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왜 실패하는가 - 글로벌 기업들의 25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살펴본 메타 착각
박종성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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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곤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는 기술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90억 달러를 투입한 GM의 로봇 공장, 1,700억 원을 쏟아부은 BBC의 디지털 프로젝트, 16시간 만에 인종차별주의자로 전락한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챗봇 테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기술 그 자체에 대한 맹목적 신뢰였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도 전에 화려한 기술적 해법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이 마법처럼 모든 난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착각했다. 1900년대 초 전기 혁명은 이러한 착각의 원형을 보여준다. 당시 공장주들은 전기를 단순히 더 깨끗하고 효율적인 증기기관 정도로 인식했다. 그들은 거대한 증기기관을 전기 모터로 교체하면 생산성이 자동으로 향상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도록 기대했던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전기의 진정한 잠재력은 중앙집중식 동력이 아닌 분산 가능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각 기계마다 소형 모터를 설치하여 독립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근본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낡은 시스템에 새로운 기술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이는 오늘날 AI 도입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많은 기업이 AI를 단순히 기존 업무를 자동화하는 도구로만 취급한다. 업무 프로세스 전체를 재설계하지 않은 채 AI 시스템만 도입하여, 결국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의 겉모습만 빌려왔을 뿐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신 실패의 두 번째 원인은 조직의 강력한 관성이다. 수십 년간 익숙하게 유지해온 방식을 바꾸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전기 시대 공장들이 중앙집중식 동력 전달 구조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처럼, 현대 조직도 기존 업무 방식에 깊이 적응되어 있다. 기계 배치, 작업 흐름, 관리 방식, 심지어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까지 모두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경로 의존성이라 부른다. 한번 특정 경로에 들어서면, 더 나은 대안이 나타나도 쉽게 전환하지 못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미 투입된 막대한 자본, 익숙해진 작업 패턴, 기존 시스템에 적응한 인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공장 천장을 가로지르는 벨트와 회전축의 소음이 오히려 산업 발전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비효율적인 관행조차 익숙함 때문에 정당화되곤 한다. 팬데믹 시기 원격 수업의 실패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 당국은 물리적 교실을 온라인에 그대로 복제하려 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시간표, 일방적 강의 방식을 디지털 환경에 억지로 이식했다. 매체가 바뀌면 전달 방식도 달라져야 함에도, 기존 교육 방식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줌 피로라 불리는 인지적 과부하, 학습 격차의 심화, 교사들의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현대 혁신 프로젝트의 또 다른 착각은 충분한 데이터와 정교한 알고리즘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데이터는 결코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현실을 비추는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다. 부동산 알고리즘은 집의 면적은 계산할 수 있어도, 오후 햇살의 따스함이나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는 담아내지 못한다. AI 챗봇은 인터넷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진실보다 거짓이 빠르게 확산하는 온라인 환경의 독성까지 함께 흡수한다. 의료 기록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고통에 대한 입체적 이야기를 보험사에 청구 가능한 몇 개의 코드로 환원해버린다. 의사의 전문적 판단과 환자와의 교감은 시스템이 요구하는 정형화된 데이터 입력에 자리를 내준다. 진료실은 더 이상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 입력 작업장으로 전락한다. 가장 올바른 의사결정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는 종종 데이터화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시스템은 이 암흑물질을 보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세계의 속도가 물리적 세계의 실행 역량을 항상 앞지른다는 점이다. 클릭 한 번으로 집을 매입하는 속도를 실제로 그 집을 수리하고 판매하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할 때, 디지털 전략은 악몽으로 변한다. 첨단 자동화 창고의 로봇들은 ERP 시스템이 쏟아내는 오류 데이터 앞에서 멈춰선다. 비트의 세계와 원자의 세계 사이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기술만 앞서가려 한 결과다.


자동화 시대의 가장 위험한 착각은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가 인간이라는 믿음이다. 인간의 판단은 편견에 오염되고, 손은 실수를 저지르며, 집중력은 쉽게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진보란 불완전한 인간을 프로세스에서 제거하는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 오만이다. GM의 90억 달러 로봇 공장은 이 착각의 극단을 보여준다. 분당 60대 생산이 목표였지만 첫 주에 고작 60대를 만들었고, 그나마 절반이 불합격품이었다. 로봇 팔은 엉뚱한 곳을 용접하고, 도장 시스템은 자동차 대신 다른 로봇에 페인트를 뿌렸다. 인간의 판단력과 직관을 제거한 결과였다. 시스템 설계자들은 인간의 경험과 적응력을 측정 불가능한 잡음으로 치부하고 제거했다. 하지만 그것은 잡음이 아니었다. 경직된 시스템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주는 최후의 안전장치였다. 보잉의 MCAS 시스템 역시 같은 오류를 범했다. 조종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자동화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혹독한 인지적 과부하를 안겨주었다. 조종사들은 서로 모순되는 경고를 동시에 들으며 사투를 벌여야 했다. 자동화는 상황 이해와 합리적 판단에 필요한 현실 감각 자체를 파괴하는 왜곡장을 만들었다. 오카도 자동화 창고의 화재 사례는 더 극적이다. 완벽한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요란한 경보음 속에서도 신고를 한 시간이나 지연시켰다. 자동화 편향이 인간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킨 것이다. 인간을 배제한 시스템은 세 가지 유령을 소환한다. 첫째는 자동화 편향으로, 기계의 답을 맹신하며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포기하게 만든다. 둘째는 책임의 공백으로, 시스템이 치명적 오류를 범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기이한 상황을 만든다. 셋째는 취약성의 증폭으로, 과거 한 사람의 실수로 끝났을 문제가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는 재앙으로 돌변한다. 효율을 위해 제거했던 인간이라는 완충지대가 실은 시스템 붕괴를 막는 마지막 보루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많은 혁신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근본 원인은 리더십 철학의 오류에 있다. 복잡하고 살아 숨 쉬는 인간 시스템을 단순한 하향식 명령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팬데믹 시기 원격 수업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 16억 아이들에게 온라인으로 학습하라는 일괄 지시가 내려졌다. 파일럿 테스트도, 지역적 특성 고려도, 현장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소통도 없었다. 리더가 펼친 지도는 평탄했지만, 교실이라는 현실의 지형은 울퉁불퉁했다. 그 지형에는 낯선 것을 밀어내는 인간의 본능, 교사의 정신적 한계, 학생마다 다른 출발선, 통제할 수 없는 학생들의 저항이 뒤섞여 있었다. 줌 폭격이라는 현상이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대다수 공격이 외부 해커가 아닌 내부자 소행이었다. 학생들이 의도적으로 회의 링크를 유출하며 강요된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실패를 알리는 경고였다. 인지적으로 피곤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깊은 불만이 폭력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런던 응급의료 시스템 붕괴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새 배차 시스템 도입 후 36시간 동안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긴급 호출이 시스템에서 증발하거나 중복 접수되었고, 한 뇌졸중 환자는 11시간을 기다리다 스스로 병원을 찾아갔다. 리더들은 기술이 정치 문제까지 해결해줄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성패는 코드 품질이 아니라, 리더십이 조직 내 정치적 지뢰밭을 어떻게 헤쳐가느냐에 달려 있었다. 진정한 혁신은 리더의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현장의 고통스러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다. 원격 수업에서 성공한 모델은 혼합형 학습과 비동기 학습이었다. 이는 위에서 강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자들이 새로운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학습 행위 자체를 근본부터 재설계한 결과였다. 교사의 역할이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촉진자로, 학생의 역할이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탐구자로 전환되었다.

혁신의 또 다른 함정은 기술의 우수성에 도취되어 그것이 놓일 사회적 맥락을 간과하는 것이다. 세그웨이가 대표적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발명품이었지만 도시 생태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보행자에게는 위협적이고 차량 흐름에는 방해가 되었다. 인도와 차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되었다. 제품은 진공 상태가 아닌 복잡한 현실의 제약 속에 놓인다. 기능적 우수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 인프라 및 제도와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구글 글라스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손에 든 멋진 망치에 취해 정작 박아야 할 못이 무엇인지, 그 못이 박힐 벽이 어떤 재질인지 살피지 않았다. 인간 상호작용의 문법과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본질을 간과한 채 기술적 우아함에만 매몰되었다. 착용자가 상대를 보는지 화면을 보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가장 원초적 신뢰의 기반인 눈 맞춤을 불가능하게 했다. 결과는 사회적 거부였다. 이는 문제를 정의하기도 전에 해답부터 만드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혁신의 순수한 형태는 고요한 실험실에서 탄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절박한 필요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기술 가능성 탐사에서 나온 유레카라면, 시장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기술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수요를 창조할 것이라는 기술적 메시아주의는 위험한 환상이다.


결국 이 모든 실패의 주범은 기술이 아니다. 사람과 기술이 얽힌 문제를 단순한 기술 문제로 치부한 것이 원인이다. 우리는 잘못된 프로세스, 뒤틀린 보상 체계, 해묵은 정치적 갈등은 그대로 둔 채 증상만 기술로 덮으려 했다. 기술 만능주의의 전형적 함정이다. 데이터 기반 시스템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것이라는 믿음도 착각이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창조자의 편견과 가치, 목표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100년 전 전기 혁명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진짜 의미 있는 변화는 기술 도입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과거 방식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전체 작업 흐름을 새롭게 창조하는 순간 시작된다. 범용 기술의 완전한 잠재력은 그 기술 하나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보조적 기술, 혁신적 업무 프로세스, 새로운 사업 모델, 성공적 현장 적용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해답은 더 거대한 데이터나 복잡한 시스템에 있지 않다. 기술이 작동하는 현실, 즉 복잡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인 인간 사회의 맥락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다. 현실의 지도를 현실보다 더 신뢰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인간 전문가를 돕는다는 시스템이 실제로는 그들을 부속품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직의 정치적 문화적 DNA를 무시한 완벽한 솔루션의 진짜 비용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 모든 교훈이 가리키는 가치는 겸손함이다. 최고 리더는 모든 답을 아는 지휘관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안내자다. 기술은 배움을 위한 도구일 뿐 배움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결국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등불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진실을 다음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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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망진창 행성 조사반, 북극곰의 파업을 막아라 - 기후 붕괴 현장에서 마주친 인간과 비인간동물들
남종영 지음, 불키드 그림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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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이와 같이, 이 책을 읽으면서 처칠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북극곰이 약국을 드나든다는 기발한 상상에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북극곰이 다이어트약을 먹는다는 설정 뒤에는 실제로 굶주리며 쓰레기통을 뒤지는 북극곰들의 처참한 현실이 숨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픽션이라는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 기후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지 북극곰이 떠다니는 빙하 위에 고립된 이미지만을 소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책은 기후 변화라는 무거운 주제를 사변적 우화라는 형식으로 풀어냈다. 만약 이 내용이 그저 딱딱한 과학 보고서였다면, 나는 몇 페이지 읽다가 책을 덮었을 것이다. 하지만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홈스와 왓슨이 세계 곳곳을 누비며 북극곰, 명태, 동양하루살이 같은 존재들로부터 제보를 받는다는 설정은 기묘하게도 현실감을 더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북극곰이 마지막에 남긴 말이다. "조심하라, 당신들은 길을 잃었다. 우리가 사라지는 순간 당신들에게도 어떤 재앙이 닥칠지 몰라." 이 한 문장은 기후 변화가 단지 북극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임을 각인시킨다. 북극곰은 단순히 불쌍한 피해자가 아니라, 인간보다 먼저 재앙을 감지한 경보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구체적인 숫자들이었다. 허드슨만의 얼음 없는 날이 1985년 105일에서 2018년 145일로 늘었다는 것, 북극곰의 에너지저장량이 56퍼센트나 줄었다는 것, 바다얼음이 늦게 얼면서 북극곰이 사냥할 수 있는 날이 매년 하루씩 감소한다는 것. 이런 숫자들은 추상적인 '지구온난화'를 생생한 현실로 만들었다. 그러나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189킬로그램의 홀쭉이 북극골이 새끼를 낳았다는 이야기, 687킬로미터를 헤엄쳐야 했던 북극곰 '20741'의 이야기는 숫자 너머에 있는 생명의 절박함을 전한다. 특히 232시간을 헤엄친 끝에 새끼를 잃은 북극곰의 이야기는 기후 변화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명의 비극임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흔히 과학적 데이터에만 주목하지만, 그 데이터 안에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 사라진 수많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책이 던지는 또 다른 중요한 질문은 기후 변화의 책임과 피해가 과연 공평한가 하는 것이다. 투발루 이야기는 그 불평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공장 하나 없는 작은 섬나라가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소멸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기후 변화가 얼마나 불공정한 재난인지 드러낸다. 온실가스를 배출한 것은 선진국들인데, 그 대가를 치르는 것은 가난한 나라들이다. 더 씁쓸한 것은 이런 재난마저 자본의 마케팅 도구로 활용된다는 점이다. JBS 같은 육류 기업이 '슈퍼 저탄소 소'를 개발했다며 그린워싱을 하는 모습이나, 바나나 산업이 기후 변화를 핑계로 정부 지원을 받으려 하는 모습은 기후 위기조차 이윤 창출의 기회로 삼는 자본의 민낯을 보여준다. 우리는 재생 에너지나 친환경 제품이라는 말에 쉽게 현혹되지만, 그 뒤에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피해를 보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처칠의 북극곰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우리 주변의 변화들을 떠올렸다. 동해에서 명태가 사라졌다는 이야기, 사과 산지가 점점 북쪽으로 이동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뉴스에서 여러 번 접했던 내용이다. 하지만 그것을 단지 '불편한 소식' 정도로만 여겼지, 생태계 붕괴의 징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서울 한강에 동양하루살이가 대량 출현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불편함만 호소했지, 그것이 수질 개선의 신호이자 동시에 빛 공해로 인한 생태계 교란의 증거라는 사실은 모른다. 저자가 지적하듯,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다. 우리는 모든 변화를 인간의 편의와 불편함이라는 잣대로만 판단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인간이 느끼는 불편함이 아니라, 생태계 전체가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책을 읽고 나서 나는 기후 변화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기후 변화를 과학 기술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태양광 패널을 더 많이 설치하고, 전기차를 타고, 탄소 포집 기술을 개발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믿었다. 하지만 저자는 보여준다. 재생 에너지 확대를 위해 순록의 서식지가 파괴되고, 풍력 발전 단지 때문에 원주민들이 삶의 터전을 잃는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기후 정의인가? 그레타 툰베리조차 풍력 발전소 철거를 주장했다는 이야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후 위기 해결은 단순히 화석 연료를 재생 에너지로 바꾸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되고 있는지, 약자와 비인간 동물들의 권리는 보장되고 있는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라는 표현이 마음에 와닿는다. 우리는 흔히 빠르고 극적인 해결책을 원한다. 하지만 진정한 변화는 가난한 나라의 에너지 생존권을 존중하고, 생태계 복원을 우선하며, 모든 생명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데서 시작된다. 그것은 느릴 수 있지만, 지속 가능한 유일한 길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정말 길을 잃었을까? 북극곰이 마지막으로 남긴 경고는 여전히 귓가에 맴돈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위기를 경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에게 새로운 서사를 제시한다. 북극곰, 명태, 동양하루살이 같은 비인간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고, 투발루와 방글라데시 같은 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자본과 권력의 그린워싱을 꿰뚫어 보는 능력. 이것이 바로 기후 문해력이다. 나는 이제 북극곰을 단지 불쌍한 동물로만 보지 않을 것이다. 북극곰은 우리보다 먼저 기후 붕괴를 경험하고 있는 동료 지구인이다. 그들의 고통은 곧 우리의 미래다. 북극의 바다얼음이 녹는 속도만큼, 동해의 수온이 오르는 속도만큼, 우리의 시간도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보여준 것처럼, 우리에게는 여전히 선택지가 있다. 첨단 기술과 자본에만 의존하지 않고, 서로를 돌보는 마음과 공정한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 소외된 이웃과 생명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며 연대하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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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숨은 경제학 - 서양 고전 24편으로 읽는 경제 이야기
박정희 지음 / 더로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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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을 작성한 리뷰입니다.


코스피가 5000을 찍던 그날, 나는 인터넷을 떠돌다가 한 문장과 마주쳤다. "나는 인버스만 탄다!" 그 순간 나는 그냥 지나쳤다. 무심하게, 무관심하게. 저녁 식탁에 앉아서야 문득 그 문장이 떠올라 남편에게 물었다. "인 버스가 무슨 버스야? 왜 그것만 탄다는 거야?" 남편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버스(Bus)가 아니라 인버스(Inverse), 즉 역방향이라는 뜻의 금융 용어였다는 것을.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이미 남편은 다시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인버스, 인버스...' 하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경제라는 것이 내 삶과 이렇게 동떨어져 있어도 괜찮은 걸까. 주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돈이 많지 않은 내가 굳이 경제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연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한 권의 책과 만났다. <문학 속 숨은 경제학>. 표지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이 책이라면, 문학을 좋아하는 나도 경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인버스 충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나에게, 이 책은 구원처럼 다가왔다.

책을 받은 것은 어제였다. 생각보다 얇았지만, 손에 쥐는 순간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다. 왠지 이 책은 술술 읽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뜯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저녁부터 시작한 독서는 밤을 넘어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나는 보통 책을 세 번 읽는다. 첫 번째는 속독으로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두 번째는 정독으로 세부 내용을 음미하며, 세 번째는 발췌독으로 중요한 부분을 다시 새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첫 번째 독서만으로도 충분히 감동받았다. 이 책은 정말로 청소년을 많이 가르쳐본 교사의 책답게,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내는 재주가 탁월했다. 저자는 20년간 경제, 정치, 법, 사회문화를 가르쳐왔다고 한다. 그 긴 시간 동안 쌓인 교육 현장의 경험이 이 책 곳곳에 녹아 있었다. 한 가지 개념을 설명할 때도, 단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작품을 통해 반복해서,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예시로 다시 설명해준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책을 읽어가는 동안 서서히 깨닫게 되는 구조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읽게 만든다는 점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이 작품들을 나는 이미 읽었다. 어떤 것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어떤 것은 대학 시절 수업에서, 어떤 것은 그냥 개인적인 독서로 만났다. 하지만 그때 나는 오로지 문학적 관점에서만 작품을 읽었다. 서사 구조, 상징, 주제 의식, 문체의 아름다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한 독서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게 묻는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했나요? 그 이야기 속에 경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왕은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을 도덕적, 철학적 차원에서만 이해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질문을 경제학의 세 가지 근본 질문과 연결한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생산할 것인가.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문학과 경제학이 사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선택하고,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희소한 자원을 앞에 두고 인간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 선택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내는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룬 장도 인상 깊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윌리 로먼이라는 한 남자의 비극에만 집중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에 사로잡혀 결국 파멸에 이르는 한 인간의 이야기.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을 GDP와 경제 성장 중심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박의 관점에서 읽어낸다. 윌리 로먼은 단지 실패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희생자다. 성장과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늙고 쓸모없어진 인간은 버려진다. GDP라는 숫자는 상승할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윌리 로먼 같은 사람들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있다. 이 해석을 읽는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문학 작품이 이렇게 경제 비평이 될 수 있다니.

이제 나는 다짐한다. AI를 켜놓고, 용어를 정리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겠다고. 두 번째 독서에서는 더 꼼꼼하게, 세 번째 독서에서는 내 삶과 연결하며 읽어보겠다고. 인버스도 몰랐던 경제 포기 여인이, 이제는 경제 좀 아는 여인으로 거듭나고 싶다. 이 책이 다루는 24편의 서양 고전 중에는 내가 이미 읽은 작품도 많고, 아직 읽지 않은 작품도 있다. 읽었던 작품은 이제 새로운 눈으로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경제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분명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읽지 않은 작품은,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찾아 읽어볼 것이다. 책 곳곳에 포함된 이미지와 시각 자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텍스트만 읽는 것보다 훨씬 이해가 빠르고 몰입도 잘 되었다. 책을 통해 나처럼, 인버스도 몰랐던 사람이 경제를 향해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그 순간의 설렘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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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내가 되어가는 시간
조이연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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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빨리 읽혀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많이 읽혀지기보다 깊이 읽혀지기를 바란다. 한 번 읽히고 잊혀지기보다 계속 곁에 머물기를 희망한다. 펜을 들고, 책상에 앉아, 한 문장을 천천히 옮겨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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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살 백만장자 투자일기 - 20대에 5년 수익률 2,000%를 가능케 한 단 하나의 시스템
홍종호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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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읽으며 가장 먼저 와닿은 메시지는 '지금 당장 시작하라'는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앞두고 끝없는 준비의 늪에 빠진다.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완벽한 타이밍을 기다린다. 하지만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듯, 이는 두려움을 포장한 변명에 불과할 때가 많다. 인플레이션이라는 보이지 않는 세금 앞에서 현금은 매일 가치를 잃어간다. 통장 속 돈은 숫자상으로는 그대로지만, 실질적으로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이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우리는 '안전'이라는 착각 속에 머물곤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진짜 위험은 투자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작은 금액이라도 먼저 투자하면 자연스럽게 공부가 시작된다는 통찰이다. 10만 원, 100만 원이라도 내 돈이 들어간 순간부터 뇌가 깨어난다. 그 기업의 실적을 찾아보고, 뉴스를 검색하고, 산업 트렌드를 파악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한 정보 습득이 아니라, 삶 전체를 리빌딩하는 시작점이 된다.

두 번째 원칙인 '부자의 시야로 시장을 대하라'는 단순히 상상의 게임이 아니다. 이것은 투자의 시간 스케일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훈련이다. 백만 원을 가진 투자자와 백억 원을 가진 투자자의 차이는 무엇일까? 단순히 자금의 규모가 아니다. 그들이 바라보는 시간의 지평이 다르다. 소액 투자자는 당장 내일의 등락에 집중하지만, 거액 투자자는 10년 후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를 고민한다. 저자가 제시한 '내가 100억이 있다면, 이 종목을 사겠는가?'라는 질문은 강력한 필터다. 이 질문 앞에서 많은 충동적 투자가 걸러진다. 단기 테마주, 작전주, 루머에 기반한 투자들이 자연스럽게 배제된다. 대신 기업의 본질, 산업의 미래, 구조적 변화를 보게 된다. 블랙록이 비트코인 현물 ETF를 신청했다는 뉴스를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라 금융 구조의 변화 신호로 읽어내는 것. 이것이 바로 고래들의 움직임을 읽는 방법이다. 개미 투자자가 살아남는 길은 그들의 방향을 읽고 그 흐름에 올라타는 것이다.


세 번째 원칙은 투자에서 가장 간과되기 쉬운 요소를 다룬다. 바로 낙관주의다. 비관은 언제나 더 똑똑해 보인다. "리스크가 크다", "곧 꺼질 것이다"라고 말하면 현명해 보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시장에서 돈을 버는 건 낙관적인 사람들이다. 저자의 오미크론 사태 경험담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전 자산을 나스닥 ETF에 넣은 다음 날 팬데믹이 터지고 계좌가 30~40% 급락했을 때,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이 판단이 틀렸는가? 아니면 시기가 잘못된 것인가?" 기업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단지 시장이 흔들릴 뿐이었다. 그 확신으로 3년간 꾸준히 매수한 결과, 200%의 수익률을 얻었다. 낙관은 근거 없는 희망이 아니라 우상향에 대한 신념이다. 단기적으로 시장은 요동치지만, 장기적으로 세상은 발전하고 기업은 성장한다. 이 믿음 없이는 장기투자가 불가능하다. 공포에 매도하고, 상승장을 놓치고, 다시 고점에서 돌아오는 악순환을 반복하게 된다.

네 번째 원칙은 투자에서 가장 개인적이고도 중요한 영역을 다룬다. 당신은 멋진 종목을 사야 한다. 여기서 '멋짐'은 주관적이고 감각적이며 논리적이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유튜버가 추천해서, 차트가 바닥 같아서 사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직접 그 기업의 제품을 써보고, 비즈니스 모델을 이해하고, 철학에 공감했을 때 비로소 '멋진 종목'이 된다. 저자가 스페이스X의 로켓이 폭발하는 장면을 보며 오히려 가슴이 뛰었다는 고백이 인상적이다. 화성에 인류를 보내겠다는 광기 어린 도전, 실패를 반복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과정, 그 안에서 미래를 봤다. 이것은 단순한 주주가 아니라 꿈에 참여하고 있다는 감정이었다. 같은 종목을 사도 태생부터 다르다. "곧 오른대"라는 말에 끌려 들어간 투자와, 기업의 철학과 기술, 방향성을 이해하고 선택한 투자는 출발점이 다르다. 전자는 첫 하락에 무너지지만, 후자는 시장의 파도 속에서도 손을 놓지 않는다.


다섯 번째 원칙은 실행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원칙을 안다고 지켜지지 않는다. 원칙은 감정 앞에서 무너진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습관이다. 저자의 세 가지 철칙이 명확하다. "급등주는 절대 바로 사지 않는다", "투자를 위해 대출받지 않는다", "레버리지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이 원칙들이 대박을 놓치게 할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파산하지 않는 것이다. 한 번의 예외를 허용하면 그게 다음의 기준이 된다. "그땐 잘됐잖아", "이번에도 그냥 한 번만". 이런 자기 합리화는 감정적 매매의 반복을 낳는다. 원칙을 어겨 얻은 수익은 내 실력이 아니라 운일 가능성이 크고, 운으로 만든 결과는 재현되지 않는다. 투자는 시장을 이기는 게임이 아니라 자신을 이기는 게임이다. 매달 같은 날, 같은 액수로 매수하는 것. 기회가 와도 내 원칙에 맞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 이런 사소한 반복이 오래 살아남는 힘이 된다.

여섯 번째 원칙은 감정 관리의 핵심을 다룬다. 투자는 무섭다. 피땀 흘려 번 돈이 한 번의 클릭으로 사라질 수 있다. 두려움은 정상이다. 문제는 이 본능이 현대 투자에서는 독이 된다는 것이다. 미래 시나리오를 그려놓는 것이 해법이다. "나는 지금 비트코인에 투자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변동성이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제도권 편입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의 조정은 다음 상승 사이클의 진입점이다." 이런 구체적인 시나리오가 있으면 단기 변동에 휘둘리지 않는다.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무섭지 않은 사람은 없다. 차이는 두려움의 유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같은 하락장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도망치고, 어떤 사람은 기회를 본다. 그 기준은 시나리오다. 준비된 투자자는 흔들릴 수 있어도 무너지지 않는다. 당신이 세운 시나리오가 분명하다면, 감정은 통제 가능해지고, 투자는 더 이상 운의 게임이 아닌 설계된 여정이 된다.


일곱 번째 원칙은 의외의 지점을 건드린다. 투자를 주변에 알리라는 것. 단, 금액이나 수익 자랑이 아니라 왜 이것을 공부했고, 무엇을 보고 매수했는지를 말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첫째, 주변인 지표를 확인할 수 있다. 당신이 언급한 종목에 사람들이 차가운 반응을 보인다면? 그것은 시장이 아직 주목하지 않았다는 신호다. 당신이 대중보다 앞서 있다는 증거다. 모든 혁신은 처음엔 이해받지 못한다. 둘째, 투자 논리를 점검할 기회를 얻는다. 시간이 지나 사람들이 묻기 시작할 때, 명확하게 답하려면 구체적인 논리와 근거가 필요하다. 설명하는 과정에서 투자 판단의 구멍을 발견하기도 하고, 더 단단한 신념을 갖게 되기도 한다. 다만 조심할 점이 있다. 절대 투자 금액이나 수익 규모를 말하지 마라. 초점은 '얼마를 벌었는가'가 아니라 '왜 이 기업을 선택했는가'에 있어야 한다. 수익을 자랑하는 순간, 이야기는 왜곡되고 관계에 거리감이 생긴다.

여덟 번째 원칙은 뉴스와 악재를 대하는 태도를 다룬다. 저자의 WWE 비유가 탁월하다. 어릴 적 진짜인 줄 알았던 프로레슬링이 사실은 각본이 있는 쇼였던 것처럼, 많은 악재들도 주가 하락에 이유를 부여하는 '사후적 해석'일 뿐이다. 기업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주가가 흔들린다. 언론은 악재를 끼워 맞춰 설명하고, 시장은 그것을 믿고 더욱 요동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주가 하락의 이유는 그저 "떨어질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본질을 꿰뚫는 눈이다. 기업의 펀더멘털이 여전히 견고한가? 미래 성장 스토리가 살아있는가? 그렇다면 시장이 일시적 공포에 빠져 있을 때야말로 매수 타이밍이다.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건 그것을 이해하고, 구조화하고,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공포를 억누르려 애쓰기보다, 그것이 어디서 왔는지 바라보고 해석하며 하나의 시그널로 활용할 때 우리는 진짜 투자자가 된다.

저자는 십억 원 이상의 수익을 거두며 부를 이루는 과정을 네 개의 단계로 정리했다. 마인드 재정립, 기본기 습득, 투자습관 체화, 기술 활용. 이것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직접 겪어낸 실전 메커니즘의 뼈대다. 각 단계는 독립된 개념이 아니다. 한 단계가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다음 단계는 전 단계를 강화시킨다. 이 흐름 안에 머무는 한, 투자는 흐트러지지 않는다. 부는 누구든 배울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재수가 좋아야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하나의 체계로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다. 기초를 익히고, 감정을 훈련하고, 실행을 반복하면 반드시 성장한다.


생각하는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다. 첫째, 지금 당장 행동하라.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작게라도 시작하면 뇌가 깨어나고, 깨어난 뇌는 삶을 바꾼다. 둘째, 구조를 갖추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원칙, 반복 가능한 습관, 명확한 시나리오. 이것들이 시장의 파도 속에서도 살아남게 해주는 안전벨트다. 투자는 결국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시장을 이기는 게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 탐욕, 조급함을 이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은 명확하다. 준비된 사고방식, 단단한 기본기, 흔들리지 않는 습관. 지금까지의 삶이 어땠든 상관없다. 지금부터의 선택이 미래를 바꾼다. 당신이 이 시스템을 따라오기만 한다면, 반드시 도달할 것이다. 그것은 확신이자 약속이다. 투자는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고, 자신을 단련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종합적인 훈련이다. 그 여정 위에서 우리는 더 나은 투자자일 뿐 아니라, 더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한다. 부는 숫자가 아니라 사고방식이다. 작을 때부터 크게 생각한 사람만이, 나중에도 크게 살아간다. 당신은 이미 시작했다. 그것만으로도 절반은 온 것이다. 나머지는 이 원칙들과 함께 걸어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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