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의 지정학은 냉전 시대의 핵무기 경쟁과 닮아있다. 미국과 중국은 AI 패권을 둘러싸고 전방위적인 경쟁을 벌이고 있다. 소프트웨어 영역에서 오픈AI, 구글, 메타로 대표되는 미국의 압도적 우위는 명확하다. 그러나 하드웨어, 특히 피지컬 Al 분야에서 중국의 추격은 위협적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가사노동을 학습하는 동안, 중국의 휴머노이드 로봇들은 제조 현장에서 실전 배치를 앞두고 있다. 중국의 전략은 명확하다. 급속한 고령화와 노동력 감소를 AI와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연간 수만 대의 휴머노이드 로봇 생산 계획은 단순한 목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미국이 제조업을 포기한 사이, 중국은 제조업과 A를 결합한 새로운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이는 과거 IT 시대에 소프트웨어만 중시하다가 하드웨어 경쟁력을 잃었던 일본과 독일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전략적 선택이다. 이러한 거대한 흐름 속에서 한국의 위치는 애매하면서도 기회가 있다. AI 기술 수준 세계 6위라는 순위는 결코 낮지 않다. 하지만 상위권 국가들과의 격차는 자본과 인프라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2024년까지 한국이 확보한 GPU가 겨우 4천 대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반도체 강국이라는 자부심과는 달리, AI 연산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이 6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세 가지 강점 덕분이다. 첫째, 반도체 제조 능력, TSMC와 양강 구도를 형성하는 삼성의 존재는 AI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둘째, 제조업 인프라, 자동차, 전자, 조선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축적된 노하우는 피지컬 AI 시대에 빛을 발할 수 있다. 셋째, 인재 양성 시스템.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꾸준히 배출되는 우수한 엔지니어들은 한국의 가장 큰 자산이다. 하지만 이러 한 강점들이 자동으로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 시장을 선도하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처럼, 챗GPT의 오픈A조차 위기설에 직면한 것처럼, AI 시대의 승자는 현재가 아니라 미래의 혁신으로 결정된다. 한국이 3위권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 기업의 과감한 투자, 연구 인프라의 확충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