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어 멘탈 - 통제할 수 없는 일에 인생을 양보하지 말 것
벤저민 하디.댄 설리번 지음, 이민희 옮김 / 윌북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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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코어 멘탈'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어떤 충격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강철 같은 마음을 떠올린다. 나도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비난을 들어도, 시험에 떨어져도, 계획이 틀어져도 담담한 사람이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코어 멘탈은 충격을 견디는 단단함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떤 기준으로 재는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책은 삶을 재는 두 가지 방식을 말한다. 하나는 '갭(Gap)'이다. 지금 내 위치를 내가 도달하고 싶은 이상과 비교하는 방식이다. 통장에 100달러가 있는데 200달러를 원하고, 팔굽혀펴기를 10개 하는데 30개를 원하는 식이다. 다른 하나는 '게인(Gain)'이다. 현재 위치를 과거의 나와 비교한다. 예전에는 20달러였는데 이제는 100달러가 있고, 3개밖에 못 하던 팔굽혀펴기를 10개나 한다는 식이다. 상황은 똑같은데 어디에 서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람이 부족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성장하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글을 읽다가 오래 생각한 부분은 "갭에 빠지는 것은 높은 성취를 추구하는 사람일수록 흔하다"는 대목이었다. 돌아보면 나도 그랬다. 목표를 하나 이루고 나면 기뻐할 틈도 없이 다음 목표와의 거리부터 쟀다. 합격한 날에도 "이제 시작일 뿐"이라며 스스로를 다그쳤고, 잘한 일보다 못한 일을 먼저 복기했다. 그게 성실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태도 끝에 남은 것은 성취감이 아니라 늘 모자라다는 피로감이었다. 서평의 표현대로 갭 사고는 일시적으로 의지력을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결국 번아웃으로 이어진다. 목표를 달성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 뼈아프게 와닿았다. 아무리 달려도 기준선이 계속 앞으로 도망가니, 마음이 쉴 자리가 없는 것이다. 반대로 게인은 마음에 발 디딜 바닥을 만들어 준다. 내가 어제보다 나아졌다는 사실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증거다. 이 증거가 쌓이면 "나는 해낸 적이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다음 도전을 대하는 태도를 바꾼다. 벤 하디가 말했듯 긍정적인 감정은 더 높은 성과로 이어지고, 성과는 다시 자신감과 긍정적인 감정으로 돌아오는 선순환을 만든다. 나는 이 선순환이 곧 코어 멘탈의 정체라고 생각한다. 코어 멘탈이란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 아니라, 흔들리더라도 돌아올 중심이 있는 마음이다. 그 중심은 "나는 이만큼 왔다"는 감각에서 만들어진다. "삶의 모든 일은 나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일어난다"는 댄 설리번의 말이 생각난다. 낙관적인 구호로만 받아들이면 공허하다. 하지만 실패에서 배울 것을 찾는 훈련을 반복한다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실패는 나를 규정하는 낙인이 아니라 다음 시도를 위한 데이터가 된다. 마음이 약한 사람과 강한 사람의 차이는 실패를 겪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실패 앞에서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있다고 본다. 나를 패자로 읽을지 학습자로 읽을지는 결국 내가 고르는 해석의 문제다. 물론 만능은 아니다. 지금 있는 자리에 안주하고 이상을 포기하라는 말로 읽어서는 안 된다. 코어 멘탈은 타고나는 기질이 아니라 길러지는 시선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늘 부족한 사람으로 만드는 시선 대신, 어제의 나와 비교해 성장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을 연습하는 것. 그 연습이 쌓이면 어떤 파도가 와도 돌아올 중심이 생긴다. 이상까지의 거리가 아니라 출발점에서 걸어온 거리를 볼 줄 아는 사람은 쉽게 지치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갭을 완전히 지우지는 못하겠지만, 갭 앞에서 길을 잃지 않는 법만큼은 배워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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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스톤 필사 메모지 초판본 에디션 : 데미안 ㅣ 코너스톤 필사 메모지
코너스톤 편집부 지음 / 코너스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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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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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 보면 문장 하나가 마음에 걸려 넘어갈 때가 있다. 책장을 덮고도 한참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문장이다. 필사 메모지를 소개하는 글을 읽다가 나는 그 장면보다 다른 것이 먼저 떠올랐다. 한 장에 딱 한 문장만 적는다는 규칙이었다. 마음에 남은 문장을 정성껏 옮겨 적고, 그렇게 모은 120장을 상자에 담아 책상 위에 올려 둔다는 것. 그 상자를 상상하다가 나는 문득 한 친구의 얼굴을 떠올렸다.

데미안의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였다. 이 문장을 천천히 옮겨 적어 보았다. 손으로 쓰면 눈으로 읽을 때보다 속도가 느려지고, 느려진 만큼 단어 하나하나가 몸에 닿는다. 알은 세계라는 대목에 이르자 이상하게도 열여덟 살 무렵의 내가 떠올랐다. 그때의 나는 내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도 모르면서 어딘가에서 나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늘 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말수가 적었고, 위로를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내가 힘들다고 털어놓아도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은데?"라고 되묻는 쪽이었다. 그때는 그 질문이 서운했다. 나는 그저 "힘들었겠다"는 한마디를 듣고 싶었는데, 친구는 번번이 나를 다음 걸음 앞에 세워 놓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친구 나름의 방식이었다. <데미안>에서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정답을 쥐여 주지 않고 스스로 껍질을 깨 보도록 이끌었던 것처럼, 그 친구도 내 알을 대신 깨 주는 대신 내가 부딪쳐 볼 수 있도록 곁에서 기다려 주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 다른 도시로 흩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연락이 끊겼다고 말하기에는 거창하지만, 안부를 묻는 간격은 달에서 해로, 해에서 해를 건너뛰는 쪽으로 점점 길어졌다. 사는 게 바쁘다는 말은 가장 편리하고 가장 비겁한 변명이다. 나는 그 변명 뒤에 숨어 친구의 생일을 지나치기도 했고, 보내려던 메시지를 쓰다가 지우기도 했다. 몇 줄 적다가 "갑자기 왜 연락했냐고 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에 지워 버린 문장들이 휴대전화 속에 얼마나 많이 쌓여 있을까.


그래서 나는 메모지 한 장을 상상해 보았다. 거기에 데미안의 문장 하나를 적고, 그 아래 짧게 한 줄을 덧붙이는 것이다. "네가 예전에 던졌던 질문, 나 아직도 생각해." 그리고 그 한 장을 책갈피처럼 책에 끼워 친구에게 보내는 것이다. 120장이 들어 있다는 상자에서 첫 장은 이 친구의 몫으로 비워 두고 싶다. 하루에 한 문장씩 120일 동안 필사하는 작은 루틴을 만들어 보라는 제안도 마음에 들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나는 그 120일 중 며칠은 문장 대신 사람을 적어 보고 싶다.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이 곧 내가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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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스톤 필사 메모지 초판본 에디션 : 어린왕자 ㅣ 코너스톤 필사 메모지
코너스톤 편집부 지음 / 코너스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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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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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저녁은 묘하다. 하루가 끝나가는 게 아쉬우면서도 내일이 벌써 문 앞에 서 있는 느낌이 든다. 오늘은 그 시간에 휴대폰 대신 펜을 들었다. 책상 위에는 <어린 왕자> 초판본 표지를 닮은 작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코너스톤의 필사 메모지 초판본 에디션이다. 은은하게 빛나는 펄지 상자 위에 옛 표지 그림이 박으로 새겨져 있다. 불을 켜면 그림이 살짝 반짝이고, 뚜껑을 열면 도톰한 백색 모조지가 120장 들어 있다. 종이를 쓸어보니 결이 매끄러웠다. 얇은 메모지에 익숙해서인지 처음엔 여기에 아무렇게나 써도 될까 싶었다. 한 장 한 장이 문장 하나씩을 받아주려고 기다리는 자리처럼 느껴져서, 괜히 손을 씻고 자리에 앉았다.


어린 왕자는 내가 소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책이다. 최근에도 다시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같은 책이 아닌 것 같다. 어릴 때는 사막과 별, 여우 같은 이야기가 먼저 보였다. 지금은 문장 사이에 숨은 쓸쓸함이 먼저 보인다. 어른이 되어버린 사람이 어린 시절의 자기를 멀리서 바라보는 듯한, 그 조용한 눈길 말이다. 오늘 가장 먼저 옮겨 적은 문장은 역시 이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볼 수 있어."

수없이 읽은 문장인데도 손으로 쓰니 속도가 달라졌다. 눈으로 읽을 때는 한 줄이 순식간에 지나가는데, 펜은 글자를 하나씩 지나야 한다. '보이지'를 쓰고 '않아'를 쓰는 짧은 사이에 생각이 끼어든다. 나는 정말 마음으로 보고 살고 있나. 솔직히 말하면 자신 없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옷차림이나 말투, 직함 같은 것부터 읽고 어느새 마음속에서 점수를 매기고 있을 때가 많다. 그게 틀렸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된다. 바쁘고 피곤하면 더 그렇다.

그래도 살면서 조금씩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오래 남는 관계는 겉모습이 근사해서 이어지지 않았다. 아프다고 했을 때 말없이 죽을 사다 놓고 간 친구, 내가 한 말을 몇 달 뒤에 기억해 준 사람, 서툴지만 정성을 들인 작은 선물 같은 것들이 남았다. 그런 것들은 사진으로 찍어 보여줄 수도, 숫자로 매길 수도 없다. 결국 어린 왕자의 말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문장을 쓰다가 장미와 여우 생각도 났다. 어린 왕자는 자기 별의 장미가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믿었는데, 정원에 핀 수천 송이 장미를 보고 무너진다. 그때 여우가 일러준 것은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네 장미가 특별한 이유는 네가 그 장미에게 쏟은 시간 때문이라는 것.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찔린다. 나는 소중하다고 말하면서 정작 시간은 거의 쓰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연락을 미뤄둔 사람도, 언젠가 하겠다던 일도 그렇다. 관계는 마음만으로 자라지 않고 시간과 정성이 쌓여야 한다는 것을 이 작은 책은 어른이 되어서야 제대로 알려준다.


사막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 있어서 사막이 아름답다고 어린 왕자는 말했다. 내 하루도 그런 것 같다. 바쁘고 건조한 일상 어딘가에 이렇게 문장 하나를 옮겨 적는 시간이 우물처럼 숨어 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그 덕분에 하루가 마르지 않는다. 오늘 밤도 어린 왕자를 읽고, 쓰고, 생각했다. 내일부터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조금 더 마음을 쓰며 살아보려 한다.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이 상자를 열고 같은 문장을 한 번 더 써보면 된다. 그렇게 천천히 배워가면 된다고, 오늘 밤의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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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어머니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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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유다가 죄를 지었다고 하지만, 예수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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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어머니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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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대학 시절 김홍신 작가의 이름은 <인간시장>과 함께 내게 왔다. 세상의 부조리를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휘두르던 그 소설은, 어렵게 느껴지던 시대를 읽는 한 방법이었다. 그 뒤로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등단 50년을 맞은 작가가 쓴 신작 <유다의 어머니>를 다시 손에 들었다. 학창 시절의 책장을 넘기던 나와, 지금 책을 덮는 내가 같은 사람이면서도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러웠다. 이 소설은 1979년 12월의 군사 정변과 1980년 5월의 광주를 배경으로 한다. 한 어머니가 사랑으로 키운 첫째 아들을 총으로 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만년필로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눌러 썼다고 한다. 그 시절 필화를 겪은 그에게는 2024년 12월 3일의 비상계엄 선포가 오래된 트라우마를 다시 깨운 사건이었다고 한다. 그 밤의 불길이 이 소설을 쓰게 했다는 대목에서 나는 오래 멈춰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1979년의 계엄과 2024년의 계엄은 상황도 방식도 같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두 사건이 때로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겹쳐 말해지는 것을 본다. 그때 역사의 한복판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이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작가는 "문학은 상처를 향기로 바꾸는 장중한 서사"라고 말한다. 참 아름다운 표현이다. 문학이 상처 입은 이들의 아픔을 보듬고 그 고통에 새로운 의미를 줄 수 있다면, 그보다 희망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한편으로는 조심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과거의 아픔을 다시 꺼내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겨우 아문 자리를 다시 건드리는 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억은 치유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상처가 되기도 한다. 책에서 내게 주인공처럼 느껴진 사람은 박해선이다. 자신이 낳은 아들은 아니지만 교사의 길까지 접고 사랑으로 키운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이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지르자, 그녀는 신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방아쇠를 당긴다. 은전 서른 닢에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의 어머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작가가 던진 이 질문은 읽는 내내 가슴을 눌렀다. 성경을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자식의 죄 앞에서 어머니가 겪는 고통은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다. 책장을 덮고 남은 감정은 위로보다 무력감이었다. 박해선은 끝내 자신도 누군가 지른 불에 목숨을 잃는다. 약자들은 이용당하고 희생되는데, 살아남는 쪽은 결국 힘을 가진 이들이다. 약자의 아픔을 보듬고 희망을 말하려 했다는 작가의 뜻과 달리, 내게는 현실이 소설 속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쓸쓸함이 먼저 왔다. 어쩌면 그 무력감이야말로 우리가 아직 그 시절을 제대로 건너오지 못했다는 증거인지도 모른다.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유다가 죄를 지었다고 하지만, 예수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을까. 우리는 흔히 용서를 상대를 위한 너그러움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살아오며 내가 깨달은 것은, 용서가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점이다. 미움을 쥐고 있는 사람의 손이 가장 먼저 상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의 삶에서 하는 말이다. 역사 앞에서의 용서는 다른 무게를 갖는다.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이 가려지기 전의 용서는 공허하다. 다만 진실을 규명하는 일과 증오에 갇히는 일은 분명히 다르다고 믿는다. 학창 시절 인간시장을 읽으며 나는 분노하는 법을 배웠다. 수십 년이 지나 유다의 어머니를 읽으며 이제는 그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고 어디에 쓸 것인지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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