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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이와 같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칠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북극곰이 약국을 드나든다는 기발한 상상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북극곰이 다이어트약을 먹는다는 설정 뒤에는 실제로 굶주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북극곰들의 처참한 현실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픽션이라는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기후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북극곰이 떠다니는 빙하 위에 고립된 이미지만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은 기후 변화라는 무거운 주제를 사변적 우화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만약 이 내용이 그저 딱딱한 과학 보고서였다면, 나는 몇 페이지 읽다가 책을 덮었을 것이다. 하지만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홈스와 왓슨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북극곰, 명태, 동양하루살이 같은 존재들로부터 제보를 받는다는 설정은 기묘하게도 현실감을 더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극곰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조심하라, 당신들은 길을 잃었다. 우리가 사라지는 순간 당신들에게도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몰라." 이 한 문장은 기후 변화가 단지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각인시킨다. 북극곰은 단순히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라, 인간보다 먼저 재앙을 감지한 경보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구체적인 숫자들이었다. 허드슨만의 얼음 없는 날이 1985년 105일에서 2018년 145일로 늘었다는 것, 북극곰의 에너지저장량이 56퍼센트나 줄었다는 것, 바다얼음이 늦게 얼면서 북극곰이 사냥할 수 있는 날이 매년 하루씩 감소한다는 것. 이런 숫자들은 추상적인 '지구온난화'를 생생한 현실로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89킬로그램의 홀쭉이 북극골이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 687킬로미터를 헤엄쳐야 했던 북극곰 '20741'의 이야기는 숫자 너머에 있는 생명의 절박함을 전한다. 특히 232시간을 헤엄친 끝에 새끼를 잃은 북극곰의 이야기는 기후 변화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비극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흔히 과학적 데이터에만 주목하지만, 그 데이터 안에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사라진 수많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이 던지는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은 기후 변화의 책임과 피해가 과연 공평한가 하는 것이다. 투발루 이야기는 그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장 하나 없는 작은 섬나라가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기후 변화가 얼마나 불공정한 재난인지 드러낸다.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은 선진국들인데,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가난한 나라들이다. 더 씁쓸한 것은 이런 재난마저 자본의 마케팅 도구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JBS 같은 육류 기업이 '슈퍼 저탄소 소'를 개발했다며 그린워싱을 하는 모습이나, 바나나 산업이 기후 변화를 핑계로 정부 지원을 받으려 하는 모습은 기후 위기조차 이윤 창출의 기회로 삼는 자본의 민낯을 보여준다. 우리는 재생 에너지나 친환경 제품이라는 말에 쉽게 현혹되지만, 그 뒤에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처칠의 북극곰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주변의 변화들을 떠올렸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는 이야기, 사과 산지가 점점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뉴스에서 여러 번 접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그것을 단지 '불편한 소식' 정도로만 여겼지, 생태계 붕괴의 징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 한강에 동양하루살이가 대량 출현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불편함만 호소했지, 그것이 수질 개선의 신호이자 동시에 빛 공해로 인한 생태계 교란의 증거라는 사실은 모른다. 저자가 지적하듯,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우리는 모든 변화를 인간의 편의와 불편함이라는 잣대로만 판단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인간이 느끼는 불편함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가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기후 변화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기후 변화를 과학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태양광 패널을 더 많이 설치하고, 전기차를 타고, 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믿었다. 하지만 저자는 보여준다. 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해 순록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풍력 발전 단지 때문에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기후 정의인가? 그레타 툰베리조차 풍력 발전소 철거를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후 위기 해결은 단순히 화석 연료를 재생 에너지로 바꾸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되고 있는지, 약자와 비인간 동물들의 권리는 보장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흔히 빠르고 극적인 해결책을 원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가난한 나라의 에너지 생존권을 존중하고, 생태계 복원을 우선하며, 모든 생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은 느릴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유일한 길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길을 잃었을까? 북극곰이 마지막으로 남긴 경고는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위기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서사를 제시한다. 북극곰, 명태, 동양하루살이 같은 비인간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투발루와 방글라데시 같은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자본과 권력의 그린워싱을 꿰뚫어 보는 능력. 이것이 바로 기후 문해력이다. 나는 이제 북극곰을 단지 불쌍한 동물로만 보지 않을 것이다. 북극곰은 우리보다 먼저 기후 붕괴를 경험하고 있는 동료 지구인이다. 그들의 고통은 곧 우리의 미래다. 북극의 바다얼음이 녹는 속도만큼, 동해의 수온이 오르는 속도만큼, 우리의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보여준 것처럼, 우리에게는 여전히 선택지가 있다. 첨단 기술과 자본에만 의존하지 않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과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 소외된 이웃과 생명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연대하는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