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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괴테의 문장들 - 200년이 지나도 심장을 뛰게 하는
민유하 지음 / 리프레시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난여름, 나는 번아웃에 가까운 상태였다.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할 일 목록을 펼쳤고, 그것을 하나씩 지우는 것으로 하루를 채웠다.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빠르게 성과를 내고, 빠르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많은 것을 해 냈는데, 막상 한 해를 돌아보면 남는 게 없었다.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처럼, 속도는 빨랐지만 깊이는 없었다. 괴테는 그런 나에게 별을 보라고 말한다. 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 처음엔 모순처럼 느껴졌다. 서두르지 않으면서 어떻게 쉬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껏 했던 건 '서두름'이 아니라 '허둥댐'이었다. 진짜 속도가 아니라, 불안이 만든 조급함이었다. 별은 밤하늘에서 추월 경쟁을 하지 않는다. 옆의 별을 의식하지도, 뒤처질까 봐 전력질 주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기 궤도를 따라 천천히, 그러나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돈다. 괴테가 83년 동안 방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비결은 천재성이 아니라 바로 이 '별의 리듬'이었을 것이다. 급하게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후로 일하는 방식을 조금씩 바꿨다. 하루에 열 가지를 해치우려 하기보다, 세 가지를 제대로 하기로 했다. 마감에 쫓겨 급하게 끝내기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손을 대기로 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피로감이 줄었다. 오히려 집중력은 높아졌다. 무엇보다, 일이 '쌓이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이 바위를 뚫듯, 작은 반복이 단단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 이것은 속도에 관한 문장이 아니다. 태도에 관한 문장이다. 불안에 떠밀 려 달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중심을 지키며 나아가는 것. 그것이 괴가 말한 '별처럼 사는 법'이다. 이렇듯 괴테의 문장들을 나에게 많은 의미를 선사한다.
대학원 시절, 나는 논문을 읽고 또 읽었다. 이론서를 밑줄 치고, 강의를 듣고, 노트를 정리했다. " 충분히 알게 되면, 그때 시작해야지 "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충분히라는 기준은 계속 뒤로 밀려났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더 알아야 할 것도 많아 졌다. 그렇게 1년이 지나도록 나는 단 한 줄도 쓰지 못했다. 괴테의 문장이 내 머리를 때린 건 그때였다. " 아는 것만으로 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 나는 지식을 쌓는 일에 중독되어 있었다. 마치 지식을 모으는 것 자체가 성취인 것처 럼 착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적용되지 않은 지식은 그저 뇌 속에 쌓인 먼지일 뿐이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들이 읽히지 않으면 인테리어에 불과하였다. 괴테의 문장은 200년 전에 쓰였지만, 지금의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유튜브로 강의를 듣고, 인스타그램에서 자기계발 문구를 저장하고, 책을 사 모은다. 하지만 정작 '해보는' 사람은 드물다. 아는 것이 많아지면 힘이 생길 거라 믿지만, 역설적으로 아는 게 많아질수록 두려움도 커진다. "이 정도로 충분할까?", "실패하면 어떡하지?" 괴테가 나이키보다 200년 앞서 외쳤던 것은 결국 이것이다. "Just Do lt." 그냥 하라. 완벽하게 알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조건이 완벽해질 때까지 미루지 말고, 지금 당장 시작하라. 첫 문장이 형편없어도 괜찮다. 첫 시도가 실패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나는 결국 불완전한 상태로 첫 글을 썼다. 부끄러웠지만 발표했다. 피드백은 따가웠지만,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실행하지 않으면 피드백조차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실패는 행동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나는 가끔 완벽주의의 늪에 빠진다. 하지만 그때마다 괴테의 목소리가 들린다. "적용하라. 실행하라." 그 목소리는 나를 책상에서 일으켜 세우고, 생각의 미로에서 꺼내 어, 현실의 땅으로 데려온다. 변화는 머리가 아니라 손에서 시작된다.
괴테는 200년 전 사람이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SNS도 없었다. 그런데도 그의 문장들은 지금 이 순간 나의 고민을 정확히 꿰뚫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괴테의 말은 책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글을 쓰는 사람만이 아니었다. 한 나라의 재상으로서 행정을 책임졌고, 과학자로서 자연 을 탐구했으며, 예술가로서 색채를 연구했고, 연인으로서 사랑을 했으며, 인간으로서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그의 문장은 온몸으로 세상과 부딪히며 얻은 삶의 육성 '이다. 그래서 200년이 지나도 낡지 않는다. 우리 시대는 말이 너무 많다. 명언은 넘쳐나고, 조언은 쏟아진다. 하지만 그 중 대부분은 가볍다. 경험 없이 포장된 말, 삶 없이 가공된 문장들. 그런 말 들은 순간 위로가 될 수는 있어도,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지 못한다. 반면 괴테의 문장은 무겁다. 무게가 있다. 그 무게는 83년의 삶이 만든 밀도다. 그는 쉽게 말하지 않았다. 빠르게 답하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깊이, 오래 살았다. 그리고 그 과 정에서 얻은 통찰을 문장으로 남겼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문장 앞에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초역, 괴테의 문장들>은 그 무게를 지금의 언어로 번역해낸 책이다. 독일어 원문을 함께 실어, 괴테의 호흡을 직접 느낄 수 있게 했다는 점도 좋다. 외국어를 몰라도, 그 문장의 리듬과 에너지는 전해진다. 그리고 Editor's Note는 괴테의 문장을 박제된 명언이 아니라, 지금 당장 내 고민을 해결해 줄 살아있는 조언으로 만든다. 나는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지 않았다. 그릴 필요도 없다. 마음이 흔들리는 날, 아무 페이지나 펼쳤다. 그리고 그날 마주친 한 문장이, 내 어깨를 불잡았 다. "너 자신을 믿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게 된다." 내가 찾던 답이 밖이 아니라 안에 있다는 걸 일깨워줬다.
"서두름 없이, 그러나 쉼 없이 가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적용해야 한다." 그 말은 200년을 건너와, 지금 이 순간 나의 심장을 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