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 - AI와 로봇, 그리고 거인들의 투자법
박상준 지음 / 책밥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냉전이 끝난 이후 세계는 잠시 하나의 질서 아래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체제와 글로벌 공급망은 국경을 넘어 연결되었고, 세계 경제는 상호 의존이라는 이름 아래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그 연결의 시대는 예상보다 빨리 끝나가고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무역 분쟁이나 외교 갈등만이 아니다. 기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들고 두 거인이 세계 질서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하는, 말 그대로 21세기형 패권 전쟁이다.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이 경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지만, 그 파급력은 어떤 전통적 전쟁보다 강력하다. 반도체 수출 규제 하나가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고, 인공지능 기술의 우위가 국가 경쟁력 전체를 좌우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변화의 물결 앞에서, 우리는 관망자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그 흐름을 읽고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주체가 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미중 패권경쟁의 최전선》은 바로 그 선택의 기로에서 나침반이 되어주는 책이다.

과거의 패권 경쟁은 영토와 자원, 그리고 군사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21세기의 패권은 전혀 다른 곳에서 결정된다. 누가 더 빠른 반도체를 설계하느냐, 누가 더 정교한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개발하느냐, 그리고 누가 더 광범위한 데이터 생태계를 구축하느나에 따라 국가의 미래가 갈린다. 기술이 곧 권력이 된 세계에서는 실리콘 밸리의 연구소가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의 군사 기지보다 더 중요한 전략적 거점이 된다. 미국이 엔비디아의 AI 가속 칩 수출을 규제하고, 첨단 반도체 제조 장비의 대중국 판매를 차단한 것은 이러한 인식을 그대로 반영한다. 최첨단 칩 하나가 핵무기만큼이나 전략적 가치를 지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엔비디아의 H100 GPU는 AI 군비 경쟁의 핵심 자산이며, 이를 누가 보유하느냐에 따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 속도 자체가 달라진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로 이어지는 미국의 AI 생태계는 바로 이 압도적인 컴퓨팅 파워 위에 세워져 있다. 중국의 대응 전략은 다르지만 결코 덜 야심차지 않다. 화웨이가 외부의 예상을 깨고 7나노 공정의 자체 칩을 탑재한 스마트폰을 출시했을 때, 세계는 중국의 기술 자립 의지가 단순한 구호가 아님을 확인했다. SMIC를 중심으로 한 반도체 국산화 전략, 막대한 국가 자본이 투입되는 AI 인프라 투자, 그리고 데이터 주권을 지렛대로 삼는 디지털 산업 확장은 미국의 봉쇄 전략에 맞서는 중국만의 대응 방식이다. 이 경쟁은 어느 한쪽이 쉽게 백기를 드 는 구도가 아니다. 오히려 양측 모두 기술 자립을 향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으며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

반도체와 AI만큼이나 중요한 또 하나의 전선이 있다. 바로 로봇과 자동화 기술이다. 로봇 산업은 단순히 공장 자동화의 문제가 아니다. 로봇이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고, 얼마나 빠르게 학습하며, 얼마나 광범위한 환경에 적용될 수 있느냐는 곧 한 나라의 제조 경쟁력 전체를 결정짓는 문제다. 미국은 소프트웨어와 AI 기술을 결합한 고부가가치 로봇 기술에서 앞서나가고 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인간형 로봇들은 기계를 넘어 인공지능이 체화된 물리적 에이전트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세계 최대의 제조업 기반과 저렴한 생산 비용을 바탕으로 산업용 로봇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장악해나가고 있다. 이미 중국은 세계 최대의 산업용 로봇 도입국이 되었으며, 자국 로봇 제조 기업들의 기술력 또한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두 나라의 전략은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지만, 결국 같은 목표를 겨냥한다. 미래의 생산 시스템을 누가 장악하느냐의 문제다.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로봇 기술을 지배하는 국가가 곧 글로벌 제조 패권을 쥐게 된다. 이것이 로봇 산업이 국가 전략 산업의 핵심으로 부상한 이유다. 자동화 혁명은 이미 시작되었고, 그 흐름에서 뒤처지는 국가는 제조 경쟁력의 토대 자체를 잃게 될 것이다.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흐름이 곧 투자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책은 개별 종목 투자부터 ETF를 활용한 분산 투자까지 다양한 접근법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은 패권 경쟁이 집중하는 산업군을 정확히 식별하고, 그 안에서 경쟁 우위가 지속 가능한 기업들을 선별하는 안목이다. Al 소프트웨어, 첨단 반도체, 로봇, 데이터 인프라, 에너지 기술은 단기적 트렌드가 아니라 향후 수십 년을 관통하는 구조적 성장 산업이다. 이 분야에 대한 장기적 시각의 투자는 패권 경쟁이 만들어내는 역설적 기회를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미중 패권 경쟁에서 한국의 위치는 특수하다. 안보는 미국에 의존하고 경제는 중국과 깊이 연결된 한국은 어느 한쪽에 완전히 편승할 수도, 그렇다고 완전히 중립을 유지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 딜레마는 다른 시각에서 보면 독특한 전략적 가치를 의미하기도 한다.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 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핵심 역량이다. 특히 AI 산업의 성장과 함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이 보유한 기술적 우위는 미중 양국 모두에게 없어서는 안 될 전략 자산이다. 배터리 산업 역시 마찬가지다. 전기차와 에너지 저장 시스템의 핵심인 배터리 기술에서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경쟁력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다. 이는 단순히 몇몇 기업의 성공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이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체스판에서 어느 하나의 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전략 가치를 지닌 플레이어임을 의미한다.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제조 기반을 재건하려 하고, 중국은 기술 자립의 범위를 메모리 반도체로 확장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한국이 이 전략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을 멈추지 않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미중 패권 경쟁이라는 거대한 충돌의 우리는 새로운 패러다임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가기 위한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감각의 뇌과학 - 늙지 않는 뇌를 만드는
문제일 지음 / 코리아닷컴(Korea.com)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가끔 어머니의 손등을 생각한다. 주름지고 거칠어진 그 손등 위에 맺혀 있던 햇살의 온도, 그리고 어머니가 끓이던 된장찌개 냄새. 지금도 그 냄새가 코끝에 스치면, 나는 단 한 순간도 지체하지 않고 그 주방으로 되돌아간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 기억만큼은 조금도 바래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왜 그럴까. 냄새는 어째서 이토록 완강하게 과거를 붙들고 있는 것일까? 뇌과학은 이 질문에 꽤 담담하게 대답한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정보는 뇌의 이성적인 영역을 한 바퀴 돌아 분석된다. 하지만 코로 맡는 냄새는 다르다. 후각 신경은 감정과 기억의 중추인 변연계로 직행한다. 논리적 판단을 거칠 틈도 없이, 냄새는 곧장 우리 마음의 가장 깊은 서랍을 열어버린다. 그래서 냄새에 의한 기억은 언제나 선명하고, 언제나 뜨겁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프루스트가 홍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으로 잃어버린 시간 전체를 건져 올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냄새가 그의 이성이 아니라 감정의 심장부를 바로 두드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감각을 느낀다는 것은, 외부의 자극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다. 감각은 뇌를 깨우는 일이고, 뇌를 깨운다는 것은 결국 살아 있다는 것의 가장 적극적인 증거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뇌를 고정된 무언가로 상상한다. 나이가 들면 뇌도 굳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딱딱한 기계가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이 드는 것을 두려워하고, 기억이 흐려 지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그러나 뇌과학이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뇌는 기계가 아니라 살아 있는 유기체다. ‘함께 발화하는 뉴런은 서로 연결된다'는 법칙은, 뇌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존재임을 말해준다. 자주 쓰이는 연결은 강화되고, 사용되지 않는 연결은 사라진다. 즉, 뇌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매일매일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뇌가 늙지 않을 수 있는가. 저자의 답은 의외로 거창하지 않다. 감각하고, 느끼고, 연결되는 것. 그것이 전부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우리는 이 다섯 가지 감각을 통해 매 순간 세상과 접속한다. 눈이 아름다운 빛을 포착하고, 귀가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를 담고, 피부가 온기를 느끼는 그 순간마다, 뇌 속의 뉴런들은 일제히 깨어나 신호를 주고받는다. 감각은 뇌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말처럼, 감각이 차단된다는 것은 곧 뇌를 굶기는 것이다. 굶주린 뇌는 빠르게 쇠퇴한다. 특히 눈 맞춤에 대한 연구는 내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어른이 아기와 눈을 맞추며 노래를 불러줄 때 두 사람의 뇌파는 놀라운 수준으로 동기화된다고 한다. 두 개의 뇌가 하나처럼 진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감각의 교환만이 아니다. 두 존재가 서로를 향해 완전히 열리는 순간이다. 그 순간 뇌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을 분비하고, 신경 가소성을 유지하며, 노화의 속도를 늦춘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 모른다. 오래된 친구와 마주 앉아 눈을 맞추며 나누는 대화 한 시간이, 어떤 값비싼 뇌 건강 보 조제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낸다.

왕따, 고독사 등 현대 사회에서 문제시 되고 있는 사회적 고립은 뇌를 파괴한다. 고립된 개체의 뇌는 뉴런 간의 연결이 끊어지고, 염증 수치가 높아지며, 치매와 같은 퇴행성 질환의 위험이 급격히 상승한다. 독방 수감이 인간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인 이유는, 그것이 신체를 가두는 것이 아니라 뇌를 가두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결된 뇌는 강하다. 미국 듀크대학교의 브레인넷 실험은 세 마리의 원숭이 뇌를 연결했을 때, 개체 하나하나는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를 협력을 통해 풀어냈음을 보여주었다. 뇌는 연결될수록 더 강해진다. 이것은 비단 원숭이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도,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비로소 각자가 가진 능력의 총합을 훌쩍 뛰어넘는 존재가 된다. 그리고 연결은 반드시 거창할 필요가 없다. 아침에 가족과 나누는 짧은 눈 맞춤,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사, 오랜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 한 줄. 그 작고 소소한 연결들이 쌓여, 우리의 뇌를 매일 조금씩 더 건강하고 젊게 만들어간다.

뇌과학이 밝혀낸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이 있다. 치매는 기억이 저장되지 않는 병이 아니라, 저장된 기억을 꺼내지 못하는 병일 수 있다는 것. MIT의 도네가와 교수 연구진은, 알츠하이머와 유사한 증상을 보이는 생쥐의 뇌에서 기억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단지 인출되지 못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치매 환자의 뇌는 닫힌 문이 아니라, 열쇠를 잃어버린 잠긴 문이라는 것이다. 기억은 사라진 것이 아니다. 다만 잠시 닿지 못할 곳에 있을 뿐이다. 그리고 어쩌면 향기 하나, 손길 하나,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그 잠긴 문의 열쇠가 될 수 있다. 드라마 속 궁녀가 치매에 걸린 왕 앞에서 선향을 피워 달라 청했던 것처럼. 감각은 뇌를 자극하는 도구만이 아니다. 감각은 우리가 여전히 이 세상에 연결되어 있다는 신호이고, 기억이라는 이름의 삶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다.

나는 이 모든 이야기를 읽으며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살 것인가. 뇌는 평생 완성되어 간다고 한다.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고 느끼고 연결되며 조금씩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늙지 않는 뇌를 만든다는 것은, 어떤 특별한 훈련이나 처방이 아니라 삶을 성실하게 감각하는 것, 그리고 그 감각 속에서 타인과 진심으로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더 자주 바깥의 공기를 맡고, 더 자주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고, 더 자주 낯선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 그 모든 순간이 우리 뇌 속 천억 개의 뉴런 들에게 보내는 생존의 신호다. 연결되지 않은 뉴런은 사라진다. 그러나 연결된 뉴런은 강해질 것이다. 연결되어 있는 한, 우리는 계속 살아갈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육효, 삼천 년의 속삭임 : 종합편 육효, 삼천 년의 속삭임
최소원 지음 / 생각나눔(기획실크)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확실성이 일상이 된 시대다. 직업은 바뀌고, 관계는 흔들리며, 내일을 예측하는 일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방향을 찾는다. 어떤 이는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어떤 이는 누군가의 조언을 구하며, 또 어떤 이는 오래된 지혜의 언어에 귀를 기울인다. 최소원님의 <육효, 삼천 년의 속삭임>은 수천 년을 살아남은 동양의 점술 체계인 육효(六爻)를 현대인의 언어로 다시 풀어쓴 책이다. 처음 이 책을 마주했을 때, 솔직히 말하자면 낯선 거리감이 먼저였다. 육효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현대인의 감각과는 멀리 떨어진 어딘가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면서 그 거리는 조금씩 좁혀졌다. 저자가 설명하는 육효는 신비로운 예언의 도구가 아니라, 변화를 읽고 흐름을 파악하며 최적의 선택을 모색하는 사유의 틀에 가까웠다.

책의 출발점은 음양과 오행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음과 양이라는 두 힘의 순환 속에 존재하며, 이 이분법은 대립이 아닌 상호 의존의 원리 위에 서 있다. 양이 극에 달하면 음이 싹트고, 음이 가득 차면 양이 움직인다. 이 쉼 없는 전환의 논리는 단순히 철학적 명제에 머물지 않는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상승이 있으면 하강이 따른다는 자연의 리듬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오행은 그 음양의 원리가 다섯 가지 기운으로 분화된 것이다.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는 단순한 다섯 원소가 아니라 계절의 변화, 인간의 성정, 사물의 성질을 아우르는 범주의 언어다. 목은 봄의 생장이고, 화는 여름의 열정이며, 금은 가을의 수렴이고, 수는 겨울의 침잠이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를 잇는 토는 전환과 균형의 자리에 선다. 이 다섯 기운은 서로 돕기도 하고 억누르기도 한다. 상생(相生)과 상극(相克)이라는 두 원리가 오행의 관계를 규정하는데, 저자는 이를 좋고 나쁨의 문제로 보지 말라고 당부한다. 생함이 반드시 이로운 것도, 극함이 반드시 해로운 것도 아니다. 지나친 생은 균형을 무너뜨리고, 적절한 극은 오히려 과잉을 바로잡는다. 이 절제의 논리야말로 오행이 단순한 원소론을 넘어서는 지점이다.

음양오행이 우주를 읽는 언어라면, 육친(六親)은 그 언어를 인간의 삶으로 번역하는 체계다. 부모, 형제, 자식, 재물, 관직이라는 다섯 범주로 세상의 관계를 나누는 육친은, 추상적인 오행의 원리를 구체적인 삶의 맥락 안에 배치한다. 나를 생해주는 것은 부모의 자리에, 내가 극하는 것은 재물의 자리에, 나를 극하는 것은 관직과 권력의 자리에 선다. 흥미로운 것은 이 관계들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행의 절대성과 달리 육친은 기준점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 개념이다. 어떤 이에게 관성(官星)이 되는 것이 다른 이에게는 인성(印星)이 된다. 이 유동성 안에서 육효는 나와 세계의 관계를 단순한 선악이나 길흉으로 단정짓지 않고, 맥락과 위치에 따라 다르게 읽는 섬세함을 발휘한다. 한나라의 역학자 경방(京房)이 주역의 괘와 효에 오행과 지지를 배속하면서 육효는 철학적 성찰의 도구를 넘어 실용적 판단의 틀로 진화했다. 이 책은 바로 그 진화의 궤적을 따라가며 독자를 안내한다. 역사 속 인물들이 육효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새겨진 육효의 흔적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저자는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이론과 삶 사이의 간극을 채워준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저자가 육효를 예언의 도구가 아닌 지형도에 비유하는 부분이다. 정해진 운명을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현재 서 있는 자리와 앞으로 펼쳐질 지형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관점은 육효에 대한 통념을 단번에 뒤집는다. 지도를 갖는다는 것은 그 지도대로 걸으라는 뜻이 아니라, 지형을 알고 가장 합리적인 경로를 스스로 선택하라는 뜻이다. 이 관점은 현대인의 감각과 놀랍도록 잘 맞아떨어진다. 우리는 이미 빅데이터나 AI 예측 모델에 익숙하다. 그것들이 하는 일은 과거의 패턴을 읽어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육효 역시 본질적으로 같은 작업을 한다. 다만 그 언어가 디지털 수치가 아닌 음양오행의 기호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저자는 이 유사성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만, 책을 읽다 보면 그 구조적 닮음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세효(世爻)와 응효(應爻)의 개념도 이러한 맥락에서 읽힌다. 나(주체)를 나타내는 세효와 상대 또는 상황을 나타내는 응효가 서로 어떤 관계를 맺는지 분석하는 과정은, 결국 나와 세계의 역학을 가시화하는 작업이다. 두 효가 상생하면 협력과 조화의 가능성이 높고, 상극하면 긴장과 갈등의 신호로 읽힌다. 이것은 신탁이 아니라 상황 분석이다.

책은 점술서이면서 동시에 동양 철학 입문서이고, 자기 성찰의 안내서이기도 하다. 한 권으로 이 모든 역할을 감당하려 한다는 점에서 책의 욕심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욕심은 독자를 위한 것이다. 육효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이는 이에게 기초부터 실전까지를 한 흐름으로 안내하려는 저자의 의도는 충분히 전해진다. 무엇보다 이 책이 의미 있는 것은, 오래된 지혜를 박물관 속 유물이 아닌 지금 여기의 삶에 쓸 수 있는 도구로 복원하려 했다는 점이다. 삼천 년을 살아남은 지식 체계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것이 시대와 맥락을 달리하면서도 계속 읽혔다는 사실은, 인간의 불안과 선택, 그리고 변화에 대한 욕망이 시대를 초월하는 공통의 것임을 말해준다. 흔들리는 시대에 방향을 잃었다면, 꼭 육효를 공부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수천 년의 사유가 압축된 이 언어를 한번쯤 진지하게 마주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자신의 삶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계기가 된다. 저자의 말처럼 육효는 판결문이 아니라 지형도다. 그 지형도를 손에 쥐는 순간, 우리는 이미 조금 더 주도적인 자리에 서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26 대한민국 재테크 트렌드
조선일보 경제부 엮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마트폰 화면을 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다. 유가알림이다. 배럴당 100달러. 숫자 하나가 마치 경보음처럼 울린다. 미국과 이란 사이의 긴장이 전쟁으로 번지면서 세계 에너지 시장이 흔들렸고, 그 충격은 순식간에 주식시장으로 번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스피 강세에 들떠 있던 시장 분위기는 하루아침에 싸늘하게 식었다.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던 종목들이 순식간에 무너졌고, 뉴스는 빠르게 '위기'라는 단어로 채워졌다. 이런 상황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꾸만 한 가지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나는 지금 이 시장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걸까. 사실 올해 초만 해도 시장의 공기는 달랐다. 코스피 지수가 역사적 고점을 향해 달려가고,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연일 화제가 됐다. 주변의 대화 속에도 투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지금 들어가도 늦지 않은 거 아냐?" "Al 관련주는 아직 더 오른다던데." 그 분위기 속에서 나 역시 흔들렸다.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조급함, 남들만 벌고 있다는 불안함. 그 감정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끈질겼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유가가 100달러를 돌파했고, 중동의 전운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상승장을 이야기하던 매체들은 이제 하락장 대비를 말한다. 시장은 또다시 예측을 비웃으며 자기 방향대로 움직이고 있다. 나는 이 흐 름 앞에서 <2026 대한민국 재테크 트렌드>를 다시 떠올렸다. 이 책이 무언가를 정확하게 예언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이 책이 진짜로 말하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지금이 되어서야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책에는 'TACO'라는 표현이 등장한다.'Trump Always Chickens out', 즉 트럼프는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물러선다는 패턴을 가리 키는 신조어다.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 시장을 흔들어 놓은 뒤, 어느 순간 슬며시 물러서는 방식. 처음 이 대목을 읽었을 때는 그냥 흥미로운 분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유가 충격과 함께 요동치는 시장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문제는 트럼프만이 아니었다. 지정학적 갈등, 이란과의 군사적 긴장, 이 모든 것이 겹치면서 '과도한 공포 국면'이 만들어지고 있다. 책이 말한 것은 바로 이 국면에서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가였다. 공포가 극에 달했을 때 파는 것이 본능이다. 하지만 그 본능이 가장 잘못된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시장은 오버슈팅과 언더슈팅을 반복하며 움직인다. 바닥이라고 생각했을 때 더 깊은 바닥이 나타나기도 하고, 꼭대기라고 생각했을 때도 계속 오르는 경우가 있다. 책이 경고하는 것은 이 양극단에서 감정에 휘둘려 매매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 그 경고를 머리로는 알면서도 감정적으로는 따르지 못했던 적이 많다. 유가 100달러 돌파는 단순히 에너지 비용의 문제가 아니다. 인플레이션 압력을 다시 자극하고, 중앙은행의 금리 정책에 변수를 더한다. 달러화 강세가 이어지면 신흥국 자금이 이탈하고, 그 흐름은 고스란히 한국 시장에도 영향을 준다. 중동의 화약고가 터진 이 순간, 세계 경제의 연결 고리들이 일제히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동산 파트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 책은 인구 감소 시대에 모든 집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지역으로 쏠림 현상이 심화된다고 말한다. 마포나 성동구가 오른다고 해서 인근 지역이 금방 따라가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그 말은 지금 서울 집값의 양극화를 보면 더 실감 난다. 강남권 재건축 단지와 지방 소도시의 아파트 가격이 동시에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유동성이 넘치던 시절에는 물이 차오르듯 모든 곳이 올랐지만, 유동성이 선별되는 시대엔 물이 가장 낮은 곳부터 빠져나간다. 지금 나의 자산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선호 지역'에 해당하는지를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는 말이 더 이상 추상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주식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수록, 역설적으로 연금과 세금에 대한 이야기가 더 중요해진다. 단기 수익률에 집중하느라 정작 오랜 시간을 두고 설계해야 하는 자산 구조를 놓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책에서 말하는 국민연금, 퇴직연금, IRP의 3층 연금 구조는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세금 혜택을 최대화하면서 복리로 자산을 불려 나가는 구조라는 점에서, 오히려 시장이 흔들릴 때일수록 이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증여세는 10년 단위로 합산된다는 내용도 인상적이었다. 자산 승계는 죽음 앞에서 서두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동안 주기적으로 실행하는 장기 전략이라는 시각. 지금 당장 시장이 어디로 가느냐를 예측하는 것보다, 내 자산이 30년 후에 어떤 형태로 가족에게 이어지는지를 설계하는 일이 더 근본적인 재테크일지 모른다.

책을 덮고 다시 스마트폰 화면을 켰다. 유가는 여전히 100달러 근방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지수는 또 출렁였다. 예전 같았으면 그 숫자 하나에 마음이 흔들렸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른 질문이 먼저 떠오른다. 이 흔들림이 공포인가, 기회인가. 내가 지금 현금 비중을 충분히 확보해 두고 있는가. 이번 변동이 장기 추세를 바꾸는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인 과반응인가 고민해 본다, 답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예전처럼 두렵지만은 않다.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위에서 대비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이 시대의 재테크가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태도라는 것을 이 책은 여러 전문가의 목소리를 통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시장을 맞히려는 사람이 아니라, 시장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 마음 하나를 남기는 것으로, 지금 이 혼돈의 한가운데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재테크가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30 자본주의 생존 인사이트 - 경제의 언어 그리고 부의 시크릿
최승수 지음 / 바른북스 / 202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처음 제대로 들은 건 아마 고등학교 사회 시간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칠판에 분필로 무언가를 적었고, 나는 그것을 시험을 위해 외웠다. 자본주의. 생산수단의 사유화. 시장경제. 그리고 시험이 끝나면 깔끔하게 잊었다. 그때는 그것이 내 삶과 이렇게 깊이 연결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회에 나온 건 불과 몇 년 전의 일이다. 첫 월급을 받던 날의 설렘은 아직도 기억한다.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이제 진짜 어른이 됐다는 실감이 들었다. 그런데 그 설렘은 생각보다 빨리 식었다. 월세, 통신비, 교통비, 식비를 하나씩 빼고 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열심히 일했는데 왜 항상 빠듯한 걸까. 처음에는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씀씀이를 줄여야 하나, 아르바이트를 더 해야 하나, 아니면 더 좋은 직장을 찾아야 하나. 문제가 나에게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와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깨달았다. 나만 이런 게 아니라는 것을. 열심히 사는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비슷한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 불안의 이름을 몰랐을 뿐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본주의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나만의 인사이트를 구해보고자 노력했다.

자본주의는 규칙이 있는 게임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게임이라면 규칙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이 게임판 위에 올려졌고, 규칙을 배운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직장을 얻고, 좋은 직장에 가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나름 괜찮은 직장에 들어간 지금도 나는 여전히 불안하다. 규칙이 다른 것이었다. 이 시대의 진짜 규칙은 교과서에 없었다. 빚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금리가 오를 때 내 삶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 물가가 오른다는 말이 단순히 물건값이 비싸진다는 의미를 넘어 나의 미래 구매력이 조용히 녹아내리고 있다는 뜻인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우리는 경제라는 거대한 바다에 수영을 배우지 못한 채 던져진 것이다. 처음으로 경제 공부를 시작했을 때, 솔직히 두려웠다. 어렵고 지루한 이론들, 낯선 숫자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전문 용어들. 그것들이 나와 무관한 세계의 언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하나씩 배워가면서 알게 됐다. 경제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매달 카드값을 어떻게 감당하는지, 왜 전세 보증금이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 왜 남들처럼 살려다 보면 항상 돈이 부족한지 그 모든 것이 경제였다.

사회 초년생으로서 가장 힘든 것은 돈이 없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가장 힘든 건 그 이유를 모른다는 것, 그리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는 막막함이었다. 스마트폰을 열면 누군가는 해외여행을 다니고, 누군가는 멋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는 새 차를 샀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그 풍경들을 보며 나는 조용히 비교했다. 나는 왜 저렇게 못 살까. 나는 능력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노력이 부족한 걸까. 그런데 그것이 함정이었다. 보이는 것과 실제는 달랐다. 화려해 보이는 소비 뒤에는 카드 할부가 있고, 멋진 차 뒤에는 할부금이 있고, 여유로워 보이는 삶 뒤에는 보이지 않는 빚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자본주의는 보여주기를 부추기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보여주기에 끌려다니면, 우리는 평생 남의 기준 위에서 자신을 소진하게 된다. 내가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물어본 날이 있었다. 나는 진짜로 무엇을 원하는 걸까. 남들이 부러워하는 삶? 아니면 내가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가 괜찮았다고 느낄 수 있는 삶? 두 가지는 생각보다 많이 달랐다. 경제적 목표를 다시 세웠다. 거창하지 않았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누군가에게 손 벌리지 않아도 되는 것. 아플 때 병원비 걱정 없이 병원에 갈 수 있는 것. 나이 들어서 자녀에게 짐이 되지 않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 목표를 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남과 비교하는 불안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다.

경제를 배운다는 것은 결국 세상을 읽는 눈을 기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금리가 오른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예전의 나는 그냥 지나쳤다. 이제는 멈추게 된다. 이게 나의 대출이자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집을 사려고 했다면 지금이 적절한 시점인가. 환율이 요동치면 수입 물가가 오르고, 그게 다시 내 장바구니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거창한 전문 지식이 아니라 삶과 연결된 감각이다. 무엇보다 가장 소중하게 깨달은 것은 시간에 관한 것이었다. 복리는 단지 투자 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내가 내리는 작은 결정들이 10년 후, 20년 후의 나를 만든다는 진실이다. 지금 당장 눈에 보이지 않아서 느슨해지기 쉽지만, 20대에 시작하는 100만 원과 30대에 시작하는 100만 원은 결코 같은 무게가 아니다. 그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라는 후회와 함께,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다행이라는 안도가 함께 든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 시스템의 규칙 안에서 살아간다는 의미다. 규칙을 모르면 당한다. 빚의 구조를 모르면 빚의 노예가 되고, 사기의 패턴을 모르면 정교하게 설계된 함정에 빠진다. 세금의 구조를 모르면 낼 필요 없는 세금을 내고, 보험의 본질을 모르면 필요 없는 보험에 가입한다. 하지만 규칙을 안다고 해서 반드시 이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잃지는 않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 초년생인 나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크게 이기는 것이 아니라 크게 잃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내 기반을 만드는 첫 번째 단계라고 믿는다. 불안한 시대라고 한다. 맞다. 물가는 오르고 기회는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고, 열심히 살아도 제자리걸음인 것 같은 날들이 있다. 그런데 나는 이제 그 불안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시대의 구조가 만들어낸 불안이라는 것을. 그 구조를 이해하면,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어디를 향해 걸어야 하는지는 알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