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의 사상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미덕은 원칙과 유연함의 조화다. 그는 일관된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상황에 따라 전략을 바꾸는 유연함을 역설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변증법이다. 중심은 흔들리지 않되, 방법은 유연하게. 목표는 명확하되, 경로는 상황에 맞게. 이것이 진정한 지혜다. 고집과 원칙을 혼동해서도 안 되고, 유연함과 무원칙을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현대의 애자일 경영이나 적응적 리더십도 같은 맥락이다.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 경직된 계획을 고집하면 실패한다. 그렇다고 방향 없이 표류해서도 안 된다. 비전은 선명하게 유지하되, 실행 방식은 끊임없이 조정하는 것. 이것이 21세기 리더가 갖춰야 할 자세다.
책을 덮으며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왜 2천 년 전의 글이 지금도 유효한가. 답은 명확하다. 제갈량이 다룬 것은 기술이 아니라 본질이기 때문이다. 도구와 환경은 바뀌어도 사람의 마음을 읽는 법, 신뢰를 쌓는 법, 위기를 헤쳐나가는 법,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법, 이런 본질적 역량은 변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복잡해진 세상일수록 더욱 중요해진다. 제갈량 심서는 리더를 위한 매뉴얼이지만, 동시에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모든 이에게 유효한 지침서다. 누구나 자기 삶의 리더이기 때문이다. 내면의 흔들림을 다스리고, 중심을 잡으며, 현명하게 판단하고,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는 것, 이것은 직급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역량이다. 제갈량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유산은 특정한 전략이나 기술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일지도 모른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가지되 상황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자신을 냉정하게 성찰하되 타인에게는 따뜻하며, 원칙을 지키되 고집스럽지 않은 태도다. 이것이 난세를 헤쳐나간 전략가가 우리에게 건네는 지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