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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의 뇌과학 - 늙지 않는 뇌를 만드는
문제일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6년 3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손등을 생각한다. 주름지고 거칠어진 그 손등 위에 맺혀 있던 햇살의 온도, 그리고 어머니가 끓이던 된장찌개 냄새. 지금도 그 냄새가 코끝에 스치면, 나는 단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그 주방으로 되돌아간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기억만큼은 조금도 바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왜 그럴까. 냄새는 어째서 이토록 완강하게 과거를 붙들고 있는 것일까? 뇌과학은 이 질문에 꽤 담담하게 대답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보는 뇌의 이성적인 영역을 한 바퀴 돌아 분석된다. 하지만 코로 맡는 냄새는 다르다. 후각 신경은 감정과 기억의 중추인 변연계로 직행한다. 논리적 판단을 거칠 틈도 없이, 냄새는 곧장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서랍을 열어버린다. 그래서 냄새에 의한 기억은 언제나 선명하고, 언제나 뜨겁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으로 잃어버린 시간 전체를 건져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냄새가 그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심장부를 바로 두드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감각은 뇌를 깨우는 일이고, 뇌를 깨운다는 것은 결국 살아 있다는 것의 가장 적극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뇌를 고정된 무언가로 상상한다. 나이가 들면 뇌도 굳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딱딱한 기계가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억이 흐려 지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뇌과학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뇌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다.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서로 연결된다'는 법칙은, 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자주 쓰이는 연결은 강화되고, 사용되지 않는 연결은 사라진다. 즉, 뇌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뇌가 늙지 않을 수 있는가. 저자의 답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감각하고, 느끼고, 연결되는 것. 그것이 전부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우리는 이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매 순간 세상과 접속한다. 눈이 아름다운 빛을 포착하고, 귀가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담고, 피부가 온기를 느끼는 그 순간마다, 뇌 속의 뉴런들은 일제히 깨어나 신호를 주고받는다. 감각은 뇌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처럼, 감각이 차단된다는 것은 곧 뇌를 굶기는 것이다. 굶주린 뇌는 빠르게 쇠퇴한다. 특히 눈 맞춤에 대한 연구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어른이 아기와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러줄 때 두 사람의 뇌파는 놀라운 수준으로 동기화된다고 한다. 두 개의 뇌가 하나처럼 진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감각의 교환만이 아니다. 두 존재가 서로를 향해 완전히 열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 뇌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분비하고, 신경 가소성을 유지하며, 노화의 속도를 늦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래된 친구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나누는 대화 한 시간이, 어떤 값비싼 뇌 건강 보 조제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왕따, 고독사 등 현대 사회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사회적 고립은 뇌를 파괴한다. 고립된 개체의 뇌는 뉴런 간의 연결이 끊어지고, 염증 수치가 높아지며,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의 위험이 급격히 상승한다. 독방 수감이 인간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인 이유는, 그것이 신체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뇌를 가두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결된 뇌는 강하다. 미국 듀크대학교의 브레인넷 실험은 세 마리의 원숭이 뇌를 연결했을 때, 개체 하나하나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협력을 통해 풀어냈음을 보여주었다. 뇌는 연결될수록 더 강해진다. 이것은 비단 원숭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도,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각자가 가진 능력의 총합을 훌쩍 뛰어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연결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 아침에 가족과 나누는 짧은 눈 맞춤,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 한 줄. 그 작고 소소한 연결들이 쌓여, 우리의 뇌를 매일 조금씩 더 건강하고 젊게 만들어간다.
뇌과학이 밝혀낸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다. 치매는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병이 아니라, 저장된 기억을 꺼내지 못하는 병일 수 있다는 것. MIT의 도네가와 교수 연구진은,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생쥐의 뇌에서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인출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치매 환자의 뇌는 닫힌 문이 아니라, 열쇠를 잃어버린 잠긴 문이라는 것이다.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잠시 닿지 못할 곳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향기 하나, 손길 하나,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그 잠긴 문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드라마 속 궁녀가 치매에 걸린 왕 앞에서 선향을 피워 달라 청했던 것처럼. 감각은 뇌를 자극하는 도구만이 아니다. 감각은 우리가 여전히 이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이고, 기억이라는 이름의 삶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읽으며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뇌는 평생 완성되어 간다고 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끼고 연결되며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늙지 않는 뇌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훈련이나 처방이 아니라 삶을 성실하게 감각하는 것, 그리고 그 감각 속에서 타인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자주 바깥의 공기를 맡고, 더 자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더 자주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모든 순간이 우리 뇌 속 천억 개의 뉴런 들에게 보내는 생존의 신호다. 연결되지 않은 뉴런은 사라진다. 그러나 연결된 뉴런은 강해질 것이다.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