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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 - 내 삶을 가로막는 핵심 감정에서 벗어나 온전한 나로 사는 법
문요한 지음 / 서스테인 / 2025년 1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별일도 아닌데 가슴이 무너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누군가의 무심한 말 한마디가 하루 종일 마음을 짓누르거나, 혼자 있는 밤이면 설명할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오는 순간들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감정들을 '그냥 그런 날'이라고 치부하며 지나친다. 하지만 이번에 읽은 문요한님의 저서 <감정을 마주하면 길이 보인다>는 이러한 반복되는 감정의 무너짐 뒤에 더 깊은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특별한 종류의 감정이 자리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핵심 감정'이라 부른다. 이는 기분이 나쁜 상태를 넘어서, 우리의 정체성과 삶의 방식 자체를 결정짓는 힘을 가진 감정이다. 마치 화산 아래 잠든 마그마처럼, 평소에는 조용히 있다가 특정한 순간이 오면 격렬하게 분출하여 우리 삶을 흔들어놓는다. 흥미로운 점은 이 핵심 감정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건강한 감정 상태에서는 서운한 일이 있으면 서운함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그 감정이 흘러간다. 하지만 핵심 감정에 지배받는 사람들은 다르다. 전화벨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거나, 작은 실수 하나에 자신을 형편없는 인간이라 단정 짓는다. 현재의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굳어진 감정 패턴이 자동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핵심 감정의 주요 유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째는 근본적 불안이다. "언제든 나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속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둘째는 울분으로, 겉으로는 차분해 보이지만 내면에는 억눌린 분노가 끓고 있는 상태다. 셋째는 만성적 공허감이다. 냉장고를 가득 채우고, 쇼핑을 하고, SNS를 끊임없이 확인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는 마음의 구멍이 있다. 넷째는 무력감으로, 무엇을 해도 소용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 마지막으로 원초적 수치심은 존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가장 깊은 고통이다. 이러한 감정들은 과거의 특정 순간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하며 거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리가 맺는 관계의 패턴, 선택하는 길, 심지어 우리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까지 모두 이 핵심 감정의 영향 아래 있다.
그렇다면 이 핵심 감정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감정적 방치'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다. 신체적 학대나 폭력보다 훨씬 미묘하고 흔하지만, 그만큼 오래 지속되는 상처다. "울지 마", "그 정도로 힘들다고 하면 안 돼", "예민하게 굴지 마"와 같은 말들이 반복될 때,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법을 배운다. 부모가 의도적으로 상처를 주려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부모 자신도 감정을 억압하는 문화에서 자랐기에, 아이의 감정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뿐이다. 문제는 감정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자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알 수 없는 공허함과 불안을 안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느낌, 마치 내 삶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속에서 말이다.
변화의 첫걸음은 자신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감정의 정체를 정확히 아는 것이다. 심리학자 다이애나 포샤는 이 순간을 '찰칵 경험'이라 명명했다. 오랫동안 잠긴 방문에 딱 맞는 열쇠가 맞물리는 느낌이다. 상담 현장에서 사람들은 종종 이런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한다. "아, 이게 불안이었구나", "내가 느낀 건 공허감이었어", "나는 무기력한 게 아니라 수치심 때문에 그랬던 거야". 그 순간 뭔가 달라진다. 막막하기만 하던 마음의 문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한다. 자신을 힘들게 했던 것의 정체를 명확히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에너지가 흐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핵심 감정을 자신의 본질로 착각한다. "나는 원래 무기력한 사람이야", "나는 쓸모없어"라고 자신을 규정한다. 하지만 저자는 이것이 착각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자신을 형편없다고 생각하며 나온 사람은 없다. 이러한 부정적 정체성은 본질이 아니라 상처가 굳어진 것이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이런 감정을 품고 자란 사람들은 그 상처가 마치 자신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오히려 자기답게 여겨지기까지 한다. 핵심 감정이 정체성을 이루고 성격화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무기력하지 않았던 시간도, 의욕을 가지고 무언가를 시도했던 순간도 분명 있었다. 그 순간의 당신도 당신이다.
핵심 감정을 해소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첫 번째는 회복의 자원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자기연민과 자기돌봄 없이 상처를 마주하면 오히려 다시 상처받을 수 있다. 안전한 심리적 공간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두 번째는 몸의 감각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감정은 생각보다 먼저 몸으로 온다. 가슴의 답답함, 어깨의 긴장, 목의 뜨거움 등 몸은 언제나 감정의 첫 번째 증언자다. 세 번째는 억눌렀던 핵심 감정을 다시 경험하고 처리하는 것이다. 그 감정이 하고 싶었던 말을 들어준다. "감정은 감정으로 치유된다"는 저자의 말처럼, 회피하지 않고 온전히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반응 패턴을 구축한다. 핵심 감정이 올라올 때 예전과 다르게 반응하는 법을 연습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핵심 감정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새로운 삶을 창조하는 에너지로 전환된다.
나는 늘 생각으로 삶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우리 삶을 진짜로 결정짓는 것은 생각보다 더 빠르고 선명한 감정이다. 잘 느끼지 못하면 잘 살아갈 수 없다. 감정을 회피하면 미래를 잃는다.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고통스럽다. 때로는 숨이 멎을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그 고비를 넘어선 자리에 우리가 오래도록 찾던 삶의 방향이 기다린다. 빛은 밖에서 오지 않는다. 빛은 감정의 어둠을 통과하며 우리 안에서 켜진다. 이것이 문요한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마음속 가시를 뽑아낼 용기를 가질 때, 삶은 다시 흐르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