전 - 금리·환율·주식·부동산, 뉴스 속 돈의 흐름을 읽는 100가지 해석법
주정엽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뉴스를 차분히 해석할 수 있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한 권으로 끝내는 경제뉴스 해석 사전 - 금리·환율·주식·부동산, 뉴스 속 돈의 흐름을 읽는 100가지 해석법
주정엽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경제뉴스를 보다 보면 앞뒤가 맞지 않는 장면을 자주 만난다. 금리를 내렸는데 주가가 떨어지고, 고용이 좋아졌다는데 증시는 하락한다. 물가 상승률이 낮아졌다고 하지만 장바구니는 여전히 무겁다. 이런 기사를 읽을 때마다 내가 용어를 몰라서 이해하지 못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금리가 무엇인지, 환율이 무엇인지 정의를 외우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은 정반대의 출발점을 제안한다. 용어에 앞서 정보를 살피는 순서부터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책 전체를 읽는 열쇠였다. <한 권으로 끝내는 경제뉴스 해석 사전>은 뉴스에서 되풀이되는 판단 구조를 100개의 패턴으로 정리한 책이다. 금리와 물가, 환율, 경기, 기업 실적, 주식, 부동산, 통계까지 여덟 개의 부로 나뉘어 있지만, 어느 부를 펼쳐도 같은 질문이 반복된다. 무엇이 변했는가, 왜 변했는가, 누구에게 어떻게 전달되는가, 시장은 이미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가. 책은 이 질문들을 통해 서로 떨어져 보이던 소식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보여준다. 읽고 나니 이 책이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읽는 순서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먼저 흔들린 것은 헤드라인에 대한 나의 믿음이었다. 책은 '호조', '부진', '호재', '악재' 같은 표현이 최종 판정이 아니라고 말한다. '고용 호조에 증시 하락'이라는 제목이 대표적이다. 일자리가 늘었다는 것은 경제에는 반가운 소식이지만, 소비가 쉽게 줄지 않으면 물가 안정과 금리 인하가 늦어질 수 있다. 금리 인하를 기다리던 시장에는 그것이 악재가 된다. 같은 사실이 실물경제에서는 좋은 신호이고 금융시장에서는 단기적인 부담이 되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뉴스를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으로 분류하는 시험지처럼 읽어 왔다. 책은 그 평가를 잠시 내려놓고 세 가지를 나누어 보라고 한다. 현재 경제에 어떤 의미인지, 시장이 기대하던 방향과 일치하는지, 그 변화가 금리와 기업 실적 중 어느 쪽에 더 강하게 작용하는지다. 이렇게 나누고 나면 한 줄짜리 헤드라인이 훨씬 입체적으로 보인다. 헤드라인은 결론이 아니라 질문의 시작이라는 것을 배웠다. 인상 깊었던 것은 숫자에 대한 태도다. 책은 "수출이 10% 증가했다"는 문장만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난달과 비교했는지, 작년 같은 달과 비교했는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책의 예시처럼 올해 8월 수출이 7월보다 5% 줄었더라도 지난해 8월보다는 18.75% 늘 수 있다. 두 기사는 모두 사실이지만 독자가 받는 인상은 정반대다. 비교 기준을 확인하기 전의 숫자는 변화의 절반만 보여준다는 문장은 오래 기억에 남았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책은 시장을 움직이는 것이 실제 숫자 자체보다 예상과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영업이익 8천억 원을 낸 기업의 주가가 떨어지고, 500억 원 적자를 낸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일이 가능한 이유다. 앞의 기업은 1조 원이 예상되었고 뒤의 기업은 1천억 원 적자가 예상되었다. 물가 상승률이 3.5%에서 3.2%로 낮아졌어도 시장이 2.9%를 기대했다면 반응은 달라진다. 같은 3.2%가 이전과 비교하면 '둔화'이고 전망과 비교하면 '예상 상회'가 된다. 숫자 하나에 비교 기준이 둘이라는 설명은 단순하지만, 그것을 알고 나면 예상 밖의 가격 반응이 한결 자연스럽게 읽힌다. 책을 덮고 나서 가장 크게 달라진 것은 뉴스를 대하는 속도다. 예전에는 기사를 읽자마자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판단하려 했다. 이제는 판단을 한 박자 늦추고 질문부터 던진다. 무엇과 비교한 숫자인가, 시장은 얼마를 기대했는가, 이 소식은 이미 가격에 들어가 있는가, 이 변화는 누구에게는 비용인가. 질문이 늘어나자 뉴스가 어렵게 느껴지기보다 오히려 덜 두려워졌다. 모든 기사가 독립된 사건이 아니라 돈이 어디서 어디로 이동하는지를 보여주는 조각이라는 마지막 장의 메시지가 이제야 이해된다. 물론 한계도 느꼈다. 패턴을 익히는 것과 실제 뉴스에 적용하는 것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책이 제시하는 틀은 훌륭한 출발점이지만, 새로운 상황에서 어떤 경로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지는 결국 자주 연습하며 감각을 쌓아야 알 수 있다. 또한 책이 반복해서 경고하듯 하나의 뉴스만으로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되므로, 이 책을 읽었다고 해서 시장을 예측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예측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그럼에도 뉴스를 차분히 해석할 수 있는 태도를 갖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 책은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 <경제뉴스 해석 사전>은 경제를 잘 아는 사람이 되라고 다그치는 책이 아니다. 같은 문장을 읽더라도 그 뒤에 생략된 조건을 한 번 더 헤아려 보라고 권하는 책이다. 헤드라인의 평가를 내려놓고, 숫자 옆의 작은 글씨를 찾고, 하나의 원인으로 결과를 단정하지 않는 것. 이 단순한 습관들이 쌓이면 뉴스는 소음이 아니라 정보가 된다. 나는 앞으로 경제뉴스를 볼 때마다 이 책이 알려준 순서를 떠올릴 것이다. 먼저 무엇이 변했는지 묻고, 그다음에 그 변화가 나에게 어떻게 닿는지 생각해 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연결의 과학 - 빅뱅에서 인공지능까지 세상 만물의 빅히스토리
주철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휴대전화를 확인한다. 밤사이 도착한 메시지, 알림, 뉴스가 화면을 채운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촘촘하게 연결된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는 말이 흔하다. <연결의 과학>에서 "기술과 물질은 초연결로 치닫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단절되어 있다"는 의미를 오래 생각해 보았다. 연결이 이렇게 많은데 왜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느끼지 못할까. 이 질문에서 나만의 '연결' 이야기를생각해 보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책은 연결을 두 갈래로 나눈다. 하나는 내가 고를 수 없는 숙명의 연결, 다른 하나는 내가 만들어 가는 운명의 연결이다. 저자는 이를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피투(被投)'와 '기투(企投)'라고 부른다. 피투의 연결은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다. 138억 년 전 빅뱅에서 시작된 우주, 별의 중심에서 만들어진 탄소와 산소, 40억 년 전 루카에서 이어져 온 유전자까지, 내 몸을 이루는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연결의 결과다. 내가 이 시대, 이 나라, 이 가족 안에 태어난 것도 마찬가지다. 한 번도 투표해 본 적 없는 조건 속에서 우리는 삶을 시작한다. 오래 남은 비유는 교실이다. 교실은 학생들의 연결로 이루어진 계이고, 학년이 끝나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면 학급은 죽음을 맞이한다. 건물도 칠판도 그대로인데 그 교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교실의 본질은 벽과 책상이 아니라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의 연결이었기 때문이다. 졸업한 뒤 흩어진 친구들이 떠올랐다. 같은 교실에서 웃고 떠들던 아이들은 이제 각자의 도시에서 각자의 삶을 산다. 우리가 나눈 시간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시간을 담았던 '우리 반'이라는 계는 분명 끝났다. 그때는 이별이 사람이 사라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사람이 아니라 연결이 사라지는 일임을 안다. 그렇다면 관계를 지킨다는 것은 사람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연결을 가꾸는 일이다. 연락을 먼저 건네고, 안부를 묻고, 시간을 내어 만나는 사소한 노력이 한 계의 죽음을 늦춘다. 엔트로피는 가만두면 늘어나기 마련이라, 연결은 가만두면 풀어지고 에너지를 들여야 유지된다. 책은 연결이 늘 선하지만은 않다는 점도 짚는다. 박쥐의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건너온 것도, 방역이 허술한 곳에서 생긴 변이가 순식간에 세계로 퍼진 것도 연결의 결과였다. 전쟁은 경제와 지정학의 연결이 무기가 된 모습이고, 거짓 정보가 들불처럼 번지는 일은 디지털 연결이 인간의 마음을 흔드는 모습이다. 연결은 번영의 토대이면서 동시에 위기의 통로다. 코로나19를 겪은 세대로서 나는 이 말이 몸으로 와닿는다. 지구 반대편의 소식이 내 일상의 문을 닫게 했고, 보이지 않는 연결이 마스크 한 장의 무게로 내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때 우리는 알았다. 내가 아무리 조심해도 남이 조심하지 않으면 안전하지 않고, 남의 불행이 곧 나의 불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연결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놓인 조건이었다. 책은 "우리는 어디에서 왔고, 무엇과 이어져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이어 갈 것인가"라고 묻는다. 앞의 두 질문에는 과학이 답해 준다. 우리는 별의 먼지에서 왔고, 생태계와 인류와 서로에게 이어져 있다. 그러나 마지막 질문에는 누구도 대신 답해 주지 않는다. 그것이 기투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의 선택이 나만의 일로 끝나지 않는다는 사실. 내 행동은 연쇄적으로 누군가에게 닿고, 그 누군가는 다시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이어진다. 연결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 선택하지 않은 선물이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이어 갈지는 우리의 몫이다. 우주가 138억 년 동안 이어 온 끈을 내 대에서 느슨하게 만들지, 조금 더 단단하게 엮어 다음 사람에게 건넬지는 결국 나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는 후자를 택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숫자의 배신 - 주식 투자에 관한 생각
장진영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도무지 모르겠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금리 전망은 엇갈리고, 국제 정세와 환율은 하루가 다르게 흔들린다. 어제의 확신이 오늘의 불안이 되는 일도 흔하다. 나 역시 계좌를 열어 볼 때마다 이 시장이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 묻게 된다. 이런 시기에 읽은 장진영 저자의 <숫자의 배신>은 투자를 대하는 내 태도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요즈음 주식시장. 어렵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역대 최대 실적을 발표했는데 주가가 오히려 내려가는 것이다. 이런 일을 겪었을 때 나는 시장이 틀렸다고 생각했다. 이익이 늘었으니 주가도 올라야 한다는 등식이 너무 당연해 보였기 때문이다. 책은 이 등식이 실무자와 투자자가 가장 자주 범하는 논리적 오류라고 말한다. 투자자에게 과거의 실적은 가치 평가의 '재료'일 뿐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기업이 지난 분기의 성장을 자랑하는 동안 투자자는 이미 그다음을 본다. 그 매출이 반복될 수 있는지, 성장이 구조적인지 일회성인지, 이익이 현금으로 돌아오는지를 따진다. 결국 주가는 실적의 크기가 아니라 시장의 기대와 현실 사이의 차이, 곧 갭(Gap)에 반응한다. '숫자의 배신'이라는 제목은 숫자가 거짓말을 한다는 뜻이 아니다. 숫자가 이미 지나간 이야기를 말해 주는 동안 시장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거래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니 지난 투자들이 다시 보였다. 내가 숫자에 배신당했다고 느낀 순간의 대부분은 사실 숫자를 읽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나는 발표된 숫자만 보았고, 그 숫자가 시장의 기대 가운데 어디에 놓이는지는 보지 않았다. 책이 말하는 기대의 삼각형은 가이던스, 컨센서스, 위스퍼로 이루어진다. 가이던스는 기업이 스스로 내놓는 전망이고, 컨센서스는 애널리스트들의 평균 추정치다. 위스퍼는 그 밖에서 투자자들이 각자의 정보와 판단으로 만들어 내는 비공식적 기대다. 공식 컨센서스를 웃도는 어닝 서프라이즈에도 주가가 빠지는 까닭은 이 위스퍼가 컨센서스보다 높은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이 마음속으로 정해 둔 눈높이를 넘지 못하면 좋은 숫자도 실망이 된다. 이 개념은 불확실한 시기에 특히 쓸모가 있다. 불확실성이 클수록 기대는 한쪽으로 쏠리기 쉽기 때문이다. 낙관이 지배할 때는 기대가 과열되어 웬만한 호재로는 주가가 오르지 않고, 비관이 지배할 때는 기대가 바닥까지 내려가 평범한 결과에도 주가가 반등한다. 같은 숫자가 어느 때는 악재가 되고 어느 때는 호재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기업이 얼마를 벌었는가'만큼이나 '시장은 얼마를 벌 거라고 기대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저자는 위스퍼를 기업이 직접 통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다만 시장이 기업의 메시지를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비관하지 않도록 일관된 정보를 주어 기대가 공개된 정보와 너무 멀어지지 않게 관리할 수는 있다고 한다. 이 대목은 기업의 몫이지만, 투자자인 나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이 얼마나 일관되고 투명하게 시장과 소통해 왔는지가 그 기업의 숫자를 얼마나 믿어도 되는지를 알려 주는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시장이 기업을 산업별 바구니에 담아 분류한다. 한 번 어떤 바구니에 담기면 그 바구니의 평균 멀티플에서 벗어나기가 극도로 어렵다. 같은 100억 원의 이익을 내도 어떤 언어로 정의되느냐에 따라 기업 가치가 1천억 원이 되기도 하고 2천억 원이 되기도 한다. 가치라는 것이 절대적인 값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는 흔히 기업에는 '진짜 가치'가 있고 시장이 그것을 맞히기도 틀리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책은 반대로 가치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설계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의 관심을 얻고(Attention), 기대를 형성하고(Expectation), 기대와 성과의 간극을 관리해야(Gap) 비로소 정당한 가격(Price)에 이른다는 제로갭 프레임워크가 그 설계도다. 가치가 저절로 드러나기를 기다리는 기업은 시장에서 '존재의 부재'가 될 수 있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이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싼 주식이 싼 데는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시장이 그 기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기업이 자신을 설명하는 데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 그 둘을 가려내지 못하면 저평가라는 이름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숫자는 배신하지 않는다.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순간은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것까지 숫자에 기대했을 때 찾아온다. 이익은 과거의 기록이고, 주가는 미래에 대한 합의다. 그 사이의 간격을 읽어 내는 일이 투자의 본질에 가깝다. 시장이 흔들릴수록 나는 숫자를 더 많이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책이 가르쳐 준 대로, 필요한 것은 숫자를 많이 아는 일보다 숫자를 제대로 해석하는 일이다. 이번 불확실성의 시기에 내가 지키고 싶은 원칙은 하나다. 숫자 앞에서 멈추지 말고, 숫자 뒤에 있는 기대와 신뢰를 함께 읽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약의 탄생 - 한 조각씩 꺼내 보는, 14가지 약 이야기
김효정 지음 / 반니출판 / 2026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두통이 올 때면 서랍에서 타이레놀을 꺼내 은박 껍질을 뜯고 물과 함께 삼킨다. 단 한 번도 의심을 품어 본 적이 없다. 약은 늘 거기 있었고, 아프면 먹는 것이었고, 먹으면 낫는 것이었다. 그런데 김효정 교수의 <약의 탄생>을 읽고 나서 그 익숙한 동작이 조금 낯설어졌다. 내가 안전하다고 믿어 온 것이 약의 성질인지, 아니면 그저 익숙함이 만들어 낸 느낌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책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파는 타이레놀에는 500mg 알약이 여덟 알 들어 있다. 약국의 열 알짜리보다 두 알 적은데, 한 통을 다 먹어도 하루 최대 권장 용량을 넘지 않게 정한 양이라고 한다. 구하기 쉬운 약일수록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설계한 것이다. 쉽게 떠오르는 정보에 기대어 판단하는 이런 경향을 행동경제학에서는 '가용성 휴리스틱'이라 부른다. 나는 이 대목에서 약 한 알에 약학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학과 제도의 계산도 함께 담겨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껌처럼 쉽게 사는 약이 한때 60년 가까이 누명을 쓰고 외면받았다는 사실도, 과음한 다음 날 먹으면 간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사실도 나는 몰랐다. 저자의 표현대로 약과 독을 가르는 것은 성분이 아니라 용량과 그것을 다루는 경계심이다. 은박 껍질을 뜯는 번거로움은 약을 캔디처럼 여기는 우리의 인지적 지름길 앞에 국가와 제약사가 세워 둔 작은 방어선이었다. 마약성 진통제를 다룬 장이 흥미로웠다. 지구상의 수십만 종 식물 가운데 인간의 통증을 이토록 강하게 잠재우는 성분을 가진 것은 사실상 양귀비뿐이다. 우리는 이것을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선물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저자는 진실이 정반대라고 말한다. 우리 뇌에는 통증을 다스리는 '엔도르핀'이라는 체계가 이미 있고, 양귀비의 모르핀은 그 정교한 체계에 우연히 들어맞은 가짜 열쇠일 뿐이라는 것이다. 설명을 읽고 나는 약을 보는 방식이 바뀌었다. 약은 자연이나 과학이 우리에게 건네는 정답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몸의 시스템 속으로 밀고 들어가는 외부의 열쇠다. 그 열쇠를 극한까지 갈아 더 강력한 마스터키로 만든 것이 펜타닐이고, 고통을 지우려던 그 효율적인 칼날이 결국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책이 '코브라 효과'라는 개념으로 이를 설명하는 것은 적절해 보인다. 문제를 없애려는 해법이 오히려 문제를 키우는 일은 약의 역사에서도 되풀이되어 왔다. 고통이 없는 삶을 바라는 마음은 너무나 자연스럽지만, 그 마음이 어디까지 정당한지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으로 남는다. 저자는 질병과의 싸움을 한 편의 수사 기록으로 읽는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의 바이러스를 되살리기 위해 연구자들은 알래스카 영구동토층의 얼어붙은 땅까지 파고들었다. 범인의 몽타주를 복원하고 그 발목을 묶을 수갑의 원리를 찾아내는 과정을 읽으며, 나는 약학이 책상 위의 지식이 아니라 집요한 추적이라는 것을 느꼈다. 코로나19를 지나온 지금의 우리는 이 비유가 결코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안다. 적의 이름을 정확히 부를 수 있어야 비로소 싸울 수 있다는 말은, 모르는 채 두려워하기만 했던 그 시기를 돌아보게 한다. 인슐린의 이야기는 조금 다른 결로 마음에 남았다. 당뇨병은 죽음을 기다리는 병에서 삶을 스스로 관리하는 병으로 바뀌었다. 인류애에서 출발한 약이 산업의 힘으로 더 많은 생명을 구했고, 동시에 그 산업의 논리 속에서 또 다른 질문을 낳았다는 것이 '인슐린의 역설'이다. 생명을 살리는 일과 돈이 되는 일이 한 약 안에서 만난다. 나는 이것을 어느 한쪽의 잘못으로 단정하고 싶지 않다. 다만 약값이 누군가에게는 치료의 지속 여부를 가르는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약을 쓰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아마 서랍에서 약을 꺼내 먹을 것이다. 달라진 것은 그 앞에서 잠깐 멈추게 된다는 점이다. 이 약은 어떤 열쇠인가, 누가 어떤 실패를 거쳐 이것을 만들었는가, 나는 지금 용량과 경계심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가. 약을 끊고 믿음을 거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약을 제대로 믿기 위해서라도 약의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약 한 알의 무게는 그 안의 성분 몇 밀리그램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고 쓰고 해석해 온 사람들의 긴 시간에서 나온다. 그 시간을 조금이나마 알게 된 지금, 나는 은박 껍질을 뜯는 일이 전과 같지 않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